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59화
“아니… 너희들끼리 다툴 필요 없다.”
태현은 대장장이 랭커들이 멱살 잡고 망치 휘두르기 전에 입을 열었다.
“이번에 사디크 교단 관련 퀘스트로 여러 화염을 추가적으로 얻었거든.”
판온의 각종 화염을 모아서 완성시킨 사디크의 진정한 화염.
스킬 자체는 저번에 써버린 탓에 반쯤 봉인 상태나 마찬가지였지만 모은 화염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디크의 화염이 가진 장점은 단순히 전투뿐만이 아니라 제작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
“하지만 고대 제국 황실의 방패 정도 되는 아이템을 완전히 녹일 수는 없을 텐데요?”
“아까 대장간에 가서 확인해 보니까 가능하다고 뜨더라.”
“하지만 고대 제국 황실의 방패 정도 되는 아이템이라면 녹인다 하더라도 페널티가 만만치 않을 텐데….”
“너희 혹시 실패하길 원하는 거냐?”
태현의 질문에 대장장이 랭커들은 시선을 피했다.
물론 실패하길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이번 고대 제국 황실의 방패 복원에서 자기 실력을 확실히 보여주고 다른 놈들을 꺾어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냥 화염으로 될 줄이야….’
‘시설이 너무 좋으면 이거대로 문제다. 대장장이의 실력을 보여줄 수가 없잖나.’
‘나 때는 이런 시설 없이 대장장이 실력으로만 했는데.’
대장장이 랭커들이 미적지근한 시선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다!
태현은 그런 대장장이 랭커들의 속마음이 뻔히 보였다.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은 참… 이상한 놈들이 많아.’
물론 전투 직업 플레이어라고 이상한 놈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제작 직업들은 대체로 좀 다른 방향으로 이상했다.
하루에 수천 개가 넘는 아이템을 만들다 보니 사람이 좀….
“물론 화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완전하지 않지. 녹였다고 하더라도 그걸 제대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대장장이의 실력이 필요하니까. 나보다 더 스킬이 뛰어난 대장장이들이 필요한데.”
태현의 말에 대장장이 랭커들은 눈을 번쩍 떴다.
“김태현 선수. 저한테 기회를 주십시오. 다른 랭커들하고 차원이 다르단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무슨 입만 살아가지고…! 이봐. 김태현! 나한테 기회를 달라고. 해머맨이야말로 입만 산 놈이라는 걸 증명할 테니까.”
“말로는 누가 번드르르하게 못하나? 난 행동으로 증명한다. 김태현 선수. 여기 골드 받으십시오. 제 전 재산입니다. 만약 제가 실수한다면 이 골드는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
조금 부추겼다고 전 재산까지 거는 놈이 나오자 태현이 오히려 황당해졌다.
“그, 그래. 다들 고맙다. 모두에게 기회를 주도록 하지. 방패 복원을 시작하자고.”
“비켜, 이 자식아!”
“네가 비켜! 건방진 놈 같으니. 난 네가 꼬꼬마일 때부터 판온 1에서 망치질을 해왔던 몸이야!”
“이제 은퇴할 때 됐겠네 그러면!”
‘괜히 불렀나?’
태현은 대장장이 랭커들이 다투는 소리에 살짝 불안해졌다.
오스턴 왕국에 뛰어난 랭커들이 여럿 모인 건 다행이었는데 다들 영 상태가….
* * *
[고대 제국 황실의 방패가 다시 복원됩니다.]
[현재 참가한 대장장이들의 실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정령이 나타나 작업을 돕습니다!]
[방패의 형태가 잡힙니다!]
[악마가 나타나 작업을…]
[방패의 문양이 다시 새겨집니다!]
[……]
[……]
‘생각보다 괜찮은데?’
연신 두드려지는 망치 소리와 함께 태현은 감탄했다.
대장장이 랭커들이 하도 서로 투닥대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호흡이 잘 맞았던 것이다.
“지금 그걸 망치질이라고 하는 거냐? 내가 했다면 네가 한 번 두드렸을 때 세 번은 두드렸다!”
“헛소리하지 마라. <고급 단조> 스킬도 제대로 익히지 않아 보이는데.”
“어이. 비전 스킬 <영혼 새기기> 없는 대장장이들은 조용히 좀 하지.”
“그건 없는 게 아니라 일부러 안 익힌 거다. 그거 갖고 자랑하는 거냐 지금?”
