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814화 (1,813/1,826)

§ 나는 될놈이다 외전 13화

‘내가 이상한 건가?’

신입은 존경하는 선배 PD의 말에 고뇌했다.

물론 신입이 연애에 관해서 누군가한테 훈수를 둘 정도로 자신감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신입이 보기엔….

‘아무리 봐도 사귀는 사이인데??’

아무리 양보하고 봐줘도 둘은 그냥 같은 팀원의 사이가 아니었다.

서로 쳐다보는 눈빛에서 다정함과 따뜻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진짜 다들 그 정도로 친한가요?”

“그렇다니까.”

“하지만 그러다가 사귀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참 끈질기네. 그럴 리가 없다니까. 그런 오해를 하면 선수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야. 알다시피 팀 KL과 우리 방송국 사이가 좋은 건 그런 부분에서 예의를 지켜서거든.”

다른 방송국이나 언론사들이 조회수 때문에 별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을 가져다 쓸 때, 배장욱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서 그런 짓을 막아왔었다.

그런 서로에 대한 믿음이 이제까지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래도 한 번만 물어보면 안 될까요?”

“아이 참… 그래. 알겠다. 잠깐 기다려. 내가 물어보고 오마.”

배장욱은 신입을 보며 입맛을 다신 다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 들어온 신입이 이렇게까지 자기 의견을 내세웠는데, 그걸 완전히 묵살하는 것도 좀 그랬다.

“그, 그래도 될까요?”

“네가 물어보는 것보단 낫겠지. 잠깐만 기다려봐. 너무 크게 기대는 하지 말고.”

배장욱이 성큼성큼 걸어가자 그제야 신입은 걱정이 된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처음 봤을 때는 정말 둘이 사귄다는 확신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 확신이 사라졌다.

정말 내가 제대로 봤나?

‘잘못 본 거 아닌가? 괜히 화라도 내시면 어떡하지??’

걸어간 배장욱은 두 선수와 인사를 나누고 몇 가지 대화를 나눴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두 선수는 즐겁게 손을 흔들고 걸어갔다. 훈훈하게 끝난 것 같아서 신입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죄, 죄송합니다! 선배님! 저 때문에….”

“야.”

“네?”

“너 이 자식… 넌 복덩이다. 당장 회사로 돌아가자.”

“네? 어째서요?”

“두 사람이 사귄다는군.”

“정, 정말이요!?”

“넌 네가 봐놓고… 하긴. 나도 지금 엄청나게 놀랍다.”

배장욱은 태연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대형 뉴스란 말인가!

* * *

“왜 그래?”

이다비가 시선을 돌리고 멈칫하자 태현이 물었다.

“아. 별 건 아니고요. 그냥 신기해서….”

“오락실? 못 본 지 좀 됐지.”

게임센터 간판을 달고 있는 오락실의 모습에 태현은 반가워했다.

“뭐 좋아하는 거라도 있어?”

“저 안 해봤는데요.”

“…가자.”

“네?”

“가서 해보자.”

“굳, 굳이 그럴 거까지는 없는데요….”

이다비는 돈 아깝다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태현이 자신을 생각해 주고 있는데 그러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이미 이다비의 속마음을 읽고 있었다.

“물론 판온과 비교해 보면 상당히 즐길 만한 게 적긴 하겠지만, 직접 하는 것도 즐거운 편이야. 그리고 연봉 올려줄 테니까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안 올려주셔도 되거든요?!”

이다비는 기겁해서 말렸다.

벌써 머릿속으로 <팀 KL, 내분… 선수 한 명 특혜?> <다른 게임단 A 선수의 인터뷰, ‘사실 숙소 생활하면서 밥도 안 차리는 그 선수가 오래 버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죠’> 같은 기사 제목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 어디서 본 사람들 같은데.’

게임센터 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직원은 두 손님의 얼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게 낯이 익은….

‘에이. 알 게 뭐냐.’

직원은 하품을 하며 두 손님을 쳐다보았다.

“몇 판 하실 거예요?”

“온 김에 기록 깨고 가자.”

“…그… 그럴 것까지는….”

“안 돼. 안 그러면 너 한 판만 해도 재밌다고 할 거잖아.”

