§ 나는 될놈이다 외전 23화
‘그래도 나름 쓸모 있는데.’
이세연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태현은 케인이 이런 훈련들로 인해 더 강해졌다고 믿었다.
…아마도!
“그러면 왜 저렇게 방해하는 거지?”
“어….”
이세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게?
왜 저러는 거지?
‘미쳤나?’
인생이 너무 지루해서 난이도를 올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굳이 게임단에 들어와서 회장 손녀 딸에게 시비를 걸 이유가 없었다.
“아. 혹시 그런 건가? 나는 회장의 손녀라 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게임에서는 진지하다?”
“그런가?”
이세연은 순간 태현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이다비가 무슨 미친 개소리를 하냐는 듯이 말했다.
“게임에서 진지한 거랑 팀원 반대하는 게 무슨 상관이에요. 저건 그냥 삽질하는 건데요.”
‘아차!’
이세연은 정신을 차렸다.
순간 태현의 감언이설에 넘어갈 뻔한 것이다.
“아. 그러게. 이다비 말이 맞군. 그냥 성질 더러워서 시비거는 놈들이네.”
“와. 정말 대단한데요.”
이다비는 다른 의미로 감탄했다.
아무리 성질이 더러워도 그렇지 게임단 들어와서 회장 손녀한테 저렇게 시비를 걸어도 되나?
미친놈들 아닌가?
“아마 지수가 누군지 몰라서 저러는 걸 거야. 지수는 굳이 신분 밝히지 않고 있거든.”
“그렇군. 잠깐. 왜 같이 하고 있지? 유성 게임단에 입단이라도 했나?”
“그건 아니고.”
이세연은 고개를 저으며 설명했다.
유지수는 지금 판온 2부 리그의 게임단을 운영하려고 이것저것 진지하게 준비 중이었다.
게임단을 만들고, 코치진들을 구하고, 재능 있는 선수들을 구하고….
“아하. 유성 게임단의 훈련 방식을 배우려고 저러는 거였군.”
“대단하네요.”
“아니야.”
“아니야?”
유지수는 그러다가 깨달은 것이다.
-이거 너무 답답해서 내가 뛰는 게 낫겠다!
“…….”
“…….”
태현과 이다비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게임단 주인이 직접 뛰지 말라는 법은 없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이세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누가 시초인데 지금 저런 소리를 한단 말인가.
“다음 시즌부터 자기가 직접 선수로 뛰려고 연습 중인 거야.”
“그렇군. 힘들지 않나?”
“다시 말하지만 네가 할 말은 아니라니까….”
이세연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렇게 진지하게 연습하는데 말릴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었다.
“응원해 줘야겠군.”
“맞아요.”
태현은 사냥하고 있는 유지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데일맨은 깜짝 놀랐다.
‘날 보고?!’
김태현이 찾아온 건 알았지만 자신을 보고 손을 흔들어 줄 줄이야.
“날 보셨어!”
“네가 아니라 날 본 거야!”
“아니야! 날 본 거라고!”
두 랭커는 서로 다투며 태현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태현이 말했다.
“너희 말고 뒤에 있는 애 부른 거니까 비켜라.”
“…….”
“…예?”
* * *
태현과 이세연이 아는 척을 하는데 이상함을 못 느낀다면 뇌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데일맨은 주변에 대체 저 궁수 랭커가 누군지 캐물었다.
그리고는 경악했다.
“…!!!!!!!”
“미친놈아…!”
데일맨과 같이 활동했던 친구는 경악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텃세를 부리는 상대를 골라도 적당히 잘못 골라야지 미친놈이 누굴 건드린 거야??
“아… 아이고…!”
데일맨의 친구는 달려가서 바닥에 넙죽 엎드려서 대가리를 땅에 박았다.
드라마로 공부한 한국 특유의 사과 방식!
“잘못했습니다!”
“그래. 알겠으니까 잠시 조용히 하고 있어.”
“지금 대화하는 중이잖나.”
이세연과 태현은 데일맨의 친구가 대가리를 박든 말든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저런 사과에 놀라거나 흔들릴 정도의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그 싸늘한 태도에 데일맨의 친구는 벌벌 떨었다.
“제가 정말… 귀인을 몰라뵙고….”
“아. 알겠다니까? 조용히 좀 해.”
“지금 대화 중이잖나. 나중에 사과하라고.”
“하지만 그게, 정확한 사정을 들으시는 게….”
귀찮아진 태현은 정확하게 상황 요약을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새로 들어온 선수 싫어서 텃세 부린 거 아닌가? 맞지?”
“그.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로그아웃 당할래, 인정할래? 정해라.”
“…….”
말도 안 되는 협박을 하는 태현의 모습에 데일맨의 친구는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이건 말도 안 됩니다!”
“3. 2….”
“인, 인정하겠습니다!”
“그래. 처벌은 나중에 받고 저리 가 있어라.”
“…….”
데일맨의 친구는 혼이 빠진 얼굴로 비켜섰다.
이렇게 ‘엇’ 하는 사이에 변명이고 뭐고 없이 끝나게 될 줄이야….
데일맨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달려들었다.
“김태현 선수!!”
“아. 왜 또 시간차로 귀찮게… 너도 저기 가 있어라.”
“제발 들어주십시오! 사정을 들으시면 이해할 겁니다!”
“안 비키면 로그아웃시킨다.”
“정말입니다! 제가 보여드리고 말씀드릴 게….”
퍽!
[HP가 0이 되어 로그아웃…]
“…….”
“…….”
옆에 있던 유성 게임단 신인 선수들이 경악했다.
진짜 저렇게 한 번에 로그아웃을….
‘아니, 그보다 일격에 보낸 건가??’
