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785화 (1,784/1,826)

§ 나는 될놈이다 1785화

“역병 폭탄도 쓰죠.”

“이다비?!”

태현은 놀랐다.

솔직히 이다비는 말릴 줄 알았던 것이다.

설마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의 광기가 이다비를 변하게 만든 것일까?

‘이 자식들 하여간.’

태현은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을 노려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골짜기의 대장장이들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왜 저러시지?

하지만 이다비는 매우 침착했다.

“지금 망하기 직전인데 쓸 거 안 쓸 거 가리면서 싸울 수는 없잖아요.”

“…맞는 말이야.”

이다비의 말이 맞았다.

지금은 굶주린 혼돈을 잡고 나서 뒷일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뒷일이고 뭐고 일단 최대한의 데미지를 줘야 한다!

“역병 폭탄 꺼내와라.”

“정말 그래도 됩니까?!”

“그래.”

“개량된 폭탄도요?!”

“…그래.”

“저번에 개발하다가 태현 님이 하지 말라고 해서 몰래 개발했던 폭탄도 꺼내도 됩니까?”

“…….”

태현은 욕하려다가 참고 말했다.

“허락할 테니까 모든 걸 갖고 와라.”

* * *

-폭풍전야. 우리 골짜기의 대장장이들을 비웃던 사람들에게 조금도 반박하지 않았다. 우리의 기계공학 스킬이 얼마나 강력한지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미친놈들아 아무도 너희 안 비웃었어!

└골짜기 모르는 사람들이면 이거 보고 오해할 거 아니야! 글 내려!

└우리가 너희들 피하면 피했지 우리가 언제 너희들을 무시했는데!!

└같은 대장장이라고 엮지 마라 ㅡㅡ 기계공학 대장장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해.

└여러분 이거 글 쓴 놈은 <악마의 대장간> 소속 기계공학 대장장이구요, 모든 골짜기 출신들이 저렇지는 않거든요? 다 같이 묶지 말아주세요.

골짜기 출신 기계공학 대장장이가 올린 글은 게시판에서 커다란 파문을 몰고 왔다.

물론 골짜기 사람들이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을 비웃었다는 것 때문은 아니었다.

어지간한 판온 플레이어들은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얼마나 미친놈들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심심하면 게시판에 <골짜기에서 절대 자리잡으면 안 되는 지역> <악마의 대장간 주변을 조심하세요> <기계공학 대장장이로 일주일 버티다가 도망침> 같은 글들이 올라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보다는 다른 데에 주목했다.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이번에 폭탄 다 꺼냈다던데.

-진짜로???

-…야 이거 아군한테까지 튀는 거 아니지?

-에, 에이… 기계공학 대장장이 놈들만 있으면 모를까 김태현이 있잖아. 김태현이 폭탄 한두 개 터뜨려보냐. 다 조절하지.

-그, 그렇겠지?

-길드 동맹 성들 무너뜨리는 거 보면 그 정도는 조절하고도 남지.

-왜 꼭 예시를 길드 동맹으로 드는 거냐??

-근데 저렇게 폭발 터뜨리면 잘츠 왕국 괜찮은 거 맞아? 산맥 주변 다 무너지고….

-어??

-그, 그런가?

-잘츠 왕국 뭐 어차피 있는 것도 없지 않나? 산맥 좀 사라진다고….

-이 자식! 잘츠 공화국이다!

-그리고 우리 잘츠 공화국 달라졌어! 고대 제국 시절부터 내려오는 시설들 많이 생겼다고!

-그래봤자 수도에만 조금 생겼던데 뭘….

-나머지는 볼 것도 없던데. 오죽하면 사람들이 싹 날아간 오스턴 왕국으로 가겠어.

잘츠 공화국 플레이어들은 게시판을 보고 부들부들 떨었다.

원래 사람이 반박할 수 없는 말을 들으면 더 억울하고 서러운 법이었다.

물론 잘츠 공화국에 별로 볼 거 없고 있는 건 산적과 구분하기 힘든 사냥꾼들 특화긴 했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많이 달라진 것이다.

물론 이 차이도 원래 잘츠 왕국 플레이어들이나 느낄 수 있는 거긴 한데 어쨌든!

-잘츠 공화국 좋다고!!

-아, 알겠어. 알겠어.

