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외전 4화
“확실히 그럴 수 있겠군.”
최상윤은 케인의 추측 중에 은근히 맞는 부분이 많다는 것에 살짝 놀랐다.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다더니….
“그래서 다음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발칼락 길드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요?”
“대장장이가 하는 일을 했지.”
“대장장이가 하는 일은 보통 제작이랑 수리인데….”
“아차. 그러니까 평범한 대장장이 말고.”
* * *
[룬 마법 설치가 완료됩니다!]
[지옥 화염의 룬이 소모됩니다.]
[룬 마법 설치가 완료됩니다!]
[지옥 화염의 룬이 소모됩니다.]
[……]
대장장이, 태현은 던전 지하 3층 입구에서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발을 디디는 순간 어지간한 랭커라도 바로 즉사할 가능성이 높은 강력한 함정들.
그러나 이걸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발칼락 길드에 멍청한 놈들만 있는 게 아닐 테니까.’
판온에서 대장장이 직업을 고른 뒤부터 태현은 대륙 곳곳을 돌며 꾸준히 성장에만 집중해 왔었다.
다른 랭커들이 길드를 만들고 영지를 점령할 때 태현은 아이템을 만들고 스킬을 찾았다.
초중반에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대륙은 넓었고 아직 미개척지가 많은 만큼, 태현이 먼저 찾아서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과 부딪힐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태현은 각종 던전을 미리 깨고 안에 있는 재료란 재료는 전부 다 탈탈 털어서 가지고 나왔었다.
하지만….
‘요즘 점점 충돌이 잦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태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원하는 만큼 장비를 갖추고 스킬을 완성하고 싶었는데 요즘 자꾸 길드 놈들이 자주 보이는 느낌이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 주변 광산은 비교적 평화로웠는데 여기까지….
길드들의 경쟁이 심해지고, 실력이 상향평준화되면서 미개척지에도 점점 진출이 시작된 게 분명했다.
당장 이번 달만 봐도 몇 번이고 충돌하지 않았던가.
발칼락 길드하고는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슬슬 위험할지도 몰랐다.
‘아직 길드들이 연합하지는 않겠지만….’
태현은 다시 생각을 돌려서 집중했다.
먼 훗날의 일은 나중에 고민해도 됐다. 지금은 일단 발칼락 길드를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해야 했다.
보통 이런 일이 터지면 대형길드들의 패턴은 비슷했다.
처음에는 ‘대장장이 놈이 감히!’ 하고 덤벼들고, 그 다음에도 ‘대장장이 놈한테 당했다고!? 실수겠지!’ 하고 덤벼들고, 그 그 다음에도 ‘말도 안 돼! 무언가 착각이….’ 하고 덤벼들고….
‘세 번쯤 당하면 이제 정신을 차리지.’
세 번쯤 당하면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길드 전체에 연락이 가고 동원 가능한 랭커들이 모두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주변 포위하고. 탈출망 막고. 당한 방법 듣고. 거기 맞춰서 전략을 짜오겠지.’
룬 마법 함정과 공성병기가 강력하긴 했지만 작정하면 또 못 뚫을 건 아니었다.
계속해서 다음 수단을 만들어야했다.
“대장장이님!”
‘귀찮은 놈들이 또 왔군.’
태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 지하 2층에서 남았던 플레이어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태현은 이들이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얼마나 강하든 상관없었다. 기본적으로 태현은 혼자서 싸우는 걸 선호하는 데다가….
저들 중에 배신자가 몇 명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가는 던전마다 일반 플레이어들 중에서 배신자가 나왔다.
어지간하면 대형 길드와 싸우는 것보다 대형 길드 쪽에 붙는 게 이득인 만큼 안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뭐지?”
“같이 싸우려고 왔습니다.”
“아까 그렇게 박살 난 걸 보고서도 같이할 생각이 드나?”
“그게… 함께하지 않기로 한 사람들은 나갔고요. 여기 남은 사람들은 싸우려는 사람들입니다.”
“대장장이님의 지휘에 따라 같이 싸워보겠습니다!”
남은 플레이어들은 태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확실히 빠질 사람들은 빠져서 그런지 분위기는 아까와 달리 훈훈했다.
플레이어들도 그런 분위기를 느꼈는지 표정이 남달랐다.
-너도 같이 싸우려고?
