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57화
“정말 아닙니다.”
“다들 자원해서 힘을 합친 겁니다.”
“그래?”
태현은 실망스러워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당황했다.
‘왜 실망을?’
‘감동해야 할 상황 아닌가?’
‘이세연이 어떻게 협박했는지 듣고 참고하려고 했는데….’
이세연한테 협박의 비결을 들으려고 했던 태현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다들 이렇게 열심히 힘을 합쳐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김태현 선수께서 왕국에 불을 지른 것과 비교하면 별 거 아니죠.”
“저번에는 산맥도 무너뜨리셨잖아요!”
훈훈한 듯이 서로를 칭찬해 주는 원정대 플레이어들이었지만, 사실 냉정하게 보면 전혀 훈훈한 대화가 아니었다.
“이제 곧 굶주린 혼돈의 공격이 시작된다고 하던데 그게 정말입니까?”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굶주린 혼돈의 공격은 무시하려고 해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에랑스 왕국 국경지대에 플레이어들을 모으는 것부터 시작해서 각종 준비란 준비를 하고 있으니 어느 누구나 ‘이제 곧 오겠구나’ 하고 마음의 각오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들 버티다가 안 될 것 같으면 후퇴해도 괜찮다.”
“무슨 말씀을… 이렇게 만든 요새를 그냥 줄 수는 없죠.”
“오는 순간 저번에 보여주신 것처럼 불태워버릴 생각입니다.”
“아니지. 저번에 보여주신 것처럼 요새를 무너뜨려서 생매장을 해야지.”
“둘 다 하자고.”
‘원정대 분위기가 너무 험악한 것 아닌가?’
태현은 원정대 플레이어들의 열렬한 반응에 고마우면서도 약간 당황스러웠다.
고맙긴 한데 정말 너무 열정적인 거 아닌가?
‘다들 이렇게까지 나설 줄은 몰랐는데.’
* * *
아레네 시.
한때는 길드 동맹의 수도로 쓰였다가 오스턴 왕국이 내전과 반란으로 잿더미가 된 이후에는 태현이 이끄는 원정대가 수도로 쓰게 된 도시였다.
당연히 굶주린 혼돈과의 싸움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고, 만약 불리할 경우 후퇴해야 하는 만큼 태현은 도시에 큰 욕심이 없었다.
사람도 부족하고 재산도 한계가 있는 만큼 필요한 시설만 짓고 나머지는 내버려 둘 생각이었는데…?
“????”
태현은 못 본 사이에 전성기 시절보다 화려하게 모습을 되찾은 아레네 시를 보고 깜짝 놀랐다.
태현을 따라온 (구)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도 놀라워할 정도였다.
“아레네 시 완전 폐허가 된 줄 알았는데, 뭐냐?”
“길드 동맹 놈들 있을 때보다 나은 거 같은데?”
“길드 동맹이 다스릴 때도 제법 괜찮았어! 그 말 취소해!”
“아, 아니. 길드 동맹이 못했다는 건 아니고… 잠깐 생각해 보니 웃기네. 이 자식 너도 지금 길드 동맹 나왔으면서 길드 동맹 욕에 왜 발끈해?”
[원정대의 심장, 아레네 시에 도착했습니다!]
[수많은 예술품들이 모여 있습니다. <아레네의 환희> 버프가 일시적으로 추가됩니다!]
[수많은 신전들이 모여 있습니다. <아레네의 신전> 버프가 일시적으로 추가됩니다!]
[……]
[……]
[……]
‘음. 겉으로만 화려해 보이는 걸 수도 있겠지. 이게 빛 좋은 개살구란 말도 있으니까.’
태현은 아레네 시의 성벽으로 접근했다.
[<세 번 제련되고 축성된 흑성암>으로 만들어진 왕국의 성벽을 목격합니다!]
[놀라운 제작법에 건축 스킬이…]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
[……]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니었군.’
태현은 성벽의 단단함에 깜짝 놀랐다.
그보다 <세 번 제련되고 축성된 흑성암>이라니.
‘이걸 대체 어디서 구한 거지?’
쉽게 구하기 힘든 최고급 재료 중의 최고급 재료.
