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64화
“하나 더 만들었다!”
“손에 익긴 익는구나!”
“자. 그럼 다음 걸 만들자.”
“…….”
태현이 가능한 재료를 탈탈 털어서 자율골렘을 만들고 있는 동안, 국경 전선의 상황은 요동치고 있었다.
[고대 제국의 자율골렘들이 요새 방어를 강화합니다.]
[……]
[……]
어디선가 나타난 자율골렘들이 굶주린 혼돈의 병사를 밀어내고 요새를 수리하더니 방어를 강화하자, 굶주린 혼돈 군단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고대 제국의 유산이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 저런 걸 남겨놓았단 말인가?
-저 골렘부터 파괴해라! 가증스러운 고대 제국의 유산을 없애버려라!
“그러면 그렇지….”
“쉽게 굴러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수군거렸다.
역시 이런 원정 퀘스트는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중반에 참가를 했어야 했어.’
‘초반은 너무 힘들다니까.’
원정 퀘스트 초반은 적이 숨겨놨던 전력들이 튀어나오는 만큼 재수 없을 경우 화살받이가 되는 수가 생겼다.
지금 처음에 좋다고 요새 안에 달려간 플레이어들이 다 어떻게 됐는가.
갑자기 나타난 자율골렘 놈들한테 박살이 났다.
“조금 더 눈치를 볼까?”
“뒤로 살짝 빠지자고.”
<돌격!-굶주린 혼돈 군단 퀘스트>
고대 제국의 유산이 나타났지만, 굶주린 혼돈의 충실한 전사들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돌격해 요새를 탈환하십시오!
후퇴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보상: ?, ???
“…….”
“…….”
자꾸 잊을 때가 있었지만 굶주린 혼돈은 매우 사악하고 포악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을 너그럽게 풀어주는 그런 세력이 아닌 것이다.
-돌격하라!
-놈들의 잔수작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숫자로 밀어붙여라. 고대 제국의 유산은 곧 파괴될 것이다!
[굶주린 혼돈의 군단이 공격을 재개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나팔 소리가 전체 세력에 추가 보너스를…]
[굶주린 혼돈의 군악대가 병사들의 사기를…]
[……]
[……]
천지가 개벽하는 소리와 함께, 후퇴한 굶주린 혼돈의 군단 병사들이 사방에서 재집결을 개시했다.
그렇게 죽어 나갔는데도 구멍이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규모.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도 순간 상황을 잊고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였다.
‘진짜 대단하긴 대단하다!’
‘판온에서 저 정도 규모 군대가 이제까지 있었나?’
이런 현장에 있다는 감동과, 자신이 이런 세력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그런 걸 좀 길게 느끼기도 전에 바로 명령이 내려왔다.
-모험가들을 날려보내라!
“?”
“네?”
플레이어들은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아… 아아! 비행 괴수 위에 타라고!”
“하늘 공격에 참가하라는 거구나!”
판온의 공성전은 입체적이었다.
땅 위에서는 성벽과 성문과 지하 땅굴을 두고 다퉈도, 하늘에서는 괴수와 공성병기들이 맞붙는 것이다.
굶주린 혼돈의 괴수에 타고 하늘을 공격하라는 거라면 긴장되긴 했지만 한 번 해볼 만했다.
-빨리 날려보내라!
[굶주린 혼돈의 종말 투석기가 작동합니다!]
[올라타십시오!]
“…….”
“…미… 미친놈들! 미친놈들!!”
“너희들이 기계공학 대장장이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그러나 굶주린 혼돈의 괴수 같은 건 플레이어들한테 허락되지 않았다.
투석기 위!
거기에 플레이어들을 올려서 날려 보내려는 수작에, 사람들은 기겁해서 울부짖었다.
-걱정하지 마라. 굶주린 혼돈의 힘이 너희를 보호할 테니, 충돌하는 것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자! 성벽 위를 교란해라!
“무슨 개소리야!”
물론 굶주린 혼돈의 힘이 보호를 해준다면 충돌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성벽 위에 혼자 떨어지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원정대 플레이어들이 ‘와 저놈 잡아라’ 하면서 달려들 것….
슈우우우욱!
[종말 투석기가 발사됩니다!]
“진… 진짜 쐈어 미친놈들!”
