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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766화 (1,765/1,826)

§ 나는 될놈이다 1766화

물론 검술 스킬이 최고급 8을 찍은 만큼 난이도가 만만치 않다는 건 태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정도가 있지, 굶주린 혼돈의 네임드와 일대일로 겨루라는 건 상상을 초월하는 퀘스트였다.

‘전설 검술 스킬 찍어도 만만찮을 상대 같은데.’

지금 자신의 이름을 갖고 있는 굶주린 혼돈의 군단장들은 하나같이 괴물 같은 강함을 자랑했다.

저번에 군단장 하나를 잡기 위해 태현이 어떤 방법들을 써야 했던가.

그것도 그나마 상대가 저돌적이고 앞뒤 가리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에 비해 기사단장 젝스칼은 수많은 부하들을 데리고 굶주린 혼돈의 군단 한가운데에 있었다.

젝스칼을 상대하기 위해 들어가는 순간 다른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한테 포위공격당할 확률이 100%였다.

“변장하고 들어가 보실래요?”

태현에게 퀘스트 설명을 들은 이다비가 제안했다.

사실, 태현 정도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굶주린 혼돈 세력에 잠입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수많은 세력에 잠입하지 않았던가.

물론 젝스칼을 직접 공격하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겠지만….

‘나쁜 생각은 아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꼭 젝스칼과 일대일로 뜨는 퀘스트뿐만 아니더라도, 지금 굶주린 혼돈 쪽을 최대한 흔들어놔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 어마어마한 물량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해야겠어.”

“오랜만에 같이 움직이겠네요.”

이다비가 살짝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팀 KL 선수들은 각자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모이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오스턴 왕국은 넓고 원정대가 해야 할 일은 수도 없이 많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굳이 알리지 말고.”

“당연하죠.”

태현은 적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태현이 굶주린 혼돈 세력에 잠입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태현을 죽이기 위해 수많은 적들이 줄을 서서 찾아올 것이다.

“굶주린 혼돈 세력 상황을 좀 더 확실히 파악해두고 싶은데, 지금 정보가 어느 정도로 모였어?”

“아무래도 워낙 규모가 큰 데다가 플레이어들도 다들 흩어져 있어서….”

이다비는 말끝을 흐렸다.

굶주린 혼돈의 조직도는 상당히 복잡한 편이었다.

일단 굶주린 혼돈이 친절한 상사가 아닌 만큼, 가입한 플레이어들한테도 전체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었다.

스미스나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 정도 되는 지위라면 어느 정도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쪽에서는 정보가 잘 새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 이다비는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일반 플레이어들의 영상을 찾아보거나 매수해서 정보를 긁어모으고 있었다.

왕국 어디에 군단이 있고, 또 어디서 지원이 오고, 어떤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는가?

하지만 그래도 완벽하진 않았다.

특히 지금처럼 어마어마한 규모로 진행되는 공격은 일개 플레이어들이 그 전체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참. 이번에 새로 붙잡은 랭커들이 꽤 지위가 높아 보이던데요.”

“배신할 것 같아?”

“아니요. 굶주린 혼돈 쪽에 워낙 쌓은 게 많아서 배신할 것 같지는 않아요. 게다가 스미스 선수랑 친한 랭커도 있고요.”

“으음.”

태현은 고민했다.

굶주린 혼돈 세력 쪽에서 갈아타는 랭커들이 의외로 많아서 착각하기 쉬웠지만, 사실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많이 깬 랭커들은 쉽게 배신하지 않았다.

이미 굶주린 혼돈의 승리에 베팅을 세게 한 만큼 어지간해서는 신앙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잃어버릴 것들을 생각해 보면 차라리 로그아웃을 당하는 게 나을 정도니 당연했다.

“한 번 속여 볼까.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 * *

“하늘도시는 반칙이지…!”

감옥에 갇힌 굶주린 혼돈 랭커들은 아직도 투덜거리고 있었다.

물론 따지고 보면 차원의 문을 열고 무한에 가까운 군대를 쏟아붓고 있는 굶주린 혼돈 자체가 반칙 같은 존재였지만,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폴라볼. 어떻게든 탈출할 방법이 없겠냐?”

“기다려보라니까.”

[자물쇠 해제에 실패합니다!]

[고대 제국의 감옥이 당신의 시도를 눈치채고 페널티를 부여합니다!]

파지지지직!

“크아아아악!”

