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70화
그러나 태현의 속마음과 별개로 포르볼리오는 태현이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화술 스킬, 마법 스킬, 악명 등 포르볼리오가 좋아할 만한 요소는 다 갖고 있는 플레이어가 태현이었으니 저러는 것도 당연했다.
-내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었나?
“예… 뭐.”
태현은 괜히 포르볼리오를 자극하지 않기로 했다.
정신이 꽤나 불안정한 것 같아 보이는데 괜히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게 없었던 것이다.
‘정신 불안정한 대마법사만큼 위험한 놈도 없고 말이지.’
[굶주린 혼돈의 대마법사, 포르볼리오가 당신에게 가르침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마법 스킬이 오릅니다!]
[언령 마법의 파괴력이 오릅니다!]
[언령 마법의…]
[…]
파아앗!
“?”
태현은 놀랐다.
솔직히 포르볼리오가 무슨 개짓거리를 할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너무 쿨하게 스킬만 올려준 것이다.
어떤 귀찮은 퀘스트도 심부름도 없이 그냥 스킬만 올려주다니?
-됐다! 내 가르침은 여기까지다. 마법진을 잘 지키도록 해라.
“…잠깐. 잠깐만요.”
-?
떠나려는 포르볼리오의 옷자락을 태현이 급히 붙잡았다.
“제가 아둔해서 좀 더 많은 가르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면 됐지 뭘?
[화술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마법 스킬이 높습니다!]
[언령 스킬을 가지고…]
[악명이…]
[설득에 성공합니다!]
[포르볼리오의 인내심이 줄어듭니다. 계속 포르볼리오에게 부탁할 경우 포르볼리오가 폭발할 수도 있습니다!]
‘흠. 위험한데 뭐 어쩌겠어.’
이제 이런 경고 메시지 창 정도로는 태현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저런 메시지에 겁을 먹기에는 태현이 하고 있는 퀘스트들이 이미 너무 위험했다.
포르볼리오가 폭발하면 뭐….
폭발하는 거지!
옆에서 보고 있는 이다비만 조마조마할 뿐이었다.
‘진짜 저렇게까지 해야 해요?!’
이다비가 보기에 아무리 봐도 포르볼리오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눈깔도 약간 반쯤 뒤집힌 것 같은데….
떠나려는 걸 붙잡고 또 거기서 얻어내려고 하다니.
이다비도 꽤 악착같은 플레이어라고 자부하지만 태현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했다.
* * *
<축 브투스 사망!>
<브투스 죽었다는데??>
<브투스 죽었다는 게 진짜냐??>
<그 새끼는 진작 죽었어야 해. 미친놈 아님?! 원정대 첩자도 아니고 왜 자꾸 아군을 죽여대는데??>
브투스가 죽었다는 사실에 많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기쁨의 함성을 터뜨렸다.
암살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계속해서 굶주린 혼돈 진영을 뒤흔든 게 누구였던가.
레벨 높은 고위 NPC라서 참은 거였지 아니었다면 진작 플레이어들이 막사 찾아가서 레이드를 벌였을 것이다.
<이런 못된 놈들. 같은 굶주린 혼돈의 NPC가 죽었는데 그렇게 기뻐하다니. 너희들은 피도 눈물도 없냐?>
<브투스가 그래도 암살자들은 잘 챙겨주던 사람이었는데….>
<솔직히 전사 놈들 좀 재수 없지 않았냐?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암살자라고 무시만 하고.>
<이제 누가 퀘스트 내주냐?>
물론 암살자 플레이어들이나 도적 플레이어들은 브투스의 죽음에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마냥 기뻐하기에는 브투스가 암살단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있었던 것이다.
브투스가 성질 더럽고 지랄맞은 놈이라지만 강한 NPC가 없다면 그건 그거대로 불편한 법.
‘암살단 퀘스트 안 나오면 어떡하지?’
‘설마… 다른 NPC가 이어받겠지.’
‘누가 이어받지? 도살자 케톨른? 학살자 바빌렌?’
[퀘스트가 추가됩니다!]
‘!!’
‘다행이다! 안 망했구나!’
걱정하던 플레이어들은 퀘스트 창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암살단 쪽 퀘스트가 멈출까 봐 걱정했는데, 브투스의 인수인계가 제대로 된 모양이었다.
