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외전 8화
기자들은 당황했다.
먼저 들어간 앨콧은 어디 가고 웬 처음 보는 대장장이가 나타난단 말인가.
기자 중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한 명이 외쳤다.
“설, 설마 당신이 발칼락 길드와 싸우고 있는 그 대장장이입니까?”
“무슨 목적으로 왔지?”
“예?”
“무슨 목적으로 왔냐고 물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3초 주지.”
태현은 방심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광산에 들어온 이상 발칼락 길드와 손을 잡았거나 사주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대답 못하면 죽인다.
“광, 광산 취재하러!”
“?”
“광산 취재하러 왔어요! 발칼락 길드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
“아. 그렇군. 그러면 지나가도 된다.”
태현은 안쪽을 가리켰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기자들은 멈칫했다.
“지나가도 된다고요?”
“그래.”
“정말 그래도 됩니까?”
“그냥 공격을 원했나?”
“그, 그게 아니라….”
“이쪽 길을 따라서 계속 움직이면 다음 층으로 갈 수 있다. 멈추지 말고 움직이도록. 길 밖으로 나가면 목숨 보장 못 해준다.”
태현은 발칼락 길드원들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이 던전 지하에 위치한 광산을 쓰든 말든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전투에 방해만 안 된다면 얼마든지 길을 따라서 지하로 내려가도 됐다.
“그… 그런데 앨콧은 어디 간 겁니까?”
“앨콧?”
“앞에 아무도 안 왔어요?”
“아. 그 암살자.”
태현은 그제야 누군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멈춰라.”
방금 전.
태현은 먼저 다가오는 앨콧을 향해 분명하게 경고했다.
발칼락 길드원은 아닌 것 같았지만, 태현을 공격하려고 하거나 방해하려고 한다면 내버려 둘 이유가 없었다.
“대장장이 자식이 건방지게….”
그러나 그런 경고가 오히려 앨콧의 성질을 건드린 것 같았다.
특히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저 대장장이의 실력을 칭송하고 있었던 게 컸다.
└대장장이 직업으로 발칼락 길드하고 싸우고 있다고?
└그게 가능해?
└대장장이 직업으로 저 정도면, 멀쩡한 전투 직업 골랐으면 판온 랭커들 다 이기는 거 아닌가?
└그걸 말이라고 하냐? 알지도 못하면서.
└왜.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은데.
자기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앨콧에게 저런 말은 매우 심기를 뒤틀리게 만들었다.
고작 대장장이한테 저런 칭송이라니.
실제로 붙으면 별 것도 아닌 놈일 텐데!
“어디 한번 얼마나 잘 싸우나 보자. 죽이진 않으마.”
앨콧의 말에 태현은 대답 대신 바로 마법진을 가동시켰다.
[<둔화의 룬>이…]
[당신의 움직임이 느려집니다.]
[<둔화의 룬>이…]
[당신의 움직임이…]
[……]
[……]
“허튼 수작을!”
앨콧은 그렇게 외치고 일단 빠져나가려고 했다.
대장장이 놈이 생각보다 함정을 안 들키게 잘 설치해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둔화의 룬>이…]
[당신의 움직임이…]
[<둔화의 룬>이…]
[당신의 움직임이…]
[<둔화의 룬>이…]
[당신의 움직임이…]
“…?!?!?!”
이 새끼 대체 마법진을 몇 개를 설치해 놓은 거야!?
하도 순식간에 중첩된 마법진 탓에 움직여지지 않자 앨콧은 당황했다.
어지간해서는 이런 경우가 없었던 만큼 더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잠….”
빡!!!!
그리고 태현은 그런 상대의 방심을 아주 잘 이용하는 사람이었다.
태현을 상대하면서 한 순간이라도 머뭇거리거나 방심한다면….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충격으로 인해 갑옷이 파괴됩니다!]
[……]
[……]
…이렇게 되는 것이다.
전력을 다해 휘두른 망치가 작렬하자 앨콧은 그대로 로그아웃당했다.
앨콧보다 HP 높고 방어력 높은 랭커도 아작이 났는데 앨콧이라고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암살자 직업인 만큼 방어는 더 취약했다.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발칼락 길드도 한심하군. 고작 이런 놈을 고용해서 보내나?’
