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822화 (1,821/1,826)

§ 나는 될놈이다 외전 21화

“뭐가 안 된다는 거지?”

“지금 그거요! 지금 그거!!”

“당장 손 멈춰….”

“안 돼! 지금 멈추면 오히려 실패할 거라고!”

길드원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다.

말리긴 해야 하는데, 지금 강화 작업 들어간 걸 건드렸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고….

그리고 제일 황당한 건 정작 강화하는 대장장이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침착했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없나?!

“왜 주고서 난리지?”

“그걸 파괴하는 건 범죕니다! 그게 판온에 몇 개나 된다고…!”

보통 강화가 높게 된 아이템들은 일반적으로 성능이 부족한 아이템들이 많았다.

정말로 희귀하고 구하기 힘든 아이템들은 강화를 높게 하기가 쉽지 않았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박살이라도 나면 플레이어의 마음도 박살 날 테니까.

그러나 지금 대장장이의 손에 들린 <일곱 번 강화된 멸망한 왕국의 한손검>은 그런 희귀하고 구하기 힘든 장비를 무려 일곱 번이나 강화 성공 시킨 기적 같은 아이템.

그게 지금 부서지려고 하고 있었다.

‘안 돼!’

‘크윽!’

길드원들은 차마 눈 뜨고 쳐다볼 수가 없어서 모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눈을 감은 사이에 잠깐 빛이 번쩍이고 끝났을 뿐.

“???”

“?????”

“설마 성공하신 겁니까?”

대장장이는 대답 대신 빛이 번쩍인 검을 다시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망치를 들어올렸다.

“으아악! 으아아아아악!”

“안 돼!!”

길드원들은 몸을 던져서 태현의 망치와 모루 사이에 끼어들었다.

제발!

* * *

“김현아 선수나 다른 분들이 판온 1 때는 그랬군요.”

이다비는 신기해했다.

사실 이세연의 길드원들은 태현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판온 리그에서 태현과 이세연이 라이벌처럼 맞붙고 있어서기도 했지만, 더 따지고 보면 판온 1까지 사건이 올라가는 것이다.

지금 태현만 보면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유가 있었던 것!

“판온 1 때도 이상한 놈들이었는데 판온 2에서도 여전히 이상한 놈들이지.”

“…….”

“…….”

듣고 있던 랭커들은 태현의 말에 의아해했다.

어라…?

‘딱히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

‘그보다 괜히 불쌍하다.’

랭커들은 길드원들을 불쌍하게 여겼다.

자기들도 눈앞에서 저 정도 강화된 장비가 부서지기 직전이 된다면 눈이 뒤집혔을 테니까.

“그래도 김태현 선수. 강화 다 하고 나서 제안은 받으셨죠?”

“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김태현 선수는 판온 1 끝날 때까지 길드 안 들어갔잖아.”

“아. 그랬지.”

랭커는 그제야 기억을 떠올리고 멈칫했다.

어라?

그러면 제안을 거절한 건가?

* * *

김현아와 길드원들은 간신히 목숨을 걸고 태현의 동작을 멈출 수 있었다.

“제발! 제발 그만둬주십시오! 그렇게 강화된 아이템을 파괴시키는 건 판온 역사상 다시는 없을….”

“만든 아이템 파괴할 각오가 없으면 대장장이는 못 하지.”

“그래도 정도가 있지요! 아이고!”

“제발! 다른 장비를!”

길드원들은 미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태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고작해야 여덟 번 강화한 아이템 가지고 뭐라는 거야?’

여덟 번 강화 정도는 태현이 수백 번 넘게 걸어온 길에 불과했다.

고작 그런 아이템 가지고 강화하지 말라고 울며불며 매달리다니.

상당히 희한하고 궁상맞은 놈들이었다.

“헉헉. 대장장이님. 사실 저희가 오늘 이렇게 온 건 다른 제안이 있어서기도 합니다.”

어떻게든 태현과 모루 사이의 거리를 벌려놓고 나서 김현아와 길드원들은 입을 열었다.

“뭐지?”

“저희 길드에 들어와 주십시오!”

김현아는 고개를 깍듯하게 숙였다.

길드원들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였다.

