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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780화 (1,779/1,826)

§ 나는 될놈이다 1780화

어느 순간 굶주린 혼돈의 공격이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태현은 상대의 영역에서 벗어났다는 걸 깨달았다.

‘빠져나왔군.’

저 멀리 시선을 돌리자 굶주린 혼돈이 주변에 자신의 힘을 펼치며 플레이어들을 잡아먹는 게 눈에 들어왔다.

현실에 강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를 하느니 착실하게 힘을 회복시키려는 게 분명했다.

-으아아악! 굶주린 혼돈 미친놈아! 뭐하는 거야!!

-길드 동맹도 이딴 짓은 안 했다!!

상황 파악 늦게 한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만 졸지에 먹혀 들어가고 있었다.

한 번 계약한 이상 제대로 도망치기도 힘들었다. 굶주린 혼돈에게서 받은 힘이 발목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태현 님. 괜찮으세요?”

“아직 회복하려면 좀 더 걸리긴 하겠지만 위험한 수준은 아니야.”

태현은 각종 스킬들과 아이템으로 저주를 풀어내면서 이다비의 질문에 대답했다.

이다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걱정했던 상황에서 벗어난 만큼 한숨 돌려도 될 것 같았다.

“…그, 솔직하게 잡으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이다비는 주변에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작은 목소리로 물은 건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봐 걱정되어서였다.

원정대 플레이어들은 태현에게 상당히 의존하고 있는 만큼 태현의 가벼운 말 한 마디로도 사기가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다.

“잘 모르겠어.”

“…….”

태현의 스펙을 가장 잘 아는 이다비 입장에서도 지금 굶주린 혼돈은 상상을 초월했다.

스미스 선수가 저렇게 한 번에 로그아웃을 당해버릴 줄이야.

판온을 하다 보면 가끔 플레이어들이 아직 상대할 수 없는 보스 몬스터들이 나오곤 했다.

굶주린 혼돈의 강림도 그런 것이겠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던전에서 나오는 보스 몬스터들은 피할 수나 있지, 굶주린 혼돈은 피할 수도 없었다.

내버려 두면 계속해서 대륙의 모든 존재를 집어삼키려고 할 테니까.

‘전설 검술 스킬을 찍었는데도 이렇게 될 줄이야.’

이다비는 지금 상황이 믿기질 않았다.

전설 스킬이 판온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금 태현을 제외하면 전설 스킬을 찍은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누군가 한 번 전설 스킬을 달성하면, 그 사람 위주로 판온의 질서가 다시 짜일 거라고 예측했다.

단순히 제작 스킬이어도 그랬다.

만약 전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있다면 아무리 본인의 전투력이 낮더라도 만드는 장비만으로 충분히 판온을 뒤흔들 수 있었다.

그 정도 기대를 받고 있었던 게 전설 스킬이었는데….

스킬들 중에서 가장 전투적이고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검술 스킬을 전설까지 찍었는데도 이렇게 불리한 상황으로 몰리다니.

어느 누가 예상했겠는가.

하지만….

“제가 보기엔 충분히 잡을 수 있어요.”

“그래?”

태현은 의아해했다.

이다비가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저런 말은 좀 예상 밖이었다.

‘정말로 잡을 수 있나?’

“잘 생각해 보세요. 지금 태현 님한테는 남은 스킬들이 있어요. 화술 스킬하고 기계공학 스킬들이 있잖아요.”

“검술 스킬도 안 먹히는데 그게… 더 잘 먹힐지 의문인데.”

태현의 중얼거림을 무시하고 이다비는 강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고대 제국의 후계자 퀘스트도 있죠. 유적들이 깨어나고 있어요.”

‘예전에 망했는데 크게 도움이 되나?’

고대 제국은 그 명성과 이름에 비해 실질적으로 주는 힘은 좀 약했다.

사람들이야 고대에 사라졌던 유적들이 나타나서 온갖 효과를 부여하자 환호하고 있었지만….

일단 굶주린 혼돈한테 한 번 망했던 곳 아닌가.

아무리 잘 남아 있어도 한계가 명확했다.

“태현 님 직업 퀘스트에, 이번에 다른 교단의 신들이 빌려준 힘.”

“으음.”

“그리고 악마 공작들도 있어요.”

