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87화
-나를 세뇌하려는 셈이냐! 기계 에다오르처럼!
“뭔 미친 개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당장 움직여!”
태현은 욕설을 퍼부었다.
다른 상황도 아니라 굶주린 혼돈을 상대하는 상황이라 태현에게도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악마 공작 놈이 갑자기 이상한 헛소리를 하니 화가 안 날 수가 없었다.
[화술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구시렉이 설득됩니다!]
[……]
[……]
“??”
태현은 구시렉의 반응에 당황했다.
지금 뭘 설득되고 있단 말인가.
움직이란 말에 설득이라도 됐나?
‘악마 공작 놈들 하여간 도움이 안 되는군!’
-아키서스. 약한 악마 공작을 살려두는 게 과연 도움이 될까? 굶주린 혼돈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그런 나약한 마음은 버려야 하지 않는가?
“넌 닥치고 있어라!”
태현은 뒤에서 말 얹는 에슬라를 보며 외쳤다.
안 그래도 지금 정신 사나운데 다른 악마 공작들 은근슬쩍 죽이려는 에슬라가 두 배로 얄미웠다.
“구시렉! 올라타라!”
-으, 으응!
태현은 구시렉을 흑흑이 위에 태웠다. 그러고는 굶주린 혼돈의 공격을 다시 한번 잘라냈다.
[전설 검술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키서스 검법이…]
[……]
[……]
촤촤촤촥!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검광이 번뜩이고 스킬들이 시전됐지만 굶주린 혼돈의 공격은 그보다 더 빠르고 드넓게 범위를 늘려나갔다.
태현이 검을 휘두르는 방향은 괜찮았지만 그 뒤를 포위해서 퇴로를 막아버리려고 하자 에슬라가 외쳤다.
-아키서스, 빠져나와야 한다. 구시렉을 미끼로 바쳐라!
태현은 못 들은 척 무시했다. 구시렉은 흑흑이 위에서 다시 한번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에슬라 놈이 저런 식으로 배신을 하려고 하는데 아키서스가 챙겨주려고 하다니.
-아키서스…!
[악마 공작, 구시렉의 평판이 크게 올라갑니다!]
[친밀도가 크게 올라갑니다!]
그러나 태현은 그런 메시지창을 볼 여유도 없었다. 굶주린 혼돈의 습격이 생각보다 살벌했다.
[굶주린 혼돈이 괴수를 토해냅니다!]
굶주린 혼돈은 촉수만 사용하지 않았다. 꿈틀거리더니 놈의 몸통에서 괴수들이 튀어나왔다.
대륙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괴수가 아니었다. 온갖 몬스터들과 종족들이 섞여 있는 것 같은 융합체였다.
[카르바노그가 굶주린 혼돈의 잔인함에 분노합니다!]
이제까지 자기가 삼킨 수많은 영혼들을 저렇게 섞어서 내뱉다니.
포식도 포식이지만 더욱더 끔찍한 만행이었다.
‘어… 아키서스도 뭐 비슷한 것 같은데….’
그러나 태현은 사실 카르바노그의 분노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아키서스도 키메라 부리지 않나…?
[카르바노그가 그게 어떻게 같냐고 화를 냅니다!]
-키에에에엑!!
굶주린 혼돈의 융합체 괴수 하나가 달려들었다. 마치 플레이어와 몬스터가 섞여 있는 것 같은 기괴한 생김새였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언령 마법을 시전합니다!]
[태초의 불…]
[사디크의…]
[……]
태현은 바로 망설이지 않고 최대한의 힘으로 공격을 날렸다.
굶주린 혼돈을 상대하는 이상 힘조절이고 뭐고 없었다. 조금이라도 발이 묶이는 순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강화된 언령 마법이 수십 겹으로 중첩되고 화염을 만들어냈다.
판온의 곳곳에서 수집한 불들이 태현의 화염을 더욱더 강렬하게 만들었고, 마지막으로 사디크의 힘까지 합쳐졌다.
화르르르륵!
다가오던 융합체 괴수가 그대로 타들어 갔다. 태현은 멈추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아키서스 검법이 펼쳐지자 달려들던 괴수들은 그 충격에 쉽게 뚫지 못하고 발이 묶였다.
‘지금이다!’
맹공을 퍼부어 기회를 만든 태현은 바로 반대쪽으로 거리를 벌렸다.
서서히 좁혀지고 있는 퇴로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태현이 빠져나갔다.
[굶주린 혼돈의 촉수가 당신을 추적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으로 HP가 감소합니다!]
[……]
-주인이여!