* * *
“죽었지.”
“…….”
“…….”
앨콧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앨콧이 그렇게 빨리 죽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앨콧이 달려가고 기자들이 뒤늦게 도착한 시간을 계산해 보면 거의 1분도 안 되어서 죽은 것 아닌가?
“복수하고 싶나?”
태현은 기자들을 보며 물었다.
기자들은 깜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앨콧과 별로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그렇군. 그러면 가라. 발칼락 길드하고 곧 싸울 테니까.”
“잠, 잠시만요. 저희가 사실 광산 취재하러 온 게 광산만 취재하러 온 게 아니라 대장장이 분도 취재하러 온 거거든요.”
“그렇군. 가라.”
“아니….”
태현은 망치를 들어올렸다.
어디서 뭔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플레이어가 귀찮게 구는 걸 참아줄 생각은 없었다.
“…가겠습니다.”
“그래.”
기자들이 터덜터덜 걸어가기 시작하자 태현도 확인하고서 돌아섰다.
다음 지하 층으로 내려가면서 기자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대화했다.
“저게 그 소문의 대장장이 맞지?”
“맞는 것 같은데요.”
“소문이 진짜인 것 같은데? 어떻게 앨콧을 그렇게 빨리 제압했지?”
“앨콧이 생각보다 약한 거 아닙니까?”
“아냐. 앨콧 실력은 검증되었다고.”
“그러면 가짜 앨콧 아닙니까? 이게 말이 됩니까?”
“확실히… 앨콧이 가짜인가?”
“가짜 아니야! 저 대장장이가 정말 강한 거다.”
“믿기지가 않는데요. 어떻게 대장장이 직업으로 싸울 수 있지?”
“그래도 잘 됐다. 생각보다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은 아니군.”
“?”
“??”
선배 기자의 말에 다른 기자들은 의아해했다.
방금 꺼지라고 돌려서 말한 것 같은데 말이 통한다니?
“뭐가 말이 통합니까?”
“아예 양심 없는 놈이었다면 길을 막아버리거나 광산을 독점하겠다고 선언했을 것 아니냐. 다른 길드였다면 백 퍼센트 그랬겠지.”
“하긴 그렇죠. 기껏 얻은 광산인데.”
“근데 취재하지 말라고 꺼지라고 했잖아요.”
“지나가면서 구경하면 되지. 그 정도는 괜찮을 거 아니야. 한 명씩 대기하고 있다가 싸움 벌어지면 구경하러 가자.”
“어, 그러다가 휘말려서 죽으면요?”
“휘말려서 죽으면 다시 접속해.”
“…….”
* * *
“통과했다고??”
간부, 주벽중은 입을 떡 벌렸다.
구경하러 온 놈들을 화살받이 시키려고 광산 안에 들여보냈더니, 그 대장장이 놈이 놀랍게도 그냥 통과를 시켜버린 것이다.
‘속셈을 읽었나!?’
개나 소나 들어간 덕분에 지금 게시판에는 거인의 늑골 광산에서 있었던 일들이 우르르 올라오고 있었다.
<거인의 늑골 광산 지하 1층 현재 상태… 격전이 있었던 듯…>
<여기 날아간 아이템 발견!>
<발칼락 길드원들이 공식 발표한 것보다 더 많이 죽은 것 아닌가…>
……
……
“이런 잡놈들이!!”
“게, 게다가 지금 들어간 놈들이 대장장이 놈하고 거래하고 있다고 합니다.”
태현은 밖에서 들어온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각종 아이템을 보충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그 소식에 주벽중은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도저히 기다릴 수 없다. 지금 들어가려는 놈들은 다 쫓아내! 힘으로 공격해야겠다!”
“피해가… 피해가 막심할 텐데 괜찮습니까??”
발칼락 길드가 이런 수모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지금 대장장이 하나 잡겠다고 피해가 정도 이상으로 커지면 본말전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걸 감안하고 들어가다니.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지금 상황이 안 보이냐! 여기서 더 끌었다가는 길드 분위기 자체가 박살 날 거다. 피해가 얼마나 나오든 간에 무조건 짓밟고야 말겠다!!”
“예, 예!!”
척척척-
다른 곳에서 포위망을 유지하고 있던 용병단 NPC들이 몰려왔다.