-그래서 지금 그게 중요해? 굶주린 혼돈을 막아야 하잖아. 이런 이기적인 놈들 같으니.

-우리가 막았냐!?

-야, 굶주린 혼돈 나타난 것 같은데.

그렇게 시끄럽던 게시판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저 멀리서 거대한 부정형으로 꿈틀거리는 굶주린 혼돈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경로에 있는 모든 걸 삼켜버리면서!

* * *

[굶주린 혼돈이 마을을 집어삼킵니다.]

길가에 있던 마을 하나가 통째로 싹 사라졌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증가합니다.]

[굶주린 혼돈이 만족해합니다.]

[강림한 굶주린 혼돈의 허기가 더욱 심해집니다.]

[굶주린 혼돈이 흉폭해집니다.]

‘못 본 사이 더 커졌군.’

저 멀리서 무슨 거대한 슬라임 같은 게 촉수를 스멀스멀 드리우며 다가오는 모습에 태현은 긴장했다.

그렇게 시간을 오래 주지도 않았는데 벌써 저렇게 덩치가 커져 있다니.

‘스미스하고 케인 놈이 일 제대로 한 거 맞나?’

[굶주린 혼돈의 사원이 파괴됩니다!]

[굶주린 혼돈의 이동속도가 조금 내려갑니다.]

[……]

사실 스미스와 케인 잘못이 아니었다.

스미스와 케인은 가능한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목숨 걸고 뛰고 있었으니까.

그보다는 지금 굶주린 혼돈의 힘이 너무나도 강한 탓이었다.

사원을 파괴하고 제물을 불태워버려도 기별이 가지 않는 수준.

굶주린 혼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놔라… 영혼을… 너무나도 허기지구나…!

“아키서스의 이름을 걸고 정정당당하게 대결해 보는 건 어떠냐?”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상대를 도발합니다!]

[……]

뒤에 사람들을 잔뜩 대기시켜놨지만 태현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그런 제안을 했다.

만약 상대가 자존심 때문에 받아들인다면 다시 한번 술래잡기를 하면서 시간을 끌 생각이었다.

통한다면….

내놔라… 영혼을! 너무나도 허기지구나!

‘아니 이 자식. 아키서스 상대법을 너무 잘 알잖아?’

태현은 굶주린 혼돈이 귀 막고 자기 할 말만 하는 모습에 살짝 감탄했다.

역시 고대 제국 이전 시절부터 활동해 온 놈답게 신들 상대하는 재주가 탁월했다.

[카르바노그가 그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굶주린 혼돈이 허기로 이성을 잃습니다.]

[더욱더 흉폭해집니다!]

[당신의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

‘아. 그런 건가.’

상대는 태현의 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게 아니었다.

대륙에 강림한 뒤로부터 점점 굶주림이 강해져서 미쳐가고 있는 것이었다.

‘다행이긴 한데….’

적이 총명함을 잃는다면 좋은 일이었지만 태현은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았다.

굶주린 혼돈은 그걸 감안하더라도 섬뜩할 정도의 힘을 내뿜고 있었던 것이다.

“온다!!”

굶주린 혼돈이 산맥을 발견하더니 서서히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허기져서 천천히 움직이던 놈이 무언가를 느꼈는지 전력을 다하는 모양이었다.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두려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놈을 지켜보았다.

“겁나나?”

“조금 겁납니다.”

대장장이들의 대답에 태현은 살짝 놀랐다.

그냥 미친놈들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그렇게까지 미치지는 않았구나!’

“폭탄이 저희 생각보다 약하게 터질까 봐….”

“…….”

태현은 그냥 괜히 물어봤다고 생각했다.

“터뜨려.”

“알겠습니다.”

툭-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각자 위치에 설치된 폭탄을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기계공학 대장장이뿐만 아니라 태현도 자신이 설치한 폭탄을 작동시켰다.

자리에 있는 모든 대장장이들이 동시에 폭탄을 작동시키는, 겉으로 보면 정말 조용하고 평범한 상황이었지만….

제작 직업이라면 누구나 이 장면을 보고 감탄했을 것이다.

판온에 이런 순간이 또 올까?

그 순간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무너져내렸다.

[폭발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폭탄이 중첩되어서 폭발이…]

[흔들립니다!]

