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84화
케인은 연신 투덜거렸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바뀌진 않았다.
굶주린 혼돈이 날뛰고 있는 지금, 상대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가 없었다.
…그 수단과 방법이 케인이 목숨 걸고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 싫었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야….”
케인은 불길함을 느끼고 스미스를 쳐다보았다.
스미스 성격에 한 번 저렇게 말한 이상 정말 목숨을 걸고 할 것 같았던 것이다.
적당히 해!
“그런데 스미스. 다른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불만이 많을 것 같은데. 그건 괜찮나?”
태현의 질문에 스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굶주린 혼돈이 본색을 드러낸 이후 피해를 입은 건 스미스 혼자만이 아니었다.
다른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도 마찬가지로 크게 피해를 입었다.
가까이 있던 선수들은 스미스처럼 로그아웃당했고, 그나마 멀리 있던 선수들만 화를 피할 수 있었다.
당연히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네 탓이니 아니니로 싸우는 중이었다.
-이게 다 게임단 쪽에서 스미스만 밀어줘서 이렇게 된 일 아닙니까?
-이봐, 말 조심해! 그게 어떻게 스미스만 밀어줘서 이렇게 된 일이야?
-안 좋은 이미지 각오하고 굶주린 혼돈 퀘스트 깬 게 누군데 이러십니까? 게임단 쪽에서 책임을 져야죠!
-어느 누가 굶주린 혼돈 퀘스트 깨라고 강요라도 했나? 다 너희들이 알아서 결정을 내린 것 아닌가!
“와. 뻔뻔한 놈들 같으니.”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굶주린 혼돈 잘 나갈 때는 가입해서 온갖 꿀은 다 빤 놈들이 이제 와서 ‘굶주린 혼돈 가입하기 싫었는데 책임져요’ 같은 말을 하다니.
양심이 없나?
“게임단 쪽에서 자제 안 시키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선수들에게 너무 강하게 말하기 그런 상황입니다.”
원래라면 게임단은 절대적인 갑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게임단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지나치게 억눌렀다가는 선수들의 불만이 폭발할 테니까!
‘스미스 밀어준 건 스미스 밀어준 거고, 굶주린 혼돈 가입한 건 자기네들 선택이었으면서….’
태현은 혀를 차며 스미스에게 말했다.
“혼란스러운 건 알겠고 선수들 데리고 잘 해봐라.”
“…예? 아니, 김태현 선수. 지금 불만이 많아서 말을 안 듣는 상황입니다.”
스미스는 당황했다.
방금까지 들어놓고서 왜 저런단 말인가?
“걱정할 것 없다. 달래면 되니까.”
“…???”
스미스는 케인을 쳐다보고 태현을 쳐다보았다.
‘설마 케인 선수를 달래는 것처럼 하시려는 건 아니시겠지?’
케인을 달래는 건 상대가 케인 선수니까 가능한 일이었지, 미국 선수들은 케인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반찬 갖고 협박하면 바로 인터뷰하고 언론 플레이 시도할 게 뉴욕 라이온즈의 선수들인 것이다.
‘이 자식 날 쳐다보는 눈빛이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케인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스미스의 눈빛에 왠지 모르게 불쾌해했다.
* * *
뉴욕 라이온즈 선수, 저스틴은 접속하자마자 박살 난 상태창에 이를 갈았다.
굶주린 혼돈에게 잡아먹힌 탓에 페널티가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굶주린 혼돈에게 삼켜진 탓에 전체적인 능력치가 크게 감소해 있습니다!]
[회복이 더딥니다!]
[굶주린 혼돈에게 다시 삼켜진다면 레벨이 추가적으로 감소…]
[아이템이 파괴되었습니다!]
[내구도가…]
[굶주린 혼돈이 대륙의 끝까지 쫓아올 것입니다. 도망치십시오.]
[……]
[……]
악명 스탯 높은 상황에서 로그아웃.
거기에 굶주린 혼돈 페널티까지 겹치자 로그아웃으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저스틴. 접속했나? 화가 나는 것도 이해하지만 지금 낭비할 시간이 없다. 다시 모여서 퀘스트를 진행하자.
-그걸 지금 말이라고 지껄이나!? 너 같으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퀘스트를 진행할 생각이 들겠어!?
