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801화 (본편 완결) (1,800/1,826)

§ 나는 될놈이다 1801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스미스의 질문에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널 옆에 두는 게?”

“…아니… 그게 아니라….”

스미스는 기가 죽었다.

하긴 굶주린 혼돈 세력에 가입했었는데, 태현이 스미스를 안 의심하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당연히 의심하고 있겠지!

“농담이었는데. 스미스. 그런 걸로 기가 죽으면 어떡하냐?”

“보통 다들 기가 죽지 않… 습니까?”

스미스는 어이가 없었다.

당연히 굶주린 혼돈 가입했었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기가 죽죠!

“케인은 안 죽던데. 나 공격한 적 있는데도 뻔뻔하게 얼굴 들고 다니잖아.”

“…….”

“아. 생각해 보니 아까 위험하지 않겠냐고 물은 게, 케인이 영주를 맡으면 위험하지 않겠냐고 한 건가?”

“예.”

“위험하긴 한데 케인도 알아서 할 때가 됐지. 영주 자리 쫓겨나면 그것도 뭐… 경험이고.”

“…?!”

태현의 너무나도 냉정한 말에 스미스는 할 말을 잃었다.

“그, 그렇습니까?”

“그렇지? 내가 케인 계속 쫓아다니면서 이렇게 관리해라 저렇게 관리해라 할 수도 없는 일이잖아. 그리고 케인은 자기 몫 챙길 때는 열심히 하는 놈이라 의외로 괜찮을지도 몰라.”

‘안 그럴 거 같은데.’

스미스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괜히 케인 선수의 욕을 하는 꼴이 될까 봐 참았다.

“김태현 선수는 어디로 가십니까? 다음 상대 찾으러?”

“아니. 사실 일대일 상대는 지금 거의 다 잡아서 이제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랭커들 윗순위부터 차례대로 쫙 훑어 내려가면서 사냥을 한 덕분에 결투 상대는 순식간에 씨가 마른 상태였다.

태현 관련해서 입을 턴 적이 있는 랭커들은 머리를 박거나 사과문을 올리거나 아니면 접속을 피하거나 해야 했다.

“가서 이다비 도와주려고. 파워 워리어가 지금 많이 바쁘거든.”

“아. 확실히 그런 편입니다.”

스미스는 동감했다.

지금 파워 워리어 길드는 오스턴 왕국과 아탈리 왕국 쪽에서 대규모 공사 퀘스트를 벌이고 있었다.

고대 제국 유산들을 확보하고, 믿을 만한 랭커들에게 영주 자리를 부여하고, 폐허더미를 치우고 플레이어들이 요청하는 필수 시설들을 건설하고….

당연히 이다비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태현이 일대일 결투하는 걸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태현이 도와줬다면 좀 더 수월했으리라.

“가서 도와줘야지.”

“같이 가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니야. 넌 네 할 일 해. 이다비한테 할 말도 있고.”

“무슨 말을 하실 겁니까?”

스미스는 의아해했다.

영주 관련인가?

아니면 왕국 복구 퀘스트 관련?

“고백하려고.”

“그렇습니까. 고백….”

스미스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기겁해서 돌렸다.

잘못 들었나?!

“방금 뭐라고 하셨… 김태현 선수! 김태현 선수!!!”

스미스는 태현을 애타게 불렀지만, 태현은 이미 용용이를 타고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 * *

“저희 길드에게 맡겨주시면 잘 통치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 길드야말로 굶주린 혼돈 레이드 때 길드원 전원이 목숨을 걸고 싸운 근본 넘치는 길드! 절대 악평 나오지 않게, 플레이어들을 위한 운영을….”

“헛소리하고 앉아 있네! 그래서 저번에 세금을 몇 퍼센트 걷었지? 길마님! 저희한테 믿고 맡겨주십시오! 젊음의 패기로….”

이다비는 자리 앞에 모인 길마들을 보며 ‘음, 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굶주린 혼돈 레이드 이후 재건, 복구, 유산 발견 등등 여러 퀘스트가 나왔지만 원정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더 중요한 일이 하나 있었다.

누가 어디 영주를 맡느냐!

태현은 원래 갖고 있던 아탈리 왕국과 오스턴 왕국의 핵심 지역을 제외하면 굳이 다른 지역을 다 일일이 다스릴 생각이 없었다.

