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786화 (1,785/1,826)

§ 나는 될놈이다 1786화

“와아아아아아아아!”

플레이어들은 기세 좋게 함성을 질렀다.

원정대에 참가한 사람들이라면 모두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지금 참가한 자리가 얼마나 의미 있는 자리인지.

승패와 상관없이 참가한 것만으로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자리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 자리는 바로 그런 자리였다.

나중에 ‘야 내가 판온하면서 굶주린 혼돈 레이드에 참가했었는데’로 계속 떠들 수 있는 자리!

…하지만 그건 그거였고 사람들의 생각은 다 비슷했다.

‘내 쪽으로 오지 마라!’

‘다른 쪽으로 가!’

산맥과 협곡 쪽에 모인 플레이어들의 숫자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에랑스 왕국, 오스턴 왕국 등 참가할 수 있는 플레이어란 플레이어는 모두 다 참가한 만큼, 한 곳에 모여 있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런 만큼 플레이어들은 처음부터 각자 위치에 나뉘어 있는 상태였다.

-유지수 님.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폭탄 화살 만들었다고 권하던데 써볼까요?

-야. 미친 소리 하지 말고 집중해.

궁수 플레이어들은 궁수 플레이어들끼리.

-도미닉. 스미스 놈이 원정대에 합류했다는데 내버려 둘 거냐? 굶주린 혼돈 레이드 끝나고 찾아가서 원한을 갚아야 하지 않겠냐?

-물론이지. 끝나고 원한을 갚을 거다. 스미스 놈. 절대 빠져나가지 못한다. 크로포드. 너도 같이 할 거지?

-…난 그냥 내 영지 운영할 생각인데.

-이런 비겁한 놈!

-마법사로서 자존심도 없냐?!

마법사들은 마법사들끼리.

또 파티별로, 길드별로 각자 편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만큼 전체 범위는 넓고 넓었다.

당연히 굶주린 혼돈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퍼져 있는 플레이어들을 한 번에 다 쓸어버릴 수는 없었다.

차근차근 한 곳씩 공격하게 될 것은 당연한 일.

플레이어들은 굶주린 혼돈이 부디 자기와 반대쪽으로 가주길 간절히 빌었다.

‘반대로 가라고!’

‘처음으로 탈락하고 싶진 않다…!’

랭커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무기를 붙잡았다.

랭커쯤 되면 사소한 것 하나도 자존심을 챙기게 됐다.

사람들 대부분이 이름을 몰라도 ‘내가 랭커 누구인데’ 같은 말을 괜히 하게 되고, 아침에 일어나서 판온 접속을 하면 ‘내가 누구? 판온 랭커’ 같은 혼잣말도 좀 하게 되고….

그런 랭커들에게 오늘 같은 자리는 훨씬 더 의미가 깊었다.

남들이 상상도 하지 못하는 대활약을 해서 이름을 남길 기회!

랭커들 중, 김태현보다 더 대단한 활약을 선보여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상상을 안 해본 랭커는 없었다.

그런데 그런 활약을 하려면 일단 초반 탈락을 피해야 했다.

“이… 이쪽으로 오나???”

“설, 설마 겁먹은 거 아니지? 겁먹었냐?”

“무… 무슨. 내가 무슨 겁을 먹어? 난 굶주린 혼돈과 싸우려고 다 준비해서 갖고 온 놈인데?”

“나는 로그아웃 한 번 하면 페널티가 계정 접어야 할 정도인데??”

“허세 작작 떨고 집중해 미친놈들아!”

다가오던 굶주린 혼돈이 방향을 틀었다.

방향 밖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자신도 모르게 환호했다.

“저 방향은….”

“악마들이다! 악마들이야!”

“잘 됐네!”

* * *

원정대의 모든 전력을 끌고 온 만큼 당연히 악마 공작들과 악마들도 전열에 끼어 있었다.

기계로 덕지덕지 개조된 악마 공작, 에다오르는 물론이고 구시렉이나 에슬라 같은 공작들도 자리에서 굶주린 혼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구시렉은 분노했다.

-비겁한 인간 놈들! 저놈들이 방향을 튼 거 아닌가?!

-인간 놈들에게 그럴 재주가 있었다면 훨씬 더 전에 썼겠지.

굶주린 혼돈이 방향을 튼 것은 그저 불운일 뿐, 원정대 플레이어들 탓이 아니었다.

악마들도 그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만세! 만세!”

