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773화 (1,772/1,826)

§ 나는 될놈이다 1773화

우우웅-

태현은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물 샐 틈도 없이 꽉꽉 들어서 있던 굶주린 혼돈의 진영.

그 굶주린 혼돈의 진영이 일순 가루로 변해버렸다.

[마력이 쏘아집니다.]

팍!

메시지창 하나와 함께 무슨 급류라도 날아온 것처럼 쏘아져 나온 마력이 굶주린 혼돈의 전사들을 날려버렸다.

태현은 경악했다.

‘위력이 생각보다 더….’

온갖 폭탄의 달인일 뿐만 아니라 지금 태현의 수준을 뛰어넘는 폭탄도 여럿 다뤄본 적 있었지만, 지금 굶주린 혼돈의 마법진이 폭주하는 징조는 심상치 않았다.

[마력이 날뜁니다!]

다시 한번 마력의 폭포가 날아오더니 굶주린 혼돈의 진영 하나를 파괴시켜 버렸다.

아무리 국경지대를 전부 채울 정도로 숫자가 많아도 한 번 마력이 쏘아져 나올 때마다 텅 빈 공터가 만들어지면 침착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굶주린 혼돈의 플레이어들은 더 심각했다.

한 번이라도 로그아웃되면 페널티가 심각했던 것이다.

“모두 튀어!!!!”

“마법진! 피해욧!!! 구석으로!!!”

“저리 비키지 못해?!”

사람이 너무 많으면 이럴 때 오히려 불리했다.

바로 뚫고 나가려고 해도 부딪히거나 막혀서 도망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마력이 쏘아집니다.]

[마력이 쏘아집니다.]

[마력이…]

마치 번개가 치듯이 협곡의 마법진에서 마력이 쏘아져 내려오며 주변을 박살 냈다.

팍! 팍! 파파팍! 파파파파팍!

죽음의 룰렛 같은 공포가 진영에 있는 사람들을 감쌌다.

신전 기사들이 포르볼리오를 보며 외쳤다.

-당장 저걸 멈추게 하시오!

-미친 거 아닌가 당신!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그렇지 이런 짓을 하다니!

-내… 내가 한 게 아니다!

포르볼리오는 변명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신전 기사들은 믿어주지 않았다.

-당신이 한 게 아니라면 빨리 멈춰보시오!

-마법진이 작동을 시작한 이상 멈출 수 없다! 무슨 멍청한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저 마법진에 쌓인 마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한 번 마법진을 가동시킨 건 댐의 수문을 열고 고여 있던 물을 쏟아내는 것.

이걸 다시 멈추고 물을 안으로 담을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포르볼리오…! 당신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닙니다. 흩어지라고 하십시오! 대피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스미스가 명령을 내렸다.

키메라로 변한 흉측한 겉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명령이었다.

꽈르르르르릉!

그러는 사이에서도 협곡 마법진의 마력이 폭주하듯 줄기줄기 내리꽂혀 재수 없는 사람들을 날려 버렸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

빠져나가려던 태현은 누군가가 자신을 공격하자 멈칫했다.

뭐지?

‘들켰나?’

그러나 들킨 게 아니었다.

“비켜! 비키라고! 다 죽여 버린다!”

“내 길을 막는 놈들은 모조리 쓸어버리겠다! <지옥불 강림>!!”

상황 파악 끝난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의 폭주가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길을 막는 놈들을 모조리 치워버리고 최대한 멀어져야 한다!

‘오…!’

태현은 그 혼란에 반색했다.

이런 유쾌한 상황이?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상대의 급소를 정확히…]

[아키서스 검법으로 인해 추가 효과가…]

[검술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태현은 자신도 그 분위기에 탑승하기로 했다. 옆에 있던 애꿎은 굶주린 혼돈 랭커 하나가 등짝에 칼을 맞고 그대로 엎어졌다.

“미친놈아 왜 아군을….”

“죽어라! 날 방해하지 마라!”

태현이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탈출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너 이 자식! 길을 방해하고 있군!”

“무슨 소리야!! 지나가! 지나가라고, 크악!!”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을 쓰러뜨려서 추가 명성이…]

[신성 스탯이…]

[……]

사방에서 사람들이 도망치는 와중에 태현은 플레이어들을 확인했다.

지금 더 잡고 갈 놈 없나??

* * *

[요새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굶주린 혼돈이 당신들을 칭찬합니다!]