일일이 다스리려면 이제 길드 동맹처럼 초대형 길드를 만들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그런 건 태현의 성격과 거리가 먼 것이다.

덕분에 원정대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중앙 대륙 곳곳에 위치한 성과 도시를 하나씩 맡아서 영주 노릇을 할 기회!

사실 지금 대부분 폐허라 맡는 순간 자기 골드 집어넣어서 복구를 해야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영주 해보자!

-지금 안 하면 또 언제 하겠냐!

‘영주’라는 단어가 주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한 성이나 도시의 주인이 되어서 다스리는 재미.

그 재미는 어떤 재미로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저희 길드가!”

“아냐! 우리 길드가!”

“이 자식들! 저리 꺼지라고!”

“자. 다 들어줬으니까 골드로 승부하세요.”

이다비는 손뼉을 치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각오고 뭐고 그런 거 다 소용없었다.

그냥 골드로 승부해라!

“…예?”

“내는 골드 비교해서 가장 골드 많이 낸 사람한테 영주 자리 맡길 거니까, 골드 꺼내세요 다들.”

“…….”

“어, 그래도 됩니까?”

“싫으시면 나가셔도 되구요.”

이다비는 밖을 가리켰다.

원정대에 참가했던 길마들이나 랭커들은 입을 싹 다물었다.

“아닙니다!”

“실로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파워 워리어! 돈에 미친… 아니, 돈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길드!”

“각자 비공개로 골드 내시고, 실패해도 골드 안 돌려줄 거예요. 1등에게 영주 자리 들어갑니다. 됐죠? 준비하세요.”

원래라면 ‘너무한 거 아닙니까?!’ 하는 소리가 나와야 할 양아치 제안이었지만, 영주 자리에 홀린 사람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싸게 느껴졌다.

한낱 골드 좀 내고 영주 자리를 가져갈 수 있다니!

‘반드시…!’

‘얼마를 내야 하지? 10만? 더 올릴까??’

‘복구하려면 비용도 필요한데…!’

촤르르르륵!

“이겼다!!!”

“안 돼!!”

“크아아아아악!”

승자와 패자.

패자는 울면서 나갔고 승자는 신이 나서 나갔다.

이다비는 파워 워리어 간부들에게 말했다.

“여기 골드 새로 생겼으니까 가져가서 공사비에 추가해.”

“예!”

통치해야 할 영역이 넓은 영주는 그만큼 돈도 많이 들어가는 법.

하물며 오스턴 왕국과 아탈리 왕국 두 개를 같이 운영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돈이 안 들려고 해도 안 들 수가 없었다.

남한테 골드 받아내면 다 이쪽으로 들어가는 수준!

이다비는 열심히 계산했다.

‘고대 제국 유산 건설 퀘스트… 지금 3개 진행 중인데, 골드 좀 더 쌓이면 한 개 더 추가해야지. 너무 비싼가? 참아야 하나? 아니야. 고대 제국 유산 하나 더 추가시키면 전체 버프 들어가니까 괜찮겠지. 긴축 재정으로 버티고….’

지금 고대 제국의 타이틀을 갖고 있는 만큼 단순히 복구 퀘스트만 진행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고대 제국 시절 건물들과 유산들을 재건축.

갖고 있는 영역과 NPC들 창자서 복귀.

몇몇 제국 관련 이벤트 열어서 제국의 후계자로서 명성 확립….

다 하나하나 미친듯이 돈 들어가는 이벤트였다.

태현이 관심 가지지 않는 지역들을 다 돈 받고 영주 자리 넘겨주고 있는데도 이 정도로 허덕일 줄이야.

다른 대형 길드들이 세금 빡세게 돌리고 외부 투자 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게 훨씬 더 효율적인 것이다.

“이다비?”

“!”

태현의 목소리에 이다비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언제 왔는지 태현이 앞에 도착해 있었다.

“앗. 벌써 다 죽이셨어요?”

“응. 몇 놈 남긴 했는데 지금 당장은 못 찾을 것 같아서 좀 더 기다리려고. 도와주러 왔지.”

“안 도와주셔도 괜찮은데요.”

“할 이야기도 있고. 잠깐 나갈래?”

“그러죠.”

이다비는 별생각 없이 태현을 따라 천막을 나섰다.

태현은 아무 말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시끌벅적하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도시 쪽 방향과 달리, 산맥과 연결된 오솔길은 조용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는 거지?’