“걔네… 는 정말 잘 모르겠는데. 걔네가 진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제가 계산하기에는 충분히 승산이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다비의 목소리에는 강한 힘이 담겨 있었다. 아직 회의적인 태현도 한 걸음 물러서게 만들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이다비. 너 예전에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랬었나요?”

“그랬어. 예전에 니팅거스가 난리 쳐서 잡으러 갔을 때.”

레드 드래곤 니팅거스.

지금은 분노 조절을 잘 하고 대륙의 원정대를 돕고 있었지만, 한 때는 레드 드래곤다운 난폭함으로 날뛰던 때가 있었다.

그때 태현은 지금처럼 강력하지 않은 상태에서 니팅거스를 잡기 위해 준비했어야 했다.

만약에 잡지 못하면 니팅거스의 어그로를 끌어서 길드 동맹이 있는 오스턴 왕국으로 던져놓을 계획을 짰을 정도로.

그때 이다비는 이상할 정도로 확신이 있어 보였다. 분명히 잡을 수 있다고.

-태현 님. 그리고 제가 확신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그래? 그게 뭔데?

-비밀이에요.

“이랬었잖아. 잠깐. 생각해 보니까 이거 그때 잡고 나서 못 들었는데? 뭐였지?”

“기억 안 나는데요?”

이다비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그러나 태현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아냐. 분명히 그랬어. 혹시 다른 스킬이나 퀘스트 같은 게 있나? 파워 워리어 쪽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 같은?”

태현의 말에 이다비는 저번처럼 다시 웃었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태현은 이런 부분에서는 참 둔감한 편이었다.

다른 때에는 상대방 눈빛만 보고도 위험을 알아차릴 정도로 예리했으면서.

“굶주린 혼돈을 잡고 나시면 말해드릴게요.”

“또 말 안 해주는 거 아니고?”

“아뇨. 이번엔 정말이에요.”

“알겠어. 믿어볼게. 그러면… 일단 남은 스킬들을 마무리 지어야겠군.”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태현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남은 퀘스트들을 최대한 진행시킨다.

‘최고급 기계공학, 최고급 화술 스킬… 그리고 아키서스의 화신 퀘스트.’

<화신의 길-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

굶주린 혼돈과 맞서 싸우는 당신의 영혼은 빛나고 있다.

대륙을 떠난 아키서스지만, 아키서스가 남긴 뜻이 당신과 공명하며 길을 안내하리라.

길을 분명하기 찾기 위해서는 당신의 아키서스 검법을 더욱 올려야 한다.

아키서스 검법에 매진하여 길을 찾아내라.

(최고급 검술 8: 1/1)

(아키서스의 일곱 번째 공격: 1/1)

(아키서스 전쟁의 검: 1/1)

보상: ?

전설 검술 스킬을 찍고 나서야 완전히 달성한 아키서스의 화신 퀘스트.

솔직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 직업 퀘스트 한두 개로 뒤집어질까 싶었지만, 그래도 믿을 건 직업 퀘스트밖에 없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신성이 크게 오릅니다!]

[……]

[새로운 퀘스트가 추가됩니다.]

<아키서스의 화신-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

당신은 아키서스 검법에 매진하여 길을 찾아냈다.

대륙을 불태우려는 굶주린 혼돈에 맞서서 용기를 가진 자들을 불러 모아라.

당신이 이제까지 쌓은 것들이 당신의 길을 안내해 주리라.

보상: ?, ???

‘…잠깐.’

태현은 알쏭달쏭한 퀘스트창에 당황했다.

이건….

‘이제까지 내가 했던 퀘스트들과 업적들이 보상에 관계되는 건가?’

퀘스트 내용이 너무 쉬웠다.

그냥 굶주린 혼돈에 싸울 사람들을 불러모으라니.

이런 건 퀘스트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다음이 더 중요했다.

이제까지 태현이 쌓은 것들이 길을 안내한다니.

‘음. 좋은 것도 있지만 좀 찜찜한 것들도 많은데.’

교단을 부활시키고 권능을 찾은 건 좋았지만 나머지 것들은 다 좀 찜찜한 편이었다.

다른 교단의 권능을 빌리고 대륙에 이것저것 좀….

‘어차피 지금은 망설일 때가 아니다.’

“다들 모이라고 연락해 줘. 굶주린 혼돈과 싸울 준비를 해야겠다.”

