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788화 (1,787/1,826)

§ 나는 될놈이다 1788화

[옛 악마왕의 군세가 포효합니다!]

갑작스럽게 협곡에 나타난 고대의 악마들.

든든한 선배들의 모습에 기존의 악마 군대는 환호….

…하지 않았다.

-저 악마들은 왜 나타난 거냐!?

-아키서스! 부를 놈들이 없어서 저런 놈들을 불렀단 말이냐!

악마들은 오히려 태현에게 화를 냈다.

‘저런 미친놈들 같으니.’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굶주린 혼돈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망해버린 사디크 교단도 꺼내다 써야 할 판이었는데 고대 악마들 데리고 왔다고 저렇게 징징대다니.

하여간 악마 놈들은!

[카르바노그가 악마들이 원래 좀 멍청하고 이기적이라고 말합니다.]

‘네 말이 맞다. 카르바노그. 악마들이란 정말로….’

-악마왕의 부름을 받고 여기 이렇게 찾아왔노라!

[살육의 악마, 브랑게스가 울부짖습니다!]

-브… 브랑게스!

-죽은 줄 알았는데!!

악마들이 술렁거렸다.

마계에서 악마 공작처럼 한 영역을 차지하고 오랫동안 군림하지는 못했지만, 그에 버금갈 정도로 막대한 명성을 쌓은 강력한 악마들이 있었다.

브랑게스 또한 그런 악마 중 하나였다.

명성을 떨치다가 사라져서 마계의 어느 구석에 시체로 쓰러진 줄 알았더니….

[포악의 악마, 키플베겔이 무기를 뽑습니다!]

[……]

[……]

그런 네임드 악마들이 한둘도 아니고 여럿 튀어나오자, 악마들은 더더욱 경악했다.

이것이 악마왕의 군세!

살벌한 고대 악마들의 등장에 기존 악마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새파랗게 어린 악마 놈들이로구나!

브랑게스가 악마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제법 강력한 최상급 악마들이 발끈해서 외쳤다.

-무슨 오만한 소리를! 나는 위대한 음악공 구시렉 님의 휘하에서 지옥의 나팔수 직책을 맡고 있는….

-오냐. 내가 배고프니까 이리 와라.

와그작!

키플베겔은 나름 최상급 악마를 그냥 붙잡아서 삼켜버렸다. 오랫동안 기다리느라 허기진 탓에 힘을 회복해야 했던 것이다.

-뭐… 뭐… 무슨…!?

-이, 이, 이, 이게 무슨 짓이오!

악마들은 분노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대 악마들은 시큰둥했다.

-이렇게 약해가지고서는 허기를 채울 수가 없겠군.

-새파란 악마 놈들아! 대체 뭘 했기에 이렇게 약한 것이냐!

고대 악마들한테는 어떤 협박이나 탄원, 애원도 통하지 않았다.

그걸 깨달은 악마들은 남은 한 가지 방법에 걸었다.

…바로 태현이었다.

-아키서스!!! 도와다오!

-저 미친 악마 놈들이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한다!!

‘너희 악마 맞냐?’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물론 군세 소환했다고 나와서 기존 악마들 잡아먹는 고대 악마들도 고대 악마들이었지만, 그걸 또 자기들이 해결 못하고 태현한테 도와달라고 하는 놈도 참….

“들어라! 악마왕의 군세들아! 허기 회복은 나중에 해도 된다! 일단 먼저 굶주린 혼돈을 상대해라!”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악마왕의 지팡이를 갖고 있습니다.]

[옛 악마왕의 군세들이 당신의 명령에 따릅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

사실 악마들보다 명령을 내린 태현이 더 놀랐다.

옛 악마왕의 군세들이 생각보다 너무 쉽게 말을 따라준 것이다.

악마왕의 지팡이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이었다.

성격이 개같은 고대 악마들도 고분고분 명령을 듣게 만드는 힘!

-아… 아키서스!

-고맙다, 아키서스!

죽을 뻔한 악마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태현에게 감사의 인사를 내뱉었다.

처음에는 아키서스 저놈이 왜 갑자기 악마왕이 됐나 생각했었는데, 지금 이렇게 보니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아키서스라면 악마왕의 역할을 조금 해낼 수 있을지도….

[악마들이 당신을 높게 평가합니다!]

[평판이…]

[……]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키서스 놈을 악마왕으로 인정하라고?