건축가 랭커들이 가진 아이템을 다 털어서 성벽에 박은 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마침 옆에 짐을 짊어지고 지나가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이 보였다.
“이봐. 이거 재료 어디서 구한지 혹시 아나?”
“건축가 랭커 분들이 구해오셨는데요?”
“…….”
진짜 자기 재산을 턴 거였어?
“자기 아이템을 쓰는데 뭐… 불만이나 그런 건 없었나?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그냥 쓰셨는데….”
“…….”
‘이거 괜히 부담되는데.’
태현은 원정대 플레이어들이 생각보다 너무 열정적이라 당황했다.
물론 골짜기 출신 파티원들이 태현을 돕기 위해 참가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일반 랭커들이 와서 자기 전 재산을 꼴아박는 건 좀….
너무 열정적인 거 아니야?
‘이러다가 굶주린 혼돈한테 지면 어쩌려고.’
* * *
“그게 바로 신념입니다.”
“열정과 신념!”
판온에서 신념과 열정으로만 놓고 보면 어느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광인들, 골짜기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외쳤다.
가브리엘은 흐뭇하다는 듯이 태현을 보며 말했다.
“최고급 기계공학 스킬 9에 도착하시다니. 제가 다 기쁩니다. 예전부터 전설 기계공학 스킬에 도달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꼭 태현 님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고맙다.”
“폭탄을 만드실 거면 저희하고 같이 만드시는….”
“아니. 지금 필요한 건 다른 거라서.”
태현의 말에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노골적으로 실망했다.
“기계공학 스킬이 좀 너무하네.”
“전설이 되기 위해서는 전설에 걸맞는 폭탄을 퀘스트로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솔직히 폭탄으로 먹고 살았으면서 이제 와서 폭탄 말고 다른 걸 주다니. 스킬이 너무 냉정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무시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제작 퀘스트들이 좀 많다. 일단 고대 제국 시절의 골렘이 있어.”
“골렘?”
옆에 앉아 있던 이세연이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흑마법사인 만큼 골렘 조종에도 일가견이 있는 이세연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골렘 제작, 조종에 뛰어났다.
“기계공학 스킬이 들어간 골렘인 건가? 어떤 골렘인데?”
“어… 고대제국의 골렘인데, 영혼을 가져서 자기가 알아서 움직이는 골렘이야.”
“…….”
이세연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당황했다.
“그, 그렇구나.”
‘기계공학 스킬은 정말 별 게 다 있는 것 같은데.’
‘기계공학 스킬은 정말 별 게 다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군.’
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혹시 그 골렘에 폭탄이 들어가진 않습니까?”
“아닌데.”
“그렇군요….”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시무룩해졌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몇 개 더 완성시켜야 해.”
“말해봐. 듣고 있으니까.”
이세연은 진지하게 집중했다.
굶주린 혼돈의 공격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지금 이런 제작 스킬을 먼저 하려는 건 얼핏 보면 한가한 이야기처럼 들렸지만, 이건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지금 태현은 전설 스킬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원정대 랭커들은 생각보다 잘 모이고 있는 전력에 안심하고 있었지만 이세연은 그렇지 않았다.
굶주린 혼돈의 전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정도로는 절대 안심할 수 없었다.
만약 전설 기계공학 스킬이 완성된다면 굶주린 혼돈을 상대할 때 커다란 도움이 되리라.
“일단 고대제국의 비행도시를 완성해야 해.”
“…….”
“…….”
이세연을 비롯해서 기계공학 대장장이들, 심지어 이다비까지 당황스러워했다.
“그… 그게 가능할까요?”
이다비는 벌써 손가락을 접어가며 간단하게 견적을 내고 있었다.
지금 플레이어들 수준으로 비행도시를 만들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재료들이 필요할지 상상도 가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나도 지금 하기에는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알아. 하지만 지금 하늘성을 갖고 있고, 기계성도 갖고 있지. 이 두 개를 베이스로 시작하면 완전히 불가능은 아닐 거야.”
악마 공작에게서 훔쳐 온 하늘성.