오기 전에 했던, ‘이런 괴팍한 놈을 굳이 길드에 데리고 와야 하나’ 같은 생각은 싹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금, 김현아와 길드원들은 진심으로 눈앞의 대장장이를 길드로 모시고 싶었다.

이런 뛰어난 사람과 같이 판온을 하고 싶다!

“물론 대장장이님이 길드 활동을 꺼려하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길드들의 제안을 거절하셨지요.”

김현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미 여러 대형 길드들의 제안을 거절한 대장장이였다.

어떻게 보면 이런 제안도 좀 무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현아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세연을 중심으로 모인 이 랭커들의 길드가, 다른 대형 길드들이 가지지 못한 장점을 갖고 있다고!

“저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습니다! 대형 길드들은 조건은 후하지만, 그만큼 따라야 하는 규칙이 많으니까요.”

대형 길드들의 제안 밑에는 언제나 독이 숨어 있었다.

던전 제공, 보호 제공, 파티 지원 등등을 받으려면 대형 길드가 원하는 걸 해줘야 하는 것이다.

지금 눈앞의 대장장이 정도 실력이라면 대형 길드의 제작을 위해 자기 퀘스트를 느리게 하는 건 참기 힘들 터.

“저희는 그런 규칙이 하나도 없습니다. 철저하게 자유롭습니다. 길드가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아요!”

김현아는 진심을 담아 외쳤다.

이세연을 따르는 랭커들은 이런 점에 반해서 길드에 참가한 것이었다.

그 정도 실력을 갖고서도 대형 길드처럼 영지를 점령하거나 세금을 걷는 대신, 자유롭게 판온을 하려는 순수함.

그렇기에 대형 길드에 질린 랭커들이 이세연 밑으로 모여든 것이다.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지만 들어오시기만 하면 저희 길드는 대장장이님을 확실하게 보호해드릴 겁니다. 같은 친구니까요.”

“맞습니다. 어떤 제작도 강요하지 않아요. 대장장이님이 싫으시면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

“재료나 아이템 지원 같은 건 서로 마음 맞은 사이에만 하면 되지, 강제가 아닙니다!”

랭커들은 입을 모아 길드의 장점을 자랑했다.

김현아도 열심히 설득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확신했다.

‘이건 통한다!’

‘우리가 했지만 정말 잘 말했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잘 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설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장장이의 입이 열렸다.

“싫다.”

“…….”

“…….”

* * *

“아니 왜 거절하신 겁니까?!”

듣고 있던 다른 랭커가 자기가 더 아쉬워서 외쳤다.

그때 이세연의 길드에 들어갔으면 판온에 새로운 전설이 하나 세워졌을 것 아닌가!

대체 왜 안 들어간 거지?

“조건에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셨던 거겠지.”

“혹시 이세연 선수가 함정을 팠나요?”

“제안을 한 사람 중에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었던 거 아니야?”

모두가 추측에 열중했다.

태현은 정답을 알려줬다.

“그냥 혼자 하고 싶어서.”

“…….”

“…….”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그냥’이었다.

랭커들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물론 저게 틀린 말은 아닌데!’

평안 감사도 자기 싫으면 그만이듯이 어떤 제안도 그냥 자기가 싫다는데 어떻게 설득하겠는가.

자리에 모인 랭커들은 처음으로 이세연의 길드원들을 동정했다.

‘나였으면 억울해서 멱살 잡았다.’

‘저렇게 설득했는데….’

“그래서 거절하고 나서 헤어진 건가요?”

이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세연의 길드원들이 보이는 불만과 원한을 봤을 때, 고작 저거 거절했다고 쌓일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저것 때문이었다면 상당히 속이 좁은….

“아니. 계속 쫓아다니면서 제안하더군.”

* * *

“대장장이님!”

“여기 쌓아 온 재료가 있습니다!”

“어이쿠! 여기 누가 장비를 흘려놨어!”

김현아와 길드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태현을 꾸준히 쫓아다니면서 그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다.

이른바 태양 전법!

“정성과 끈기. 오직 정성과 끈기만 있으면 설득할 수 없는 사람은 없어!”

“맞는 말이야. 김현아. 동화에서도 외투를 입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바꾼 건 북풍이 아니라 태양이었지.”