<브투스의 복수-굶주린 혼돈의 암살단 퀘스트>
진정한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은 설령 같은 편이라 하더라도 베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위대한 암살자, 브투스의 복수를 위해 모든 굶주린 혼돈의 암살자들은 검을 뽑아 들어라!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다른 하수인들을 베어 넘기고 자신의 강함을 증명해라.
브투스가 기뻐할 것이다!
보상:?
“….”
“…어… 괜찮나?”
“퀘스트니까….”
암살자 랭커들은 생각보다 훨씬 과격한 퀘스트 내용에 당황했다.
물론 브투스가 쓰러진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 안 그래도 곳곳에서 싸움 커져가고 있는데 과연 이런 식으로 불을 붙이는 게 맞는 걸까?
“무슨 나약한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암살자 맞냐!? 퀘스트 나왔으면 하는 거지!”
“안 그래도 재수 없던 놈 있었는데 잘됐다! 죽이러 가자!”
하지만 암살자 랭커들 중 머뭇거리는 사람은 소수였다.
기본적으로 암살자 직업을 하는 플레이어들은 남을 찌르고 PVP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
안 그래도 소란이 커지면서 생기는 기회에 행복해하고 있는데 이런 퀘스트까지 등을 떠밀어주니 더 참을 필요가 없었다.
“가자!”
“어차피 다른 새끼들은 겁 많아서 반격도 제대로 못 해! 이런 진영 내 PVP는 우리의 무대다!”
‘이제 진짜 슬슬 위험한 거 같은데… 괜찮나??’
몇몇 암살자 랭커들은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읽고 고민했지만….
결국 그들도 말하는 걸 포기했다.
퀘스트가 떴으니까!
‘에이. 퀘스트가 어련히 알아서 잘했겠지.’
‘생각이 있겠지??’
* * *
“암살 퀘스트를 추가해라. 아. 그리고 또 암살 퀘스트를 추가하고. 더 암살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
태현이 암살자 NPC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보내는 걸 이다비는 복잡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물론 이다비도 이런 퀘스트가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좋은 방법이었다.
지금 굶주린 혼돈 쪽 진영은 너무 거대해져서 플레이어들끼리의 싸움이 잦았고, 태현의 이런 퀘스트는 거기에 더 불을 붙이는 셈이었으니까.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퀘스트 너무 많이 내시는 거 아닌…?
‘암살자 플레이어들이 수상쩍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
“괜찮아, 이다비. 암살자 하는 놈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플레이어들 등 찌르는 거 좋아하는 놈들이라 저런 퀘스트 많이 나와도 그냥 못 이긴 척할 거야.”
“그… 그런가요?”
“그래. 내가 암살자 플레이어들 속마음은 아주 잘 알거든.”
판온에서 암살자 플레이어들과 가장 많이 싸워본 사람을 꼽으면 태현이 그 자리 가장 앞에 있을 것이다.
암살 퀘스트가 수십 개 나와도 ‘이거 이상한데 암살단에 무슨 일 생긴 거 아닌가?’보다는 ‘에잇 모르겠다 일단 죽이고 봐야지’ 할 놈들!
“그보다 마법사들은 오고 있어?”
“네. 믿을 만한 사람들만 불렀어요.”
굶주린 혼돈의 대마법진 방어에 참가하게 된 태현이었지만, 대마법진을 건드리는 건 쉽지 않았다.
굶주린 혼돈의 다른 하수인들도 협곡 곳곳에 배치되어서 감시하고 있는 데다가 무엇보다 대마법진 자체의 힘이 엄청났던 것이다.
[마법 스킬이 낮습니다!]
[함부로 건드릴 경우 역효과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으로 막대한 마력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마력이 풀려날 경우 주변이…]
[…]
[…]
정 안 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폭파를 시전해 보겠지만, 아직 시간이 남은 지금에는 여러 방법을 시도할 여유가 있었다.
이다비는 원정대에 소속된 마법사 랭커들 중 믿을 만한 사람들을 뽑아서 불렀다.
“저기 오고 있네요.”
이다비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마법사 랭커들이 투명화 마법에 각종 은신 스킬을 사용하고 조심스럽게 날아오고 있었다.
착지하기 위해 천천히 협곡 아래로 내려오는 마법사 랭커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들 왜 저러지?”