저스틴은 분노했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굶주린 혼돈한테 뒤통수를 세게 맞았어도 빠르게 마음을 추스르고 새 퀘스트를 하는 게 맞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봤자 남는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열심히 깨다가 뒤통수를 맞은 입장에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스미스와 같이 움직이는 건 더더욱 그랬다. 뉴욕 라이온즈 쪽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던 주제에 이런 상황 하나 눈치 못 채고 말아먹다니.
-스미스 놈이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진행하지만 않았어도 이 꼴이 나진 않았겠지.
-너도 동의하고서 진행한 퀘스트였잖아.
-닥쳐! 어쨌든 스미스하고 같이 진행할 생각은 없어.
저스틴은 진지하게 뉴욕 라이온즈를 손절하는 것도 고민하고 있었다.
굶주린 혼돈 퀘스트도 망했고 선수로서의 이미지도 망했으면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얼마 없었다.
진지하게 뉴욕 라이온즈를 손절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스미스와 뉴욕 라이온즈 운영진들 탓입니다! 저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같은 식으로 언론플레이를 한다면 저스틴은 빠져나올 수 있을지도….
-저스틴. 같이 진행해야 해. 스미스가 기다리고 있어.
-내가 스미스 놈 명령을 들을 것 같아? 만약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 할 이유를 하나라도 대봐.
-그게… 네가 안 모이면 김태현이 네 이름 척살령에 올려버린 다음 방송에서 저격하겠다고 하더라.
-…….
저스틴은 생각지도 못한 협박에 입을 떡 벌렸다.
대체 저게 뭔 미친 소리란 말인가?
-김태현이 왜!? 나하고 뭔 원수를 졌다고!? 난 김태현 놈 잡아본 적도 없어!
-그래. 나도 알아. 그런데 김태현 선수는 그게 아닌가 봐. 지금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한테 빨리 협조 안 하면 방송으로 저격해 버리겠다고 연락 날아왔어.
어지간한 협박보다 훨씬 더 소름 돋는 협박이었다.
지금 굶주린 혼돈 토벌 퀘스트의 가장 핵심인 태현이 방송을 켜고 ‘저스틴 이 새끼 때문에 굶주린 혼돈 퀘스트 망했네요 여러분’ 같은 말이라도 한다면?
안 그래도 지금 망가진 이미지 때문에 숨 막혀서 허우적거리는 저스틴에게는 치명타였다.
어딜 가든 ‘아니 저놈 굶주린 혼돈 토벌 퀘스트를 방해한 저스틴 놈이잖아?’ 같은 소리를 들을 것 아닌가.
진짜 게임 접어야 할지도 몰랐다.
게다가 태현이 데리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숫자를 생각해 봤을 때, 척살령이 내려오면….
‘이미지고 뭐고 그 전에 게임 접겠는데…?’
-그 자식은 왜 끼어드는데!?
저스틴이 씩씩댔지만 코치는 흔들리지 않았다.
-빨리 대답해야 해. 저스틴. 시간 끌면 바로 저격한다고 하더라.
-…알겠어! 알겠다고! 하면 될 것 아니야!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이를 갈고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명령대로 모였다.
뉴욕 라이온즈는 몰라도 태현은 무서웠던 것이다.
* * *
[고대 제국의 지하토끼 동상이 완성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태현 님! 굶주린 혼돈이 점점 더 가까워져 오고 있습니다.”
“알겠다.”
보고를 들은 태현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식을 전해준 플레이어가 사라지자 이세연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겠어?”
“…사실 잘 모르겠는데.”
“…….”
“어디 가서 내가 이런 말 했다고 하지는 말고.”
“안 해. 내가 왜 그런 말을 해. …위치라도 바꿔야 할까?”
이세연은 지형지물을 고민했다.
마치 폭발한 화산에서 느릿하게 몰려나오는 용암처럼, 천천히 먹을 걸로 배를 채우면서 다가오는 굶주린 혼돈의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그냥 앉아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싸워야 한다면 유리한 지형에서 싸우는 게 낫지 않을까?
“위치? 일부러 이쪽을 고른 건데.”
“??”
태현의 말에 이세연은 놀랐다.
지금 태현이 위치한 곳은 잘츠 왕국, 아니 잘츠 공화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맥 분지였다.
산맥을 끼고 있긴 했지만 굶주린 혼돈과 싸우기에는 그리 좋아 보이는 곳은 아니었다.
‘너무 좁지 않나?’