김현아와 길드원들은 정말 정성을 다했다.

태현이 가는 곳마다 대기하고 있다가 아이템을 바치고, 재료를 바치고, 작업을 응원했다.

-던전 가십니까? 저희가 가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제작 가십니까? 저희가 가서 주변 보초를 서겠습니다!

-마을 가십니까? 저희가 가서 마을 구매를….

사람인 이상 감동을 받거나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김현아와 길드원들은 아직 알지 못했다.

그들이 상대하는 게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태현은 아무 말 없이 내미는 선물들을 덥석덥석 받아들었다.

받고, 받고, 또 받고….

[제작에 성공했습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니다!]

[……]

[……]

이쯤되자 길드원들이 먼저 지치기 시작했다.

이 인간, 진짜 이렇게 아무 말도 없을 수가 있나?

보통 무슨 말이라도 하고 받지 않나?

“다시 들어와달라고 제안해 볼까?”

“안 돼! 먼저 말하면 실패야!”

“하지만 현아야. 우리가 지금 쓴 시간을 생각해 봐.”

“정성과 끈기! 정성과 끈기로 극복할 거라고!”

김현아는 흔들리지 않았다.

열심히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그 날이 찾아왔다.

“대장장이님? 대장장이님?? 어디 가셨어요???”

* * *

“어? 진짜 어디 가셨어요?”

“준비 다 되서 랭커들 목 따러 갔는데?”

“…….”

“…….”

김현아와 길드원들의 도움 덕분에, 태현의 계산이 생각보다 빠르게 완성된 것이다.

-이제 이 정도면 랭커들하고 붙어도 이길 수 있겠다!

…그런 계산이 선 태현은 망설이지 않고 동굴을 떠났다.

물론 김현아와 길드원들은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와….”

“앞으로 김현아 선수 욕하지 말아야겠다. 맨날 김태현 선수 보면 인상 팍팍 써서 인성에 문제 있는 줄 알았는데.”

온갖 선물을 안겨주며 공을 들인 대장장이가 갑자기 말없이 사라지더니 랭커들 한명씩 뚝배기 따고 다니며 이세연까지 노렸으니, 얼마나 배신감이 들었겠는가.

태현만 보면 이를 가는 게 이해가 갔다.

“나는 아이템 달라고 한 적도 없고, 제안도 거절했지. 그쪽이 멋대로 압박하려고 준 게 잘못 아닌가?”

“그것도 그렇긴 한데요.”

쩌저적!

태현 일행이 쉬고 있는 동굴 밖에서 얼음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새로 들어왔나? 다른 팀도 있어?”

“아니요. 제가 알기로는 없는데…?”

태현과 랭커 커플들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동굴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새로 들어온 침입자와 마주쳤다.

“으아아아아악! 이세연 선수의 유령이다!!!!”

“…?”

선수들과 같이 던전 돌며 훈련하고 있던 이세연은 뜬금없는 반응에 당황했다.

‘유령이다!’도 아니고, ‘이세연 선수다!’도 아니고….

‘이세연 선수의 유령이다’는 뭐야?

“앗. 이세연.”

“반가워요!”

태현과 이다비가 뒤에서 손을 흔들었다. 이세연은 깜짝 놀랐다.

“둘이 왜 여기?”

“촬영 중이야.”

“이, 이세연 선수. 안녕하십니까!”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이세연은 자리를 둘러보았다.

태현과 이다비 말고도 얼굴을 본 적 있는 랭커들과, 배장욱 PD까지 있었다.

‘잠깐. 이 프로그램 설마….’

“이거 그 커플 아닌가요?”

“맞습니다.”

“둘이?”

“예. 둘이.”

이세연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태현과 이다비를 쳐다보았다.

물론 공식 발표가 몇 번이고 나오긴 했지만 김태현 같은 놈이 이런 닭살 돋는 프로그램에 나올….

“이다비. 이 괴식 요리는 굳이 먹지 마. 맛대가리 없으니까 다른 놈들 먹으라고 하고. 넌 이거 먹어.”

“태현 님. 다 들리거든요….”

“…….”

그 광기 어린 모습에 이세연은 경악했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정말 변하긴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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