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62화
[고대 제국의 자율골렘이 공격을 개시합니다.]
-기껏해 봤자 돌덩어리다. 처리해라!
굶주린 혼돈의 천인대장이 명령했다.
그 명령에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를 겨눴다.
좀 커다란 골렘이긴 했지만 이제 와서 골렘 하나에 새삼 놀라진 않았다.
초보자도 아니고….
[고대 제국의 자율골렘이 공격을 반사합니다.]
파파파파팟!
날아든 공격이 갑자기 투명한 막에 튕겨나가더니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을 공격했다.
[치명타가…]
[출혈 상태에…]
[시야가…]
“!!”
“뭐냐!?”
[고대 제국의 자율골렘이 공격을 개시합니다.]
[적들을 초토화시킵니다.]
자율골렘의 손 부분이 열리더니 폭탄들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고대 제국의 섬멸 폭탄이 폭발합니다!]
[자율골렘의 힘으로 추가 보너스…]
[……]
[……]
콰콰콰콰콰콰쾅!
간신히 요새를 뚫고 들어온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을 화끈하게 맞이해 주는 폭발.
그러나 자율골렘의 공격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었다.
자율골렘이 입을 쩍 벌리더니 브레스를 쏘기 시작했다.
[고대 제국의 파괴광선이 시전됩니다!]
[……]
[……]
부서진 요새 성벽을 넘어오던 굶주린 혼돈의 병사들이 그대로 녹아내렸다.
하늘을 타고 접근을 시도하던 굶주린 혼돈의 기수들도 자율골렘의 공격에 허무하게 격추당했다.
[고대 제국의 자율골렘들이 수리를 개시합니다.]
요새 안에 들어온 적들이 쓰러지고 여유가 생기자 자율골렘들은 그 다음 작업을 개시했다.
“수리??”
“수리까지…?!”
[부서진 요새 성벽이 수리됩니다!]
[추가 보너스가…]
[부서진 요새 첨탑이 수리됩니다!]
[요새 수비용 마력 대포가 수리됩니다!]
[……]
[……]
빠르게 복구해 나가는 요새의 모습을 보며 밖에 있던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기가 막혔다.
“저거 사기 아니냐?!!”
“무슨… 무슨 저딴 게 다 있어!!”
그러나 아직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의 비극은 끝이 아니었다.
[고대 제국의 자율골렘들이 요새 강화를 개시합니다.]
[요새들을 연결합니다.]
[요새들의 장치를 추가적으로 개량합니다.]
자율골렘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복구된 요새를 강화시킨 뒤 다른 요새까지 연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성능이었다.
요새 안에 있는 원정대 플레이어들도 충격에 빠져서 할 말을 잃어버렸는데,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게 무슨 골렘…???
-저, 저 골렘 어디서 살 수 있어요? 골짜기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파나?
-저 골렘 가질 수만 있다면 기계공학 대장장이들 밑에서 일이라도 하겠어!
-저거 김태현이 만든 거지? 김태현 아니면 저거 만들 사람이 없는데?
* * *
[지팡이 정화가 진행 중입니다!]
제작 직업은 부지런해야 했다.
한 가지 일을 벌여놓고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은 제작 스킬을 높게 올리기 힘들었다.
당연히 태현도 굶주린 혼돈의 악령을 제압하고 지팡이 정화가 진행되기 시작하자 바로 다음 작업으로 들어갔다.
‘고대 제국 장난감 비전하고 악마의 기계공학 비전부터 확인해야겠군.’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건 다 만들어 놓고 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스킬이 있어도 쓰지 못하는 상황이 생겼으니까.
<제국 제작 광선 장난감>
장인을 돕는 장난감입니다. 제작에 보너스를 부여합니다.
‘나쁘지 않다!’
태현은 반색했다.
어떻게 보면 좀 평범하고 무난한 장난감이었지만 원래 이런 게 더 좋은 법이었다.
모든 장난감들이 <제국 토끼 광선 장난감>처럼 극단적인 효과를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가능한 만큼 제작해서 제작 직업들한테 뿌려야겠군….’
태현은 다음 악마의 기계공학 비전을 확인했다.
<악마왕의 가짜 징표>
악마왕을 상징하는 징표입니다. 가짜지만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합니다.
“…????”
태현은 설명을 읽다가 당황했다.
…뭐냐 이건?
뭘 하라는 것이지?
‘일단 다른 걸 먼저 해야지.’
확인을 끝낸 태현은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현재 태현의 기계공학 퀘스트.