“악마들 쪽으로 간다!”

-…….

-저런 악마 같은 놈들!

악마들은 치를 떨었다.

같이 싸우는 원정대 입장에서 굶주린 혼돈이 이쪽으로 오면 말이라도 예쁘게 좀 해줄 수 있지 않은가.

어그로를 끌어주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안 돼!’나 ‘위험해!’ 같은 가식적인 말이라도 해주면 이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을 텐데….

-적… 섬멸한다. 쓰러뜨리겠다.

-에다오르 저놈, 말이 좀 길어진 것 같지 않나?

-지금 그게 중요하게 됐나?

에슬라는 기계공학 장치로 개조된 에다오르를 보며 의아해했지만, 구시렉은 무시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가오는 굶주린 혼돈을 어떻게 막느냐!

-에슬라. 네 부하들을 동원해라. 에다오르. 놈을 공격할 준비해라. 내가 노래로 지원하겠다!

구시렉은 단호하게 외쳤다.

여기서 가장 권위 있는 악마 공작인 에슬라와 에다오르가 전폭적으로 나서준다면, 그 밑의 다른 악마들은 따로 지휘할 필요 없이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이다.

여러 악마 공작들이 힘을 합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지만….

오늘, 굶주린 혼돈에 맞서 그 힘이 나오리라!

-싫은데.

-거부… 거부.

-…….

구시렉은 어이가 없었다.

두 악마 공작이 모두 거절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나!? 굶주린 혼돈을 막지 못하면 얼마나 많은 악마들이 저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겠냔 말이다!

-나쁘지 않군.

에슬라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구시렉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에슬라는 예전부터 자신을 제외한 다른 악마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하던 악마 공작이었다.

설마….

설마???

-지금 설마… 지금 설마??

-뭐가 설마라는 거냐?

-에슬라! 네놈이 무덤에 갇힌 건 네놈이 미쳐서 날뛰었던 것 때문이다. 그걸 지금 다른 악마들에게….

-주, 주인님. 제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더 도발하시는 것 같습니다.

보다 못한 구시렉의 부하들이 달려와서 주인을 말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에슬라 같은 악마 공작한테 ‘야 네가 잘못해서 널 저 밑에 가둔 거니까, 네가 이해해라’ 같은 말을 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굶주린 혼돈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에슬라야 그렇다 치더라도 에다오르! 넌 대체 뭐가 문제인 거냐!? 아무리 정신이 나갔어도 그렇지!

-나보다 약한… 명령 안 받는다.

-…….

도중에 말이 끊겼지만 구시렉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 새끼가….

-마음대로 해라! 쓰레기 같은 놈들.

-네가 말하지 않았어도 마음대로 할 생각이었다.

에슬라는 비웃으며 외쳤다.

-악마들이여, 움직여라! 굶주린 혼돈을 상대하기 위해…!

에슬라의 부하들이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모여 있는 악마 군대들의 뒤쪽으로 가더니, 갑자기 퇴로에 닥치는 대로 마법을 시전해댔다.

-????

-후퇴는 없다. 굶주린 혼돈을 쓰러뜨리기 위해 악마답게 싸워라!

-이… 이런 미친!

-뭐하시는 겁니까!

악마 군대에서 바로 아우성이 튀어나왔다.

굶주린 혼돈이 다가오는데 퇴로를 손수 막아버리는 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에슬라는 태연했다.

-싸워라! 싸워서 이기면 된다!

-이 전력만으로 이길 수 있었으면 이렇게 준비를 했을 리가…!

악마들은 더 이상 따질 수도 없었다.

굶주린 혼돈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나가라!

[악마 공작, 구시렉이 전사의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마계에서 잊혀진 아름다운 선율이 주변을 뒤흔들기 시작합니다!]

[추가 버프를…]

[……]

[……]

기계 에다오르한테 약하다고 욕을 먹긴 했지만, 구시렉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특히 이런 대규모 난전에 있어서 구시렉 같은 음악 계열 직업은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했다.

악마 군대 전체에 걸리는 수십 개의 버프가 빠르게 걸렸다. 방금까지 악을 쓰던 악마들도 버프의 힘에 취했는지 바로 태도가 돌변했다.

-힘이… 힘이 솟구친다!

-내가 마계의 주인이다! 악마 공작들은 쓰레기일 뿐!

