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93화

물론 태현은 쑤닝을 보고 달려가는 게 아니었다.

지금 그럴 상황도 아니었을뿐더러, 고작 쑤닝 따위를 엿먹이기 위해 방향을 일부러 틀겠는가.

정말로 인원이 적은 쪽으로 왔는데 불운하게도 쑤닝이 거기 있었을 뿐이었다.

“다들 위치로! 흩어져서 피해 줄이고 시간을 끌어!”

태현은 미리 원정대 파티장들에게 말했던 대로 지시를 내렸다.

굶주린 혼돈 레이드가 시작되고, 어느 순간 발을 묶을 수가 없게 되면….

그때부터는 사람들이 몸으로 때워야 했다.

어느 곳이든 간에 굶주린 혼돈이 직접 찾아오면 로그아웃을 각오하고 시간을 끌 뿐!

“너 이놈! 일부러 그런 거지!”

“뭐… 뭐야. 너 왜 여기 있냐?”

태현은 그제야 쑤닝을 발견했다. 쑤닝은 더욱 굴욕적이었다.

“당연히 원정대 참가했으니까 같이 있지!”

둘러보니 낯익은 길드 동맹 간부들도 있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알겠으니까 흩어져!”

“지금… 크으윽! 흩어져! 흩어져!”

따지려던 쑤닝은 굶주린 혼돈이 달려오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따지다가는 폭주해서 덤벼드는 굶주린 혼돈에게 그대로 죽을 수 있었다.

-오스턴 왕실의 도약!

-왕가의 회피!

[<오스턴 왕실의 도약>을 시전합니다!]

[플레이어들의 모든 도약이…]

[<왕가의 회피>를 시전합니다!]

[플레이어들의 모든 회피력이…]

[……]

쑤닝과 길드 동맹 간부들은 판온 최대 길드를 이끌었던 경험을 날로 먹은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기민하게 반응했다.

이들은 빠르게 흩어지며 각종 희귀 스킬들로 굶주린 혼돈의 눈을 속였다.

거대한 오스턴 왕국을 한동안 지배했던 만큼, 거기서 나오는 좋은 스킬들과 퀘스트들을 보약 먹듯이 꾸역꾸역 처먹었던 쑤닝과 길드 동맹 간부들.

그 스킬들은 당연히 강력하고 화려할 수밖에 없었다.

태현은 생각보다 쑤닝과 길드 동맹 간부들이 잘 싸우자 감탄했다.

“너희들 이렇게 잘 싸우면서 스미스한테는 왜 그렇게 진 거냐?”

“…….”

“…김태현 이 자식아!! 그게 지금 할 말이냐!?”

길드 동맹 간부들은 분노해서 따졌다.

물론 굶주린 혼돈 레이드를 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흥미진진한 대화였다.

└물어볼 수도 있지 길드 동맹 놈들 왜 저렇게 흥분해?

└지금 길드 동맹 길드 간부들이 목숨 걸고 있는데 저런 말을 하다니 ㅡㅡ 너무한 거 아님??

└길드 동맹 출신 한 명 찾은 듯.

└나 길드 동맹 출신 아닌데??

└그러시겠죠….

└길드 동맹 근데 진짜 왜 망했냐? 쑤닝 생각보다 잘 싸우네.

└나도 쑤닝만큼 아이템 꾸역꾸역 먹고 스킬 다 지원받았으면 저 정도는 한다.

└솔직히 그때 스미스가 굶주린 혼돈 버프 미친놈처럼 빨고 나와서 진 거지, 길드 동맹이 이겼어도 이상하지 않았음.

└하여간 핑계는.

└길드 동맹 놈들 핑계는 알아줘야 함.

└지금 김태현 길드 하나 없는데 사람들 모아서 오스턴 왕국 수복했죠? 굶주린 혼돈 군단 곳곳에서 털고 레이드 중이죠?

└김태현은 파워 워리어 있잖아!!

└파워 워리어는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지….

└솔직히 그만한 길드 갖고 말아먹었으면 아무리 변명거리 많아도 능력부족이지. 길드 동맹 판온 통일할 기회 몇 번 있었는데 다 날려먹었잖아.

└정확히는 김태현이 날린 거지.

└그 다음은 스미스가 걷어차고.

└쑤닝 근데 용케 게임 계속 한다? 나였으면 접었음.

└어떻게든 굶주린 혼돈 잡고 나서 다시 길드 동맹 회복해 보려는 거 아닐까?

└더럽게 구질구질하다 정말.

└쑤닝아 너무 추하다! 적당히 하고 포기할 줄도 알자!

