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812화 (1,811/1,826)

§ 나는 될놈이다 외전 11화

“멈추라고 했다!”

“!”

궁지에 몰린 발칼락은 괴력을 선보였다.

[<울분의 함성>을 사용합니다!]

[병사들의 포위망을 탈출합니다!]

“죽여버린다, 대장장이 자식!”

-감히 선량한 대장장이를 위협하다니! 저 악당을 잡아라!

기사들이 뒤에서 쫓아왔지만 발칼락은 무시하고 내달렸다.

저 대장장이 놈을 죽이지 않고서는 억울해서 잠도 못 잘 것 같았다.

‘죽인다!’

[<광전사의 혈통>을 사용합니다!]

[힘 스탯이 크게 증가합니다!]

[민첩…]

[……]

[……]

발칼락은 <광전사의 혈통>을 사용했다.

한 번 사용하면 각종 페널티를 한동안 안고 살아야 했지만, 효과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어떤 페널티를 안더라도 저놈은 내가 죽인다!

“죽어!”

쾅!

발칼락의 눈이 부릅떠졌다.

자신의 공격이 대장장이가 든 방패에 그대로 막힌 것이다.

‘무슨…!?’

[<열네 번 강화된 지하 왕국의 방패>가 공격을 완전히 방어합니다!]

[스킬이 방패에 흡수됩니다!]

[데미지를 주지 못합니다!]

[공격이 돌아옵니다!]

“큭!”

발칼락은 상상도 못했다.

각종 스킬 콤보를 합친 자신의 공격이 고작 대장장이의 방패 하나에 그냥 막힐 줄은!

‘아니, 그보다 뭐라고? 14번?!’

발칼락이 대장장이는 아니어도 길드의 마스터였다. 강화 횟수 올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잘 알고 있었다.

-아이고, 길마님! 때려죽여도 5번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저희가 게으른 게 아닙니다!

-지금 다른 대장장이들 보십시오! 저희가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게임의 강화 시스템이 개같은…!

6번, 7번 강화시키려고 하면 ‘이러다가 길드 창고 거덜난다’ 하면서 호들갑을 떨던 게 길드 대장장이였다.

그런데 14번?

뭐지??

발칼락은 의문을 풀지 못했다.

야심찬 공격이 막히자 바로 대장장이의 반격이 방패 뒤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빡!

[HP가 0이 되어…]

* * *

이주홍은 경악했다.

옆에 있던 길드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 말이 없어졌다.

“봤… 봤냐 방금?”

“한 번에 보낸… 한 번에 보낸 거 맞습니까? 제가 놓친 거 아닙니까?”

“나도 똑바로 봤어. 미친! 저게 말이 되냐고!”

<진혼곡> 소속의 두 사람은 방금 본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발칼락은 그들도 쉽게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거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거물을….

그냥 한 방에 보냈다고?

봐놓고서도 믿기지가 않는 게 당연했다.

“병사들한테 많이 맞아서 HP가 깎여 있었던 거 아닐까요?”

“그… 그렇군. 그럴지도 모르지.”

발칼락이 사실 그렇게까지 많이 맞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주홍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라도 납득하지 않으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더 잘 싸우는데요… 진짜 보통 놈이 아닙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래봤자 대장장이 아닌가’ 하던 길드원의 태도는 싹 뒤바뀌어 있었다.

이주홍은 그게 어이없으면서도 이해가 갔다.

‘당한 놈들이 멍청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구나.’

솔직히 대장장이한테 당한 랭커들을 좀 무시했었다.

아무리 대장장이가 강해도 그렇지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을 텐데 자존심 때문에 버티다가 그걸 죽나?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보니 전혀 달랐다.

그냥 재수 없게 한 방 맞으면 무조건 로그아웃당하는 어마어마한 데미지!

대체 장비와 스킬셋을 어떻게 갖추고 있는 건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 가서 말 걸어볼까요?”

“…그래. 가서 말 걸어봐라.”

“아, 아니. 같이 가셔야죠.”

“나 못 믿냐?”

“믿든 못 믿든 아까 보셨잖아요. 간부님 없으면….”

아까까지만 해도 넘쳐 흐르던 자신감이 싹 사라진 상태였다.

이주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같이 가… 헉.”

“왜 그러십니까?”

