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781화 (1,780/1,826)

§ 나는 될놈이다 1781화

케인은 짜증을 내며 굶주린 혼돈 랭커를 업었다.

“잠깐. 너 굶주린 혼돈 계약은 파기했지?”

“…….”

“이런 미친놈을 봤나! 누굴 같이 죽이려고!”

“잠, 잠깐. 페널티가 심하다고!”

지금 굶주린 혼돈이 자기와 계약한 플레이어들부터 찾아서 잡아먹고 있는데, 아직까지 계약을 파기하지 않았다니.

그러나 굶주린 혼돈 쪽 랭커들도 할 말은 있었다.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많이 깬 랭커들에게 계약 파기는 거의 목숨을 건 일이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각종 페널티부터 시작해서 악명을 잔뜩 쌓아놨는데 굶주린 혼돈의 저주를 받아서 로그아웃이라도 당한다면….

“빨리 탈퇴해! 안 그러면 죽여 버린다!”

“탈… 탈퇴하고 있어!”

[굶주린 혼돈의 세력에서 탈퇴합니다!]

[굶주린 혼돈이 분노합니다!]

[갖고 있던 스킬들이…]

[스탯이…]

[……]

[……]

케인의 협박에 굶주린 혼돈 랭커는 허겁지겁 탈퇴했다.

뼈아픈 피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살고 봐야 했다.

“내… 내 오른팔에 저주가 걸려서 돌연변이가 됐어!”

“그 정도는 괜찮아 자식아! 엄살은!”

케인은 구박했다.

팔이 여섯 개 달려도 꿋꿋하게 판온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고작 팔 피부 좀 변했다고 저렇게 징징대다니.

굶주린 혼돈 랭커는 케인을 한 번 보고 자기 팔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

“뒤지고 싶냐???”

“아, 아니. 왜!!”

다른 원정대 랭커들이 초조하다는 듯이 재촉했다.

“케인 선수!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간다!”

케인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움직이려고 했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상황은 케인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케인, 케인!! 나도 도와다오!! 움직일 수가 없다!”

굶주린 혼돈 랭커들이 곳곳에서 못박힌 채 케인을 다급하게 불렀다.

몇 분만 지나면 굶주린 혼돈이 이쪽을 오고 가면서 남아 있는 플레이어들을 모조리 집어삼킬 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굶주린 혼돈 랭커들은 체면이고 뭐고 다 갖다 버린 채 케인을 불러댔다.

물론 케인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이런 미친놈들이 왜 자꾸 나한테 도와달라는 거야!?’

심지어 적 아닌가!

방금까지 적이었던 새끼들이 뻔뻔하게 도와달라고 하는 게 너무 어이가 없었다.

“양심이 없냐?!”

“제, 제발! 살려만 주면 골드로 보답할 테니까…!”

케인은 고민하다가 달려갔다.

꼴을 보아하니 거절했다가는 상대방이 물귀신처럼 발목을 잡을 수도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에이. 짜증 나는 놈들 같으니! 굶주린 혼돈 계약이나 파기해!”

“파기하고 있어! 크헉! 안, 안 돼! 내 스탯! 내 스탯!!!”

“그러게 누가 굶주린 혼돈이랑 계약하라고 했냐! 이 멍청한 놈들아!”

케인은 굶주린 혼돈 랭커를 하나 더 들었다. 팔이 여러 개라서 이런 점에서 유리했다.

먼저 들려 있던 굶주린 랭커는 어색한 표정으로 동료를 환영했다.

“어, 왔냐?”

“너… 너도?”

케인은 잊지 말고 먼저 잡은 놈한테 말했다.

“너도 까먹지 말고 똑같이 골드 내놔라.”

“잠, 잠깐. 그런 말 없었잖아.”

“여기서 죽을래? 골드 낼래?”

케인의 협박에 굶주린 혼돈 랭커는 입을 다물었다.

로그아웃 당하는 것보다는 골드를 내는 게 나았던 것이다.

“케인!! 난 저놈보다 2배를 줄 테니까 도와다오!”

“…오오!”

케인은 또 한 명 구했다. 자연스럽게 먼저 들린 놈들의 골드 지불액은 올라갔다.

“케, 케인 선수. 튀어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튀면 저놈들이 발목 잡을 거 아니야!”

케인의 말이 맞긴 했다. 원정대 플레이어들은 앓는 소리를 내며 구하러 갔다.