동시에 길드원들도 긴장한 표정으로 던전 입구 앞에 줄을 섰다.
“힘으로 밀어붙인다! 이제 피해는 신경쓰지 않는다. 무조건 던전을 점령해라! 길마님이 다시 접속하셨을 때 광산을 선물해드리는 거다!”
“예!!!”
* * *
‘힘으로 오나.’
지하 1층 입구에서 갑자기 수많은 병력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하자 태현은 표정을 굳혔다.
사실 예상 못한 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싸움이 길어지면 대형 길드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밖에 없었다.
하나는 포기.
‘이딴 광산 필요 없다 너나 먹어라’ 하면서 쿨한 척 포기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제까지 태현한테 당한 길드들은 포기하고 물러섰다. 아무리 자존심이 상해도 길드 운영까지 포기하고 태현을 잡으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다른 방법도 있었다.
어떤 피해가 나오든 간에 힘으로 제압하는 것!
당연히 손익이 안 맞지만, 원래 판온은 손익만으로 굴러가지 않았다.
‘생각보다 너무 화제가 되어서 자존심이 상했나 보군.’
태현은 발칼락 길드 내부의 상황을 짐작했다.
게시판과 다른 길드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된 이상 침착함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쇠뇌가 작동합니다!]
퉁퉁퉁퉁퉁!
-크아악!
-커헉!
[정예 검은 곰 용병단 백인대장이 쓰러집니다!]
[병사들이…]
[……]
“밀어붙여! 놈을 잡아!”
“들어가! 멈추지 마라!”
‘확실히 숫자가 만만찮군.’
지하 1층 입구가 순식간에 뚫리는 걸 보며 태현은 고전을 직감했다.
각종 공격을 퍼부어도 상대는 몇 명 죽는 건 상관없다는 듯이 들어왔다.
하지만 태현에게도 방법은 있었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봐라.’
태현은 집요할 정도로 피해를 입힌 다음 더 이상 버틸 수 없자 깔끔하게 지하 1층을 포기하고 2층으로 내려갔다.
다급히 지하 2층으로 따라 내려간 발칼락 길드원들은 살벌하게 설치된 함정들을 보고 경악했다.
[정예 검은 곰 용병단의 불만이…]
[피해가 커질수록 불만도가 높아집니다!]
[……]
[……]
발칼락 길드원 중 한 명은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이 짓을 계속 한 층마다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 * *
불길한 예감은 사실이었다.
발칼락 길드원들은 지하 7층까지 내려가면서 정말 온갖 종류의 함정이란 함정은 다 몸으로 해내야 했다.
[정예 검은 곰 용병단이 전멸합니다!]
[앞으로 칼라네그 시 주변에서 용병단 고용이 불가능해집니다.]
[악명이 올라갑니다!]
[정예 붉은 새 용병단의 불만도가 크게 올라갑니다!]
[도주가 시작됩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단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함정을 혼자서 깔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다들 고생했다. 포기하지 마라! 지하 8층부터는 몬스터들의 난이도가 확 올라가서 대장장이 놈도 쉽게 함정을 설치하기 힘들었을 거다. 설치했다 하더라도 부서졌을 거고. 지하 7층까지 점령했으니 놈은 이제 거의 죽기나 마찬가지….”
두두두두두-
멀리서 굉음이 들렸다.
발칼락 길드원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무슨 소리지?”
“잘 모르겠는데….”
“몬스터들이 움직이나?”
“거기, 떠들지 마라!”
발칼락 길드 간부는 길드원에게 소리를 쳤다.
지금 이 신성한 자리에서 무슨 잡소리란 말인가.
“정예 검은 곰 용병단이 전멸했는데 괜찮나?”
“괜찮습니다. 어차피 전력은 충분하고, 거기서 고용 안 하면 그만이죠.”
두두두두두두-
그렇게 떠드는 사이 울림소리는 더욱더 커져왔다.
그 사이에서 태현이 외쳤다.
“가라! 가서 놈들을 부숴버려라!”
“…?!?!?”
그제야 사람들은 지금 이 지축을 흔드는 소리가 어디서 나온 건지를 깨달았다.
…태현이 지하 8층으로 내려가 몬스터를 유인해서 데리고 온 것이었다.
“저… 저런 X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