-물론 아키서스가 한 일들이 있긴 하지만 상황을 봐라! 굶주린 혼돈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몇몇 악마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몸서리를 쳤지만, 다른 악마들은 이미 태도가 달라진 뒤였다.

악마왕의 지팡이를 가지고 고대 악마들을 부리고 있었던 만큼, 더 이상 부정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아키서스! 명령을 내려라!

-악마왕으로서 명령을!

* * *

“저기 신전 발견했다! 가서 부숴!”

“잠깐, 케인. HP가 회복이 안 됐고 스킬 쿨타임도 안 돌아왔다.”

케인과 스미스는 기존에 굶주린 혼돈 세력에 가입했던 랭커들과 선수들을 데리고 왕국을 돌고 있었다.

이미 굶주린 혼돈이 한 번 쓸고 갔던 적이 있는 만큼 왕국을 도는 건 결코 만만치 않았다.

[굶주린 혼돈의 흔적이 당신들을 감지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당신을 추적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괴수가…]

[……]

[……]

생명이라고는 한 점도 없는 황폐한 땅을 돌아다니다가 굶주린 혼돈의 기운에게 발각이라도 되면 목숨을 걸고 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전투를 몇 번이고 반복한 스미스와 케인 파티는 상당히 소모가 심했다.

사원이나 제물을 찾아서 파괴하고 돌아다녀야 하는 만큼 전투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최대한 관리를 하려고 했는데도 이 정도였으니….

“회복해야 해.”

“맞아. 저스틴의 말이 맞다.”

뉴욕 라이온즈 선수, 저스틴의 말에 다른 랭커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보기에도 휴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케인은 냉정했다.

“움직여.”

“…내 말을 못 들은 거냐? 지금 HP가 회복이 안 되고 스킬 쿨타임도 안 돌아왔….”

“그래서 못하겠다는 거냐?”

“뭐?”

케인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머리가 세 개 있어서 세 배로 재수 없어보이는 동작이었다.

“이렇게 약한 놈들이었을 줄이야… 하긴 내가 김태현하고 같이 다니다보니까 눈이 많이 높아졌지.”

“뭐… 뭐라고?”

“케인. 지금 뭐라고 했냐?”

“됐다. 너희들이 약해서 못하겠다고 하는데 어쩌겠냐. 억지로 보내봤자 가서 죽기나 하겠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했냐?!”

“우리가 죽는다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안전하게 하자는 거 아니냐! 지금 깨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니까!”

선수들의 항변에도 케인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 그런 걸로 하자고. 너희들도 자존심이란 게 있을 테니까. 내가 미안하다. 너희 실력도 감안하지 않고 지시를 내려서.”

“…….”

“…앞장서 이 새끼야!!”

“케인 너 이 자식. 방금 말한 걸 후회하게 해주마!!”

랭커들과 선수들은 그야말로 격분했다.

김태현도 아니고 케인한테 저런 말을 듣다니.

몇 배로 열이 받는 도발이었다.

씩씩대며 발걸음을 옮기는 파티원들의 뒷모습을 보며 스미스는 감탄했다.

“대단하십니다. 이런 방식으로 설득을 할 줄이야.”

지금 스미스가 끼어들지 않은 건 간단했다.

스미스가 괜히 끼어들어봤자 선수들이나 랭커들은 더 불만만 가질 테니까!

안 그래도 스미스와 기존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 사이는 어색한 편이었다.

그래서 걱정했는데 케인이 생각보다 너무 잘 설득해 준 것이다.

“당연하지. 다 내가 직접 당한 거라고.”

“…….”

뿌듯하게 말하는 케인의 모습에 스미스는 복잡한 시선을 던졌다.

그런 스미스의 시선은 눈치채지 못하고, 케인은 이어서 말했다.

“이번 퀘스트 끝내면 다음에는 다른 것도 써먹어야지. 내가 당한 건 다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 예….”

스미스는 화제를 돌렸다.

“지금 굶주린 혼돈 레이드가 시작했다는데 확인하고 계십니까?”

“아니. 근데 김태현이 알아서 잘 하겠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와, 케인과 김태현 사이의 신뢰는 참 대단하구나!’ 하고 감탄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미스에게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이 사람 고민하기 귀찮아서 포기한 거 아니야?’

이번에는 스미스의 시선에서 무언가 느꼈는지 케인이 다시 물었다.