평소였다면 목을 날려버렸을 건방진 소리였지만, 어떤 악마 공작들도 악마를 말리진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악마들은 굶주린 혼돈과 맞서 싸워야 할 소중한 자원이었던 것이다.

-크아아악!

[악마들이 광폭화 상태에 빠져서 돌격합니다!]

[악마들이 굶주린 혼돈에게…]

돌진하면서 악마들은 각종 스킬들을 굶주린 혼돈에게 난사했다.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오러가 뿔처럼 솟구치며 불멸성이 사라진 굶주린 혼돈에게 작렬했다.

콰아아아아앙!

닿을 때마다 터져나가는 굶주린 혼돈의 육신에, 플레이어들도 움찔했다.

“오… 오오오?!?”

“생각보다 엄청 잘 싸우잖아?!”

“설, 설마 여기서 잡아버리는 건 아니겠지?”

악마들한테 먼저 가서 안도하긴 했지만, 악마들이 먼저 잡아버리면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허무한 일이었다.

물론 굶주린 혼돈이 빨리 잡히면 무조건 감사할 일이긴 한데 그 정도로 잡을 수 있었으면 그냥 플레이어들이 잡는 게….

[굶주린 혼돈이 공격을 흡수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상태가 회복됩니다.]

[굶주린 혼돈의 촉수가 사방을 덮칩니다!]

콰지직!

거대한 굶주린 혼돈의 육신이 출렁거리더니 주변을 향해 날카롭게 촉수를 뻗어냈다.

광폭화된 상태에서 공격을 퍼붓던 악마들을 한 번에 쓸어버리는 어마어마한 범위의 공격이었다.

[굶주린 혼돈이 악마들을 삼킵니다.]

“…….”

“…그… 그래도 다행… 인가?”

“지금 그런 소리가 나오냐!?”

악마들 혼자서 끝내지 못했으니 다행이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저 많은 악마 군대를 한 번에 밀어버리고 삼켜버리는 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기계 에다오르는 몸에 장착된 장치를 켜서 부스터로 날아오르며 정예 부하들을 이끌었다.

-섬멸, 섬멸, 섬멸, 섬멸!

-훌륭하다. 에다오르! 네놈을 지원해 주겠다!

에다오르는 구시렉의 말을 아예 무시했다. 구시렉은 열받았지만 화를 낼 시간도 없었다.

기계 에다오르를 지원해 주지 않으면 굶주린 혼돈이 당장에 밀고 들어올 테니까.

[악마 공작, 구시렉이 마계의 송가를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기계 에다오르의 힘이 폭발적으로…]

[……]

강렬한 연주와 함께 기계 에다오르의 힘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에다오르는 덤벼드는 굶주린 혼돈의 촉수를 빠르게 잘라낸 다음 놈의 본체에 다시 한번 일격을 먹여서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굶주린 혼돈은 즉시 반격을 가해왔다.

…에다오르가 아니라 구시렉을 향해서.

-?!?!?

구시렉은 자신한테 날아오는 굶주린 혼돈의 공격에 기겁했다.

지금 앞에서 싸우고 있는 기계 에다오르는 왜 내버려 두고 구시렉을 먼저 공격한단 말인가.

뒤에서 도망치는 악마들을 막아버리고 싸울 준비를 하던 에슬라가 말했다.

-과연. 이성은 잃었어도 본능은 남아 있는가. 위협적인 버프를 퍼붓는 놈부터 제거하는 거군.

-도와라! 도우라고! 안 도우면 진짜 네놈을 죽여버린다!

-열심히 해봐라.

에슬라는 도와주는 대신 비웃으며 굶주린 혼돈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구시렉이 뒤지든 말든 자기 할 일만 하겠다는 태도였다.

‘빌어먹을 놈! 빌어먹을 악마 놈들!’

구시렉은 에슬라를 저주하고 다른 악마들을 저주하고 마계를 저주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군을 도와주는 걸 선택하지 못하다니, 이러니 대륙을 절대 지배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멍청한 악마들 같으니!

굶주린 혼돈의 촉수가 빠르게 구시렉을 포위했다. 구시렉의 눈빛이 절망으로 번뜩였다.

그리고 그때 태현이 나타났다.

촤아아아아악!

태현은 빠르게 날아와서 검을 휘둘렀다. 굶주린 혼돈의 촉수가 잘려나가며 거리가 만들어졌다.

“구시렉! 빠져나와!”

-아… 아키서스…!!

구시렉은 자신도 모르게 울컥 감동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아,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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