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99화
“?????”
“김… 김태현??”
<김태현내가이김>같은 가짜가 아닌 진짜 김태현이 멀리서 달려오자, 자리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공포에 질렸다.
“진짜 왔잖아 이 자식아! 어떻게 책임질 거야!!”
“잠… 잠깐. 저게 진짜 김태현이란 보장이 없….”
거리가 좁혀질수록 태현이 풍기는 위압감은 폭발적으로 강해졌다.
<김태현내가이김> 옆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서로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지금!
“튀어!!!”
“이 새끼 때문에 우리까지 죽겠다!”
파파파팟!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김태현내가이김>의 파티원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서 튀었다.
서로 깜짝 놀랄 정도의 속도였다.
‘이 자식, 이렇게 빨랐었나?’
‘이 중에서는 내가 민첩 스탯이 가장 높은 줄 알았는데!’
‘탱커 주제에 뭐 이렇게 빨라?’
물론 가장 놀란 건 <김태현내가이김>이었다.
“…뭐야!? 다들 어디 가!?”
“김태현 이긴다면서! 이겨봐라!”
“저거 진짜 김태현 아닐 수도 있다니까! 호들갑 떨지 말라고!”
<김태현내가이김>은 그렇게 악을 써서 외친 다음 고개를 돌렸다.
태현이 이제 몇 초 후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워진 상태였다.
“….”
어라?
진짜 같… 은데?
“김태현이 여기까지 올 리가 없잖… 그렇… 어… 김태현 선수?”
“일대일 붙자고 했었지?”
탁!
빠르게 앞에 도착한 태현은 상대를 쳐다보며 말했다.
뒤늦게 상황 파악이 끝난 <김태현내가이김>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진짜 김태현이었다!
“아, 아, 아, 아… 아니요???”
“아니라고?”
태현은 의아해했다.
그리고 종이를 꺼내서 확인했다.
분명히 <김태현내가이김>이 맞았다.
심지어 닉네임에서부터 결투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충만했다.
“너 맞잖아? 저번에 나하고 한번 붙어보고 싶다고. 나 이길 수 있다고 한 놈.”
“사람을 착각하신 것 같습… 니다!”
└<김태현내가이김> 뭐 함??
└지금 설마 겁먹은 거 아니지?
<김태현내가이김>의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평소에 맨날 ‘야 내가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김태현하고 붙으면 이길 수 있을 듯’ 하고 우기던 놈이라, 사람들이 아무리 구박을 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대부분 ‘그래 니 머릿속에서는 그런 거라고 쳐라’하고 반쯤 포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태현이 나타나다니.
모두 너무 기뻐서 싱글벙글 기대되는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뭐 해! 싸워! 이길 수 있다면서!!
└진짜 여기서 아닌 척하면 넌 사람도 아님.
└설마 비겁하게 꼬리 내리는 거 아니죠? 그러지 마라 진짜.
└<김태현내가이김>. 너 이길 수 있어! 우리 못 믿는 거 아니지? 너 이길 수 있다니까! 싸워!
수많은 사람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도 불구하고 <김태현내가이김>은 흔들리지 않았다.
여기서 붙는다면 진짜 개박살 난다!
나중에 이 자리 끝나고 시청자들에게 어떤 욕을 먹는다고 하더라도 여기서는 버텨야 했다.
지는 순간부터 변명이고 뭐고 불가능했으니까.
“사람을 착각했다고?”
“예.”
“음… 그런가?”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도 박살 내야 하는 놈들이 많다 보니 일일이 다 자세히 비교하지는 않았다.
저렇게까지 단호하게 말하는 거 보면 아닐 가능성도 있을지도….
“이름이 어떻게 되지?”
“…게, 게인이요.”
└야 이 쓰레기야!
└말을 하라고! 말을!
“게인? 흠.”
“저 새끼 게인 아니에요! 저 새끼 <김태현내가이김>이에요!!!”
“?!??!”
<김태현내가이김>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웬 처음 보는 플레이어 한 명이 저 멀리서 달려오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김태현 선수! 저 새끼가 계속 김태현 선수 이긴다고, 한 손가락으로 해도 밟을 수 있다고, 김태현 선수 개퇴물이라고 했어요!”
“그…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어!!!”
<김태현내가이김>은 사색이 되어 외쳤다.
이길 수 있다고 좀 과장되게 말하긴 했지만 정말 저 정도까진 안 했던 것이다.
