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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776화 (1,775/1,826)

§ 나는 될놈이다 1776화

사람의 원래 모습은 사라지지 않고 안에 남아 있다가 기회가 되면 다시 나오곤 했다.

새로 잡은 판온에서 워낙 불리한 위치라서 언제나 조심스럽게 행동했던 태현이었지만, 판온 1 때의 모습은 안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젝스칼을 만나서 갖고 있는 스킬을 다 쏟아부으면서 치열하게 싸우자 슬슬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뒷일 생각하는 걸 그만두고 눈앞의 적부터 깔끔하게 박살내고 보자!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굶주린 혼돈이 젝스칼에게 실망합니다.]

-아무리 검술 스킬이 강하다고 해봤자… 한계가 있는 법이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인님.

젝스칼은 밀려나면서도 외쳤다.

태현의 검술 스킬이 지금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태현이 갖고 있는 아키서스의 권능이 까다롭다는 것도.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무리 생쥐가 검을 잘 다룬다고 하더라도 코끼리를 잡을 수는 없었다.

그 정도로 젝스칼과 태현은 체급 차이가 났던 것이다.

태현은 수천 번의 공격을 성공시켜야 하지만 젝스칼은 한 번만 성공시켜도 태현을 짓눌러 버릴 수 있다!

-도망치지 못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럴 생각 없다니까.”

태현은 심드렁하게 대꾸하고 달려들었다.

이길 가능성이 낮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사실 상대방에게 우세를 잡았을 때 길을 뚫고 도망치는 게 맞는 일이었다.

전설 검술 스킬을 갖고 있는 만큼 충분히 길을 뚫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싸우고 싶다!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깨면서 계속 숙이고 기회를 노리고 인내했다.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바로 지금이라고.

지금 갖고 있는 걸로 상대를 쓰러뜨리라고!

“….”

아까 둘이 공방을 펼칠 때 날아가서 구겨져 있던 굶주린 혼돈 랭커 한 명이 자신도 모르게 방송을 켰다.

원래라면 다른 경쟁자들이 이걸 보고 정보를 얻으면 안 되는 만큼 켜면 안 됐지만….

이건 자기 혼자만 보기 너무 아까운 싸움이었다.

* * *

-굶주린 혼돈 퀘스트 새로 나온 거 있나? 왜 자꾸 이 새끼들이 팀킬을 하지?

-팀킬 퀘스트 나왔다는 소문이 있던데. 굶주린 혼돈이 이제 대륙 대충 다 정복했으니까 약한 놈들부터 처리한다고.

-그딴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믿냐? …잠깐. 나 글 쓰다가 죽었어.

-믿기 싫으면 믿지 마라. 근데 굶주린 혼돈이 원래 이런 식으로 강자만 솎아내는 놈임.

-그러면 이 랭커 새끼들은 퀘스트 공유도 안 하고 자기들 혼자 먹겠다고 몰래 죽이고 다녔던 거임?

-이런 길드 동맹 같은 새끼들…!

-길드 동맹보다 더한 새끼들이지!

-길드 동맹을 자꾸 비교의 단위로 사용하지 마라 좀.

-아니, 안 그래도 지금 저기 국경지대에 요새들 많아서 골치 아픈데 그거 해결은 안 해주고 무슨 팀킬이야?

-솔직히 굶주린 혼돈이 나서면 저런 국경지대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자꾸 간만 보지 말고 길 만들어달라고.

-소문 들어보니까 약한 놈들 대충 탈락하고 솎아내기 끝내면 그놈들 데리고 공격 시작한다던데.

-엥??? 그러면 성벽은 누가 타?

-사실 레벨 높으면 성벽 타고 사다리 걸고 할 필요가 없긴 하지. 그냥 날아가면 되는데.

-기사단장 젝스칼하고 김태현하고 싸우는 중. 일대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김태현이 미쳤냐? 가서 일대일하게?

-원정대 플레이어들이 김태현 배신해서 게임 접으려는 거 아니면 지금 젝스칼한테 가서 일대일을 왜 걸어?

기사단장 젝스칼이 어느 정도로 강력한 NPC인지는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다 잘 알았다.

그런 젝스칼한테 일대일을 붙으려고 직접 찾아가다니.

