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67화
-무슨 일이지. 폴라볼.
[굶주린 혼돈의 암살자, 브투스를 발견합니다.]
[온갖 강력한 암살자들이 모여 있는 굶주린 혼돈의 암살단의 부단장을 맡고 있는 브투스는 피에 굶주린 냉혹한 도살자입니다!]
‘저놈이 굶주린 혼돈 쪽 암살자 플레이어들 관리하는 네임드 NPC인가.’
태현은 브투스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빠르게 견적을 파악했다.
딱 봐도 ‘나는 암살자요’라고 말하는 듯한 겉모습을 하고 있었다.
검은색 장비들에 허리춤에 찬 날카로운 단검들.
각종 장신구들은 암살자 특화 옵션이 걸려 있는지 요사스러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새로운 암살자를 소개해드리러 왔습니다.”
팟!
브투스는 들고 있던 표창을 집어 던졌다.
태현은 들켰나 싶어서 당황했지만, 날아든 표창은 태현이 아니라 폴라볼한테 꽂혔다.
“크흑…!”
[브투스의 표창이 당신에게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HP가 빠르게 줄어듭니다!]
[……]
[……]
-건방지군.
“죄, 죄송합니다.”
‘아니 뭐 이런 미개한 곳이 있냐?’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아키서스 교단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새로 신참 하나 데려왔다고 몸에 표창 꽂고 시작하다니.
굶주린 혼돈 쪽이 다 규칙이 엄격하고 가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암살자들은 그 정도가 좀 많이 심했다.
폴라볼은 포션을 꺼내서 연신 빨아댔다. 표창이 상당히 아픈 모양이었다.
-좋다. 성의를 봐서 한 번 살펴보도록 하지.
‘괜히 왔나….’
태현은 폴라볼 말고 다른 랭커들에게 부탁할 거 그랬나 싶었다.
암살자 말고 도적 쪽이 차라리 나았을지도….
-풋내기. 네놈의 능력을 한 번 시험해 보도록 하지.
<첫 암살-굶주린 혼돈의 암살단 퀘스트>
대륙에서도 가장 잔혹하고 냉정한 암살자들만 들어올 수 있는 굶주린 혼돈의 암살단.
그 암살단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부단장 브투스는 당신의 능력을 시험하려고 한다.
지금부터 브투스가 지목한 상대를 암살하라!
(굶주린 혼돈의 백인대장 켈단: 0/1)
보상: ?, ???
“?”
태현은 퀘스트 창을 받고 당황스러워했다.
뭐지?
[카르바노그가 진짜 정체 들킨 거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여기서는 같은 굶주린 혼돈 세력을 죽일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해야 하는 건가?’
같은 굶주린 혼돈의 NPC를 죽이라니.
아무리 암살자 퀘스트라도 뭔가 이상했다.
-백인대장 켈단 놈은 저번에 건방지게 입을 지껄였다. 자기가 이끄는 전사들이 암살자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하더군.
“…그게 전부입니까?”
-그래. 그게 전부지. 더 할 말이라도 있나?
“아닙니다.”
태현을 떠보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라 정말 죽이고 싶어서 낸 퀘스트가 분명했다.
‘굶주린 혼돈 놈들 진짜 막 사는군!’
폴라볼이 태현에게 조언하듯이 말했다.
“물론 같은 굶주린 혼돈 NPC를 암살하는 게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암살자 퀘스트를 계속 깨다 보면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거다. 스미스.”
“그… 렇군.”
태현은 표정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물론 그런다고 암살자 놈들이 안 이상해 보이는 건 아니었다.
‘이 자식들, 이렇게 조직을 굴리는데 돌아간다는 게 더 이상하군.’
* * *
“같은 굶주린 혼돈 NPC를 암살하라고요?”
“그래. 이상하지?”
“이상한데 나쁘지 않네요? 원정대 NPC 암살보단 낫잖아요.”
“그건 그렇긴 해.”
돌아온 태현은 이다비와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굶주린 혼돈의 암살자들이 생각보다 좀 많이 이상한 걸 제외한다면, 생각보다 잠입은 순조로웠다.
이대로라면 굶주린 혼돈 쪽에서 빠르게 공적치 포인트를 쌓고 약점을 파악한 다음 이탈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슬슬 가볼까.”
