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외전 5화
“뭔?”
대장장이가 뚜벅뚜벅 다가오는데도 발칼락 길드원들은 바로 공격을 날리지 않았다.
그 모습에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고마운 놈들 같으니.’
저번에도 그랬지만 대형 길드에 소속된 길드원들은 콧대가 높아도 너무 높았다.
만약 태현이었다면 앞에서 나타난 상대가 누구든 간에 일단 바로 공격을 날렸을 것이다.
적이 사자든 토끼든 뭐가 중요하겠는가. 일단 적이면 쓰러뜨려야 했다.
토끼가 품속에 폭탄이라도 갖고 있으면 어쩌려고 저런 방심을?
그 방심 덕분에 태현은 천금 같은 시간을 벌었다.
태현이 키우고 있는 대장장이가 가진 직업으로서의 장점은 장비에 각종 강화가 가능하다는 것과 대장장이만이 사용 가능한 몇몇 장비나 아이템들을 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굳이 억지로 만들어보자면 스탯 작업을 하기 쉽다는 점 정도가 있었다.
…물론 대장장이가 스탯을 올리기 쉬운 건 태현이 미친놈처럼 계속 광산에서 먹고 살면서 곡괭이만 휘둘렀기 때문이었지만….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있는 법.
대장장이는 단점도 있었다.
위에서 말한 장점을 제외하면 모든 게 단점이었다.
그중 이런 전투 상황에서 스킬들의 부족은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남들은 각종 이동기로 접근하는데 태현은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태현에게 지금처럼 남들이 방심해 주는 건 정말로 고마운 일이었다.
‘셋. 둘. 하나.’
멈추지 않고 거리를 좁히자 드디어 상대방도 반응을 시작했다.
“죽여!! 그 대장장이잖아!”
“뭐? 대장장이인데?”
“…그러니까 난리친 게 대장장이라고 했잖아!”
“아, 아! 그랬지!”
길드원들은 바로 무기를 뽑아 들었다.
대장장이=제작 직업이라는 인식 때문에 반응이 늦은 것이다.
그사이 태현의 선공이 시작됐다.
휙!
“!”
“뭐…?”
태현은 빙글빙글 돌리던 망치를 집어 던졌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망치가 공기를 가르고 날아갔다.
빠르긴 했지만 길드원들이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보고 있던 발칼락 길드원들은 황당해하며 대응할 준비를 마쳤다.
“피해!”
“혹시 모르니까 방패….”
[룬 마법이 지나치게 많이 각인된 상태입니다!]
[철옥의 망치가 불안정합니다!]
[철옥의 망치가 폭발합니다!!!]
[……]
[……]
“!??!?!?”
꽝!!!
굉음과 함께 망치가 진동하더니 안에서 룬 마법과 함께 터져나왔다.
설마 폭발하는 망치를 던졌다고는 생각하지 못한 발칼락 길드원들은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악!”
“이 미친 대장장이 새끼가!!”
[룬 마법이 폭주합니다!]
[룬 마법이 폭주합니다!]
[룬…]
[……]
[마력이 지나치게 과잉된 상태입니다! 마법의 위력이 강해집니다!]
[룬 마법이 불규칙하게 변형됩니다!]
[……]
[……]
태현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앞에 벌어진 난장판을 쳐다보았다.
대장장이 직업이 전투 스킬이 없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는 법.
태현은 대장장이 직업이 갖고 있는 스킬들 중에서 전투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스킬들이란 스킬들은 다 끌어 모으고 있었다.
지금 던진 망치 폭발도 그중 하나였다.
망치에 룬 마법들을 새기면서 강화시키다 보면 어느 순간 불안정해져서 폭발할 수 있었다.
대장장이 본인도 크게 다치게 할 수 있는 그런 위험한 페널티였지만….
태현은 그걸 역으로 이용했다.
전투 들어가기 전에 불안정해진 망치를 폭발시키면 아주 효과가 쏠쏠한 것이다.
‘그나저나 이거 몇 번 했는데 길드 놈들끼리 서로 공유를 안 하나?’
“으악! 크악! 크하악!”
“키아아악!”
비명을 지르면서 룬 마법 폭풍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적들의 모습.
태현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쓴 것도 아니고 몇 번 썼는데 저렇게 무방비한 모습이라니….
길드들끼리 사이가 안 좋아서 공유가 안 되는 게 분명했다.
뚜벅. 뚜벅.