[산맥이 무너져내립니다!]

[지층이…]

[용암이…]

[정령이…]

[지진이…]

[……]

“우와아아아아악!”

산맥에 대기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갑자기 미친 듯이 흔들리는 시야에 비명을 질렀다.

[폭발의 충격파로 인해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시야가…]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균형을 잃습니다!]

“뭐, 뭐야?!”

“앞을 못 보겠어!!”

폭발을 여유 있게 관찰하려던 플레이어들은 엎드리고 쓰러져서 일어나질 못했다.

각종 페널티로 인해 관찰이고 뭐고 흔들리는 바닥에서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몇몇 선택받은 랭커들만이 충격을 간신히 버티고 폭발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장관이다…!’

‘이게 무슨….’

판온에서 대폭발 장면을 몇 번 본 적 있었지만 이런 장면은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산맥 입구에서 폭발해 주변의 모든 걸 지워버리고 뒤흔들어버리는 거대한 일격.

그리고 가장 섬뜩한 건 그 폭발 속에서도 형체를 유지하고 기어나오고 있는 굶주린 혼돈이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단 말인가?

[<아키서스의 천재지변>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아키서스의 근원 역병>이 굶주린 혼돈을 오염시킵니다.]

[근원 역병이 굶주린 혼돈의 불멸을 훼손시킵니다!]

크으으… 크아악!

태현이 진행중인 <아키서스의 천재지변> 퀘스트.

아키서스의 거대한 해일부터 시작해서 아키서스의 산맥을 무너뜨리는 지진, 아키서스의 화염 용오름 등 수많은 옛 교황들의 권능을 태현의 힘으로 구현하는 퀘스트였다.

원래 아키서스 교단 퀘스트가 말도 안 되는 퀘스트를 주는 게 보통이긴 했어도 좀 심할 정도로.

“굶주린 혼돈이 이쪽으로 옵니다!”

“전투 시작 명령 보낼까요?!”

각 파티들을 이끌고 있는 파티장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폭발이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인가?

지금이 이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시간인가?

그러나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잠깐.”

[<아키서스의 천재지변> 퀘스트를 달성했습니다.]

[수많은 교황들의 기적을 직접 구현시킨 당신은, 아키서스 교단의 진정한 후계자입니다!]

[아무도 세우지 못한 업적을 달성해서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신성 스탯이 크게 오릅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행운 스탯이 크게 오릅니다!]

[……]

[……]

[기계공학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당신의 업적에 따라 새로운 권능 스킬이 주어집니다.]

[스킬, <아키서스의 천재지변>을 얻습니다!]

망설일 시간도 없었다.

태현은 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아키서스의 천재지변!

[<아키서스의 천재지변>이 시전됩니다.]

[명성이 매우 높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신성이 매우 높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

[……]

이제까지 태현이 해냈던 업적들이 수십 개의 메시지창으로 변해 앞을 장식했다.

방금까지 폭발과 충격으로 비틀거리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광경을 보게 되었다.

온갖 종류의 재해가 굶주린 혼돈이 있는 곳을 덮치고 있었다.

지진과 해일부터 시작해서 아키서스 교단이 세웠던 각종 자연재해들.

[<아키서스의 천재지변>이 굶주린 혼돈을 집어삼킵니다!]

[<아키서스의 천재지변>이 굶주린 혼돈을 불태웁니다!]

[<아키서스의 천재지변>이…]

[……]

[치명타가 터집니다!]

[추가적으로 데미지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거대한 폭발이 다시 한번 굶주린 혼돈을 후려갈겼다.

[<아키서스의 천재지변>이 굶주린 혼돈의 불멸을 크게 훼손시킵니다!]

굶주린 혼돈은 처음으로 비틀거렸다.

그 거대하고 시커먼 부정형의 육체가 점멸하더니 조금 크기가 줄어들었다. 잘려나간 촉수들이 회복하지 못하고 타들어 갔다.

[굶주린 혼돈은 수많은 차원의 영혼으로 만든 불멸성을 갑옷으로 두르고 있습니다.]

[불멸을 훼손시키고 굶주린 혼돈의 존재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십시오!]

태현은 검을 뽑아 들었다.

그 모습에 파티장들은 빠르게 신호를 보냈다.

진정한 굶주린 혼돈 레이드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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