“안 그래요! …아마도….”

직접 북을 두드리는 리듬게임을 하기 위에 자리를 잡는 손님을 보며 직원은 속으로 웃었다.

‘후후. 기록은 절대 깨지 못할 거다.’

게임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만큼 직원은 저 리듬게임의 고수였다.

당연히 저 순위 또한 직원이 직접 새긴 것!

그런 피, 땀, 노력으로 만든 순위가 딱 봐도 어설퍼 보이는 손님들에게 깨질 리 없지 않은가.

‘여자친구 앞에서 자랑하고 싶은 건 알겠지만 곧 망신당할….’

파파파파파파파파파팍!

“오. 깼다.”

“저도 깼어요.”

“에이. 좀 더 해보지? 한 판만 해서 뭐해.”

“그, 그러면 한 판만 더….”

“?!?!?!?”

직원은 믿을 수가 없었다.

깼다고!?

‘잘못 본 거 아니야?’

태현은 자기가 하던 걸 멈추고 이다비 옆에서 구경했다.

그렇게 말한 것치고 이다비는 처음 하는 게임들이 재밌었는지 땀까지 흘려가며 신나게 두드리고 있었다.

‘흠. 이다비는 정말 뭘 해도 예쁘고 완벽하군.’

북 두드리는 모습까지 이렇게 흠집 하나 잡을 수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나게 두드리던 이다비는 태현이 하던 걸 멈추고 구경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뭐하세요?”

“구경하고 있었어.”

“앗. 죄송해요.”

“아니야. 구경도 재밌어.”

“구경이 뭐가 재밌어요. 특히 이건 두드리는 것밖에 없는데.”

이다비는 게임기에서 내려왔다.

“무슨 다른 생각이라도 하셨어요? 구경하시다 말고 뭔가 다른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응? 아. 하긴 했어.”

“무슨 생각이요?”

“넌 정말 뭘 해도 예쁘고 완벽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

이다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뒤에서 기록 보려고 다가오던 직원도 경악했다.

‘지금 접근할 수가… 없겠군!’

저 분위기에 어떻게 끼어든단 말인가?!

* * *

“이다비. 왜 그래. 동작이 느려졌어.”

“…태현 님 때문이거든요….”

그 뒤로 이다비는 다른 게임을 하더라도 머뭇거리면서 자꾸 태현을 쳐다보았다.

좀비를 총으로 쏴죽일 때도,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농구공을 던져 넣을 때도.

“이다비… 혹시 재미없어?”

“재밌어요! 재밌어요 진짜!”

태현이 진지하게 묻자 이다비는 지금 혼자 부끄러워하고 있는 자기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게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니잖아…!’

서로 사귀는 만큼 밖에서 이런 말을 주고받는 건 다들 하는 걸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다비 혼자만 쓸데없이 부끄러워하는 걸지도…??

“여기 음료수 서비스입니다.”

뒤에서 직원이 음료수를 갖고 다가왔다.

“아. 감사합….”

고마워하려던 이다비는 직원의 표정을 보고 멈칫했다.

직원의 표정은 지금 마치 들으면 안 될 말을 들은 것처럼 부끄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보자 이다비는 정신이 돌아왔다.

‘아까 말한 건 부끄러운 게 맞았어!’

“헉!”

“?”

“김태현 선수 아니십니까!?”

“맞습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은 충격 받은 표정으로 태현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어떻게 왔냐니… 가다가 간판이 있어서 왔습니다만.”

“그, 그렇겠죠!”

너무 당연한 대답에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다비를 쳐다보고 깜짝 놀랐다.

“이다비 선수?!?”

“앗. 네. 맞아요.”

“어떻게?!”

“간판이 보여서요?”

“그… 잠깐. 잠깐….”

직원은 자신이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지?

아주 거대한 무언가를….

“그보다 여기 신기록 세우면 경품 준다고 나와 있습니다만.”

“아. 지금 꺼내드리겠습니다!”

“둘이 같이 사진 좀 찍어도 되죠?”

“네. 물론이죠.”

태현은 이다비의 어깨를 안고 끌어당겼다. 직원은 경품을 갖고 오다가 그 모습을 보고 멈칫했다.