태현은 용용이를 붙잡고 빠져나왔다. 하면서 한 번의 실수도 없었지만 타격이 만만치 않았다.
굶주린 혼돈의 공격을 치고받는 것만으로도 HP가 감소하고 디버프가 걸리는 것이다.
-아키서스….
“넌 아까부터 왜 자꾸 미친놈처럼 그러는 거냐!”
태현은 화를 냈다.
보통 이럴 때 사고를 치는 건 케인이었는데, 케인이 스미스하고 같이 사라지자 악마 공작 구시렉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집중 안 해? 노래 불러! 노래 부르라고!”
-아, 알겠다.
[악마 공작, 구시렉이 연주를 시작합니다!]
[악마들이…]
[……]
[……]
전장의 소음을 뚫고 연주가 다시 시작되었다. 싸우는 악마들의 힘이 새로 차올랐다.
-공격해라! 굶주린 혼돈에게 타격을 줘라!
-감히 마계를 불태운 놈에게 천벌을!
태현은 순간 움찔했다. 마계를 불태웠다고 해서 태현을 말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쓸데없이 찔렸군.’
“뒤로 후퇴하면서 거리를 벌린다! 악마들은 포위망 유지하면서 후퇴해라! 에슬라! 지원해라!”
[악마 공작, 에슬라가 힘을 개방합니다!]
[무효화의 권능이 굶주린 혼돈의 힘을 밀어냅니다!]
다른 악마 공작의 뒤를 찌르려고 하긴 했지만, 에슬라가 이런 상황에서까지 방해를 하진 않았다.
악마 공작들 중에서 광기공이라고 불릴 정도로 살벌했던 에슬라였던 만큼 그 권능 또한 강력했다.
무효화의 권능!
[굶주린 혼돈의 촉수가 무력해집니다!]
[굶주린 혼돈의 괴수들이…]
뻗어져 나오던 촉수가 느려지고 괴수들도 갑자기 머뭇거렸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약해진 탓이었다.
그 틈을 타 다시 맹공이 시작되었다. 원정대 플레이어들도 굶주린 혼돈이 멈춘 틈을 타 폭격하듯이 공격을 날렸다.
“계속 공격해! 악마들이 죽기 전에!”
“악마들이 희생해 주고 있을 때 최대한 데미지를 넣어!”
[굶주린 혼돈에게 공격이 들어갑니다!]
[굶주린 혼돈의 막강한 힘으로 데미지가 줄어듭니다!]
[……]
[……]
굶주린 혼돈에게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도 데미지가 줄어들었지만 플레이어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으니까.
한 번 한 번에 데미지가 1씩 들어간다 하더라도 여기 있는 사람들의 숫자로 덮어버리겠다!
-인간 놈들…!
-…그런데 우리가 희생하고 있는 동안에 넣으라니 이놈들이 진짜!
앞장서서 싸우고 있던 악마들은 원정대의 공격에 기뻐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듯이 반응했다.
지금 누구를 화살받이로 쓰려고…!
[굶주린 혼돈이 충격에서 벗어납니다!]
-조심해라! 아키서스. 놈이 깨어났다!
에슬라가 날카롭게 외쳤다.
에슬라가 그렇게 강력하게 권능을 썼는데도 굶주린 혼돈의 발을 잠시 묶은 것에서 끝난 것이다.
정신을 차린 굶주린 혼돈은 더욱더 포악하게 온몸을 뒤흔들었다. 괴수들의 숫자가 늘어나더니 사방으로 달려갔다.
본체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위협적으로 눈빛을 번뜩이며 힘을 집중시켰다.
…바로 구시렉이 목표였다.
‘아니. 구시렉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살벌한 공격에 태현은 의아해했다.
물론 태현이 노려지는 것보다 구시렉이 노려지는 게 낫긴 했지만, 좀 너무 생소했다.
보통 아키서스와 악마가 같이 있으면 대다수의 적들은 아키서스를 먼저 노리던데….
[카르바노그가 전장 전체에 노래로 힘을 불어넣고 있는 게 거슬리는 게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나를 먼저 노리지 않는 건 어째서지?’
[카르바노그가 지금 굶주린 혼돈은 허기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 그렇군.’
태현은 빠르게 납득하고 용용이를 몰았다. 용용이가 덩치를 부풀리더니 강력한 번개의 탄환을 쏘아 보냈다.
콰지직!!!
그러나 굶주린 혼돈의 촉수는 빠르게 회복하며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굶주린 혼돈은 아예 거대한 본체를 움직여 퇴로를 몸으로 감쌌다.
