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758화 (1,757/1,826)

§ 나는 될놈이다 1758화

“아니 당연히 나쁘죠….”

조용히 듣고 있던 이다비가 황당한 표정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태현과 이세연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왜지?”

“다비야. 쑤닝은 좀 털어도 돼. 길드 동맹 망했어도 갖고 있는 거 엄청 많은데….”

두 최상위권 랭커들의 헛소리에 이다비는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일단 길드 동맹 간부들하고 플레이어들도 원정대에 참가한 상태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쑤닝을 멋대로 PK하면 안 되죠.”

“으음.”

“그래도 쑤닝은 괜찮지 않을까….”

태현과 이세연은 이다비의 말을 이해했지만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쑤닝은 좀 죽여도 되지 않나?

“그래. 한 번 설득해 볼게.”

태현은 마음을 바꿨다. 이세연은 배신감 가득한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이다비가 나가고 나서 이세연은 속삭였다.

“야…! 다비를 설득해야지 쑤닝을 설득한다고 하면 어떡해! 그 새… 아니, 그 자식이 설득될 것 같아?”

“물론 설득 안 되겠지. 하지만 나중에 이다비한테 핑계를 대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아니면 네가 이다비 설득해 보던가.”

“음….”

“왜? 친해졌잖아.”

“괜히 미움 받을지도 모르잖아. 네가 해.”

“…….”

난 미움 받아도 되냐?

태현은 이세연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너희는 같은 팀이잖아.”

“그렇긴 하지.”

“다비는 네 말을 잘 들어주고.”

“그렇긴 한데… 그냥 네가 말하지 그래? 나도 미움 받기 싫은데.”

이세연은 태현의 말을 못 들은 척 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 * *

“김태현 님이 찾으십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찾아와서 쑤닝을 부르자, 예전 길드 동맹 간부들은 공포에 떨었다.

“드디어….”

“쑤닝을 처리할 때가 되긴 했지.”

“나 같아도 할 것 같다.”

태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쑤닝을 살려두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길드 동맹 때 쌓인 원한도 있겠다, 본인도 아직 길드 동맹 간부들에게 영향력이 크겠다….

게다가 쑤닝의 성격이 친절하고 사근사근한 성격은 아니었다.

길드 동맹 망하고 원정대에 참가한 다음에도 계속 툴툴대며 시꺼먼 야심을 드러내오지 않았던가.

이제 길드 동맹 출신 길드원들도 어느 정도 흡수했겠다, 오스턴 왕국도 정리됐겠다, 쑤닝을 처리하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 같아도 처리했겠다!

“길마님. 그래도 아직 확정은 아니니까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혹시 모르니 조심하시고 공격하면 바로 도망칠 수 있도록 잘 준비하시고요.”

“이 자식들이….”

쑤닝은 옛 간부들의 쓸데없는 응원에 분노했다.

안 그래도 마음 착잡한데 이 자식들의 쓸데없는 응원 때문에 더 착잡해지는 것이다.

들리지 않게 귓속말으로 말할 것이지….

“쑤닝.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앨콧이 나타나서 쑤닝을 위로했다.

저번에 봤을 때보다 몇 배는 좋아진 장비로 무장하고 있는 앨콧.

사실상 길드 동맹 출신 길드원 중 가장 출세한 랭커라고 봐야 했다.

의심 많고 길드 동맹을 좋아하지 않는 원정대 파티들도 앨콧은 믿고 맡길 정도였으니.

덕분에 몇몇 길드 동맹 간부들은 ‘앨콧이 혹시 배신한 거 아닌가?’ ‘너무 신뢰를 받는데?’ 같은 의심을 하곤 했지만, 쑤닝은 그런 음해에 넘어가지 않았다.

비록 나라는 다를지라도 앨콧은 길드 동맹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앨콧…!”

“그래. 잘 갔다오고.”

앨콧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길드 동맹이 와해되고 나서 쑤닝은 ‘앨콧 이제 편하게 말해라 난 길마도 아니니’ 같은 말을 했지만 앨콧에게는 더 부담스러웠다.

“난 너만 믿는다.”

“아니. 너무 그러지 마라. 내가 뭐라고.”

“아니다. 너밖에 없다. 만약 내가 김태현 놈한테 당해서 돌아오지 못한다면 네게 내 남은 아이템들을….”

‘이 자식 왜 이래?’

앨콧은 쑤닝의 말에 질색했다.