‘어어??’

“다 됐군요. 감사합니다.”

“잠… 잠깐만요!”

직원은 본능적으로 두 사람을 불렀다.

대체 뭘 잊고 있는 거지!?

태현은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예?”

“사인 해드릴까요?”

“아… 감사합니다!”

직원은 환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에, 옷에, 손바닥까지 받은 직원은 신이 나서 둘을 배웅했다.

그리고 5분쯤 후에 깨달았다.

“!??!?!?!?!!”

둘이 사귀고 있었어?!!

* * *

이다비는 걸으면서 말했다.

“반년 치 놀 걸 오늘 다 논 거 같아요.”

“그래? 남은 반년 치를 더 채우고 싶은 거지? 흠. 어디를 가야….”

“아닌데요. 진짜 아니거든요.”

이다비는 태현의 팔을 붙잡고 말렸다.

“앗. 앞에서 촬영하나 봐요.”

“저 사람은….”

태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사람들 많이 지나가는 광장이었지만 카메라들을 끼고 있는 연예인들은 눈에 잘 들어오는 편이었다.

심지어 그게 아는 얼굴이라면 더더욱.

“저 사람은 케인의 여자친구… 잠깐. 여자친구가 맞나?”

“네?”

“그, 케인의 여자친구가 있잖아.”

“아. 그분이요.”

연예인 출신으로 케인과 풋풋하고 예쁜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태현은 이다비와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같이 숙소생활을 하는 만큼 보고 듣는 게 좀 다른 것이다.

“저 사람인데….”

“그래요?”

“저 사람이 아닐 수도.”

“…???”

“케인은 여자친구라고 생각하지만 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지.”

“…….”

이다비는 경악해서 할 말을 잃었다.

“그 정도는 아니죠 솔직히!”

“그런가? 가능성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그런… 그럴 수 있긴 한데 그건 실례….”

“앗! 두 분!”

카메라 사이에 있던 하연이 태현과 이다비를 알아보고 눈빛을 빛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생방송으로 이야기하는 건 흥미로운 포맷이었지만, 아무래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 조회수가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태현이나 이다비 같은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되다니.

안 기쁠 수가 없었다.

“오랜만이에요!”

“원래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

이다비는 태현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었다. 태현은 알아듣고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거 뭐하고 있는 겁니까?”

“지나가는 시민분들하고 인터뷰하는 거예요. 원래 오늘은 커플들만 말 걸고 있었는데, 두 분은 예외로 해드릴게요.”

“그럴 필요 없는데요.”

태현은 그렇게 말했지만 하연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앗… 인터뷰하실 시간 없으신가요?”

“그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질문에 대답해드리면 됩니까?”

태현과 이다비는 나름 협조적이었다.

케인의 여자친구(일지도 모르는 사람)였으니까!

그 태도에 하연은 매우 고마워했다.

이렇게 친절할 줄이야…!

“오늘 두 분은 어디 갔다 오시는 길이세요?”

“카페 들렀다가, 오락실 들르고, 봉제인형 가게 보여서 들르고, 옷도 좀 둘러보고….”

태현은 손가락을 접으며 말했다.

그 말에 하연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과연 팀 KL 선수들은 다들 사이가 좋으시네요. 예전에 열애설 같은 게 터질 정도로요!”

“지금은 실제로 사귀고 있으니까 완전히 틀렸던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그렇군요! …네?”

하연은 순간 얼어붙었다.

방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이거 그냥 생방송으로 나가도 되는 건가?

내가 사고를 친 건가??

팀 KL 쪽에서 항의하면???

상대가 얼어붙자 태현과 이다비는 소곤거렸다.

“왜 저러는 건지 모르겠군.”

“아마 지금 저희 둘이 사귀는 것 때문이 아닐까요?”

“설마 그것 때문이겠어? 일단 방송은 진행해야지.”

태현은 하연의 손에 들린 큐카드를 뺏었다.

그러고는 질문을 자기가 읽기 시작했다.

“상대의 어떤 점이 가장 좋은가… 이건 별로 어렵지 않겠군. 일단….”

이다비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태현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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