-다음 모험가를 올려보내라! 공격은 멈춰서는 안 된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고대 제국의 마법 포탑이 가동합니다!]
[격추됩니다!]
“???”
“뭐야?!”
요새 밖에, 원래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새로 생겨난 길쭉한 포탑들.
고대 제국의 부활로 인해 생겨난 유적 중 하나였다.
안 그래도 요새들 때문에 환장하기 직전이었는데 저런 유적지들까지 상대해야 하니 난이도가 몇 배로 뛰었다.
-각도를 포탑으로 돌려라! 포탑부터 파괴한다!
굶주린 혼돈의 군단은 조금도 꺾이지 않았지만 플레이어들은 벌써부터 지치기 시작했다.
…괜히 참가했나???
‘원정대 참가보다 사망 확률이 더 높은 거 같은데???’
* * *
“김태현 놈이 결국 고대 제국 후계자 타이틀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잖아.”
“저번에 그 고대 제국 죄수 놈들이 나타났던 건 어떻게 된 거지? 스미스한테도 찾아왔었던 것 같은데.”
“솔직히 고대 제국 후계자 시스템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몰라도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스미스한테 이어지진 않을 것 같….”
“쉿. 저놈들 화낸다고.”
굶주린 혼돈 원정대 소속 암살자 랭커들과, 스미스 친위대 랭커들은 오스턴 왕국 아레네 시로 향하고 있었다.
전쟁이 시작된 이상 그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정면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싸움이 있다면 음지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싸움도 있는 법.
비교적 관심은 덜 받아도, 랭커들은 모두 다 이런 싸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아레네 시로 들어가서 제작 작업들을 최대한 마비시켜라!
암살자, 도적 등 기동성 좋은 딜러 직업을 가진 랭커들은 물론이고 추가적으로 파괴 스킬을 가진 스미스 친위대 랭커들까지.
이들은 지금 오스턴 왕국의 아레네 시를 찌를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굶주린 혼돈 쪽에서도 그렇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오스턴 왕국은 잿더미나 마찬가지다. 특히 아레네 시는 쉽게 회복하지 못할 터.
-차라리 아탈리 왕국이나 다른 왕국을 더 조심해야 해. 놈들이 움직이는 기계성을 굴리고 있다는데, 그걸 잡아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오스턴 왕국의 복구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대륙 전체에 흩어져 있던 플레이어들이 오스턴 왕국으로 모인 데다가 각종 NPC 종족들까지 추가로 모인 것이다.
특히 수도인 아레네 시의 회복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판온 최대의 대장간!
-화염의 힘으로 새로 제작 가능한….
여러 대장장이 랭커들이 아레네 시에서 제작하는 걸 올리기 시작하자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도 슬슬 당황스러웠다.
저거 막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실제로 지금 국경지대에서 고대 제국의 유산이 다시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으니, 과한 걱정이 아니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김태현 놈한테 뭘 만들 시간을 주면 안 됐어.”
“맞는 말이야. 그래서 이덴. 계획은 있겠지?”
스미스 친위대 랭커들 중에서 손꼽히는 강자인 이덴.
스미스한테 광적인 충성심을 보내는 데다가 못지않게 레벨이 높은 전사 랭커였다.
당연히 이번 기습의 지휘를 맡게 되었지만….
‘전사는 좀 그런데.’
‘둔한 놈들을 너무 많이 데리고 온 거 아니야?’
굶주린 혼돈에 소속된 랭커들은 좀 삐딱한 생각으로 이덴을 쳐다보았다.
물론 맞붙으면 이덴이 그들을 이길 것이다.
아무래도 근접 딜러 vs 근접 탱커의 싸움은 근접 탱커가 더 유리한 편이었으니까.
아무리 근접 딜러가 미친놈처럼 데미지를 넣어도 탱커가 버티다가 상대 스킬 다 떨어질 때쯤 반격 시작하면 딜러는 도망밖에 답이 없었다.
그래서 딜러가 탱커를 이기려면 반 수 정도는 앞서줘야 했지만….
…암살자나 도적 같은 민첩한 근접 딜러들에게는 그걸 상회하는 장점이 있었다.
기동성!
느려터진 전사들이나 기사들은 내버려 두고 자기들 멋대로 이곳저곳 누비며 상황을 능동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다.