태현은 룬 폭풍이 조금 잦아들기 시작하자 더욱 더 가까이 다가섰다.
각종 스크롤과 포션으로 피해를 견디고 회복하고 있던 발칼락 길드원들은 눈에 불을 켰다.
“이 자식이?!”
[룬 마법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바람이 칼날을 만들어냅니다! 당신을…]
[갑옷 스킬, <천신의 가호>가 발동됩니다!]
[공격이…]
[갑옷의 방어력이 매우 높습니다!]
[갑옷의 원소 저항력이…]
[……]
[……]
대장장이 직업의 장점 중 하나.
다른 직업들의 장비보다 몇 배는 더 뛰어난 장비를 입고 다닐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태현은 그런 대장장이들 중에서도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뛰어난 걸작을 만들어내는 대장장이였다.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지 않고 혼자 만든 만큼 대부분 대장장이 랭커들의 이름을 말할 때 태현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광산들을 뒤지고 필요한 재료나 스킬이 있다면 용암 화산 던전 심층부까지 들어가는 그 집념은 어떤 사람도 따라할 수가 없었다.
그런 태현은 발칼락 길드원들에게는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였다.
고작 대장장이 하나라고 무시하고 있었는데, 그 대장장이가 판온 초기부터 작정하고 돌아다니면서 온갖 준비를 한 놈인 걸 누가 예상했겠는가.
“막아! 못 오게… 컥!”
태현은 룬 폭풍에 허우적대고 있는 길드원의 턱을 망치로 날려버렸다.
발칼락 길드원들은 아직도 무방비한 상태였다. 태현은 망치를 휘두르며 발칼락 길드원들을 한 명씩 조지고 조졌다.
“이 새끼 너 진짜 컥!”
“지금이라도 멈추면 용서해 준 칵!”
“크헉! 컥!”
태현은 어차피 죽일 놈들하고 굳이 말을 섞지 않았다. 순식간에 지하 3층에 진입한 발칼락 길드원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운이 좋군.’
* * *
-그래! 어떻게 됐다고!
-전… 전멸했습니다.
-대장장이 놈이? 잘 했다!
-…아, 아군이요.
-…….
발칼락 길드의 길마, 발칼락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들어간 놈들이 전멸했다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어떤 놈이 실수했어! 말해!
-대, 대장장이 놈이 생각보다 강했습니다.
-그래서 대비를 다 했잖아!
-놈의 전략이 우리 대비를 더 뛰어넘었….
-닥쳐! 닥치라고!!
발칼락은 분노를 터뜨렸다.
“장비 갖고 와라! 내가 직접 간다. 이런 머저리들이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변방의 흑기사>라는 희귀한 직업을 갖고 있는 발칼락은 본인도 판온에서 유명한 랭커였다.
탱커와 딜러의 하이브리드형 직업으로 높은 레벨을 달성한 만큼 발칼락을 상대하는 적수들은 마치 요새가 덤벼드는 것 같은 압박감을 맛봐야 했다.
“길드원들 전부 다 집합명령 때려. 접속 안 한 놈들도 바로 접속하라고 해! 접속 안 하고 눈치보는 놈 있으면 바로 탈퇴시키고 수배령 때리겠다고 경고하고!”
“예!”
“용병단 불렀나?”
“예! 불렀습니다!”
판온 1의 대형 길드들은 조직적이고 살벌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길마의 명령이 한 번 떨어지면 그 밑으로는 잡담도 하지 못하고 엄격하게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다.
[갈퀴 용병단이 도착합니다!]
[붉은화살 용병단이 도착합니다!]
[용병단의 피해가 커질수록 불만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현재 용병단의 사기가 높습니다!]
[……]
[……]
“포위망 제대로 완성해. 이번에는 랭커들과 용병단을 앞장세운다. 그 대장장이 놈. 절대 편하게 죽이지 않는다. 아주 박살을 내서 주변에 똑똑히 알려주마!”
성질 더러운 길마의 등장에, 광산 주변에 배치되어 있던 길드원들은 벌벌 떨었다.
“진… 진짜 발칼락 님이잖아? 나 발칼락 님 실제로 처음 봐. 길드 들어와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그렇군.”
“너는 떨리지도 않냐? 난 지금 떨려서 죽을 거 같다.”
“별로.”
길드원 중 한 명은 동료에게 말을 걸었지만 돌아오는 건 냉정하고 차가운 대답이었다.
‘이 자식 뭐야?’