└싸워라! 싸워라!
└지금 결투 피하면 넌 판온 랭커 아님.
‘이런 개쓰레기들이!’
<김태현내가이김>은 저기 달려온 사람이 누군지 깨달았다.
방송 보고 있던 놈 중 한 명이 어떻게든 싸움 붙이려고 달려온 게 분명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
└….
└와 진짜 개실망스럽네.
└<김태현내가이김> 실망이다….
‘닥쳐. 쓰레기들.’
시청자들이 아무리 도발해도 <김태현내가이김>은 흔들리지 않고 태현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제가… 잘난 척을 조금 하려다가 정신이 나갔나 봅니다…. 크흑. 죄송합니다. 김태현 선수하고 비교하면 당연히 아무것도 안 되는 놈인데, 그냥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럴 수 있지.”
태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태현내가이김>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최대한 불쌍해 보이기 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김태현 눈에 <김태현내가이김>이 뭐 그리 대단해 보이겠는가.
최대한 불쌍한 척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봐줄 확률이 높았다.
‘살았다!’
“그럼 이제 무기 들어라.”
“…네?”
“무기 들라고.”
“아, 아니요. 잘못했다니까요?”
“알겠다니까? 사과 받아줄게. 무기 들어.”
“….”
<김태현내가이김>은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반면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안 통하죠?? 망했죠??
└김태현이 저런 눈물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지.
└케인이 한 백 번은 했을 거다.
└싸워라! 싸워라! 싸워라!
“정말 잘못했습니다! 정말로요!”
“아니… 알겠다고. 그런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태현은 냉정했다.
뭔 이유로 그딴 소리를 했든 간에 일단 한번 붙어서 이길 수 있다, 붙어보고 싶다 이런 소리를 한 놈들은 모조리 밟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닉네임을 저딴 식으로 지은 놈이잖아.’
아무리 봐주려고 해도 수상할 수밖에 없는 닉네임!
태현은 검을 꺼내고 말했다.
“빨리 무기 들어라. 반격은 해야지.”
“정말 잘못….”
푹!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전설 검술 스킬이…]
[…]
[…]
[…]
[…]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태현은 준비한 스킬들을 일격에 담아서 그대로 <김태현내가이김>을 박살 내버렸다.
[HP가 0이 되어 로그아웃…]
탁-
태현은 검을 옆으로 탁탁 털었다. 그러고는 종이를 꺼냈다.
“다음 놈이 누구더라….”
└….
└이… 이거 방금 봤냐?
└한 번에 죽지 않았어?
<김태현내가이김>이 로그아웃 당해서 방송 화면이 어두워졌지만 사람들은 나가지 않고 떠들었다.
방금 일어난 싸움이 너무나도….
강렬했던 것이다.
저렇게 한 번에 죽을 줄이야!
└저 자식이 무기 들라는데 안 들고 버텨서 저렇게 된 거 아니야? 무기 들고 버텼으면 몇 초는 더 버티지 않았을까?
└별 차이 없었을 거 같은데. 대비는 한 것처럼 보여.
└야. 사실 쑤닝은 강했던 거 아닌가?
└쑤닝이세요?
└아니. 일리가 있어. 쑤닝 진짜 의외로 잘 싸운 것 같기도 하고.
└다른 랭커들 누구 없냐? 김태현이 방송 켜주면 그거 보면 되는데, 김태현이 방송을 안 켜줘서.
└지금 김태현한테 살해 위협 받고 있는 랭커들 누구 있는지 아는 사람?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다음 상대가 있다면 보러 가고 싶다!
* * *
랭커 젤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절벽을 기어올랐다.
“헉… 헉. 헉헉.”
중앙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남부 대륙 깊숙한 산맥.
랭커 젤드가 여기 있는 이유는 퀘스트 때문도 아니었고, 남부 대륙에서 찾을 게 있어서도 아니었다.
…김태현 미친놈이 갑자기 랭커들을 썰기 시작해서였다.
<충격, 굶주린 혼돈 퀘스트 끝낸 김태현, 랭커들 결투 시작하나?>
<판온 1에서 못다 한 결투 이어서… 랭커들 ‘충격’>
<뉴욕 라이온즈 소속 스미스, ‘저는 이미 졌다고 항복했습니다’…>
└김태현 이 새끼 굶주린 혼돈 잡고 뭐 해!? 부서진 왕국 다스리고 신전 건물 세워!! 정신 나갔냐?!