‘데일맨이 저 정도로 약한 놈이었어?’
태현은 방금 한 명 보냈다는 건 신경도 쓰지 않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까 운영도 하고 선수로 뛴다는 건 말이야, 어떤 거냐면….”
유지수는 눈빛을 빛내며 태현의 조언을 받아 적었다.
운영도 하고 선수로 뛰어서 게임단을 먹여살렸던 태현의 조언은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생생한 현실감이 있었다.
이게 초일류의 조언이구나!
“식사를 차려주는 것도 필요해요?”
“아니. 그딴 건 절대 해주지 마. 버릇 나빠지니까.”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세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케인이 인터뷰에서 하는 소리 때문에 다른 게임단 선수들이 ‘원래 사장님이 밥 차려주는 게 정상인가요?’ 하며 의아해하곤 했던 것이다.
하여간 여러모로 특이한 게임단이라 상식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됐다.
“꾸준한 테스트로 선수들 실력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작정 실력 떨어진다고 포기하는 것도 좋지 않지. 그리고 가끔 더럽게 말 안 듣는 선수가 있을 때도 있어.”
“그럴 땐 어떻게 하면 좋죠?”
“그럴 때는 힘으로 제압하는 거지.”
“과연….”
“뭘 과연이야!? 저건 쟤네 팀이 특이한 거야. 저거까지 따라할 필요는 없어!”
이세연은 기겁해서 말렸다.
지금 진지하게 조언을 메모하고 있는 후배한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난 진지한데.”
“…….”
더 어이가 없는 건 태현이 진심으로 말했다는 거였다.
저딴 조언을 진심으로….
“홍보는 어떤 식으로 하는지 배우고 싶어요.”
“앗. 홍보요?”
유지수의 질문을 받은 이다비는 멈칫했다.
“역시 <파워 워리어> 같은 길드를 만드는 게 좋을까요?”
“절대 그러지 마세요.”
이다비는 정색하고 말했다.
<파워 워리어> 같은 길드는 만들어서 좋을 게 없었다.
굳이 멀쩡한 대형 길드를 만들 수 있는데 뭐하러 저런 이상한 길드를 만든단 말인가.
“일단 기본적으로….”
이다비가 말하는 걸 유지수가 적는 사이, 먼저 앞에서 사냥하고 있던 유성 게임단 선수들이 새로운 지역을 발견했다.
[태초의 빙하 지역을 발견했습니다!]
[놀라운 발견으로 스탯이 영구적으로…]
[……]
[……]
[……]
“!!!”
“어… 어제 꿈이 심상치 않던데 이렇게…!”
선수들은 깜짝 놀랐다.
몇 번이고 왔던 던전이었지만 처음 발견하는 지역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들어오는 보상을 보니 절대 평범한 던전이 아니었다.
이 위의 산맥 지역이나 다른 던전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던전!
“지금 바로 들어갑시다!”
“주장! 앞으로 와주세요! 이끌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선수들은 이세연을 불렀다.
이세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향했다.
“같이 갈 거지?”
“난 조금 있다가 갈게.”
“뭐? 왜?”
이세연은 깜짝 놀랐다.
태현이 누구보다 앞서서 들어갈 줄 알았던 것이다.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히든 던전 구역이 발견됐는데 저런 반응이라니.
…불치병에 걸렸나?
“이다비랑 조금 더 있으려고.”
“와. 내 귀를 씻고 싶어지는데. 그러면 천천히 와.”
이세연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향했다.
“저는 바로 들어가도 괜찮은데요?”
“하도 시끄러운 놈들 많아서 같이 있지도 못했는데, 좀 더 있자. 저 던전 딱 보니까 들어가면 개고생할 던전이야.”
들어가지 않아도 대충 던전의 견적이 밖에서 느껴졌다.
들어가는 순간 갖고 있는 스킬 다 꺼내면서 정신 집중 해야 하는 던전!
거기 들어가면 이렇게 같이 있고 뭐고 없이 무조건 스킬만 사용해야 했다.
“과연… 감동했습니다.”
“참. 너희들도 따라 들어가라.”
“예?”
커플 랭커들은 당황했다.
우리들은 왜요?
“들어가서 같이 사냥해. 레벨업하고 좋겠네.”
“아니 김태현 선수… 저희가 무슨 잘못을….”
“지금 이다비 선수하고 같이 있으려고 이러시는 건 아니겠죠 설마….”
랭커들은 당황하고 투덜거렸지만 결국 태현을 이기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 많던 사람들이 새로운 지역으로 들어가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태현이 조용히 빙하를 보며 생각에 잠기자 이다비는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제가 무슨 생각하는지 맞춰볼게요.”
“응? 어떻게?”
“저 아래 던전에 뭐가 있을지 생각하고 있으신 거죠? 슬슬 출발하죠.”
“아닌데. 너 생각하고 있었는데.”
“…….”
이다비는 랭커들이 전부 다 아래로 사라져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체 왜… 옆에 있는데….”
“그냥 생각이 나서. 그리고 정말로 던전은 조금 있다가 들어가자.”
태현은 이다비의 손을 잡았다. 아까 정신없이 몬스터를 싹 쓸어버린 덕분에 빙하 던전은 조용하고 고요했다.
“던전은 기다려 줄 테니까.”
“…….”
이다비는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은 이다비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물론 저 아래 새로 열린 던전이 아예 궁금하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태현은 진심으로 초조하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 먼저 들어가서(이세연일지라도) 히든 스킬이나 아이템을 건진다 하더라도, 순순히 인정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 옆에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있었으니까.
“…너무 부끄러우니까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지 마세요 진짜.”
“이다비.”
“네?”
“새삼스럽지만 언제나 고마워.”
“…저도요.”
두 사람은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더 이상 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