물론 산맥에서 치고 빠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여기 모이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규모를 생각해 봤을 때 꽤 좁은 편이었다.
게다가 여긴 별다른 시설도 없었다.
차라리 오스턴 왕국까지 끌어들이는 게 낫지 않을까?
“걱정하지 마. 이세연. 생각이 있으니까.”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태현의 말에 이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서 태현이 더 당황했다.
‘안 믿을 줄 알았는데. 굶주린 혼돈 때문에 쟤가 안 하던 짓을 하네.’
태현이 이 근처 산맥 분지를 끼고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준비하고 있는 기계공학 스킬들을 쓰려면 이런 곳이 편해.’
시설들도 없고 각종 폭발이 일어나더라도 끼고 있는 산맥들로 인해 밖으로 크게 퍼져나가지 않을 장소.
그게 바로 여기 산맥 분지였다.
어차피 오스턴 왕국 같은 곳으로 끌어들이려면 나중에 끌어들여도 됐다. 지금은 태현의 기계공학 스킬을 활용해 최대한 데미지를 줄 생각이었다.
‘전설 스킬도 찍어야 하니까….’
“저기 잘츠 왕국의 전사들도 합류하고 있습니다!”
“이제 공화국이야.”
“아차. 그랬지.”
“!”
태현은 고개를 들고 시선을 돌렸다. 플레이어들의 말대로 잘츠 공화국 쪽 NPC들이 도움을 위해 합류하고 있었다.
유지수도 잘츠 공화국 NPC들 사이에 끼어서 랭커들과 함께 이동 중이었다. 설득해서 데리고 오는 데 일조한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음. 산맥 무너뜨리고 분지 날려버리면 잘츠 공화국 사람들 싫어하지 않을까?’
아무리 사람 없는 분지라 하더라도 자기네 왕국과 연결되어 있는 산맥을 박살 내고 분지를 무너뜨렸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태현은 예상하기가 힘들었다.
“지수야. 네가 보기에 산맥을 무너뜨리고 분지를 날려버리면 잘츠 공화국 사람들은….”
태현은 유지수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유지수가 뭘 그런 걸 신경 쓰냐는 듯이 대답했다.
“지금 굶주린 혼돈 잡아야 하는데 그걸 따질 시간 없죠. 바로 공격 들어가요!”
“그런가?”
또 들어보니 맞는 말 같았다. 유지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잘츠 공화국 사람들 기분 맞춰줄 필요 없죠. 나중에 굶주린 혼돈 깬 다음에 고대 제국의 이름으로 명령을 내려버리면 그만인데.”
“…그건 좀 폭군 같지 않나?”
“굶주린 혼돈 막으면 그 정도는 해도 되죠.”
유지수는 매우 당당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 태도에 태현은 자신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 싶었다.
어라?
그런가?
하긴 굶주린 혼돈이 대륙을 삼키려고 하는데, 왕국의 별 것 아닌 산맥 하나 정도는 무너뜨려도 될 것 같기도….
[고대 제국의 지하토끼 동상이 완성됩니다!]
[완성된 지하토끼 동상이 분지의 지하로 내려갑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폭탄을 장착합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고대 제국 장난감 비전 스킬을 사용합니다.]
[<제국 토끼 광선 장난감>이…]
[<드래곤 폭탄> 스킬을…]
[<지진 폭탄> 스킬을…]
[<폭탄 정령 소환>을…]
[……]
[……]
태현은 갖고 있는 폭탄 계열 스킬들부터 함정 관련 스킬들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기계공학 대장장이들한테 말했다.
“내가 지금 폭탄이 조금 부족한데 너희들의 도움을 빌….”
“크흑!”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듣자마자 눈물을 펑펑 흘리기 시작했다. 태현은 당황했다.
“내가 무슨 무례한 질문을 했나?”
“아니… 아닙니다. 감동해서 그렇습니다.”
“저희가 만든 폭탄을 써주시는 날이 이렇게 올 줄이야….”
“저희는 오늘을 위해서 폭탄을 만들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
태현은 어이가 없었지만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의 도움을 받는 입장이라 입을 다물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어이! 창고에 있는 폭탄을 모두 갖고 와!”
“저번의 그 개량된 역병 폭탄도 꺼내!”
“모든 걸 다 쏟아부으라고!”
‘역병 폭탄은 말려야 하나…?’
태현은 진지하게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