‘아 더럽게 떠드네 진짜.’
태현은 에랑스 왕국의 대장장이 랭커들이 이렇게 수다스러운 줄 처음 알았다.
에랑스 왕국에 있을 때는 각자의 영역, 각자의 도시에서만 있던 놈들이 한 곳에 모아놓으니 평소에 쌓였던 말들을 쏟아내는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대장장이들은 좀 과묵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습니다.]
‘맞는 말이야.’
그리고 실제로 저 대장장이들 중 절반은 원래 과묵한 이미지였다.
모아 놓으니까 저렇게 된 것뿐!
[고대 제국 황실의 방패가 완성되기 직전입니다!]
[더욱더 화염을 강하게 만드십시오!]
[태초의 불로 인해 추가 보너스가…]
[사디크의…]
[심연의…]
[……]
[……]
용암보다 더 뜨거운 열기를 흩뿌리는 시뻘건 용광로 안에서 눈부신 빛을 뿜는 방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떠들던 대장장이들도 입을 다물고 감탄했다.
수많은 작업을 해온 제작 직업 랭커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굳이 메시지창을 보지 않더라도 지금 나오고 있는 아이템이 대박인지 아닌지 가늠이 되는 것이다.
‘이건….’
‘고대 제국 황실 값을 한다!’
‘제대로 만들어졌어!’
태현도 같이 감탄하던 그때, 퀘스트창이 떴다.
<고대 제국 황실의 보물-고대 제국 퀘스트>
오랜 전쟁과 반란, 습격으로 인해 사라졌던 고대 제국 황실의 보물들은 다시는 한 자리에 모이지 못하리란 말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고대 제국 황실의 보물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굶주린 혼돈의 힘에 타락한 지팡이를 순수한 신성력으로 정화시켜라!
그렇게 한다면 보물들은 당신에게 고대 제국 황실의 비밀을 알려주리라.
보상: ?, ???
‘역시 이런 퀘스트가 뜨나.’
태현은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고대 제국 황실의 보물들이 가진 가치를 생각해 봤을 때, 한자리에 보물들을 모으면 퀘스트가 추가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솔직히 태현도 이렇게까지 고대 제국 황실의 보물들을 모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고대 제국 황제의 반지와 망토. 황실의 검과 방패. 그리고 지팡이까지.’
<고대 제국 황실의 지팡이 정화-고대 제국 퀘스트>
고대 제국 황실의 지팡이는 황제의 위엄을 상징하던 위대한 보물이다.
그러나 굶주린 혼돈의 힘으로 지팡이가 타락했으니, 각 교단의 이름 있는 자들을 모아 지팡이를 정화하라!
굶주린 혼돈의 힘을 몰아낸다면 지팡이는 원래의 빛을 되찾으리라.
보상: ?, ???
원래라면 이 퀘스트 자체도 매우 난이도 높은 퀘스트.
그러나 지금의 태현에게는 이야기가 달랐다.
‘그냥 부르면 되겠군.’
* * *
파이토스 교단 망치기사단 단장, 아크락스는 위엄 서린 눈빛으로 플레이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허억. 이 정도면 스킬 숙련도가 꽤 오른 것 같으니….”
“그러게. 이 정도면 좀 쉬어도 되겠지?”
-아니.
“…그, 그렇군요. 조금 더 해야 하나요?”
“더 휘두르자… 으음!”
[망치기사단 기사들과 대련을 지속합니다.]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
[……]
또 한 차례 격렬한 대련이 끝났다.
이제야말로 플레이어들은 쉴 수 있다고 생각해서 물었다.
“이제 진짜 쉬어도 되겠죠?”
-아니.
“…뭐가 아닙니까! 너무한 거 아니에요!?”
“지금 몇 시간 째 훈련을 시키시는 겁니까! 아무리 퀘스트라도 그렇지 너무하시네 정말!”
플레이어들은 참다 못해 폭발해서 따졌다.
훈련 퀘스트라서 ‘와 괜찮겠는데?’ 하고 참가했는데 조금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고 계속 훈련을 반복시키다니.
[파이토스 교단 망치기사단 내 평가가 내려갑니다.]
[아크락스의 친밀도가 내려갑니다.]
“…….”
“…….”
-다시!
자기 할 말만 하는 아크락스의 모습에 플레이어들은 슬슬 잘못 걸렸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이거….
뭔가 잘못 걸린 것 같은데…??