“왜?”

“아무것도 아닙니다. 혹시 레이드 관련해서 들으신 게 있나 궁금했습니다.”

“흥. 당연히 들었지.”

사실 들은 게 별로 없긴 했다.

태현 본인도 굶주린 혼돈 레이드 관련해서 계획을 그렇게 빡빡하게 세워놓지 않은 것이다.

애초에 불리한 상황에서 임기응변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만큼 계획의 상당 부분이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케인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면 좀 없어 보이지 않는가!

“부럽습니다. 저도 미리 알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나는 김태현의 오른팔이나 마찬가지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케인은 그렇게 말하며 당당하게 방송을 켰다.

-악마왕의 군세가 소환됐습니다! 고대 악마들이 나타나서 전황을 뒤집고 있습니다! 신성 관련 직업을 가진 김태현 선수가 마계의 악마왕 퀘스트를 깼을 줄 어느 누가 알았겠습니까!

-악마왕 퀘스트가 뭔가요, 김 위원님?

-악마왕 퀘스트는 판온의 마계에서 내려오는 전설 중 하나인데….

“?????”

스미스는 당황해서 눈을 깜박였다.

물론 태현이 악마들을 강제로 붙잡아서 훈련시킨 다음 전투원으로 써먹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 상황은 좀….

스케일이 너무 컸던 것이다.

‘이 자식 악마왕은 언제 된 거야???’

마계를 몇 번이고 갔었지만 악마왕이 될 낌새 같은 건 없었었다.

그보다는 악마왕의 지팡이를 가짜로 만들어서 사기치고 사칭하고 다녔던 기억만 나는데….

케인은 깨달았다.

‘이 자식이 결국 정말 제대로 사기를 친 거구나!’

사기 솜씨가 하늘에 도달해 다른 악마들을 모조리 속여버린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태현의 손아귀에 갑자기 악마왕의 지팡이가 생길 리가 없었다.

마계의 악마들이 자발적으로 충성을 바쳤을 리도 없고….

“지금 놀라신 거 아닙니까?”

스미스가 수상쩍다는 듯이 물었다. 케인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슨…! 난 다 알고 있었지.”

“정말이십니까?”

“그래! 저거 사실 가짜 지팡이다.”

“예?”

“저거 사실 가짜 지팡이라고. 악마왕의 지팡이를 어디서 구했겠어? 가짜로 구해서 써먹은 거지.”

케인의 말에 스미스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아무리 봐도 영상에서 태현이 사용하고 있는 건 진짜였다. 만약 가짜라면 어떻게 사기를 쳐도 저 정도 효과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진짜 같은데… 설마 케인 선수한테 숨기신 건가?’

스미스는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케인이 좀 안타까워졌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밖으로 유출될까 봐 내부에서 가짜로 알려주다니.

“하나 배웠습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기다려봐! 내가 저놈들 다루는 거 보여준다. 내가 김태현한테 당한 거, 그대로 똑같이 할 거라고!”

“…….”

* * *

[전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고대 악마들이 굶주린 혼돈에게 타격을 입힙니다!]

[굶주린 혼돈이 고대 악마 브랑게스를 쓰러뜨립니다!]

-악마왕이시여, 제 복수를!

고대 악마들은 화끈하게 싸웠다. 몇 대 얻어맞거나 잡혀가더라도 밀리지 않았다.

“계속 공격해라! 물러서지 마!”

[당신의 명성이 매우 높습니다!]

[악명이…]

[고대 악마들이 당신의 명령에 더욱더 기운이 치솟습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언령 마법이…]

[……]

[……]

악마왕의 군세가 전부 쓰러지기 전에 태현은 최대한 전력을 쥐어짰다.

굶주린 혼돈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놈의 HP를 전부 깎는 동안 어떻게든 계속 발을 묶어놔야 했다.

악마 공작이든 악마왕의 군세든 어떻게든 시간을 끌 수 있는 방법 하나하나가 귀한 상황.

지금도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해 태현은 모든 걸 쏟아 붓고 있었다.

“악마들이여! 너희들이 쓰러지면 너희들이 나중에 잡아먹을 인간들도 쓰러진다!”

-악마왕! 악마왕!

악마들도 오죽 정신이 없었는지 태현의 말에 크게 따지지 않고 넘어갔다.

[설득에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최고급 화술 스킬 9가 전설 화술 스킬로 변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