상황을 잘 모르는 팬들은 당장 빠져나가도 모자랄 상황에 구출을 펼치는 케인의 모습에 당황스러워했다.

-왜 저래요?

-케인 뭐 잘못 먹었냐?

-김태현이 시킨 거 아닌가? 안 그러면 케인이 저럴 리가 없는데.

-지금 케인 선수의 인성을 비난하시는 겁니까? 그쪽 길드 동맹 소속이죠?

-아니 길드 동맹 망한 지가 언젠데…! 그리고 나도 케인 팬이야! 케인 팬은 케인 성격 다 안다고!

-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케인 선수를 비난하시는 거 보니까 길드 동맹 소속이 분명합니다.

-환장하겠네! 너 언제부터 팬이었는데!?

-저 사람 길드 동맹 소속 맞는 듯. 케인 선수 욕하는 거 봐요.

-케인 선수 인성이 얼마나 좋은데.

새로 유입된 팬들은 케인의 인성을 옹호했다.

초기 때부터 팀 KL을 응원해 왔던 사람들은 억울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야…! 케인 저놈 저거 지가 할 집안일도 구단주한테 시키는 놈이야…!

-본색을 드러냈군요!

-미치겠네 진짜!

-케인 선수가 저렇게 적도 구출해서 데리고 가는데 욕을 하는 게 길드 동맹이나 할 짓이죠. 아니면 뭔데요?

-어. 여러분. 케인 선수 지금 저거 억지로 하는 거 같은데요. 굶주린 혼돈 랭커들이 두고 가면 발목 잡는다고 협박했다고….

-…….

-…….

-내가 뭐라고 했냐!!

-협박을 받았어도 적을 죽이지 않고 살려서 도와주시다니 정말 대단….

기존 팀 KL 팬들은 뒷목을 잡았다.

새로 팬들이 늘어나서 좋긴 했지만, 이렇게 굴 줄이야!

‘케인 저놈 착한 놈 아니라고…!’

‘안 착해서 좋은 건데!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

* * *

“다들 이동합니다!”

오스턴 왕국에서 대기하고 있던 원정대 플레이어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판온에서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던 대규모의 움직임이었다.

단순히 파티 몇 개, 길드 몇 개, 군대 몇 개 움직이는 수준이 아니었다.

왕국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지금 굶주린 혼돈 싸우려고 집합하고 있어요.”

“예? 위험하지 않아요?”

“그렇긴 하죠.”

“아. 혹시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요? 직접 참가하지 않는 플레이어는 안전하거나….”

“아뇨. 그런 건 없는데요.”

“???”

자기 일 하다가 상황에 늦은 플레이어들은 움직이기 시작한 거대한 행렬에 당황스러워했다.

레벨 높은 플레이어들이 레이드를 위해 모이는 건 이해가 갔다.

하지만 전투 능력이 부족한 제작 직업들이나, 레벨 낮은 플레이어들까지 전부 움직이다니.

아무런 보장도 없는데 사지로 들어간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대체 무슨 배짱으로?

“너도 갈 거냐?”

“글쎄… 넌?”

“위험하지 않냐? 지금 영상 확인해 봤는데 굶주린 혼돈 장난 아니던데. 스미스가 그냥 한 번에 박살 나더라. 다 자란 드래곤보다 더 위험해 보이던데….”

“그렇지? 레이드고 뭐고 간에 어지간한 고렙 플레이어들도 못 낄 자리 같은데.”

“그래서 안 갈 거냐?”

“아니… 난 가보려고. 이렇게 다들 가는데 나 혼자 빠지는 건 좀.”

“야. 위험하다니까??”

“넌 안 갈 거야?”

“아니, 난 갈 건데….”

곳곳에서 플레이어들이 수군거리면서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들어왔다.

정말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어느 누구도 가라고 강요하거나 협박하지 않았는데, 굶주린 혼돈 레이드를 하기 위해 모이라는 말에 움직이다니.

눈치를 보며 남아 있으려고 한 플레이어들도 슬쩍 일어서서 참가를 할 정도였다.

그렇게 북적거리던 오스턴 왕국이 텅 빈 것처럼 보일 정도로 플레이어들은 빠져나갔다.

원래라면 국경지대에서 경계를 서고 있을 사람들도 움직였다.

지금 굶주린 혼돈이 아군부터 잡아먹고 있는 상황이라 국경지대의 의미가 없어졌던 것이다.