“네!”

* * *

쿵!

떨어진 케인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주변에서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도망치다가 잡혀 먹히고 있었다.

‘내 인생 망했다!’

케인은 속으로 울었다.

하필이면 떨어져도 굶주린 혼돈이 강림했을 때 떨어지다니.

그냥 이다비가 대신 떨어지게 둘걸!

“케인 선수!”

“정말 감동했습니다.”

같이 떨어진 다른 원정대 플레이어들이 케인 주변으로 모이면서 외쳤다.

그들도 방금 케인이 대신 희생해서 떨어진 걸 목격한 것이다.

당연히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감동은 무슨… 나 대신 이다비가 떨어졌어야 했는데!”

“예?”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김태현도 내가 떨어질 바에는 이다비가 떨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거라고!”

‘아닌 것 같은데.’

원정대 플레이어들은 케인의 과도한 자신감에 당황했다.

아무리 봐도 김태현 선수는 이다비를 선택했을 것 같은데….

“어, 어쨌든. 케인 선수. 지금 탈출할 방법을 찾아봐야죠.”

“탈출은 무슨. 우린 끝났어. 네가 굶주린 혼돈이면 우리 내버려 두겠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앗. 저기 제 친구 있습니다! 부르겠습니다!”

“친구 부르든 말든 우린 끝났다니까.”

케인은 투덜거렸다.

멀리서 달려오는 원정대 플레이어들의 얼굴이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누구지?”

“아. 나름 개인방송에서 유명한 친구라….”

“…잠깐. 방송?”

“예.”

케인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생각해 보니 지금 이 주변에서 개인방송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있을 수도 있었다.

“모두 나만 믿고 따라와라! 다 같이 탈출할 수 있다!”

“???”

“뭐 잘못 드셨…?”

케인이 갑자기 절망하다가 저렇게 외치자 다들 당황했다. 케인은 못 들은 척 말했다.

“다들 날 따라오라니까!”

“왜 그러세요 갑자기?”

“모두가 힘을 합치면 살아나갈 길은 분명히 있다!”

“???”

케인은 일단 되는대로 지껄이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라?’

놀랍게도 굶주린 혼돈과 계약한 플레이어들이 먼저 먹히고 있었다.

굶주린 혼돈은 태현한테나 관심이 있었지, 아키서스의 노예인 케인한테까지 관심이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태현이 도망친 이상 먹기 쉬운 놈들부터 포식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행인데 왠지 기분 나쁜….’

케인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기분이 나빴다.

이렇게 무시당하다니.

“다들 굶주린 혼돈을 자극하지 말고 빠져나가자.”

“알, 알겠습니다.”

케인 밑으로 모인 원정대 플레이어들은 조심조심 소리를 낮춰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굶주린 혼돈은 허공에서 촉수를 뻗어 계약한 플레이어들을 하나씩 잡아먹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날아온 외계인의 습격으로 초토화된 도시에서 몰래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도, 도와줘! 나도 도와줘!”

“!”

빠져나가는 케인 파티를 본 랭커 한 명이 다급하게 외쳤다.

굶주린 혼돈과 계약한 탓에 제대로 도망도 치지 못하고 숨어 있던 랭커였다.

[굶주린 혼돈에게 받은 힘이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듭니다.]

[저주받았습니다!]

[……]

“도와달라고!”

“못 들은 척해. 못 들은 척.”

“케, 케인 선수. 이래도 되나요? 케인 선수 이미지가….”

“내 이미지는 이미 많이 망해서 그 정도로는 안 망해! 괜찮아!”

다급한 케인은 이미지고 뭐고 간에 필사적으로 속삭였다.

“케인 선수는 이 와중에도 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저러시는 거야?”

개인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랭커가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다급한 와중에도 보고 있는 팬들을 웃기려고 하다니.

정말 선수로서의 프로의식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날 안 도와주면 굶주린 혼돈 불러서 너희들도 같이 잡아가게 한다!”

“…도와주려고 했다! 도와주려고!”

케인은 성질을 내며 굶주린 혼돈 랭커를 붙잡았다.

“정말로 도와주려고 했던 거 맞아?”

“이 자식이 속고만 살았나. 도와주려고 해도 난리네. 버리고 갈까?”

“아, 아니야! 아니야! 난 물론 널 믿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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