그리고 기계공학 스킬을 바탕으로 완성시킨, 골짜기 기계성.
완전히 무에서 시작하는 게 아닌 이 두 가지로 추가 보너스를 받고 시작하는 만큼, 태현은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하신다면 저희는 따를 뿐입니다.”
“맞습니다. 김태현 선수께서 정하셨다면 분명히 가능할 겁니다.”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가장 먼저 태현을 격려해 줬다.
아무리 터무니없어 보이더라도, 언제나 선구자는 저런 시선을 받기 마련이었다.
그들이라도 태현을 믿고 응원해 줘야 한다!
“근데 혹시 비행도시에 폭탄은 안 들어갑니까?”
“폭탄 하나 넣으면 좋을 것 같은데….”
대장장이들의 말을 무시하고 태현은 추가로 할 말을 했다.
“고대제국의 기계열차하고, 지하 토끼 동상도 만들어야 해.”
“그래. 그 정도는… 응?”
고개를 끄덕이던 이세연은 의아해했다.
“무슨 동상?”
“토끼 동상….”
“…….”
이세연은 뭐라고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기계공학은 진짜 이상한 스킬이야….’
태현은 그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기계공학 대장장이들도 그걸 느꼈는지 자신도 모르게 변명했다.
“그렇게까지 이상한 스킬은 아닙니다….”
“맞습니다. 폭탄 제작법들을 보면 꽤 견실하고 멀쩡한 애들이 많은데….”
“야. 그만해라.”
태현은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을 말렸다.
해명하면 해명할수록 기계공학의 이미지가 늪에 빠질 것 같았다.
“어쨌든 이거 제작하는 동안 굶주린 혼돈의 공격이 시작되면 네가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막아줘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 뭐.”
이세연은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럴 걸 예상하고 지금 국경지대에 요새와 함정을 깔고 언데드 군단을 곳곳에 배치하지 않았던가.
굶주린 혼돈이 어떤 전력으로 도전해 오든 간에 그리 쉽게 통과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 정말 괜찮아?”
“응.”
“다른 건 원하는 건 없고? 혹시 나중에 이거 관해서 뒤늦게 빚을 갚으라고 하면 안 된다? 정말로 원하는 게 없는 거 맞지?”
“…….”
“…….”
이다비와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태현을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았다.
‘왜 굳이 도발을 하시는 거지?’
‘그냥 가만히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세연은 매우 어른스럽게 참아줬다.
“굳이 말하자면 지금 이런 행동들이 불만이지.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제작이나 해.”
“…고맙다.”
태현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이세연은 선뜻 고개를 끄덕여줬다.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일어나서 회의실을 나가자 이세연은 태현에게 다가오더니 태현에게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자꾸 회의장에서 그딴 헛소리하면 내 언데드 데리고 동쪽으로 간다.”
“…….”
태현은 안심했다.
이세연이 어디 아픈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뭐부터 할 건데?”
“일단 고대 제국 방패 복원부터 하려고.”
“나쁘지 않네.”
고대 제국 유물 퀘스트도 지금 진행해야 할 퀘스트가 맞았다.
굶주린 혼돈이 공격해 오는데 고대 제국의 이름을 부활시키는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확신은 없었지만….
최소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태현이나 이세연이나 여기에서 뭔가 좀 쓸 만한 것들이 나오길 바랄 뿐이었다.
“참. 그러고 보니 길드 동맹 간부들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이세연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길드 동맹 간부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쑤닝이 고대 제국의 지팡이를 갖고 있다는 소문이 있더라.”
“!”
태현은 놀랐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길드 동맹은 오스턴 왕국을 꽤 오랫동안 지배해 온 만큼, 오스턴 왕국에서 발견될 보물들이 손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태현이나 스미스가 운 좋게 고대 제국 황실의 유물들을 손에 넣은 것처럼 쑤닝이 그랬어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쑤닝을 불러서 물어볼 거야? 조심해. 쑤닝이 길드며 영지며 잃긴 했어도 자존심은 남아 있잖아. 괜히 내놓으라고 하면 숨길걸.”
“그냥 붙잡아서 PK할 생각이었는데.”
“…그,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긴 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