“저, 저거 뭐하는 거냐?”

이주홍은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대장장이가 배낭에서 계속 장비를 꺼내서 녹이고 있었다.

그것까진 문제가 아니었다.

대장장이가 자기 장비 녹일 수도 있으니까.

문제는 저 장비가 어디서 많이 본….

“저, 저거 <원한의 서리 대검>이잖아!! 저게 왜 저기 있어!”

“잘못 보신 거 아닙니까? 그걸 왜 녹입니까? 경매장에서 팔면 얼만데?”

<원한의 서리 대검>.

이주홍이 찾아다녔던 아이템 중 하나로, 살벌한 데미지와 공격 속도로 경매장을 뜨겁게 달궜던 아이템이었다.

주인이 누군지 알려지지 않아서 어떻게든 구할 수 없나 침만 삼키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내가 저 아이템을 몇 번 봤는지 모르냐!? 실물이야!”

“그런데 저 대장장이가 그걸 어떻게 갖고 있습니까?”

“…그… 일단 말려! 말려!”

이주홍은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러자 기사들이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또 악명 높은 모험가가 선량한 대장장이를 괴롭히려 하는가!?

“!”

아까 발칼락이 기사들한테 두들겨 맞을 때는 웃겼지만 자기 일이 되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 대장장이 놈, 뭐 이렇게 친밀도를 높게 쌓아놨어??’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우리는 저 대장장이와 이야기하려고 온 겁니다.”

이주홍의 말에 기사가 태현에게 물었다.

-저 말이 사실인가?

“모르는 사이입니다.”

-잡아라! 감히!

“잠깐만! 잠깐만! 거짓말한 게 아닙니다! 정말로 전할 이야기가 있어서 온 겁니다! 기사님! 믿어주십시오!”

[화술 스킬이 낮아서 설득에 실패합니다.]

[기사들의 경계심이 올라갑니다.]

[계속 자리에 있을 경우 공격당할 수…]

“대장장이! 들어봐라! 너한테도 좋은 제안일 거다!”

태현은 들은 척도 안 했다.

“대장장이! 이건 정말 귀중한 제안이란 말이다! 다른 대장장이 랭커들도 듣고 탐냈다!”

그래도 태현은 무시했다.

“대장장이! 이야기만 나눠주면 이 보석들을 주겠다!”

이주홍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배낭에서 꺼낸 보석들이 빛을 받아서 반짝였다.

“잠깐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알겠네.

“…….”

이주홍은 어이가 없었다.

뭐 저런 새끼가?

* * *

“우린 <진혼곡>에서 나왔다.”

“스카웃 안 받는다.”

“…스카웃하려고 온 게 아니다. 그보다 <진혼곡>의 이름을 모르나?”

“모르는데.”

“…….”

이미 <진혼곡> 길드원들 몇 명을 도륙내놓고 이름도 모른다고 말하자, 이주홍 옆에 앉은 길드원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이 자식이?

“<진혼곡>의 이름을 모른다고?”

“그래.”

“지금 이 주변에서 도시 다섯 개와 성 세 개를 점령하고, 길드원 숫자는….”

“그만해. 이 자식아.”

이주홍은 길드원을 말렸다.

솔직히 조금 창피했던 것이다.

“대장장이. 우린 널 억지로 스카웃할 생각 없다. 물론 네가 들어오겠다고 한다면 생각은 해볼 수 있지만, 우리 길드에는 너보다 뛰어난 대장장이들이 많거든.”

“?”

옆에 있는 길드원이 ‘진짜요?’ 하며 쳐다봤다.

그러나 정작 태현은 무덤덤했다.

‘안 통하나.’

이주홍은 혀를 찼다.

역시 이런 도발에는 안 넘어가는 모양이었다.

“이유나 말해라.”

“네가 여러 아이템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이주홍은 그러면서 슬쩍 시선을 돌렸다.

아까 본 <원한의 서리 대검>이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진짜 맞잖아!!’

푸른색의 검날에, 가만히 있어도 주변을 얼려버리는 우아한 무기.

<원한의 서리 대검>이 맞았다.

“그 아이템을 사려고 한다.”

“아이템을?”

“그래.”

“흠.”

태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주홍은 그 반응에 놀랐다.

‘생각보다 긍정적이잖아?’