그건 바로 고대 제국의 유물들을 다시 만드는 퀘스트였다.
[고대 제국의 자율골렘을 제작 시작합니다!]
[고대 제국의 자율골렘은 제국의 크고 작은 일을 맡아서 해결해 왔던 기계공학자들의 걸작입니다. 전투, 수리, 제작 등 다양한 업무가 가능한 자율골렘은 고대 제국을 지탱하던 기둥 중 하나였습니다.]
-아. 제국의 자율골렘… 우리 기계공학자들의 역작이지.
-우리 기계공학자들이 제국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알겠나? 우리가 없었다면 제국은 돌아가지도 않았을 거다.
마검 안에 갇힌 기계공학자들이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수준으로 만들 수 있을까?”
-많이 힘들고 어렵겠지만 불가능하진 않다.
-너는 충분히 강해졌다. 우리보다 조금 아래 정도지.
[카르바노그가 저 마검 그냥 갖다 녹여버리고 싶다고 투덜거립니다.]
카르바노그가 투덜거리는 것과 별개로 지금 제작을 위해서는 어떤 도움이라도 받아야 했다.
하물며 그게 제국 출신의 기계공학자들이라면 더더욱.
‘그리고 최고급 기계공학 9인데 못 만들지는 않겠지….’
기계공학자들의 호들갑은 무시하고 상황만 놓고 보면 그렇게까지 불가능한 상황도 아니었다.
전설 직전의 기계공학 스킬을 달성한 태현.
태현의 손발이 되어서 충실히 일해줄 폭탄… 아니, 기계공학 대장장이들.
대륙의 왕국들이 멸망하면서 갖고 나온 물자들이 모여 있는 오스턴 왕국.
이 정도면 어지간한 건 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널 돕겠다.
-후계자. 힘내라!
[고대 제국의 자율골렘이 당신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완벽에 가까운, 아니 완벽 그 자체인 형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율골렘의 왼쪽 다리를 만드십시오!]
‘음. 생각보다 시작이 심심한데.’
온갖 자극적인 기계공학 스킬에 익숙해져 있던 태현에게, 평범하게 시작하는 이런 제작 스킬은 살짝 당황스러웠다.
내가 너무 거칠게 살아왔나?
[카르바노그가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망치 휘두르라고 조언합니다.]
카르바노그의 말이 맞았다.
태현은 괜한 불평을 해서 아키서스의 분노를 사는 대신, 천천히 망치를 휘둘렀다.
왕국 중앙 창고에서 필요한 재료를 갖고 와 조합한 다음 망치질.
땅땅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자율골렘의 왼쪽 다리가 순식간에 형태를 갖췄다.
[기계공학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보너스를…]
폭탄에만, 아니 기계공학에만 몰두한 플레이어들은 이런 평범한 제작에 서투를 때가 종종 있었지만 태현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애초에 대장장이로 먼저 시작한 만큼 이 정도 제작이야….
[자율골렘의 왼쪽 다리가 완벽하지 않습니다.]
[왼쪽 다리가 부서집니다.]
파사삭!
“???”
태현은 완성된 다리가 갑자기 가루가 되며 사라지는 모습에 당황했다.
‘뭐냐?’
-어허! 완벽해야 한다니까!
-완벽의 뜻을 모르는 거냐!
“…….”
태현은 그제야 이 제작이 어떤 제작인지 슬슬 감이 오기 시작했다.
보통 판온에서 플레이어들이 뭔가 만들 때, 정말 100% 완벽하게 만드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람이 직접 하는 일인데 그게 똑같을 수가 있겠는가. 당연히 오차가 있었다.
그 오차가 너무 크지 않으면 성공으로 인정해 주는 법이었는데….
자율골렘은 그런 게 없었다.
성공하거나 박살 나거나!
‘흠. 고대 제국이 괜히 망한 게 아니야.’
태현은 고대 제국의 배짱에 감탄했다.
이렇게 만들기 힘든 골렘을 설계하다니….
무슨 배짱이란 말인가?
제작은커녕 수리도 힘들 것 같았다.
-그, 그때 기계공학자들에게는 그럴 실력이 있었어!
-그게 낭만이지!
태현의 폄하에 발끈한 마검 속 기계공학자들이 변호했다.
물론 제작이 더럽게 어렵고 까다롭다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율골렘은 기계공학의 낭만 그 자체였다.
완벽을 추구하는 인간만이 도달할 수 있는 아름다운 예술의….