“드디어!”

국경지대의 요새들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하나씩 무너지고 있었다.

고대 제국의 유산들이 동원되고 하늘도시가 날아와서 각종 지원을 해준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굶주린 혼돈은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뉴욕 라이온즈 소속 랭커, 저스틴은 손을 흔들며 당당하게 외쳤다.

“뚫었다! 뚫었다고!”

요새 몇 개가 무너졌지만 이번 콜돈 요새 함락은 그 의미가 컸다.

주변의 다른 요새들과 연결되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던 콜돈 요새.

여기가 무너진 이상 근처의 다른 요새 안에 있던 원정대 세력들은 서로 오고 가며 협력하기가 힘들었다.

“이 기세 그대로 몰아붙이자고! 더 오라고 해! 지원을 더 보내!”

저스틴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근처의 다른 랭커들도 흥분한 건 마찬가지였다.

재수 없는 스미스 놈을 밀어내고 이 요새지대 공략의 최고 공적치 포인트 플레이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스틴! 저기 후퇴하는 놈들 있다!”

“잡아! 절대 놓치지 마!”

저스틴은 콜돈 요새의 뒤편으로 후퇴하는 원정대 플레이어들을 보고 눈이 뒤집혀서 달려갔다.

“아, 좀 튀자! 이 자식들아!”

오크 아저씨들은 쫓아오는 굶주린 혼돈 랭커들을 욕했다.

“주는 거 하나 없이 얄미운 놈들이 지독하기까지 하네!”

“너희들은 위아래도 없냐? 어른 공경도 몰라?! 적당히 해라!”

“…죽여 버려!!”

“절대 놓치지 마라!!!”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과 굶주린 혼돈 랭커들은 뻔뻔한 오크 아저씨들의 말에 더욱 분노했다.

보는 눈이 많고 방송으로 전 세계에 나가고 있는데, 사실 이렇게 흥분하면 안 됐다.

하지만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에게는 그렇게 분노할 이유가 있었다.

…콜돈 요새를 공략하면서 정말 지독할 정도로 오크 아저씨들한테 당했던 것이다.

-사다리 걸었다! 올라가! …아니 미친! 가짜 성벽이다! 위에 발 디딜 곳이 없어!

-하하! 추가로 가짜 성벽을 만들어놨지! 떨어져라!

-크악! 가짜 성벽 밑에 함정까지…! 죽여 버린다 진짜!

-지하로 파고 들어가!

-지하에 폭탄이 장치되어 있… 무너진다! 피해! 피해!

-그냥 공중으로 때려 부숴! 공중으로 들어가면… 이런 미친 놈들! 와이번을 왜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어!? 돈이 썩어나냐!?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엿을 먹었는데 이제 와서 ‘아 좀 적당히 합시다’이러니 더욱더 혈압이 올랐다.

죽여버린다!

저스틴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눈빛이 몇 배로 사나웠다.

“저기 저 플레이어가 김태현 아버지랍니다!”

“…저놈은 반드시 잡는다!!! 잡아!!”

저스틴은 살벌하게 외쳤다.

단순히 김태현의 가족인 걸 떠나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을 기회였다.

김태현을 쓰러뜨리지는 못했어도 김태현의 아버지를 쓰러뜨렸다고 하면 꽤 그럴듯한 그림이 나오지 않겠는가!

“저놈 잡아라!”

“저런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하는 못난 놈들!”

김태산은 쫓아오는 굶주린 혼돈 전사들을 박살 내며 외쳤다.

이 근처 병사들 피해도 만만치 않아서 무난히 후퇴하겠다 싶었는데, 적들이 악에 받쳤는지 갑자기 계속 쫓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태현이 원인이었다.

“이게 형님 잘못은 아니잖습니까? 어린 놈들이 너무하네요!”

“사실 따지고 보면 형님에게 책임이 올라가긴 하지….”

“조용히 하고 따돌리기나 해라!”

[주문서, <고대 제국의 실크 방어막>이 시전됩니다!]

[주문서, <데메르 교단의 최상급 치유>가 시전됩니다!]

[주문서…]

[……]

[……]

오크 아저씨들은 미친 듯이 주문서를 꺼내서 찢기 시작했다. 숨 쉴 틈도 없이 주문서를 쓰는 그 모습에 쫓던 선수들이 질릴 정도였다.

‘무슨 낭비를?!’

‘돈이 썩어나나!?’