부담도 그냥 부담이 아니라 좀 심하게 부담스러웠던 것!

* * *

“쑤닝.”

태현은 쑤닝이 오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쑤닝은 자신도 모르게 문 양옆을 살폈다.

‘없나?’

다행히 매복해 있는 암살자들은 없었다. 쑤닝은 긴장한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뭐… 뭐냐? 왜 부른 거지? 저번에 길드 동맹의 창고도 공유해 줬을 텐데.”

“아. 고맙다. 덕분에 오스턴 왕국을 재건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

태현의 말에 쑤닝은 속이 쓰렸다.

원래라면 저 재산으로 오스턴 왕국을 재건해서 사람들의 찬양을 받아야 하는 건 길드 동맹이었다.

물론 길드 동맹이었다면 저 재산을 왕국을 재건하는 데에 쓰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일단 지금 사용된 건 길드 동맹의 재산 아닌가.

그런데 스포트라이트는 태현만 받고 있다니.

“잘… 됐군. 오스턴 왕국을 위해서라면… 잘 된 일이지. 나라도 그랬을 거다.”

‘절대 안 그랬을 거 같은데.’

태현은 쑤닝의 뭐라도 씹은 것 같은 표정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돈 욕심 많은 길드 동맹 놈들이 자기들 사비 털어서 왕국 재건을 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쑤닝이 명령하더라도 그 밑의 간부들이 반역할 가능성이 높은 것!

“네게 한 가지 더 부탁할 게 있다.”

“…….”

쑤닝은 긴장했다.

창고도 털어갔고 길드원들도 가져갔는데 더 부탁할 게 남았나?

그렇다면 하나밖에 없었다.

‘…내 목숨이구나!’

쑤닝이 접속도 못할 정도로 로그아웃을 시켜버릴….

“고대 제국의 지팡이를 갖고 있다면서?”

“절대 안… 아.”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려던 쑤닝은 멈칫했다.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방금 뭘 하려고 한 거지?”

“기… 기지개.”

쑤닝은 다시 앉았다.

“고대 제국 황실의 지팡이를 말하는 거냐?”

“그래. 네가 스미스하고 맞붙을 때 썼던 그 지팡이.”

태현은 굳이 그 뒤에 ‘네가 졌지’라는 말을 붙이진 않았다.

“그런데 넌 지팡이 주기 싫겠지?”

쑤닝에게 슬쩍 물으며 태현은 안색을 살폈다.

쑤닝이 싫다고 한다→이다비한테 돌아가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쑤닝을 죽인다→해결!

다시 생각해도 깔끔한 계획이었다.

물론 길드 동맹 출신 길드원들이야 좀 불안해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지 않겠는가.

“아니… 줄 수 있다.”

“!”

이번에는 태현이 놀랐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는데, 쑤닝이 설마…?

“너 판온 접냐?”

“…뭔 개소리냐! 스미스 놈 모가지 따기 전에는 절대 못 접는다!”

쑤닝은 씩씩대며 화를 냈다.

지금 길드 동맹이 망하고 길드 동맹 간부들은 흩어지고 옛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야 저기 니 예전 길마 지나간다’ ‘뒤질래?’ 같은 조롱이나 하고….

그런 치욕과 굴욕에도 불구하고 쑤닝이 남아 있는 건 복수심 하나 때문이었다.

언젠가 반드시 스미스한테 복수하고 말리라!

‘근데 딱히 스미스 탓은 아닌 것 같지만.’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쑤닝이 망한 이유는 너무 여러 개가 합쳐져 있어서 스미스 탓만 하기에는 좀 애매한 감이 있었다.

물론 쑤닝한테 그 소리를 해봤자 절대 안 듣겠지만….

“그 지팡이는 솔직히 애물단지였다. 고대 제국 황실의 지팡이라서 쓰긴 했지만, 애초에 내 직업과는 상관이 없었지. 게다가 굶주린 혼돈의 저주까지 들어간 상태여서….”

쑤닝은 매우 매우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도 길드 동맹 간부들과 식사를 할 때면 매번 하는 이야기였다.

-스미스 그 새끼가 굶주린 혼돈하고 계약만 안 했어도 우리가 이기는 거였는데…! 그 지팡이가 하필 굶주린 혼돈에게 오염된 거라서 스미스 놈에게 이길 수가 없었다니까!

-길마님 또 저러신다. 누가 좀 말려봐.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억울한 건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디다 쓸 곳도 없고 다시 쓸 생각도 없는 아이템이다. 네가 쓰겠다면 내줄 수 있지. 어차피 굶주린 혼돈 상대하기 위해서 쓸 거 아니냐?”