철컥!
태현은 잠시 마검을 꽂아 놓고 다시 집중했다. 왼쪽 다리를 완성할 때까지는 마검의 도움이 별로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마침 잘 됐군.’
태현은 오랜만에 승부욕이 불타오르는 걸 느꼈다.
‘레펠 광산의 흑철 100개, 오탄 왕국의 자수정 200개, 발다르 강의 금괴 300개를 모아서 갑옷을 만들어오세요’같은 난제를 들었을 때 ‘미쳤냐? 게임 접는다’가 아니라 ‘까짓거 해보지’ 같은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제작 직업으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해야만 한다면 하겠다.
태현은 자신이 이기나 자율골렘이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달려들었다.
* * *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긴 건데….”
제너럴갓태현의 중얼거림에 다른 대장장이 랭커들이 발끈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아직도!”
“이 자식이 이미 끝난 이야기를!”
고대 제국 방패 복원.
이 걸작 중의 걸작을 같이 복원하면서 대장장이 랭커들은 서로를 인정하고 친해지게 되….
…지는 않았다. 그건 그냥 태현의 바람일 뿐.
대장장이 랭커들은 여전히 서로를 싫어했다.
-보통 한 분야의 장인이면 마음이 넓고 포용력이 커야 하지 않나요?
-이다비.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 마. 그렇게 따지면 골짜기 폭탄광들도 기계공학 장인에 해당되는데.
-…!
그들은 태현이 심판을 봐주길 원했지만 당연히 태현은 발을 뺐다.
사이에서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는 거의 평생 원수가 되는 것이다.
덕분에 고대 제국 방패 복원에서 승부를 내지 못한 대장장이 랭커들은 아직도 니가 최고니 내가 최고니로 다투고 있었다.
“그냥 김태현한테 가자! 가서 말하자고. 누가 이겼다고 말하든 간에 절대 감정 상하지 않을 테니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저렇게 말하는데 감정 안 상할 거라고 누가 믿어….’
파워 워리어 길드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대장장이 랭커들, 실제로 만나기 전에는 정말 다들 존경스러웠는데….
만나고 나니까 정말 좀 추하다!
“근데 지금 굶주린 혼돈 막기 위해서 다들 바쁜데 김태현 찾아가서 이런 거 심판해 달라고 하면 너무 좀 그렇지 않을까?”
“헉….”
“그렇지?”
“너 겁먹었구나?”
“…가자 이 새끼들아!!”
그나마 이성을 유지하고 있던 대장장이 랭커도 다른 사람들의 도발에는 버틸 수 없었다.
어디 한번 해보자!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선수!”
대장장이 랭커들은 작정하고 태현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쉿. 방해하지 마세요.”
태현이 작업하는 장소 앞에 이다비가 서 있었다. 파워 워리어 길마를 만난 대장장이 랭커들은 흥분을 멈추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지금 원정대의 실세 아닌가.
괜히 밉보였다가는 각종 물자 공급 중단, 시설 사용 중지, 영지 추방 등 각종 형벌을 당할 수 있었다.
“안. 안녕하십니까!”
“존경하옵는 파워 워리어 길마를 뵙게 되어….”
“아니. 됐고요. 조용히 하시라구요.”
이다비는 입가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다대고 ‘쉿’ 소리를 냈다.
그제야 대장장이 랭커들은 태현이 뭘 만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뭐지?’
‘뭘 만들고 있는 거야?’
같은 대장장이 랭커로서 태현 정도 되는 플레이어가 만드는 게 신경이 안 쓰일 리 없었다.
대장장이 랭커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시선을 던졌다.
파사삭!
파사삭!
파사삭!!!
“???”
“저게 대체…?”
“저건… 김태현의 고집이다.”
해머맨이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집?”
“그래.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템은 그냥 부숴버리는 거지.”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완성도 안 된 걸? 너무 손해 아닌가?”
“비효율적….”
“하지만 그 비효율적임이 김태현을 저 위치까지 만든 거다. 판온 1에서 김태현이 만든 아이템을 직접 본 사람 있나? 난 본 적이 있다.”
“…….”
“…….”
대장장이 랭커들은 갑자기 숙연해졌다.
자신들은 언제 저렇게 김태현처럼 작업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어가며 만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관성에 젖어서 대충 만들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부끄럽다!’
“김태현…! 네 덕분에….”
“한 번만 더 떠들면 추방시킵니다.”
“앗. 죄송합니다.”
대장장이 랭커들은 굽신거리며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