-아크락스 님. 교황님께서 부르십니다.
-그래?
성기사들이 찾아와서 아크락스를 부르자 플레이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길이 열린 것이다.
-너희들이 저 모험가들을 감시하도록.
-예!
“…….”
“…….”
파이토스 교단 플레이어들은 진지하게 다른 교단으로 갈아탈까 고민했다.
‘요즘 아키서스 교단이 진지하게 상승세 같은데 갈아타버려?’
‘저번에 보니까 사디크 교단도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은데.’
‘야. 방송 하나 봤다고 착각하지 마라. 그러면 기계공학 스킬도 배울 거냐?’
‘하긴 그러네. 사디크 교단은 포기해야겠다.’
* * *
에랑스 왕국이 멸망하고 오스턴 왕국으로 모인 각 교단의 중요 NPC들.
이들은 다시 교단을 운영하고 플레이어들을 돌보느라 매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태현은 원정대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NPC들을 불러낼 수 있었다.
굶주린 혼돈과 목숨 걸고 싸우는 만큼 누릴 수 있는 특권!
-이번에 교황 성하께서 굶주린 혼돈의 군단장과 싸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맙군. 정말 고생이 많았지.”
-산맥을 무너뜨릴 정도로 싸웠다니, 교황 성하가 아니었다면 어느 누가 굶주린 혼돈을 막았겠습니까?
태현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판온 초기 때 아키서스 교단이 받았던 취급을 생각해 보면, 지금 같은 반응이 기쁠 수밖에 없었다.
-저번에 에랑스 왕국 서쪽을 불태우셨다고 들었는데….
“…….”
태현은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에랑스 왕국은 여기 교단들이 전부 다 아끼고 사랑하는 땅이었다.
-…굶주린 혼돈과 싸우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었겠지요.
[데메르 교단 대지사제단 대주교, 비니시오와 친밀도가 매우 높습니다!]
[교단 내 평가가 매우 높습니다!]
[에랑스 왕국에서 있었던 일들로 페널티를 받지 않습니다!]
‘휴.’
태현은 안심했다.
사실 다 태우고 나서 생각해보니 좀 너무 과격하게 태운 것 같기도 했다.
사디크의 화염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몰라 이것저것 해봤더니 서부가 완전히….
“이 지팡이의 정화를 위해서 여기 모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도와주겠는가?”
-물론입니다.
-물론!
각 교단의 대주교와 성기사단장들이 모이자, 지팡이 안에 있던 굶주린 혼돈의 기운이 꿈틀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고대 제국 황실의 지팡이 안에 깃들어있던 굶주린 혼돈의 악령이 깨어납니다!]
[……]
[……]
시커먼 기운이 뭉실거리더니 악령의 형태를 갖췄다.
-또 어떤 필멸자가 나를 불렀지? 저번처럼 어리석은 필멸자였으면 좋겠군!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어리석은 악령 같으니!
각 교단의 NPC들은 혀를 차며 악령을 쳐다보았다.
물론 굶주린 혼돈의 악령이라고 하면 매우 막강한 적이 맞았다.
하지만 장소가 좋지 않았다.
여기는 왕국에 새로 지어진 대신전 한가운데 아닌가.
그것도 모자라서 여러 교단의 대주교와 성기사단장들이 각종 마법을 시전한 장소.
굶주린 혼돈의 악령이든 악마 공작이든 이 영역 안에서는 미친 듯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강력한 파이토스의 힘이 굶주린 혼돈의 악령을 약화시킵니다!]
[강력한 데메르의…]
[……]
[……]
-감… 감히 필멸자가 내 힘에 굴종하기는커녕 감히 함정을 파? 굶주린 혼돈께서 이 사실을 알면 네놈들을 모두… 크아아아악!
악령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격이 시작되었다.
강력한 신성 마법들이 연달아 발사되고 악령을 태울 듯이 난타했다.
‘오. 정말 잘 패는군.’
태현은 새삼 여기 오스턴 왕국에 모인 NPC들 수준이 높다는 걸 느꼈다.
굶주린 혼돈만 아니었다면 왕국에서 도망칠 일도 없었을 텐데….
-안 돼! 안 돼! 이렇게 소멸될 수는….
-죽어라, 악령아! 네놈의 고향인 영원한 공허로….
“잠깐. 잠깐.”
지켜보고 있던 태현은 성기사단장을 말렸다.
“생각해 보니 지금 꼭 죽일 필요는 없을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