“같이 가요. 아무래도 혼자 보내기는 좀….”
이다비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같은 굶주린 혼돈을 암살하는 일인 만큼 태현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걸리면 아마 암살자들 성격상….
-네가 알아서 했어야지 왜 잡혀놓고 나를 부르지?
…같은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태현은 걸리면 더 위험하지 않은가!
[굶주린 혼돈의 백인대장, 켈단을 발견합니다!]
[지금 백인대장 중 가장 뛰어난 업적을 세우고 있는 켈단은 모두가 선망하며 질투하는 대상입니다.]
[켈단의 부하들을 조심하십시오! 최근 세운 업적들로 인해 굶주린 혼돈의 총애를 받고 있습니다!]
[……]
‘음. 만만찮겠는데.’
지나가는 켈단과 친위대를 발견한 태현은 눈섭을 찌푸렸다.
백인대장 정도라고 해서 쉽게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꽤나 강해 보였던 것이다.
‘부하들 떨어뜨려놓고 달려들어서 붙으면 어떻게든 잡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태현도 최근 엄청나게 강해진 상태였다.
아키서스이 화신 직업 퀘스트는 물론이고 각종 전설 퀘스트까지.
틈만 보이면 쓰러뜨릴 수 있다!
“제가 백인대장의 부하들을 떨어뜨려볼까요?”
“할 수 있겠어?”
“보고 계세요.”
이다비는 자신만 믿으라는 듯이 가슴을 탕탕 치고 앞으로 움직였다.
만약 케인이었다면 매우 불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겠지만, 태현은 그러지 않았다.
이다비는 믿을 수 있었으니까.
화르륵!
이다비는 주문서 몇 개를 찢어서 화염 마법을 터뜨린 다음 외쳤다.
“암살자들이 켈단을 암살하러 왔다! 암살자들이 켈단을 질투해서 암살하러 왔다!”
-뭐라고!?
-감히?!
[화술 스킬이 높습니다!]
[주문서로 인해 주변이 혼란스럽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속임수에 성공합니다!]
[……]
태현만큼은 아니지만 이다비도 판온에서 나름 손꼽힐 정도로 화술 스킬을 높게 키운 랭커였다.
주문서까지 조합해서 사기를 치자 켈단 휘하의 친위대원들은 곧바로 반응했다.
-암살자들이 감히!
-이럴 줄 알았다. 음침하게 숨어서 등 뒤나 노리는 놈들! 배신하러 왔구나!
“네???”
“아, 아니. 우린 아닌데?! 우린 아닙니다!”
애꿎게 길 지나가던 암살자 플레이어들한테 불똥이 튀었다.
눈이 돌아간 켈단 친위대원들은 무기를 휘두르며 암살자 플레이어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했다.
[치명타가 터집니다!]
[켈단 친위대원의 검이 당신에게 깊은 피해를…]
[장비의 내구도가 크게 감소…]
“크아악! 이래도 되는 겁니까!”
“아무리 우리가 암살자라지만…!”
-닥쳐라. 배신자 놈들. 감히 켈단 님을 공격하려 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난장판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 태현은 천천히 켈단에게 접근했다.
각종 버프 스킬들이 빠르게 시전되고, 태현의 손에서 검광이 번뜩였다.
-아키서스의 네 번째 공격!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행운 스탯이 소모됩니다. 적에게 새로운 약점이 만들어집니다!]
[……]
-커헉!
켈단은 갑작스럽게 등을 찌르는 기습에 기겁해서 돌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태현은 절대 틈을 주지 않았다.
-끝내버려라!
마검 안에 든 기계공학자들이 말하지 않아도 태현은 단숨에 끝날 생각이었다.
<고대 신전의 가호-검술 스킬 퀘스트>
고대 신전이 내린 가호가 당신에게 검술 스킬의 길을….
‘지금은 아니야!’
태현의 검술 스킬을 성장시켜주는 고대 신전의 가호 퀘스트창.
그 창은 옆으로 치워버리고, 태현은 공격에 집중했다.
최고급 8을 찍은 검술 스킬이 검끝에서 폭주하듯이 뿜어져 나왔다.
-아키서스의 연격의 검, 치명타 폭발, 아키서스 폭발의 검!