-그래. 발칼락 놈들한테 고개 숙일 수는 없잖아.
-그렇지! 항복하는 놈들은 다들 자존심도 없나?
“필요없다.”
“…….”
“…….”
그러나 그런 훈훈한 분위기를 태현이 한 번에 깨버렸다.
웃는 표정으로 찾아왔던 플레이어들도 대번에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다.
“아니. 대장장이님. 이야기도 안 들어보고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싸울 거면 알아서 싸워. 난 남 지휘할 생각 없다.”
“대장장이님이 약하다고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만, 지금 서로 분열되어서 좋을 게 없습니다.”
“맞아요. 여기 밖에 발칼락 길드원들이 계속 모이고 있는 거 아세요? 그뿐만이 아니라 병사 NPC들까지 불러오고 있다고요.”
대형길드쯤 되면 데리고 다니는 병력들도 상당했다.
정예병이나 용병 NPC들이 추가된다면 그것만으로 상당한 압박이었다.
그러나 태현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말했다.
“필요없다. 비켜.”
“…….”
‘이거 내가 안 나서도 되겠는데?’
파티장 중 하나인 클렉은 속으로 매우 기뻐했다.
여기 파티장들 중에는 발칼락 길드가 싫어서 남아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클렉처럼 발칼락 길드에게 명령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빠져나오지 말고 남아서 상황 보고해라. 특히 그 대장장이 새끼. 만만하게 보지 말고 제대로 파악해.
-알겠습니다.
-일 제대로 해내면 간부 자리도 알아볼 수 있다. 확실하게 하라고.
자리를 떠나지 말고 남아서 정보를 제공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교란까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클렉은 당연히 덥석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 분위기를 보니 클렉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대장장이님!”
탕!
태현은 가볍게 바닥을 두드렸다. 직선이 그어졌다.
“따라오는 놈은 죽는다. 알아서 싸워.”
“…….”
‘한 번 나서볼까?’
아무도 나서지 않고 대장장이를 쳐다만 보고 있자 클렉이 슬쩍 입을 열었다.
여기서 다들 자극하면 불만이 폭발할지도 몰랐다.
‘간단한 말 몇 마디로 일석이조를….’
“대장장이님. 잠깐 기다려보십시오. 여기 지금 파티장들이 다들 판온에서….”
순간 클렉의 발이 태현이 만든 직선을 밟았다.
그러자 곧바로 망치가 날아들었다.
“!!!!”
클렉은 깜짝 놀랐다.
당연히 다른 길드원들이 박살 나고 파티장도 박살 난 만큼 상대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의 공격은 예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빨랐다.
‘이까짓 거!’
아무리 빨라도 클렉도 랭커.
작정하고 있었던 만큼 방어는 가능했다. 클렉은 방패를 올렸다.
꽝!!!!
[방패가 파괴됩니다!]
[충격이 당신을 뒤흔듭니다!]
[스턴 상태에…]
[……]
[……]
클렉은 다른 길드원들보단 나았다.
한 방은 버텼으니까.
문제는 한 방을 맞고 온몸이 풀렸다는 거였지만!
사방의 시야가 뒤흔들리고 스턴 상태라서 스킬이 마비되자 클렉은 깜짝 놀랐다.
“잠, 잠깐! 잠깐! 잠ㄲ….”
빡!
태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망치가 한 번 더 돌고 클렉을 날려버렸다.
[HP가 0이 되어…]
[……]
[……]
“따라오는 놈은 죽는다. 꺼져!”
“…….”
미친 놈!
자리에 모인 파티장들은 그야말로 경악했다.
* * *
“포위망 완성했습니다!”
[순간이동 방해 마법이 설치됩니다!]
[순간이동 방해…]
[순간이동의 성공 확률이 줄어듭니다!]
[……]
[……]
“이쪽도 작업 끝났습니다.”
“병사들 배치했습니다.”
“절대 놓치지 마. 길드원들이 한두 명 죽은 게 아니다. 게임 접을 때까지 공격해! 무조건 로그아웃을 시켜! 전 재산을 잃게 만들어라!”
“예!!”
길드원들은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발칼락 길드 내부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거인의 늑골 광산에서 사상자 다수 발생. 점령 실패.
-어떤 길드가 방해했어??
-안에 있던 대장장이한테 방해당했다는데.