“…….”

태현은 당황했다.

쑤닝이 너무 순순히 아이템을 내준다고 말해서 당황한 것이다.

태현이 한동안 말이 없자 쑤닝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뭐? 설마 더 달라고 할 아이템이 있냐??”

“네가 그냥 내놓을 줄은 몰라서 어떻게 협박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뭐 이 자식아?”

“하지만 네가 이렇게 내미는 걸 보니까 기쁘다. 너도 굶주린 혼돈을 상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

“아니야 이 자식아! 쓸 곳 없어서 주는 거야! 누굴 뭐 다른 길드원들로 아나!”

쑤닝은 울컥해서 외쳤다.

다른 길드 동맹 길드원들이야 자존심도 없이 ‘이렇게 된 이상 원정대에서 공적치 포인트를 쌓고 새 시작을 해야지’ 하고 있었지만 쑤닝은 아니었다.

한 나라의 왕이었던 만큼 자존심이 있는 법.

굶주린 혼돈과 싸우기는 하겠지만 김태현 앞에서 머리 숙이고 아부할 생각은 없었다.

“김태현. 약속 기억해라! 스미스 놈의 목을 딸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나한테 먼저 기회를 주는 거다!”

“그래그래. 알겠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태현은 쑤닝을 달래기 위해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좀 회의적이었다.

‘쑤닝 놈 수준으로 그게 될지 모르겠는데.’

일단 스미스가 어떻게 불리하든 간에, 쑤닝 정도는 거뜬히 이길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 * *

[고대 제국 황실의 방패를 복원합니다!]

[완전히 파괴된 장비를 복원하는 일입니다. 막대한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

“김태현 선수. 이건 좀….”

“아무래도 좀….”

오스턴 왕국에 새로 건설한 거대 대장간.

그런 전무후무한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면서도 대장장이 랭커들은 약한 소리를 내뱉었다.

일단 장비 자체가 극도로 희귀한 고대 제국 황실의 장비인 데다가, 그게 완전히 박살 난 상태인 것이다.

아무리 자신만만한 대장장이 랭커들이라 하더라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복원하다가 잘못할 경우 남은 잔해까지 파괴될 수 있습니다.”

대장장이 랭커 해머맨이 말하자 다른 랭커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판온 대장장이들 중에 가장 갑옷 제작에 뛰어난 랭커의 말인 만큼 그 무게감이 상당했다.

“실망이다! 해머맨. 그런 약한 소리나 하고!”

캐나다 출신 대장장이 랭커, 제너럴갓태현이 말했다.

같은 대장장이 랭커로서 경쟁을 펼치는 제너럴갓태현이 외치자 해머맨의 인상이 팍 일그러졌다.

“네가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적어도 너처럼 하기 전부터 약한 소리를 하진 않지. 두고 봐라! 여기서 누가 가장 먼저 전설 스킬을 찍는지. 적어도 너처럼 약한 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닐 거다!”

제너럴갓태현의 외침에 해머맨이 입고 있던 망토를 집어 던지고 외쳤다.

“오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디 한번 네 실력을 보자. 이 방패 복원으로 승부를 내는 거다.”

“바라던 바다! 어디 한번 붙어보자고!”

“지금 날 빼고 둘이서 붙으려는 거냐? 이 스티븐을 두고?”

에랑스 왕국의 멸망 이후로 대장장이 랭커들은 오스턴 왕국으로 대피한 상태였다.

한동안 멈춰뒀던 제작 작업을 거대 대장간 덕분에 다시 재개할 수 있게 된 랭커들.

나름 자존심 싸움이 치열했는데 이번 기회에 터진 것이다.

절대 다른 놈들한테 질 수는 없다!

“방패를 망가뜨리는 놈이 지는 거다. 알겠나?”

“망가뜨리면 게임 접어라! 난 그럴 생각이니까!”

“내가 할 말이다!”

대장장이 랭커들이 팔을 붙이고 달려가려는 걸 본 태현은 황당함에 할 말을 잃었다.

‘설명도 아직 다 안 했는데 이 미친놈들이 뭐라는 거야….’

이번에 새로 추가한 화염들 덕분에 대장간에 추가 버프 받고 방패를 녹여서 다시 제련할 거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대장장이들이 자기들끼리 승부를 내겠다고 결론 내리는 모습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