-무슨, 이런, 크악!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아키서스 연격의 검으로 인해 추가 효과가 발동합니다! 연속 공격…]
[아키서스 폭발의 검으로 인해 폭발이…]
[상대의 힘이 빠르게…]
[……]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나름 굶주린 혼돈 NPC들 중에서 이름을 날리고 곧 신분도 상승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켈단이었지만, 너무나도 허무하게 쓰러졌다.
태현에게 한 번 제대로 기습을 당하자 반격도 하지 못하고 공격만 두들겨 맞다가 쓰러진 것이다.
안 그래도 폭딜 하나만큼은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던 태현이었지만, 최근 각종 성장으로 인해 더욱더 살벌해진 폭딜 능력이 만들어졌다.
[카르바노그가 보는 자신이 더 무섭다고 놀라워합니다.]
“튀자!”
목표를 단숨에 처리한 태현은 이다비와 함께 후다닥 달아났다.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한 켈단의 친위대원들은 애꿎은 주변 암살자 플레이어들만 때리고 있었다.
태현과 같이 도망치던 이다비는 그 모습에 문득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잡고 가면 진짜로 저 암살자 플레이어들 책임이 되는 거 아닌가?’
아마 누명을 쓸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다.
하지만 이다비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원정대 소속이 아니었으니까!
억울하면 굶주린 혼돈을 나오면 되는 일이었다.
* * *
-제법이군.
[브투스가 당신을 인정합니다.]
[암살단 내에서 평가가 조금 오릅니다.]
[……]
‘너무 짠데?’
태현은 퀘스트 보상에 실망했다.
공적치 포인트나 평가가 너무 짜게 올랐던 것이다.
물론 퀘스트 한 번에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너무….
‘진짜 괜히 암살자 놈들 골랐나? 도적 쪽이 차라리 나았을지도.’
암살자 놈들의 퀘스트가 살벌하고 어려운데 보상까지 이러면 고를 이유가 없었다.
그런 태현의 속마음도 모르고 브투스가 입을 열었다.
-켈단 놈이 쓰러진 덕분에 무식한 전사 놈들도 뭐가 진정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놈들이 수군거리고 있는 걸 들었나?
“예. 듣긴 했습니다만….”
당연히 백주대낮에 같은 편 암살자가 자기네들 백인대장을 찌르고 사라졌으니 수군거리지 않을 리 없었다.
아마 지금쯤 ‘암살자 그 새끼들이 미쳤나?’ ‘죽여 버리고 말겠다’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을까?
-그것이 공포다. 우리 같은 암살자들만이 줄 수 있는 진정한 힘. 굶주린 혼돈께서 내려주신 선물이지.
‘이놈들 아직까지 안 망하고 같이 굴러가는 게 정말 신기하군.’
-그 공포를 놈들에게 더 선사해라.
“브투스 님.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브투스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태현은 긴장했다. 저번에 폴라볼이 표창 맞았던 게 떠올랐던 것이다.
‘버틸 수 있겠지?’
[화술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악명이 매우 높습니다!]
[……]
[……]
[브투스가 당신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
“?!”
천막에 먼저 와 있던 폴라볼은 브투스의 반응에 당황했다.
당연히 표창 던지고 시작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브투스가 그냥 넘어간 것이다.
‘대단하군… 스미스 놈! 이번 퀘스트를 잘 깼나?!’
그런 게 아니라면 저 까다로운 브투스가 공격하지 않은 게 설명되지 않았다.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뭐냐?
“지금 다시 공격하면 놈들이 의심하지 않을까요? 지금도 의심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의심하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
-그 의심이 곧 두려움으로 이어질 테니까! 놈들은 우리 암살자들을 더더욱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폴라볼도 좀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그 전에 암살자 플레이어들이 한 수십은 뒤질 것 같은데.’
두려움도 죽을 만큼 죽어야 생기는 거지, 초반에 한둘 죽는 걸로는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열 받아서 맞받아치려고 할 가능성이 높았다.
굶주린 혼돈의 전사들이 그렇게 나약한 겁쟁이들도 아니고….
싸우는 과정에서 암살자 플레이어들만 죽어나는 게 아닐지, 폴라볼은 진지하게 걱정이 됐다.
“…좋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모두 다 죽여 버리겠습니다!”
“!?!?”
폴라볼은 당황했다.
‘스미스, 무슨 생각이냐! 위험하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