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75화
“정말 인정한다.”
“네놈은 판온 선수들 중 가장 미친놈이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굶주린 혼돈의 랭커들은 뒤로 슬금슬금 물러섰다.
이 자리까지 올 정도면 평범한 랭커가 아니었다.
남들보다 몇 배는 생존 감각이 뛰어나고 인내심이 강한 랭커들!
다른 굶주린 혼돈 랭커들이 불에 날아드는 나방처럼 퀘스트에 머리 들이밀었다가 타죽을 때 살아남은 이들인 만큼 그 능력은 이미 증명된 셈이었다.
김태현이 저렇게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일 때는?
‘상대하지 말아야지.’
‘기다린다.’
‘애초에 젝스칼도 여기 있으니.’
“…너희 지금 젝스칼이 싸우는 동안 기다리려는 거냐?”
태현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굶주린 혼돈 랭커들은 움찔했다.
“젝스칼. 저 자식들이 비겁하게 싸움에 끼지 않으려고 하는데.”
[굶주린 혼돈 내 평가가 크게 하락합니다!]
[기사단장 젝스칼이….]
[….]
[….]
굶주린 혼돈 랭커들이 분노해서 태현에게 외쳤다.
“김태현 이 자식이!”
아무리 그래도 상도덕이 있지 이런 비겁한 짓을 하다니.
그러나 태현은 단순히 굶주린 혼돈 랭커들을 엿 먹이기 위해서 이런 짓을 한 게 아니었다.
“이 짜증 나는 놈… 컥!”
분노하느라 만들어진 빈틈을 노리고 태현이 달려들었다.
-아키서스의 세 번째 공격, 아키서스 연격의 검! 치명타 폭발, 사디크 세 번째 공격 맹염!
방금 젠타스가 기습을 당해서 쓰러진 만큼 굶주린 혼돈 랭커들은 절대로 방심하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태현이 앞에 있는데 방심하는 미친놈도 없었겠지만….
하지만 태현의 공격은 랭커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이 자식 검술 스킬이…!?’
태현의 컨트롤이 뛰어나다는 건 모두 다 아는 사실.
판온 리그부터 시작해서 상대방의 공격을 먼저 파악하고 꿰뚫은 다음 자신의 공격을 집어넣는 컨트롤은 유명했다.
상대 공격은 피하고 자기 공격은 때리고.
굶주린 혼돈 랭커들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있었다.
태현과 컨트롤 승부를 하거나 치고받는 식의 평타 교환을 하는 건 자살행위.
굶주린 혼돈의 스킬 위주로 사용해서 태현 같은 플레이어 특유의 낮은 방어력과 HP를 찌른다!
…그런데 그런 전략을 쓸 틈이 없을 정도로 태현의 공격력이 너무 살벌했다.
[폭탄이 폭발합니다!]
[스킬이 취소됩니다!]
[아키서스의 저주가….]
[스킬이 취소됩니다!]
[….]
검술 스킬은 물론이고 각종 스킬들을 사용해 잠깐씩 동작을 끊은 다음 어떻게든 꾸역꾸역 딜을 집어넣는 살벌함.
원래 강한 놈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상대할 구멍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무리다!’
못 본 사이 태현은 숨 막히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거의 완전체에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이렇게 나오면 대체 어떻게 상대해야…!’
태현에게 포착당한 랭커 한 명이 쓰러지기 직전 젝스칼이 나섰다.
[굶주린 혼돈의 기사단장 젝스칼이 당신을 공격합니다!]
[혼돈의 검이 휘둘러집니다.]
[피하십시오!]
-피해! 피해라!
기계공학자들이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태현은 이미 위험을 느끼고 있었다.
지독한 혼돈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기사단장의 검.
아무리 아키서스의 행운이 강하다 하더라도 저 검에 맞으면 편히 죽지는 못하겠다는 예감이 강하게 왔다.
[카르바노그가 굶주린 혼돈이 다른 신들의 권능을 봉인시키고 삼켜 버리는 만큼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꽝!
젝스칼의 검이 작렬하자 사방이 뒤흔들렸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파도처럼 피어올라 주변을 쓸어버렸다.
태현은 피했지만 굶주린 혼돈 랭커 중 한 명은 그 힘에 맞아버렸다.
“…크악!!”
당연히 괜찮을 줄 알았던 랭커는 비명을 질렀다. 젝스칼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굶주린 혼돈을 위해 희생해라.
“미친…!”
‘저번에 스미스가 보여줬던 것과 비슷한데.’