└사실 김태현은 원래 이런 놈이었지….
└신성 직업 가진 새끼가 무슨 결투를 하고 다녀! 이래도 돼!? 교황 직업이잖아!
└직업이 교황은 아닐 걸 아마.
└닥쳐! 지금 그게 중요하냐?
└김태현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
└너희 조심해라. 내 친구 어제 지하 왕국 들어가서 김태현 여기까진 못 온다고 자신만만하게 떠들다가 김태현 만나고 그대로 로그아웃 당했다….
└???
└그걸 쫓아갔다고?
└김태현 이런 집요한 새끼…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그야 김태현 이길 수 있다고 선언해서 아니냐?
└선언 좀 할 수 있지 그게 그렇게 기분이 나빴냐!? 말로 해도 되잖아, 말로!
└김태현 지금 에스파 왕국에 등장… 에스파 왕국에 있는 랭커들 도주 바람….
└에, 에스파 왕국이라 이거지? 오케이. 도망친다.
└김태현 지금 에스파 왕국에 없는데? 국경지대에서 랭커 잡고 있던데.
└…저 위 새끼 뭐 하는 새끼야!? 너 왜 허위 정보를 퍼뜨려!?
└김태현 선수 지금 국경지대에 없는데요? 속지 마세요. 무조건 튀어야 함.
└이 새끼 파워 워리어 길드원 아니야!?!
꽤 많은 숫자의 랭커들이, 판온 1 출신 랭커들이 ‘김태현 그 자식은 진짜 장난 아니었다니까’ 같은 말을 할 때 코웃음 치곤 했다.
-아 또 지들만 아는 이야기하네.
-김태현 신격화해야 패배한 자기들이 좀 덜 쪽팔리다 이거지.
-호들갑 너무 심하지 않냐?
…그런데 진짜 작정하고 쫓아오는 김태현 놈을 마주하게 되자, 판온 1 랭커들이 하던 말이 이해가 갔다.
한번 타깃을 잡고 쫓아오기 시작한 태현은 진짜 미친놈처럼 무서웠다.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 바다 밑으로 숨어도 끝까지 쫓아오는 끈질김.
게다가 그냥 끈질긴 걸로 끝나지 않았다.
-야. 자꾸 도망치다가 붙잡히는 놈은 재접속한 다음에도 쫓아가서 죽여 버린다. 작작 도망쳐라.
-…그냥 죽여주십쇼.
멀리서 쫓아오는 태현이 한 살벌한 협박에 랭커 한 명은 그냥 스스로 목을 내밀 정도였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김태현이 못 쫓아올 곳에 숨어서, 나중에 태현을 만나더라도 ‘제가 여기서 퀘스트를 하느라 못 봤나 보네요 하하하!’ 하고 우기는 것.
그것밖에 답이 없었다.
[절벽을 너무 오래 기어올랐습니다!]
[HP가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이동 속도가…]
[절벽의 강풍이 당신을 흔듭니다!]
[저항에 성공합니다!]
“으… 으헉!”
젤드는 끙끙대며 균형을 잡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도망쳤는데 떨어져서 죽을 수는 없었다.
살아야 한다!
[<악마가 맴도는 절벽>을 기어오르는 데에 성공합니다!]
[체력이 영구적으로 오릅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어라?’
젤드는 이상함을 느꼈다.
이 <악마가 맴도는 절벽>을 오른 플레이어는 없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최초 등반 보상이 나오지 않았다.
그사이 누가 먼저 오른 것일까?
‘참 할 일 없는 놈도 다 있네.’
이쪽에는 변변한 퀘스트도 없어서 오를 필요가 없는데 굳이 오르다니.
역시 산 좋아하는 사람들은 참 특이했다.
젤드는 한숨을 쉬며 몸을 절벽 위로 올렸다.
“끙!”
“왔냐?”
“예. 힘들었… 어….”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오자 젤드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덥혀진 몸이 차갑게 식혀지는 것 같았다.
“그래. 오래 기다렸다. 젤드 맞지?”
“….”
“맞는데 시치미 떼지 마라. 나중에 확인되면 진짜 끝까지 쫓아다니면서 죽인다.”
“맞… 맞는데요.”
“무기 들어라. 이긴다고 했으니까 실력 한번 보자.”
태현의 얼굴을 본 젤드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