사람들이 비웃고 있었지만 쑤닝과 길드 동맹 간부들은 거기에 대해 반응할 시간도 없었다.

폭주한 굶주린 혼돈이 길드 동맹 간부들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크아아아악!”

“구이걸!!”

간부 중 하나가 그대로 로그아웃당하자 쑤닝이 비통하게 외쳤다.

온갖 시련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흩어지지 않고 뭉쳐 있던 길드 동맹 간부 중 하나였다.

그런 간부가 저렇게 로그아웃을 당하다니.

“쑤닝. 집중해라! 누구든 로그아웃 당할 수 있다!”

“그래! …아니. 니가 그딴 말을 하면….”

쑤닝은 태현의 응원에 정신을 집중하려다가 갑자기 열이 받아서 다시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폭주한 굶주린 혼돈이 주변을 집어삼킵니다!]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주변이 뒤집어지고 굶주린 혼돈에게 빨려들어갔다.

쑤닝은 다급히 빠져나와서 무기를 바위에 박고 몸을 고정시켰다.

“버텨라! 모두!”

“길마님! 죄송합니다!”

“류차오! 안 돼!”

간부 한 명이 또 날아갔다. 쑤닝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굶주린 혼돈이 길드 동맹 간부를 삼키는 틈을 타 공격을 찔러 넣었다.

아까 일어났던 것 같은 폭발이 굶주린 혼돈을 삼켰다.

[전설 기계공학 스킬로 인해…]

[전설 화술…]

[전설 검술…]

세 개의 전설 스킬로 조합된 공격이 불을 뿜으며 굶주린 혼돈을 난타했다.

어지간한 공격은 무시하고 전진하던 굶주린 혼돈도 태현의 공격은 아까부터 아프단 걸 인식하고 있었는지 어떻게든 회피하고 떨쳐내려고 했다.

“쑤닝! 계속 놈을 혼란시켜라!”

“아… 알겠다! 다음 스킬을 써!”

남은 길드 동맹 간부들은 길마의 명령에 바로 스킬을 시전했다.

-왕국 비밀의 철쇄!

-비전의 출몰, 영속의 봉인!

[<왕국 비밀의 철쇄>를 시전합니다!]

[<비전의 출몰>을…]

[……]

[……]

태현도 처음 보는 스킬들이 길드 동맹 간부들에게서 튀어나왔다.

‘뭐지 저 자식들?’

└저런 스킬들이 있었나?

└처음 보는 스킬인데. 본 적 없는듯.

└나 저 <왕국 비밀의 철쇄> 뭔지 알 것 같은데… 길드 동맹에 있을 때 김태현 쳐들어오면 상대하겠다고 준비하던 스킬임.

└…….

└…길드 동맹 좀 불쌍하지 않냐?

보고 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스킬의 정체를 깨닫고 처음으로 길드 동맹에게 동정심을 가졌다.

얼마나 털렸으면 저런 스킬까지 비밀리에 준비해놨겠는가.

그리고 저걸 스미스 상대하면서 안 썼다는 게 더 충격적이었다.

물론 그럴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김태현이 대체 뭐라고…

쳅필젱팀펀재콜압블….

길드 동맹 간부들이 아끼고 아끼던 스킬들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폭주한 굶주린 혼돈은 손발이 묶이자 짜증과 분노를 터뜨리며 발광했다.

태현은 그 사이 다시 한번 거리를 벌리며 공격을 날렸다.

“잘 했다, 길드 동맹! 아껴둔 거 더 있냐?!”

“어….”

“음….”

“…정말 더 있냐? 빨리 꺼내라!”

“있긴 한데….”

길드 동맹 간부들은 쑤닝의 눈치를 봤다. 태현도 쑤닝을 빤히 쳐다보았다. 원정대 랭커들 모두 쑤닝을 쳐다보았다.

시선을 느낀 쑤닝은 머쓱해져서 소리쳤다.

“당연히 써도 된다! 내가 언제 쓰지 말라고 했냐!”

* * *

“아… 그냥 좀 더 버티다가 들어올 거 그랬나….”

스미스는 케인의 중얼거림을 못 들은 척했다.

다른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도 못 들은 척했다.

기왕 들어가서 숟가락 하나 얹는다면 멋지게 들어가는 게 낫지 ‘저희 정말 오기 싫었는데 왔어요 헤헤’ 같은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비호감이었다.

└이 새끼들 굶주린 혼돈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떠들더니 다 어디갔어?

└니들은 길드 동맹보다 더 심한 놈들이야!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도 사람이었다.

길드 동맹보다 심하다, 길드 동맹보다 못하다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정말 아팠다.

이미지 회복은 필요하다!