“항… 항복! 항복!”

“살려줘!”

“그러니까 굶주린 혼돈으로 뭐하러 들어가지고….”

김태산은 국경지대에 생긴 차원의 균열을 빙 우회해서 간신히 넘어온 플레이어들을 보며 쯧쯧 혀를 찼다.

그렇게 수상쩍다고 말을 했는데도 믿지 않더니!

넘어온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눈치를 보며 겁을 먹었다.

얼마 전까지 그렇게 싸운 상황에서 편을 바꿨으니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태산은 그들을 더 이상 탓하지 않았다.

“움직일 건데 따라올 테면 따라와라.”

“…정말 같이 가도 됩니까?”

“탈퇴했으면 끝난 거지. 참가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참가해도 좋다.”

김태산의 너그러운 말에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왈칵 눈물을 흘릴 뻔했다.

생각지도 못한 자비였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무식하고 살벌한 분위기의 길드란 말을 들어서 정말 그런 줄 알았는데 이렇게 친절하실 줄은….”

“…….”

김태산과 아저씨들은 정색했다.

“어떤 놈이 그런 말을 하고 다녔냐?”

“예? 예??”

* * *

이세연은 무거운 마음으로 언데드 군대를 이끌고 향했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행렬이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지만, 이세연의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굶주린 혼돈이 얼마나 강력한지 영상으로 봐도 느낌이 왔던 것이다.

‘잡을 수 있을까?’

이세연에게도 스미스의 로그아웃은 충격적이었다.

굶주린 혼돈의 네임드들을 쓰러뜨리고 스미스까지 처리해서 세력을 꺾어버리면, 대륙에서 굶주린 혼돈의 군대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차원의 저편으로 도망갈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굶주린 혼돈을 얕본 것이다.

애초에 이렇게 강림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

‘언데드 군대를 다 투입해도 상대하기 힘들겠지? 각종 내성 갖고 있는 걸 보면 어지간한 공격들은 다 막힐 테고. 김태현은 다행히 전설 검술 스킬을 찍긴 했는데… 다행인가? 아. 진짜. 다행이긴 한데.’

이세연은 기분이 복잡했다.

지금 같이 불리한 상황에서 태현이 전설 검술 스킬을 찍은 건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굶주린 혼돈을 상대하면서 쓸 수 있는 카드가 하나 더 생긴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판온에서 태현과 승부를 다시 보려고 했던 이세연 입장에서 전설 검술 스킬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안 그래도 꽤 팽팽한 싸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으. 미련 버려야지.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니까.’

이세연은 고개를 흔들며 미련을 떨쳐내기 위해 애썼다.

저번에 결투가 무산된 다음부터 사실상 포기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미련이 많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끄으으으응….”

“…….”

이세연은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쑤닝이 길드 동맹 간부들과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쑤닝의 표정은 이세연보다 몇 배는 괴롭고 복잡해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든 뒤집어보려던 태현은 전설 검술 스킬을 찍어버렸고, 그런데도 굶주린 혼돈은 상대하기 힘들어보이고, 게다가 복수하려던 스미스 놈은 허무하게 굶주린 혼돈한테 잡아먹혀 버리고….

쑤닝은 지금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아… 젠장. 어떡하지?”

“굶주린 혼돈을 쓰러뜨리고, 다시 한번 김태현을 상대할 기회를 잡으시는 겁니다.”

“네가 보기에 현실성이 있어 보이냐?”

쑤닝은 간부를 보며 물었다.

물론 굶주린 혼돈을 쑤닝 혼자서 쓰러뜨리면 그 경험치와 보상으로 태현과의 차이를 뒤집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는가.

전설 검술 스킬 찍은 태현도 밀리다가 간신히 탈출했는데.

“사실 없지요.”

“그래. 희박하지만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 으응?”

쑤닝은 멈칫했다.

당연히 간부가 ‘희박하지만 길마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한 줄 알고 반응하려고 했는데….

이 새끼가?

“너 이….”

“길마님! 저기 김태현이 보입니다!”

“김태현 처음 보냐? 뭘 호들갑이야?”

간부들이 호들갑을 떨며 부르자 쑤닝은 화를 냈다.

물론 전설 검술 스킬까지 찍고 엄청나게 강해지긴 했지만 김태현은 김태현 아닌가.

이제와서 뭘 새삼….

“…저, 저거 뭐냐???”

쑤닝은 경악했다.

태현이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동상 위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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