워낙 괴팍한 놈이라 무작정 망치를 휘두르거나 도망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어떤 걸 사겠다는 거지?”

“뭐?”

“어떤 걸 사겠냐는 거다. 설마 다 산다는 건 아니겠지.”

“…하하하! 잘 생각했다! 그리고 한 가지 오해하고 있군. 우린 다 살 수 있다. 걱정하지 마라!”

“정말인가?”

태현은 못 믿겠다는 듯이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이주홍과 길드원이 동시에 발끈했다.

“우리 길드를 무시하지 마라. 그 정도는 충분히 된다!”

“흠….”

태현은 잠깐 멈칫하더니 배낭에서 장비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샴발라 태양의 지팡이>, <이르고데느의 단검>, <환상 왜곡의 갑옷>, <잊혀진 황제의 망토>, <회전이 맴도는 창>, <지옥의 강에서 담금질 된 투구>, <거인의 뼈로 만든 건틀렛>….

아이템이 늘어날 때마다 이주홍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건 이 주변 길드들의 아이템을 다 턴다고 모을 수 있는 수준의 컬렉션이 아니었다.

‘이… 이 자식이 설마?’

최근에 희귀한 장비와 관련된 퀘스트에서 유독 주인이 누군지 안 알려지고 끝난 것들이 몇 개 있었다.

랭커들은 ‘누구냐? 안 노릴 테니까 솔직히 말해’ ‘어떤 새끼가 깬 거야? 어차피 영상 나오면 알려질 텐데 그냥 말해’ 등등으로 알아내려고 했지만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주홍은 대장장이를 보니 문득 의심이 들었다.

이 대장장이가 그 퀘스트들을 깬 주인이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되는데?’

“내 요구조건을 말하지.”

장비를 늘어놓은 태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런 거래를 하려는 이유는 하나였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올리기 위해 재료가 많이 필요했던 것이다.

‘제작 재료는 물론이고 강화 재료도 필요하다.’

아이템을 제작하는 것보다 그 아이템을 강화하는 게 몇 배로 더 힘든 일이었다.

강화 도중에 부서지는 건 물론이고 강화 자체로도 어마어마하게 재료를 잡아먹는 것이다.

그런 걸 감안한다면 재료는 아무리 많이 확보해도 부족했다. 태현은 가는 곳마다 광산을 바닥까지 다 싹싹 긁어모은 상태였다.

“일단 강철 주괴가….”

“잠깐. 잠깐!”

“?”

“미… 미안하게 됐지만 우리 길드는 이걸 다 살 수가 없다.”

“지금 날 속인 건가?”

대장장이는 무감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목소리가 더 소름돋았다.

“속, 속이려고 한 게 아니다! 정말이다.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사과하겠다.”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그… 그래.”

“그렇군.”

대장장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잘 납득해 준 것 같자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다. <진혼곡> 길드가 돈을 낼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 그래서 말인데 이 중에서….”

이주홍이 장비들 중 필요한 것만 고르려고 하자 대장장이는 고개를 저었다.

“어? 왜 그러지?”

“따로 안 판다. 어중간하게 몇 개 거래해 봤자 시간만 낭비니까.”

“…!!!”

이주홍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잠깐만! 잠깐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후하게 값을 쳐준다니까!? 아까 <샴발라 태양의 지팡이>와 <환상 왜곡의 갑옷>은 골드로 바꾸면….”

“골드가 아니라 재료로 받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두 개만 바꿔서 어디에 쓰겠나. 됐다. 거래는 끝났다.”

대장장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원한의 서리 대검>을 들어서 화로에 던지려고 했다.

이주홍은 새된 비명을 질렀다.

“잠깐만!!!!”

“한 번만 더 소리 지르면 기사들을 부르겠다.”

“미… 미안해. 미안하다고. 한 번만 기회를 줘라. 길드 윗선에 연락해서 어떻게든 구해보겠다.”

“<진혼곡> 길드에 그렇게 돈이 없을 것 같은데.”

“…….”

이주홍은 대꾸하지 못했다.

솔직히 윗선에 연락했는데 구하기 힘들 것 같다는 말이 돌아올지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저 대장장이 놈의 컬렉션을 그냥 녹여버리는 건… 범죄나 마찬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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