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783화 (1,782/1,826)

§ 나는 될놈이다 1783화

“김태현. 아무리 생각해도 스미스가 원한을 품은 것 같은데….”

케인이 소곤거렸다.

상식적으로 태현한테 그렇게 당했으면 성인군자여도 열이 받아야 정상이었다.

스미스 입장에서는 또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그렇게 열심히 퀘스트를 깼는데 갑자기 세력이 돌변하더니 ‘이제 너는 해고야’ 하며 대륙 멸망 퀘스트로 변해버렸으니….

만약 케인이 스미스였다면?

‘나는 다 같이 죽자고 나섰을 거야.’

혼자 죽기는 너무 억울하니 대륙의 남은 사람들도 다 같이 굶주린 혼돈한테 죽자!

…같은 마인드로 행동했을 게 분명했다.

“…스미스가 너 같은 놈은 아니지.”

태현은 황당하다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스미스도 마찬가지로 황당하게 케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원한 없습니다. 케인 선수.”

“그, 그렇지?”

케인은 스미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태현에게 작게 속삭였다.

“절대 방심하지 마.”

“…정말 원한 없습니다.”

“힉!”

“목소리 다 들립니다. 그리고 저 한국말 할 줄 안다고 했잖습니까….”

스미스는 어이없다는 듯이 물로 목을 축였다.

“제 잘못인데 누구한테 원한을 갖겠습니까.”

“대단하군. 스미스. 쑤닝은 자기 실수로 길드 동맹이 망했는데 아직도 원한이 깊더라.”

“하하하….”

스미스는 민망한 듯이 웃었다.

“이해는 갑니다. 원래 한 번 하던 게 망하면 쉽게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운 법이니 말입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케인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미스는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케인 선수는 그렇게 크게 실패를 겪은 적이 없지 않습니까? 계속 성공하셨던 것 같은데….”

“나한테도 아프고 슬픈 과거가 있었거든?”

“케인의 쓸데없는 소리는 거기까지만 하고. 스미스. 그래서 굶주린 혼돈의 약점이 없다는 게 무슨 소리지?”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어떤 약점도 없었습니다.”

스미스는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플레이어들 중 가장 초창기에 가입한 편이었다.

그런 만큼 온갖 퀘스트들을 진행해 온 상태였다.

먼저 <굶주린 혼돈의 후계자> 퀘스트.

이 퀘스트는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플레이어 중 몇몇만 알고 있는 극비 퀘스트였다.

그만큼 중요하고 가치 있는 퀘스트였던 것이다.

<굶주린 혼돈의 후계자-굶주린 혼돈 퀘스트>

대륙을 지배할 위대한 굶주린 혼돈의 힘을 이어받고 필멸자들을 다스릴 존재는 오직 하나뿐….

…….

<굶주린 혼돈의 후계자>라는 전설 직업을 미끼로 내건 퀘스트.

오직 한 사람만이 달성할 수 있는 만큼 플레이어들은 이 퀘스트에 눈이 돌아갔다.

스미스도 그중 하나였다.

“사기에 당했군. 스미스. 이상한 신이 갑자기 말을 걸어온다고 다짜고짜 믿으면 안 된다.”

“예. 저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때가 있지. 강제로 전직시키거든.”

“???”

“아차. 미안하군. 계속 이야기해라.”

“아… 네. 이 <굶주린 혼돈의 후계자> 퀘스트는 굶주린 혼돈이 본색을 드러냈을 때 취소됐습니다.”

[굶주린 혼돈이 본색을 드러냅니다!]

[퀘스트가 취소됩니다.]

[굶주린 혼돈의 후계자는 어느 누구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대단하군, 정말.’

태현은 감탄했다.

아키서스 교단보다 더한 악덕 교단이 있을줄은 몰랐는데 굶주린 혼돈이 바로 그랬다.

대단하다!

“이 <굶주린 혼돈의 후계자> 퀘스트를 하면서 이것저것 파악했었는데….”

스미스는 노트에 그림을 그려가며 굶주린 혼돈의 세력을 대충 설명하기 시작했다.

굶주린 혼돈은 그 이름에 걸맞게 계속해서 차원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존재였다.

물론 언제나 무력으로 집어삼키지만은 않았다.

한 번에 삼킬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곳에는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다.

새로 부하를 만들고 권속을 만들어서 자기들끼리 내분을 유도하는 것이다.