암살자 랭커, 폴라볼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지휘를 맡았어야 했다.’
폴라볼도 꽤 유명한 암살자 랭커였다.
앨콧이나 재칼, 혹은 최근에 유명해진 구오청 못지않게 암살자 랭커들 사이에서는 알아주는 인물.
…이었지만 일반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폴라볼의 이름을 몰랐다.
그런 만큼 폴라볼은 욕심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이름을 알리고 싶다!
이번 수많은 굶주린 혼돈 퀘스트에서 유명해진 놈들이 얼마나 많던가.
심지어 베이징 파이터즈의 퇴물 선수들도 다시 인기를 끌 정도였다.
“걱정 안 해도 된다. 이미 지도는 완벽하게 그려놨으니까.”
“과연… 그런데 김태현하고 꼭 싸워야 하나?”
“김태현하고 꼭 싸울 필요는 없잖아? 제작 직업만 찌르고 가자.”
암살자 랭커들은 아부하듯이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여기 랭커들 중 진지하게 김태현하고 1:1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전에 굶주린 혼돈 가입했을 때는 ‘어? 나 좀 강해진 것 같은데?? 이 정도면 김태현 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고 착각하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정말 미친 생각이었다.
그들이 강해지는 만큼 김태현도 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스미스와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을 도륙하던 장면과 왕국 서부를 불태워버리던 장면은 모두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역시 암살자들은 암살자답게 살아야 했다.
약한 놈만 노린다!
‘제작 직업만 죽이고 가면 그만이지.’
‘건물들도 부수고.’
“당연히 김태현하고 싸울 생각 없다. 긴장할 거 없다.”
이덴도 그런 일행의 마음을 읽었는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랭커들은 안심했다.
다행이다!
“유명 제작 직업 랭커들과, 도시 내의 시설들. 이것 위주대로 파괴하면 아레네 시의 생산력은 확 줄어들 거다.”
“훌륭해. 훌륭해.”
“다 왔다. 들어가자고.”
저 멀리 아레네 시가 보였다.
최근에 잿더미가 되었다가 새로 지어져서 그렇지 유난히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처음부터 계획하고 지은 탓에 깔끔하게 각도가 잡힌 성벽은 모여 있는 신전들과 함께 신성한 분위기를 풍겨냈다.
성문 쪽으로는 새로 도착한 플레이어들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오고 가고 있었다.
암살자 랭커들의 표정이 흐뭇해졌다.
저렇게 숫자가 많을수록 도시 안에 들어가서 할 거 하고 나오기 좋았던 것이다.
“더 쉬워지겠군. 들어가자.”
[오스턴 왕국의 아레네 시가 하늘도시로 개조가 완료됩니다.]
[아레네 시가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쿠우우우우우우-
굉음과 함께, 성벽이 진동하더니 갑자기 천천히 앞으로 눕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아레네 시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
“!!!!”
모여 있던 랭커들은 눈만 휘둥그레져서 입을 열지 못했다.
너무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대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지금??
[하늘도시, 아레네 시가 침입자를 감지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침입자를 발각하고 공격합니다.]
하늘에 뜬 아레네 시.
허공에서 강력한 마력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랭커들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랭커들은 너무 놀란 탓에 반응이 한 발짝 늦었다.
꽝!!!
[공격이 시작됩니다!]
“피해!!”
“흩어져! 이게 무슨…?!”
“정보가 샌 거 아니야?!”
“정보가 샜다고 도시를 띄우는 미친놈이 어디 있어!”
“도시를 어떻게 띄운 건데!”
굶주린 혼돈 랭커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흩어지려고 했다.
그러나 주변에 있던 원정대 플레이어들이 그걸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첩자가 들어왔다! 첩자 놈들을 잡아라!!”
“감히 굶주린 혼돈 놈들이!”
랭커도 아닌 플레이어들이 덤벼들자, 굶주린 혼돈 랭커들은 어이가 없었다.
“같잖은 놈들이 돌아버렸나?? 죽여버려!”
“길 막고 싶으면 막아봐라! 여기가 너희 무덤이 될 테니까!”
그러자 원정대 플레이어들은 다시 외쳤다.
“김태현 선수 불러! 올 때까지 발만 묶어버려!”
“…야! 야! 잠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