태현은 긴장했다.
저번에 스미스가 보여줬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지칠 때마다 간식처럼 아군을 까먹고 힘을 회복하는 사기적인 모습!
원래 일대일로 끝까지 싸울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지만 저런 걸 보게 되자 더 긴장이 됐다.
[기사단장 젝스칼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주변 모든 스킬들의 실패 확률이 크게 올라갑니다.]
[주변 모든 아이템들의 실패 확률이 크게 올라갑니다.]
[….]
[기사단장 젝스칼이 기사의 결투를 시전합니다.]
[결투를 포기하고 도망칠 때 페널티가 강하게 붙습니다.]
[….]
-와라. 아키서스의 후계자.
“….”
그때였다.
태현의 아이템 하나가 빛을 발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대 제국 황실의 녹슨 검>이 빛을 발합니다.]
[진정한 주인을 위해 힘을 선물합니다.]
[화술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고대 제국 황실의 목소리가 당신을 돕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명성이 매우 높습니다.]
[검의 힘이 증폭됩니다. 추가 보너스를….]
[검술 스킬이 일시적으로 크게 오릅니다!]
[….]
[….]
[일시적으로 최고급 검술 스킬이 전설 검술 스킬로 변합니다.]
고대 제국의 후계자한테 주어지는 황실의 보물들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이제까지 그 후계자가 쌓아 올린 것에 따라, 고대 제국의 황실이 남겨둔 힘이 후계자를 돕는 것이다.
태현은 <고대 제국 황실의 녹슨 검>이 자연스럽게 마검을 대체하는 것을 목격했다.
[<고대 제국 황실의 녹슨 검>이 <고대 제국 황실의 검>으로 변합니다.]
[적을 쓰러뜨리십시오.]
-쓰러져라!
태현에게 일어난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기사단장 젝스칼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젝스칼은 이미 기회를 놓친 상태였다. 태현의 검이 먼저 솟구치듯이 뿜어져 나왔다.
-아키서스 섬광의 검!
[아키서스 섬광의 검을 사용했습니다!]
[검술 스킬이 높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젝스칼의 갑옷 사이의 빈틈을 정확하게 노리고 추가 데미지를….]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
젝스칼은 한낱 모험가가 자신보다 더 먼저 공격을 적중시켰다는 사실에 놀랐다.
데미지는 견딜 수 있었지만, 그 사실 자체가 굴욕이었던 것이다.
-놀랍군!
태현은 대답 대신 상대를 더 놀라게 만들기 위해 다음 공격을 집어넣었다.
-아키서스의 첫 번째 공격!
[아키서스의 첫 번째 공격을 사용했습니다.]
[검술 스킬이 높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
전설 검술 스킬은 단순하지만 확실한 변화를 보여줬다.
행운을 소모해서 강력한 연속공격을 날리는 <아키서스의 첫 번째 공격>.
그 <아키서스의 첫 번째 공격>은 일격 일격이 무슨 산을 쪼개고 부술 것처럼 변해 있었다.
콰콰콰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공격들이 젝스칼을 난타하자, 기사단장은 순간 쭉 뒤로 밀려났다.
-그건… 설마 제국의 검…!
젝스칼은 뒤늦게 태현의 힘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남아 있던 굶주린 혼돈의 랭커들은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돼서 물었다.
“그게 뭡니까?!”
-고대 제국 황실에 내려오는 검이다. 아키서스의 후계자가 갖고 있었군.
젝스칼은 감탄하듯이 말했다.
지금 남의 일처럼 여유 부리는 젝스칼의 모습에 굶주린 혼돈 랭커들은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남 일처럼 말씀하실 때가 아닌 것 같습….”
쩍!
젝스칼의 힘이 굶주린 혼돈 랭커 한 명을 그대로 꿰뚫었다.
[굶주린 혼돈의 포식이….]
[기사단장 젝스칼이 빠르게 회복합니다!]
-아키서스의 후계자. 나는 약한 자를 경멸한다. 하지만 너는… 굶주린 혼돈을 섬기지 않는 자들 중에서는 손꼽힐 정도라고 인정해줄 수밖에 없겠군.
기사단장 젝스칼의 힘이 더욱더 증폭되기 시작했다.
방금 태현이 공격을 그렇게 집어넣었는데도 HP가 바로 회복되고 부서진 장비가 복구되고 있었다.
‘스미스 놈하고 전투 스타일이 비슷한데….’
놈을 도망치게 두지 마라.