퀘스트를 한창 할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권속과 부하들이 모두 다 굶주린 혼돈의 함정이었다.

만약 굶주린 혼돈이 정말로 점령 끝에 부하들에게 과실을 내려줬다면,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들이 보여야 했다.

하지만 굶주린 혼돈의 군단에서는 그런 존재들이 보이지 않았다.

싸움이 끝나면 전부 굶주린 혼돈한테 당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토사구팽!

설명을 듣고 있던 케인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이걸 왜 말해주는 거지?”

“즉 다른 차원의 수많은 영웅들이 먼저 굶주린 혼돈하고 맞섰다가 다 죽었다는 겁니다. 그만큼 강력한 거죠.”

“…….”

케인은 어이가 없었다.

‘이 새끼 진짜 찬물 끼얹으려고 왔나?’

와서 응원이나 해줄 것이지 한다는 소리가 ‘굶주린 혼돈 약점 없음’ ‘너희 망했음’이라니….

진짜 원한 있는 거 아닌가?

* * *

-김태현, 스미스 데리고 카페에서 회의 중… 굶주린 혼돈 쓰러뜨리는 방법 고민 중….

└무슨 미친 개소리야?

└또 이상한 놈 나타났네.

게시판에 글이 올라오자 사람들은 비웃었다.

원래 저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언제는 ‘나 팀 KL 선수인데 김태현이 저녁밥 안 준다’ 같은 글도 올라오고 그랬다.

그럴 때면 사람들도 ‘네가 경기에서 활약을 못 해서 저녁 없는 거임’ ‘계속 활약 못 하면 앞으로 반찬은 간장만 준다’ 같은 식으로 반응하곤 했다.

아마 저 글도 헛소리가 분명하리라.

-믿기 싫으면 믿지 마라. 근데 내가 보기에 진짜 김태현이랑 스미스 맞음. 옆에 키 작고 어려 보이는 사람 있는데 누군지 모르겠네.

└그러시겠지.

└내 언니는 사실 김태현이랑 사귐.

└우리 누나도 김태현이랑 사귀는데. 같은 사람인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시했지만, 몇몇 사람들은 ‘설마’ 싶었던 것이다.

‘키 작고 어려 보이는 사람이면 케인인데?’

글에 올라온 카페 이름도 태현이나 케인이 종종 출몰하는 카페였고, 어그로를 끄는 거면 케인의 이름까지 댔을 텐데 케인을 못 알아보는 게 묘하게 현실감이 있었다.

물론 그것까지 계산한 걸 수도 있었지만 이 정도면….

‘속는 셈 치고 가봐?’

팀 KL의 광팬들은 속는 셈 치고 한 번 카페에 찾아가봤다.

그런데…

“!!!!!”

“진… 진짜 김태현이잖아???”

“스미스 맞는데???”

“스미스 왜 왔어?”

“팀 KL 입단하는 거 아닌가?”

“뭔 미친 개소리를 그렇게 당당하게 하는 거야?”

아무리 행복회로를 돌려도 그렇지 리그 진행 도중도 아닌데 당당하게 상대 팀 에이스가 들어오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하는 친구의 모습에, 다른 팬은 경악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스미스가 들어올 리 있….

‘잠깐. 들어오면 대단하겠는데.’

아무리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고 하더라도 솔깃할 수밖에 없는 게 슬픈 스포츠 팬의 숙명이었다.

김태현+케인+스미스 하면??

‘아, 탱커 둘까지는 필요 없나? 탱커 하나만 있어도 될 거 같은데? 아, 누굴 하지? 스미스는 안정적이고 케인은 좀 불안정하지만 포텐이… 크윽. 둘 다 넣으면 탱커가 너무 많아. 한 명은 로테이션… 아니 근데 그러면 한 명이 너무 아쉬운데….’

“너 지금 상상하고 있지?”

“아, 아닌데.”

팀 KL 팬들은 상대방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조심 다가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니까 굶주린 혼돈의 세력은….

-토사구팽을….

-사악한 놈들한테 당했군….

-하여간 판온에서 교단은 잘못 가입하면 코 꿰인다니까.

“!!!”

굶주린 혼돈과 퀘스트.

팬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건 설마…??

-진짜 김태현하고 스미스 맞음. 둘이 굶주린 혼돈 토벌 고민하고 있음.

└또 또 헛소리.

└나 어제 편의점에서 케인이 콜라 사겠다고 투덜대다가 김태현한테 한 대 맞는 거 봄.