아무리 랭커라도 그렇지 저렇게 돈을 물 쓰듯 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쫓아가던 굶주린 혼돈 랭커들은 주문서 폭격에 일순 발이 묶였다.

그리고 그때였다.

[국경지대가 마력으로 인해 변화합니다!]

[마력의 격류로 인해 공간이 찢어지고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공간이 격리됩니다!]

굉음과 함께 굶주린 혼돈 병력 뒤쪽의 공간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굶주린 혼돈의 차원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어두컴컴하고 뒤틀린 혼돈의 공간이, 평화롭고 멀쩡한 대륙의 공간 위로 겹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저번에 스미스가 차원 외부로 날아가서 실종되었던 것처럼 저렇게 뒤틀리고 비틀어진 공간에 들어갔다가는 어떻게 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잠, 잠깐.”

저스틴은 멈칫했다.

저게 왜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저게 사라지지 않는다면….

여기 건너온 굶주린 혼돈 병력을 제외하면 나머지 본대는 다 에랑스 왕국 쪽에 있는 것 아닌가?

저스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도망치던 오크 아저씨들도 갑자기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어라? 저 정도면 할 만하지 않나?”

“그러게요? 저거 잘린 거 맞죠? 바로 못 건너오는 거죠?”

“함정 아닌 거 같지?”

“주변 요새에 전부 나오라고 해라!!”

뿌우우우우-

나팔과 함께 아직 남아 있던 주변 요새 안에서 수많은 전력들이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저스틴과 다른 굶주린 혼돈 랭커들인 혼비백산해서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도망쳐라! 도망쳐!!!”

“도망칠 곳이 없어, 저스틴!!!”

* * *

“내 길을 막다니 죽….”

꽝!!!

태현은 죽이려던 랭커가 마력 폭주를 맞고 바로 사라지는 모습에 멈칫했다.

‘이제 진짜 튀어야겠군.’

마법진 안에 든 마력이 더 거칠게, 더 많이 날아들고 있었다.

공포 그 자체!

주변을 둘러보니 마치 썰물 때처럼 굶주린 혼돈의 전력들이 협곡 근처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이 정도면 굶주린 혼돈에 가입해서 날뛴 대가로서 충분하리라.

‘이다비하고 마법사들은 먼저 빠졌고… 나만 나가면 되겠군.’

태현은 만족스럽게 검을 집어넣었다.

최고급 검술 8 (67%).

많이 오르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엄청나게 오른 편이었다.

굶주린 혼돈의 랭커들을 슥삭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오르지도 않았을 터!

‘서두르지 않는다. 아무리 퀘스트가 재촉을 하더라도.’

태현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퀘스트가 아키서스 검법을 위해 굶주린 혼돈의 기사단장과 일대일로 붙으라고 말해도, 그런 삿된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묵묵히 굶주린 혼돈의 랭커들을 찔러 죽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실함이었다.

[카르바노그가 그건 아닌 거 같다고 말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암살자!

“?”

도망치려던 태현은 갑자기 달려오는 전령 NPC의 모습에 당황했다.

뭐지?

진짜 들켰나?

-주인님께서 널 보고자 하신다.

“그… 누굴 말하는 거지?”

-위대한 기사이자 대륙 최고의 기사, 기사단장 젝스칼 님! 내가 섬기는 명예로운 존재시지.

“…나 말고 다른 암살자를….”

-브투스가 죽었는데 누굴 데리고 가라는 거냐? 설마 너보다 지위가 낮은 자를 데리고 가라는 건가?

‘아차.’

태현은 굶주린 혼돈의 암살단 상황을 떠올렸다.

단장 자리 비어 있고 부단장은 태현이 죽였고….

더 높은 사람이 없구나!

[굶주린 혼돈의 기사들이 달려옵니다!]

-빨리! 시간이 없다. 주인님께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으시다.

‘…들킨 건 아니겠지 진짜.’

분위기를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지만, 사람인 이상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태현은 자신이 했던 일들을 꼽아보았다.

아군 암살 퀘스트 지시, 굶주린 혼돈의 신전 기사 공격, 이간질….

‘음. 도망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당당한 굶주린 혼돈의 암살자로서 이유를 들어야겠다! 이유를 말해라!”

-무례한 놈 같으니… 좋다.

[화술 스킬이 높습니다!]

[전령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합니다!]

-주인님께서는 널 기사로 삼고자 하신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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