상대가 계속 그렇게 대답하자 흥미가 떨어진 길드원은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태현은 시선을 들 수 있었다.
‘삼엄하군.’
대장장이의 장점 중 하나.
길드원들이 차고 다니는 장비나 표식을 빠르게 위조해서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적들의 겉모습을 관찰하고, 아이템을 입수한 태현은 <발칼락 길드 중급 세트>를 빠르게 위조했다.
그리고 지하 1층으로 올라가 돌아다니고 있는 길드원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지하 3층 침투조가 전멸했다는 소식에 당황한 발칼락 길드원들은 설마 대장장이 놈이 이렇게 대담하게 잠임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태현은 길드원들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몇 명 던전 밖으로 나올 때 다시 나온 것이다.
‘용병단들 추가로 고용했고… 마법진 설치했나. 도망 못 치게. 어차피 칠 생각도 없었는데.’
태현은 순간이동 스크롤 같은 걸 쓸 생각도 없었다. 애초에 마법으로 들어가면 다른 마법사 랭커들을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쓰지 않아도 이렇게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대충 이 정도인가.’
일반적인 플레이어였다면 그냥 도망을 쳤을 것이다.
지금 도망쳐도 충분히 대단한 업적이었다. 혼자서 대형 길드와 맞서 싸운 다음에 농락까지 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태현은 달랐다.
‘저놈이 길마군.’
태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수상하지도 않게.
길마, 발칼락은 자신이 고용한 기사 NPC들을 데리고 길드 간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포위망을 늘리고 들어갈 놈들을….
-용병단을 앞에 세우고 있습니다. 지금 거인족 전사 NPC도 추가할 수 있는데, 그 정도면 대장장이 놈은 그냥 짓눌릴 겁니다.
-지금부터 던전 안에서 보이는 건 길드원이든 뭐든 다 죽여버리라고 해. 무조건! 틈도 주지 마. 앞으로 공격 멈추는 놈 있으면 그놈은 수배령이다.
-알겠습니다.
발칼락이 제대로 열이 받았는지 침을 튀겨가며 명령을 내려가고 있었다.
스무 걸음.
태현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열 걸음.
“잠깐. 너 누구지?”
“김태현입니다.”
태현은 당당하게 말했다. 어차피 유명한 랭커 이름도 아니라서 말한다고 상대가 알아차릴 것도 없었다.
그러자 태현을 막아 세운 길드 간부는 멈칫했다.
길드원들 숫자가 몇 명인데 이름을 다 기억할 리 없었다. 그냥 일단 멈추게 한 거였는데 하도 태도가 당당하니….
“여기는 왜 온 거지?”
“저기 계신 올도롱 님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태현은 그 짧은 사이에 간부 이름들 몇 개를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다른 간부 이름까지 바로 나오자 상대는 의심을 완전히 푼 모양이었다.
“그래. 가봐. 지금 분위기 안 좋으니까 조심하고.”
“예. 감사합니다.”
태현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다섯 걸음.
아까 올도롱이라고 말한 간부가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태현은 고작해야 길드 간부 하나 잡으려고 이런 짓을 하지는 않았다.
‘준비.’
태현의 눈에 들어온 건 길마 발칼락이었다.
[<비명을 지르는 마검>을 장착합니다!]
[마검이 피를 울부짖습니다!]
[광전사의 피가 깨어납니다!]
[대장장이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페널티가 줄어듭니다!]
[……]
[……]
[……]
태현의 눈빛이 붉게 변하고 주변으로 사악한 오오라가 피어올랐다.
뒤늦게 깨달은 길드 간부들이 비명을 질렀다.
“너 뭐야!?”
그러나 태현은 대답 대신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발칼락의 등짝을 미친 듯이 찔러댔다.
푹푹푹푹푹!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지옥을 가르는 맹독>이 효과를 발휘합니다!]
[<대장장이 악마가 만들어 낸 극독>이…]
[……]
[……]
[……]
단순히 마검으로 공격이 끝나지 않았다.
뛰어난 대장장이만이 만들 수 있는 맹독 수십 개가 동시에 효과를 폭발시켰다.
[HP가 빠르게 감소합니다!]
[HP가 50% 밑으로…]
[……]
[……]
[HP가 5% 밑으로…]
발칼락은 자신의 HP가 이렇게 빨리 줄어드는 건 처음 보았다.
“말도 안!”
[HP가 0이 되어 로그아웃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