아무리 김태현이라 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꼭 김태현 잘 모르는 놈들이 저런 헛소리 하더라. 김태현이 퀘스트 때문에 오해받을 때가 많지만 김태현 되게 스마트한 플레이어거든?

-맞아. 퀘스트 깰 때 다 계산하고 들어간다고. 퀘스트 성공률만 보면 알 수 있지.

-판온 리그 때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게 공격적인 플레이하고 대책없는 플레이는 다르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다 갑자기 전문가가 되어서 글을 올린 사람을 비난했다.

-진짜 김태현하고 젝스칼이 싸우는데? 협곡 근처 같음.

-다른 놈들 전혀 안 데리고 와서 싸우고 있어.

-김태현 대체 무슨 배짱이냐?

-이건 기회다! 김태현 잡을 기회! 무조건 가서 잡아야 해! 젝스칼 상대하면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그, 그래. 너 열심히 가라.

-나도 응원한다.

-다들 왜 이래!? 김태현은 무적이 아니야! 젝스칼이 얼마나 강한지 알잖아!

-그래. 그러니까 가라고.

-안 말린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쉽게 나서지 않았다.

머리로 생각하면 지금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젝스칼은 태현을 압도했고, 정말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태현이 이긴다 하더라도 엉망이 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머리를 따르기에는 이제까지 태현이 보여준 것들이 너무 많았다.

다들 머릿속에 ‘설마’가 감돌고 있었던 것이다.

갔다가 괜히 김태현이 준비한 것에 휘말리기라도 한다면….

-나 혼자라도 간다! 겁쟁이 자식들!

-가라니까?

-아까부터 결투 보고 있는데 여기서 간다고 떠드는 놈들 뭐하고 있냐? 아무도 안 오는데?

-젝스칼이 아군 흡수하는데. 저기 가면 젝스칼 도시락 되는 거 아닌가?

-김태현 진짜 예술적으로 싸우긴 한다.

-대체 어떻게 저렇게 싸우는 거야?

싸우는 태현은 집중하느라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보고 있던 사람들의 눈에는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오는 젝스칼의 스킬 하나하나를 겁먹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버텨내고 피해냈다.

그렇게 기회를 만든 다음에 젝스칼을 붙잡고 연타.

[굶주린 혼돈의 힘이 젝스칼을 강하게 만듭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당신의 마법을 봉인합니다.]

[마법 스킬이 낮습니다.]

[저항에 실패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으로 인해 아이템 사용도 막혔는데 다른 스킬들까지 막히다니.

그러나 태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검술 스킬과 아키서스 화신의 권능 스킬들은 남아 있었으니까.

태현은 검 한 자루에 의존해 계속해서 젝스칼에게 균열을 내고 빈틈을 만들었다.

그건 마치 물방울로 바위에 구멍을 뚫는 듯한 지루한 작업이었다.

젝스칼은 조금씩 느려지고 약해졌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사라집니다.]

[굶주린 혼돈이 젝스칼을 재촉합니다.]

[젝스칼이….]

원래라면 갖고 있던 비장의 스킬로 상대를 이길 확신이 있었을 때만 싸웠을 것이다.

확실한 카드를 갖고 있지 않으면 싸울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싸움은 그런 게 없었음에도 하고 있는 싸움이었다.

믿을 건 스스로의 컨트롤밖에 없다!

젝스칼이 검을 들어 올렸다. 수십 개의 그림자가 만들어지더니 사방을 향해 난사되었다.

태현은 빠르게 계산했다.

정면으로 들어오는 건 전설 검술 스킬로 튕겨보내고 나머지 공격들은 궤도를 예측해서 피해내면….

[<아키서스 반격의 검>이 시전됩니다.]

[완벽하게 공격을 돌려보냅니다.]

[공격을 회피하는 데에 성공합니다.]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

카카카카카캉!

-진짜 이기는 거 아닌가??

-…정말 그럴지도….

방금까지 공격 한 번 오갈 때마다 시끄러웠던 굶주린 혼돈 게시판이, 지금은 갑자기 렉이라도 걸린 것처럼 조용해졌다.

다들 압도되어서 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게시판 멈춘 거 아니지?

-김태현… 진짜 그냥 검술 스킬로만 패는 거 같은데?? 별다른 거 안 쓰고 있지 않냐?

-검술 스킬로만 이기겠다고? 다른 거 안 쓰고???

-설마 퀘스트 완성했나?!