-뭔 개소리야?
하도 황당한 일이라 안에서는 다른 의견도 나왔다.
-진짜 평범한 대장장이 맞나? 다른 길드의 지원을 받고 있는 랭커 아닌가?
-우릴 방해하려고 고용된 놈일지도 몰라. 확인해 봐.
터무니없는 의견이었지만 그만큼 대장장이는 충격적이었다.
발칼락 길드는 주변의 다른 길드에게 연락을 보냈다.
<진혼곡> 길드도 그중 하나였다. 발칼락 길드와 끊임없이 싸워 온 진혼곡 길드인 만큼 용의선상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발칼락 길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길마님.”
“무슨 연락이?”
“광산에 대장장이 놈이 발칼락 놈들을 공격했다는데, 우리 쪽에서 보낸 놈 아니냐고 묻는데요.”
“대장장이? …설마 그 미친 대장장이 놈 말이냐!?”
“아마 그놈 아니겠습니까? 그런 놈이 판온에 두 명 있을 리가 없습니다.”
“…크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
진혼곡 길마는 방이 흔들릴 정도로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우울했던 기분이 싹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우리만 당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
길마가 기뻐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진혼곡 길드도 최근에 광산 하나 잘못 건드렸다가 웬 미친 대장장이 놈한테 크게 당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어떤 새끼가 우릴 막아?’ 하면서 전력을 계속 늘려나갔지만 어느 순간이 되자 간부들 사이에서 의견이 나왔다.
-길마님. 저희 여기서 전력을 더 잃으면 위험합니다! 당장 다음 주가 공성전인데….
-참으셔야 합니다!
간부들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참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피해는 어디로 가지 않았다.
피해만 봐도 속에서 불이 치솟았는데 다른 길드도 그놈을 만나다니.
“대답해 줘라. 우리 쪽이 아니라고. 그리고 무슨 길드가 대장장이 하나 못 잡아서 쩔쩔매냐고. 한심한 놈들이라고 전해줘라.”
“알겠습니다!”
진혼곡 길마는 발칼락 길드를 좀 더 부추길 생각이었다.
자존심을 자극하면 물러서려고 하더라도 물러서지 못할 것이다.
“랭커들을 동원해서 주변을 감시하라고 해! 만약에 대장장이 놈을 잡을 기회가 생긴다면… 저번의 일을 복수하고야 말겠다.”
“하지만 길마님….”
“네 걱정은 알고 있다! 전력을 아껴야 한다는 거겠지. 그래서 발칼락 길드를 이용하려는 거 아니냐!”
진혼곡 길마는 매우 자신만만했다.
발칼락 길드가 이기든, 대장장이 놈이 뚫고 나오든, 어느 쪽으로든 진혼곡 길마가 손해를 볼 건 없었다.
* * *
[룬의 폭풍이…]
[갑옷의 내구도가 빠르게 감소합니다!]
[……]
[……]
“크윽…!”
“미친 자식이!”
발칼락 길드원들은 이를 갈며 지하 3층의 입구를 뚫었다.
온갖 함정이 길드원들을 후려갈긴 탓에 장비가 벌써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다들 살아 있나?”
“예!”
발칼락 소속 랭커들이 주변에 탐색 스킬을 걸었다. 숨어 있는 플레이어들은 없어 보였다.
“함정을 조심해라! 대장장이 놈의 스킬 레벨이 높아서 도적들이 잘 잡아내지 못한다.”
“함정도 못 잡아내면 대체 도적들은 뭔 의미가?”
“조용히 해! 계속 움직인다!”
발칼락 길드원들은 짧은 사이에 빠르게 준비를 끝내 놓은 뒤였다.
각종 룬 마법 저항 옵션부터 시작해서 공성병기 관련한 장비까지.
아무리 대장장이가 열심히 함정을 깔아놨다고 하더라도 한 번만 버티면 이제 발칼락 길드원들의 차례가 오리라.
“날아오는 순간 바로 스크롤 찢고 스킬 가동시켜!”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파고들어서 대장장이 놈의 공격을 끊….”
“…….”
“…??”
그러나 발칼락 길드원들의 기대는 또 한 번 빗나갔다.
어떤 공성병기의 사격도, 어떤 추가적인 룬 함정도 없었다.
저 멀리서 대장장이가 망치를 빙글빙글 돌리며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