케인 놈의 협박을 곧이곧대로 따른 건 어쩔 수 없어서도 있었지만 케인과 같이 퀘스트를 깨면 이미지 회복에 도움이 될 거라는 계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들어가서 로그아웃 한 번 당하더라도 차라리 싸우는 게 낫지.’

‘여기서 세탁 실패하면 몇 년은 괴로워진다.’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계산을 끝내고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케인이 짜증 나고 스미스가 얄미웠지만 지금은 다들 서로를 위해서 힘을 합칠 때였다.

“김태현이 위기에 처했다! 구하러 가자!”

“굶주린 혼돈 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는 김태현을 도우러 가자!”

“????”

케인은 갑자기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 경기 시작 전처럼 서로 힘차게 구호를 외치자 당황했다.

“뭐 잘못 처먹었냐?”

“가자, 뉴욕 라이온즈!”

“아니 뭔…??”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후다닥 달려나갔다. 케인도 스미스를 따라 일단 같이 움직였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안 따라갈 수는 없었으니까.

저 멀리서 태현과 길드 동맹 놈들이 치열하게 굶주린 혼돈을 상대하고 있었다.

폭주한 굶주린 혼돈은 꾸역꾸역 길드 동맹 간부들을 하나씩 잡아가면서 균열을 만들어냈다.

“어그로 끈다! 다들 조심해라!”

“너희 진짜 왜 갑자기 이렇게 적극적인데?!”

케인은 기가 막혔다.

조금 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조금 더 상황을 보고 싸움에 참가를 해도 되지 않는가.

대체 왜 이렇게 급한 거지!?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케인의 외침은 무시하고 어그로를 끌었다.

[<증오의 함성>이 굶주린 혼돈을 자극합니다!]

[……]

[……]

각종 도발 스킬들이 굶주린 혼돈을 건드렸지만, 이미 폭주한 굶주린 혼돈은 위치를 바꾸지 않았다.

대충 성가신 놈들을 몇 명 잡아먹자 굶주린 혼돈은 다시 눈을 빛내며 태현을 쳐다보았다.

‘온다!’

태현은 스킬들을 켜고 빠르게 움직였다.

굶주린 혼돈도 그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광폭하게 추격했다.

길드 동맹 간부 한 명이 그 사이에 또 로그아웃당했다. 촉수를 피하지 못해서 그대로 붙잡혀서 끌려갔다.

태현은 그 사이에 검을 휘둘러 굶주린 혼돈에게 한 번 더 타격을 넣었다. 굶주린 혼돈이 공격이 통한 것처럼 비틀거리더니 갑자기 몸을 분열시켜서 태현을 확 둘러쌌다.

“!!!”

태현보다 옆에서 보고 있던 쑤닝이 기겁했다. 보고 있던 사람 눈에는 집어 삼켜지기 직전으로밖에 안 보였다.

“니가 케인도 아니고 무슨 실수를 하는 거냐!”

쑤닝은 소리를 지르며 태현을 밀어버렸다. 정작 스킬을 써서 탈출하려던 태현이 더 당황했다.

뭐하냐?

“너 지금 뭐하는….”

“컥!”

쑤닝은 태현을 구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굶주린 혼돈에게 붙잡힙니다!]

[스킬, <왕가의 방패>가 무효화됩니다!]

[스킬, <왕가의…]

[……]

[……]

쑤닝을 보호하고 있던 스킬 수십 개가 순식간에 무효화됐다. 탈출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기적인 힘이었다.

‘내가 미쳤….’

쑤닝은 어이가 없었다.

길드 동맹 간부도 아니고 김태현 놈을 구하다가 로그아웃되게 생긴 것이다.

아무리 굶주린 혼돈 레이드에 김태현 놈이 필수적이긴 했지만 이런 일을 자신이 할 줄이야!

“쑤닝. 너….”

“닥쳐, 이 자식아! 크악! 아오! 너 때문에 길드 동맹 망ㅎ….”

[HP가 0이 되어 로그아웃합…]

정말 독특한 유언을 남기고 쑤닝은 로그아웃당했다. 태현은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쑤닝. 네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마.’

왜 굳이 거기서 오바를 했는지는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

멀리서 스미스와 케인이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을 끌고 오는 걸 본 태현의 얼굴이 밝아졌다.

길드 동맹 세력이 전멸할 때쯤 새 지원군이 온 것이다.

“케인! …너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냐?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한테 맞았냐?”

“아니….”

“??”

태현이 의아해하자 케인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쑤닝 놈이 저렇게 희생하는데 나는 저것보다 더한 걸 해야 기억에 남을 거 아냐….”

“…집중이나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