온갖 변칙적인 비장의 스킬들을 써가면서 싸워왔던 사람이 갑자기 저러는 데에는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일종의 선언이었다.

나는 검술 스킬을 완성했다.

어디 한번 덤벼볼 놈들은 덤벼봐라!

그렇지 않다면 젝스칼 같은 강적을 상대로 계속 검술 스킬만 고집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다못해 태현이 자랑하는 폭탄들도 있는데.

물론 태현은 지금 굶주린 혼돈 때문에 아이템 사용이 막힌 상태였다.

설사 가능했다 하더라도 젝스칼을 상대하면서 폭탄까지 꺼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설마… 설마… 설마….

-정, 정말로? 정말로 이긴다고??

젝스칼의 검이 휘둘러졌다.

태현은 검을 쳐내고 반격을 꽂아 넣었다. 젝스칼의 검이 견디지 못하고 반으로 쪼개졌다.

반으로 쪼개진 상태에서도 젝스칼의 검은 위협적인 힘을 뿜어냈다.

태현은 아슬아슬하게 피한 다음 다시 검을 휘둘렀다. 아키서스 검법이 폭발하자 젝스칼의 갑옷에 구멍이 뚫렸다.

푹!

태현의 공격이 젝스칼을 꿰뚫었다. 젝스칼은 더 이상 반응하지 못했다.

-!!!!!!!

-이… 이겼….

그리고 모두가 더 이상 놀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때, 굶주린 혼돈의 대마법사 포르볼리오가 나타났다.

* * *

[굶주린 혼돈의 대마법사, 포르볼리오가 나타납니다!]

[광기가 완전히 포르볼리오를 잠식합니다!]

포르볼리오는 저번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아보였다.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던 마법진이 파괴된 데다가 암살자 놈이 아키서스의 후계자로 드러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포르볼리오는 날카롭고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죽어ㄹ….

그러나 태현이 한 발 더 빨랐다.

아무리 젝스칼과 싸우느라 지쳤다고 하더라도 포르볼리오 같은 마법사가 나타났는데 가만히 있을 정도로 태현은 멍청하지 않았다.

태현은 있는 힘과 스킬을 다 사용해서 포르볼리오 가까이 붙었다.

[검술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포르볼리오의 마법을 잘라내는데에 성공합니다!]

[회피에 성공….]

설마 젝스칼과 싸우면서 지친 태현이 이렇게 빠르게 붙을 줄은 몰랐던 포르볼리오는 경악했다.

생각보다 훨씬 강력했던 것이다.

-암살자 놈이 건ㅂ….

퍼퍼퍼퍼퍽!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아키서스의….]

[….]

[….]

태현은 젝스칼을 잡고 얻은 보상이나 새로운 스킬들을 확인할 틈도 없이 갖고 있는 스킬들을 포르볼리오에게 쏟아부었다.

지금 태현의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한 번 떨어지면 죽는다!

젝스칼과 싸우면서 굶주린 혼돈한테 당할 만큼 당한 상태였다.

여기서 떨어져서 포르볼리오의 마법을 한 대 맞으면 정말 끝장나는 수가 생겼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아키서스의 네 번째 공격이 상대의 약점을 정확하게 공략합니다.]

[포르볼리오의 마법이 취소됩니다!]

[검술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마법을 잘라냅니다!]

[포르볼리오가 언령으로 당신을 후려칩니다!]

[언령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피해가 줄어듭니다!]

[신성 권능으로 저항합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아까 젝스칼처럼 정교하게 피하지는 못했지만 태현은 끈질기게 버텨냈다.

포르볼리오의 각종 공격은 태현과 상성이 안 좋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포르볼리오의 로브에 깃든 보석이 파괴됩니다!]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포르볼리오의 추가 생명 중 하나가 영원히 빛을 잃습니다!]

[포르볼리오가 분노합니다!]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찌르고, 베고, 긋고….

태현은 검을 더 이상 휘두를 수 없을 만큼 휘둘렀다.

주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볼 여유도 없었다. 그만큼 포르볼리오에게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놓치면 죽는다.

놓치면 죽는다!

[포르볼리오의 추가 생명 중 하나가 영원히 빛을 잃습니다!]

[포르볼리오가 쓰러집니다!]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당신의 검술이 변화합니다.]

[전설 검술 스킬을 달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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