감옥 창살을 타고 흐르는 전류에 폴라볼은 뒤로 나뒹굴었다.

“고대 제국 미친놈들이 뭘 만드는 거야!?”

고대 제국의 유적들이 대륙 곳곳에서 부활했다고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그 여파가 이렇게 닥쳐올 줄이야.

“제작 직업 랭커들이 다 김태현한테 붙었다는데 이런 걸 만들고 있었을 줄이야….”

“하여간 제작 직업 놈들은 뭐가 나은지도 모른다니까.”

암살자나 도적 랭커들은 투덜거리며 제작 직업 랭커들을 욕했다.

굶주린 혼돈 쪽에 가입한 전투 직업 랭커들과 달리, 제작 직업 랭커들은 생각보다 그 숫자가 적었다.

아무래도 굶주린 혼돈 쪽에서 얻을 이익이 적은 데다가 태현 쪽 원정대에서 하도 언플을 화려하게 한 탓에 거기에 넘어간 것이다.

굶주린 혼돈 랭커들이 보기에는 아주 멍청한 선택이었다.

“한 번 죽으면 그만이지 그냥.”

“아… 난 사망 페널티 심한데. 젠장.”

“이렇게 장비를 잃어버릴 수는 없어. 탈출할 방법을 찾아봐!”

철컥-

“!”

감옥 문이 열리는 소리에 굶주린 혼돈 랭커들은 재빨리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걸 간수 NPC가 눈치채면 안 되었으니까.

“뭐야. 새로 온 놈인가?”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놈 맞지? 못 본 얼굴인데. 랭커는 아닌가 보군.”

처음 보는 플레이어가 옆쪽 방에 들어가는 걸 본 굶주린 혼돈 랭커들은 수군거렸다.

요즘 같은 상황에 굳이 감옥에 들어갈 플레이어들은 보통 굶주린 혼돈 소속밖에 없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 걸 보니 랭커는 아니었고….

“어이. 이름이 어떻게 되지?”

“스미스.”

“…그것참 재수 없는 이름… 아니, 그럴 수 있지. 너도 굶주린 혼돈을 믿다가 끌려왔냐?”

“그래.”

“쯧쯧. 레벨도 낮은데 불쌍하군. 레벨이 몇이지? 공적치 포인트는 얼마나 쌓았고?”

“내가 불쌍하다고?”

“뭐야. 그 말이 기분 나빴나?”

굶주린 혼돈 랭커들은 새로 들어온 플레이어의 반응에 웃었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게 됐군.”

“맞아. 처음 보는 얼굴이어서 그랬다고. 랭커는 아닐 거 아니야?”

낄낄대며 웃던 랭커들은 새로 들어온 사람의 말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불쌍한 건 여기 계속 갇혀 있을 너희들이지. 나는 곧 나갈 테니까.”

“…….”

“…뭐? 어떻게?”

“방법이 있다. 내 친구가 구하러 오기로 했거든.”

“!!!”

굶주린 혼돈 랭커들은 깜짝 놀랐다.

이 새로 만들어진 하늘도시의 지하감옥.

정보가 퍼진 것이 워낙 없는 만큼 굶주린 혼돈의 다른 플레이어들도 쉽게 구하러 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구하러 올 친구가 있다니.

“그게 정말인가? 어떻게?”

“못 믿겠는데….”

“믿기 싫으면 믿지 마라. 어차피 나만 나갈 생각이니까.”

태현의 냉정한 대답에 굶주린 혼돈 랭커들은 발끈했다.

“이봐! 스미스!!”

“이러면 안 되지! 같은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동지잖아!”

“레벨 낮다고 비웃은 건 사과할게! 같이 공유하자고! 네가 탈출할 때 우리가 방해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둬!”

랭커들이 바닥과 창살을 두드리며 화를 내자, 태현은 못 이기는 척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탈출시켜주면 뭘 해줄 거지?”

“…!”

“뭘, 뭘 원하는데?”

“난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더 깨고 싶은데, 혹시 쓸 만한 NPC들을 알려줄 수 있나?”

태현의 말에 랭커들은 어렵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이지. 그 정도야.”

“다른 놈들이 공유하는 퀘스트는 믿지 마. 정말 쓸 만한 퀘스트는 나오지도 않으니까.”

“나는 지금 굶주린 혼돈의 암살단 대장 밑에서 소속된 상태라고. 나가기만 하면 특별히 알려줄 수 있지!”