└이건 묘하게 진짜 같은데?

└잠깐. 저분은 저번에도 팀 KL 사인회 진짜로 참가하신 분인데. 거짓말하실 분 아님.

└뭐? 진짜??

└무슨 이야기 하고 있어요?

-지금 굶주린 혼돈 세력 조직도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면 약점 공략할 수 있을지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생각보다 가능성이 있나 봐요.

팬들은 자기 좋을 대로 듣는 습관이 있었다.

스미스와 태현은 ‘굶주린 혼돈 약점 딱히 없어요’ ‘야 망했네 뭐 이런 게 있냐’ 같은 식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팬들은 조금 다른 식으로 들었다.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어떤 약점도 없었습니다→하지만 김태현 선수라면 할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차원의 수많은 영웅들이 먼저 굶주린 혼돈하고 맞섰다가 다 죽었다는 겁니다→슬슬 이제 이길 영웅이 나올 때가 됐습니다

매우 긍정적인 사고방식!

생각지도 못한 팬들의 중계에 게시판은 매우 뜨거워졌다.

-그런데 스미스 저놈 믿어도 되는 거임? 굶주린 혼돈인데?

-그러게요?

-김태현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설마 스미스한테 속겠어요.

-스미스도 굶주린 혼돈한테 그렇게 당했으니까 갈아타는 게 이해가 되긴 함.

-아니. 뭘 용서해 주려는 건데! 스미스 그 자식 절대 용서 못 함!

이상하게 팀 KL 팬들은 스미스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왜냐하면….

-스미스는 솔직히 좀 용서해 줘도 되지 않나?

-스미스가 이제까지 당한 것들 생각해 보면 정상참작 해줄 수 있다고 본다.

-스미스 정도면 뭐….

-스미스는 솔직히 좀 불쌍하다.

스미스가 이제까지 쌓은 업적들이 있었던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팀 KL한테 한 번씩 져준 포인트!

팀 KL 팬들은 스미스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뭐 저런 이유로?!

-아니. 진지하다고. 스미스가 계속 활동해 줘야 리그에서 승점 줄 거 아니야.

-결승전에서 스미스 만나면 난 이상하게 안심이 되더라. 분명 잘하는데 팀 KL은 못 이길 거 같음.

* * *

“<굶주린 혼돈의 제물>, <굶주린 혼돈의 사원> 퀘스트였습니다. 제물을 바쳐서 힘을 증폭시키고, 사원을 건설해서 굶주린 혼돈이 넘어오기 쉽도록 만드는 퀘스트였죠.”

“그렇군….”

태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스미스가 했던 퀘스트들을 하나하나 다 짚어가면서 약점을 찾고 있었다.

‘약점이 없는 놈은 없다. 분명히 있을 거다.’

대륙에 강림한 굶주린 혼돈.

계속해서 움직이면서 살아 있는 것들을 삼키고 있었다.

“준비했던 제물을 다 먹었나?”

“아직 다 먹지는 못했을 겁니다. 워낙 대륙 전체에서 준비한 양도 많고….”

“제물을 바꿔치기하고 사원을 파괴해서 일차적으로 발을 묶어야겠군.”

“발을 묶는 효과가 있긴 하겠지만….”

스미스는 머뭇거렸다.

분명 효과적인 방법이긴 했다. 굶주린 혼돈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많은 제물을 바꿔치기하고 사원을 파괴하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움직이다가 굶주린 혼돈에게 발각되면 거의 100% 로그아웃이었다.

원정대에게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너무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래. 근데 해야지. 잘 해봐라.”

“…아.”

스미스는 깨달았다.

내가 해야 하는 거구나!

“그, 그렇군요….”

“왜. 하기 싫나?”

“아닙니다. 아닙니다.”

스미스는 급히 손을 내저었다.

이렇게 받아주고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는데 거절할 리가 없었다.

…조금 많이 당황스러워서 그렇지!

옆에서 보고 있던 케인이 낄낄댔다.

‘그러게 굶주린 혼돈에 왜 가입을 해가지고.’

“케인. 너도 부탁한다.”

“…?!??!”

케인은 입을 벌렸다.

“난 왜?!”

“지금 굶주린 혼돈 랭커들 모아서 그쪽 지역에 있다면서.”

“…….”

케인은 절망했다.

굶주린 혼돈 랭커들 때문에 이런 꼴이 날 줄이야.

이 자식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케인 선수.”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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