그 탓에 원정대의 공격은 더욱더 거세게 들어왔지만….
그걸 감수하더라도 구시렉의 숨통을 끊어놓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굶주린 혼돈에게서 느껴졌다.
‘정말 많이 싫어하는군!’
태현은 검을 붙잡고 권능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원래라면 굶주린 혼돈을 좀 더 끌고 와서 타격을 준 다음 사용하려고 했지만, 지금 구시렉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주인님. 좀 도와주십시오!
-아키서스!
흑흑이의 비명과 함께 구시렉이 비장한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은 의아해했다.
‘왜 저렇게 쳐다보지?’
“구시렉! 또 헛소리하지 말고 연주나 제대로 해라!”
-내 말을 제대로 들어라!
“?”
-내 원수를 반드시 갚아줘라! 굶주린 혼돈의 숨통을 끊어놓으란 말이다!
구시렉은 비장하게 시선을 돌렸다.
오랫동안 살아온 악마 공작으로서 굶주린 혼돈의 힘을 대면하니 느끼는 게 있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빠져나가서 도망칠 수 없다!
설사 그런다 하더라도 구시렉을 빼내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많은 희생이 필요할 것이다.
구시렉 본인도 놀라웠지만….
구시렉은 희생을 감수하기로 결심했다.
저 가증스러운 굶주린 혼돈을 쓰러뜨리고 자신을 구해준 아키서스를 위해서!
-죽어라, 굶주린 혼돈 놈아!
[악마 공작, 구시렉이 최후의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구시렉이 스스로를 희생합니다!]
-아, 안 돼!
흑흑이가 비명을 질렀다.
죽을 거면 혼자 죽지 왜 자기 위에서 같이 죽으려고 한단 말인가.
-넌 빠져나가라! 블랙 드래곤!
-고… 고맙다!
다행히 흑흑이는 빠져나올 수 있었다. 구시렉은 그러거나 말거나 공중에 떠서 강렬한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굶주린 혼돈도 위협을 느꼈는지 최대한 빠르게 구시렉을 집어삼키려고 했다.
-크윽… 나를 잡아 삼킨다 하더라도… 아키서스가 내 복수를 해줄 것이다…!
-구시렉! 내가 네놈을 직접 죽이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네놈의 결정을 존중하겠다!
뒤에서 들려오는 에슬라의 외침에 구시렉은 연주를 하다말고 이를 갈았다.
-아키서스! 저놈도 복수해다오!
“에슬라. 방해하지 마라!”
태현은 에슬라의 입을 막았다.
눈치 없는 악마 공작 놈이 최후의 선율을 연주하고 있는데 훼방을 놓고 있었다.
[최후의 선율이 연주됩니다!]
[구시렉이 스스로를 희생합니다!]
[굶주린 혼돈에게 강렬한 타격을 줍니다!]
[굶주린 혼돈이 한동안 움직일 수 없…]
[……]
[……]
파아아아아앗!
구시렉의 몸이 그대로 빛과 함께 소멸되고 동시에 어마어마한 음량의 선율이 전장을 휩쓸었다.
방금까지 굶주린 혼돈이 토해낸 괴수들이 쓰러지고 굶주린 혼돈도 괴롭다는 듯이 몸을 부들거리며 비틀거렸다.
“계속 공격해!!!”
“지금이다!”
기회라는 걸 깨달은 플레이어들의 공격이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태현에게는….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최고급 화술 스킬이 9로 오릅니다!]
[악마 공작들이 당신을 따르고 있습니다.]
[악마 공작이 당신을 위해 희생했습니다!]
[모든 조건을 만족시켰습니다!]
[사라진 악마왕의 지팡이가 당신에게 강림합니다!]
[악명이 크게 오릅니다!]
[마계에서의 평판이…]
[……]
[……]
“!”
태현은 손에 나타난 악마왕의 지팡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제까지 가짜를 만들어서 사기 치고 다니긴 했지만, 이렇게 진짜를 손에 넣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게 무슨…?’
[카르바노그가 마계의 악마들이 피눈물을 흘릴 거라고 외칩니다!
태현은 악마왕의 지팡이를 들었다. 새로 나타난 지팡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태현에게 빠르게 알려주고 있었다.
[악마왕의 지팡이를 휘두릅니다!]
[옛 악마왕의 군세들이 소환됩니다!]
-저… 저거?!
-왜 아키서스 놈이 악마왕이 됐냐?! 언제?! 무슨 이유로?!
원래 싸우고 있던 악마 중 한 명이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그 외침에 정신없이 싸우던 플레이어들은 자신도 모르게 공감했다.
그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