“내가 누군지 알지? 내 이름을 걸고,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

굶주린 혼돈 랭커들은 나름 필사적으로 어필했다.

각자 제법 이름이 있는 랭커들인 만큼 이런 걸로 사기를 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굶주린 혼돈 NPC들 소개해 주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이겠지?”

“믿어라. 스미스!”

“같은 굶주린 혼돈 세력에서 거짓말을 하고 다니면 우리의 평판이 어떻게 되겠냐? 우린 절대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보다 탈출 방법이나 말해봐라. 정말 가능한 게 맞긴 한가? 거짓말이라면….”

쾅!!!

그 순간 감옥의 문이 부서지더니 플레이어들이 들어왔다.

“밖으로!! 빨리 나오세요!”

태현은 열린 문을 향해 나가려고 했다.

굶주린 혼돈 랭커들이 비명을 질렀다.

“문 열어주고 가지 못해!?”

“이 자식! 믿어달라니까! 우리가 고작 이런 걸로 거짓말할 것 같아?! 여기 폴라볼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모르는 놈이! 재칼이나 앨콧에 버금가는 암살자 랭커라고!”

철컥-

태현은 랭커들이 갇힌 문을 열어주었다.

랭커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고맙다! 스미스. 후회하지 않을 거다.”

“당연히 열어줄 줄 알고 있었지!”

“쉿. 조용히 해라. 들키면 공격받을 테니까.”

태현은 굶주린 혼돈의 랭커들에게 조용하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실제로 조용히 해야 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있으니까!’

만약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정말 진심을 다해서 공격을 가해올 가능성이 높았다.

태현은 이다비와 시선을 교환했다.

‘이대로 굶주린 혼돈의 진영까지 간다.’

먼저 들어온 죄수는 태현이, 구하러 들어온 구출대 역할은 이다비와 파워 워리어 랭커들이.

이대로 굶주린 혼돈 랭커들을 데리고 진영까지 곧바로 향할 생각이었다.

“이쪽으로! 이쪽으로 나가면 바로 하늘도시에서 뛰어내려서 지상으로 내려갈 수 있다.”

“과, 과연….”

[하늘도시의 경보장치가…]

[탈출자들을 확인합니다!]

[……]

[……]

“으악!! 발각됐다!”

“뛰어! 이렇게 된 이상 달려서 따돌려야 한다!”

* * *

[굶주린 혼돈의 진영에 도착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추가로 상승…]

[……]

[……]

“헉… 헉헉.”

굶주린 혼돈의 랭커들은 안전지대에 도착하자마자 자신들도 모르게 뻗어버렸다.

그만큼 목숨을 건 치열한 도주였다.

도중에 건드린 경보장치 때문에 온갖 공격이 날아오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나자 원정대 플레이어들까지 나와서 각종 원거리 공격을 날려댔다.

근처에 굶주린 혼돈의 군세가 있지 않았다면, 그리고 탈출로를 확실히 꿰고 있는 스미스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탈출이었다.

“유명하지 않다고 무시한 걸 사과하지. 스미스. 너 정도면 충분히 랭커겠어.”

“맞아. 꼭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약한 건 아니니까.”

암살자 랭커들 몇몇이 진심 담은 사과를 스미스, 아니 태현에게 건넸다.

태현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그런 태도가 다른 랭커들에게 더 신뢰를 준 모양이었다.

탈출할 때도 그렇고 원래 저런 무뚝뚝한 플레이어들은 묵직한 플레이로 안심과 신뢰를 주지 않던가.

“날 따라와라. 스미스.”

“폴라볼!”

“내가 먼저 NPC들을 소개시켜주지.”

폴라볼이 나서자 다른 암살자 랭커들은 감탄했다.

폴라볼이라면 그들보다 더 많은 NPC들을 알고 있을 게 분명했던 것이다.

굶주린 혼돈 세력 내에서 손꼽히는 암살자 랭커인 만큼 더더욱!

“운이 좋군. 스미스 녀석.”

“그러게 말이야. 폴라볼이 직접 소개를 시켜준다니.”

“저 녀석이 보여준 능력 때문이겠지. 정말 잘 도망치던데.”

암살자 랭커들은 태현을 높게 평가했다.

온갖 포격과 원거리 공격이 날아오는 와중에도 멈추거나 흔들리지 않고 길을 뚫어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유명한 랭커는 아니었지만, 분명 레벨은 그에 못지않을 게 분명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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