“그야… 태현님이 굶주린 혼돈의 암살단한테 퀘스트를 내리고 있어서 아닐까요…?”
* * *
화염술사 랭커 중에서도 가장 이름 높은 랭커 중 한 명인 크로포드는 다른 마법사 랭커들과 함께 조심스럽게 비행했다.
같이 가고 있는 랭커들의 이름도 쟁쟁했다.
한때는 에랑스 왕국에서 가장 커다란 마법사 길드를 이끌었고 스미스의 라이벌로 뽑혔던 랭커 도미닉.
길드 동맹 출신이었다가 미다스 길드의 주축이 된 랭커 리우쑹.
미다스 길드의 간판 랭커였다가 김태산의 길드로 옮긴 랭커 폴레 등등.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스미스에게 원한이 많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 김태현이 우릴 버리는 패로 쓰는 건 아니겠지.”
도미닉은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랑스 왕국에 있던 랭커들 중 굶주린 혼돈을 피해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다 원정대에 가입했다.
그러나 그게 꼭 태현을 완전히 믿는다는 건 아니었다.
도미닉처럼 최상위권 랭커들은 그렇게 쉽게 사람을 믿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태현이 어떤 사람인데!
크로포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도미닉. 네가 걱정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김태현을 믿을 근거가 있는 거군.”
“…아니. 없는데?”
“!??!”
크로포드의 대답에 도미닉은 경악했다.
아니, 이 새끼가?
“그걸 말이라고?”
“진정해라. 물론 김태현이 우리를 충분히 버릴 수 있는 놈이긴 한데 그러지는 않을 거다.”
“….”
“….”
“그냥 입을 다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호위로 따라온 앨콧이 속삭였다.
크로포드의 말에 마법사 랭커들 분위기만 더 싸늘해진 것이다.
“내가 김태현하고 친하진 않지만… 그, 김태현이 아군까지 속일 정도로 경우 없는 놈은 아니야.”
앨콧이 대신 변명에 나섰다.
길드 동맹에서도 이름 높은 랭커인 앨콧의 말에, 마법사 플레이어들은 살짝 누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하긴 김태현이 그런 놈은 아니지. 그런 놈이었다면 벌써 소문났겠지?”
“쑤닝 같은 놈하고는 다른 놈이잖아.”
“길드 동맹의 앨콧이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믿을 만하겠지.”
“맞아. 앨콧 저놈은 근데 김태현한테 그렇게 당했는데도 저렇게 말을 해주는군. 대단한 놈인데?”
“….”
괜히 쓸데없는 말로 상처를 주는 마법사 랭커들의 모습에 앨콧은 속으로 욕했다.
‘귓속말로 대화할 것이지….’
“이쪽이다.”
마법사 랭커들은 조심조심 날아갔다.
랭커들에게 비행이 어려운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밑의 풍경이 너무 무서웠다.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들어선 굶주린 혼돈의 군단들.
영상으로 봐서 규모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니 그 압박감이 상상을 초월했다.
“저기다!”
“김… 김태현이잖아? 진짜 먼저 와 있었어?”
“다행이다.”
마법사 랭커들은 놀라고 안심했다.
태현이 먼저 와 있다면 최소한 거짓말은 아니었으니까.
…어떻게 먼저 들어온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들 태현이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잠입에는 도가 튼 인물!
“암… 암살자들이다!”
“뭐?!”
“김태현 옆에 암살자들 있잖아!”
마법사 랭커들은 숨을 멈췄다.
태현 곁에 굶주린 혼돈의 암살자 NPC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들켰나?
크로포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들켰다면 문제가 심각했다.
저놈들이야 해치울 수 있겠지만 금세 경보가 울려서 주변에 있던 전력들이 전부…!
‘도망쳐야 하나? 같이 참가해야 하나? 김태현… 너 같은 녀석이 왜 그런 실수를…?!’
앨콧도 표정이 심각해졌다.
“도… 도우러 가자.”
“…진, 진짜? 미쳤냐?”
“시끄러워. 도와야 한… 어.”
앨콧의 결정에 크로포드가 경악하는 사이, 암살자 NPC들이 고개를 숙이더니 물러갔다.
그 모습이 의미하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김태현이 암살단 내에서 자리 하나를 꿰찬 게 분명했다.
“뭔… 뭔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딴 거야???”
경악한 마법사 랭커들의 목소리만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