-도망칠 길은 없다. 아키서스의 후계자. 이번에는 도망치지 못할 거다.
[굶주린 혼돈이 숨결을 불어넣습니다.]
[도주 확률이 줄어듭니다.]
[….]
원래라면 굶주린 혼돈의 갑작스러운 개입 때문에 분노하거나 당황했을 것이다.
계획도 여기를 빠져나가는 것이었지 기사단장 젝스칼을 쓰러뜨리는 게 아니었으니까.
[카르바노그가 어떡하냐고 말합니다.]
‘상관없다.’
그러나 태현의 표정은 냉정했다.
고대 제국 황실의 검이 준 보너스 때문에 태현의 생각도 바뀐 것이다.
“다 죽이고 나가겠다.”
“….”
“…!!!”
굶주린 혼돈 랭커들은 태현의 말에 무심코 침을 삼켰다.
그들이 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음에도, 왠지 태현의 저 선언은 판온 1 때를 떠올리게 만드는 오싹함이 있었다.
뭐지?
자신감이 있나?
‘어차피 스미스 놈하고도 붙어야 하는데, 전설 검술 스킬을 갖고서도 젝스칼을 이기지 못하면 힘들다. 여기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는다.’
태현은 검을 들었다.
전설 검술 스킬이 있다지만 젝스칼은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서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뿐.
태현이 갖고 있는 스킬들을 최선을 다해서 쏟아붓는다!
-아키서스의 저주!
-허튼수작을!
젝스칼은 저주를 견뎌내며 돌진했다. 태현도 그 공격 하나로 이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언령 마법을 시전합니다!]
[젝스칼의 회복 속도가 느려집니다.]
[젝스칼의….]
[….]
태현은 마법으로 다른 걸 사용하지 않았다.
어차피 복잡하거나 다채로운 공격을 시전해 봤자 별 소용이 없었으니까.
핵심은 젝스칼의 방어와 체력을 깎아버리는 것!
-아키서스의 주사위!
[아키서스의 주사위를 시전합니다. 추가 버프가….]
[….]
쾅!!!!!
젝스칼이 방패를 들고 덤벼들었다. 태현의 공격이 꽂혔음에도 불구하고 젝스칼은 묵직하게 계속 전진했다.
공격을 퍼붓고 있는 건 태현이었지만 밀려나는 것도 태현이었다. 젝스칼은 전설 검술 스킬의 공격을 버티면서 돌격하고 있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젝스칼을 보호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
[카르바노그가 상대가 개사기를 치고 있다고 비명을 지릅니다!]
원래 아무리 강한 보스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전설 검술 스킬의 공격을 이렇게 난타당하는데 저렇게 버틸 수는 없었다.
굶주린 혼돈이 직접 막아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관없다. 카르바노그.’
그러나 각오를 마친 태현은 불평 대신 다음 스킬을 시전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꿈틀거리며 당신의 검을 노립니다.]
-아키서스의 명검 소환!
[아키서스의 힘으로 스킬 하나를 검으로 바꿔 소환시킵니다!]
[마법 스킬이 검으로 바꿔서 소환됩니다!]
존재만으로 주변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마법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태현은 고대 제국 황실의 검을 보호하며 쌍검으로 상대를 난타했다.
[<아키서스의 명검>이 상대를 변화시킵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으로 인해 <아키서스의 명검>이 해제됩니다!]
[기사단장 젝스칼이 힘을 더욱더 드러냅니다.]
[주의하십시오!]
-아키서스의 영혼관!
서로 갖고 있는 스킬들을 쏟아부으면서 맞붙었다.
젝스칼의 공격을 아키서스의 권능 여럿 사용해가며 막아낸 태현은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아키서스 폭발의 검, 아키서스의 여섯 번째 공격!
계속 맞받아치던 젝스칼은 처음으로 공격을 따라가지 못하고 한 템포 늦게 반응했다.
그것만으로도 태현이 다시 기회를 잡기에 충분했다.
-아키서스의 네 번째 공격, 치명타 폭발!
[아키서스의 네 번째 공격이 시전됩니다!]
[사디크의 화염 스킬이 추가 보너스를….]
[위대한 화염의 검술이 추가로….]
화르륵!
강렬한 섬광과 함께 태현이 갖고 있는 각종 스킬이 젝스칼을 불태웠다.
-도망치지 못….
“칠 생각도 없었다.”
태현은 차갑게 대꾸하며 젝스칼을 다시 공격했다. 마치 판온 1 때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