이다비는 의아해했다.

처음에는 퀘스트 관련해서 이야기를 하려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치고는 좀 중요한 이야기 같아 보였다.

‘아. 게임 접으려는 이야기를 하시려는 건가?’

이다비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사실 태현이 판온을 접으려고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그렇게 고생해서 키웠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접어??’ 하며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많은 랭커들은 강해져서 군림하고 다스리는 게 목표였으니까.

하지만 태현의 목표는 반대였다.

‘접으시면….’

이다비는 갑자기 쓸쓸해졌다.

태현이 판온을 접는다고 해서 태현과 쌓은 관계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이렇게 같이 게임을 할 시간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하니….

“이다비.”

“네?”

“좋아해.”

이다비는 굶주린 혼돈이 대륙을 집어삼키려고 할 때도 이 정도로 놀라지는 않았다.

너무 당황스럽고 너무 놀라워서 입이 자신도 모르게 먼저 움직였다.

“…저, 저도요??”

“그래?”

태현은 놀랍다는 눈빛으로 이다비를 쳐다보았다. 이다비는 황급히 손을 흔들었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잠시만요. 잠시만요. 잠시만요. 잠시만요!”

“진정해. 기다릴 수 있으니까.”

“잠시만요! 잠시만요!”

이다비는 고장 난 것처럼 계속 외치면서 혼란스러워했다.

“좋아한다고 하신 거 맞죠?”

“그래.”

“아. 혹시 순수한 인간적인 호감으로… 아니면 같은 팀 동료로서….”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좋아한다고.”

태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판온을 접고 나서 뭘 할지 아직 정하지는 않았어. 아마 게임 관련된 일을 계속할 것 같긴 해. 내가 접었다고 게임단도 접을 수는 없잖아. 운영에 좀 더 집중하겠지. 그래서… 미리 말해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더라. 좋아해. 이다비. 네가 괜찮다면 앞으로도 너와 같이 하고 싶어.”

이다비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다비는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며 듣는 사람이 없나 확인했다.

“그런데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저도요’라고 한 거 맞지?”

“…맞, 맞긴 한데요….”

“왜?”

“네?”

“너도 날 좋아할 줄은 몰랐거든.”

“…….”

이다비는 혼란 상태에서 벗어나 빠르게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넌… 완벽하잖아. 파워 워리어 운영도 잘 하고, 게임단 운영도 잘 하고. 그런 사람이라 날 좋아할 줄은 몰랐어.”

“아… 예… 그러시군요….”

이다비는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태현 님.”

“응?”

“제가 말하는 동안 ‘왜’나 ‘하지만’ 같은 말은 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알겠어.”

“일단 태현 님은 저보다 훨씬 더 완벽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이다비는 빤히 쳐다보았다. 태현은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모든 면에서 저보다 나은 사람이고요.”

“왜….”

“지금 느끼시는 그 어이없는 감정을, 저도 방금 느꼈거든요?”

이다비는 그렇게 못을 박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방금 말한 걸 모든 것들을 제외하더라도, 저는 태현 님을 좋아했을 거예요. 자기 일도 아닌데 자기 일처럼 나서서 저를 도와준 사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도와줬다고 반하는 건… 왜… 언제부터?”

이다비는 태현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확신을 담아 말했다.

“태현 님은 태현 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아 좀 작작 하시고요.”

“왜….”

이다비는 태현의 입을 막았다. 서로의 눈동자가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태현 님이 괜찮다면, 앞으로도 같이 하고 싶어요.”

“…고마워.”

태현은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따뜻한 체온이 타고 올라왔다.

예전에, 판온 1을 할 때.

태현은 게임은 재미를 위해서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길드니 영주니 통치니 이런 것들이 더 어이없었던 걸지도 몰랐다.

지금도 생각은 비슷했다. 그건 태현에게 재밌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다르게 느껴진다는 건 몰랐었다.

“판온 접는다고 했던 거 말이야.”

“네?”

“조금만 더 해보려고. 너하고 같이.”

“…….”

이다비는 대답 대신 웃었다. 태현은 기뻐져서 물었다.

“오는 길에 본 영지, 다 지어졌던데 가서 뺏어다 줄까?”

“…아뇨. 괜찮거든요.”

둘은 같이 손을 잡고 아래로 내려왔다.

아직도 퀘스트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나는 될놈이다 본편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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