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55화
-네가 하는 짓이 얼마나 사악해 보이는지는 알고?
태현은 스미스의 집중을 깨기 위해 도발하며 공격을 날렸다.
드래곤의 화염이 스미스에게 날아들었지만 스미스는 방패를 들고 막아냈다.
태현의 몇 배는 되는 거대한 덩치를 전부 감싸는 방패가 화염을 막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장비가 완전히 파괴됩니다!]
[……]
[……]
그 대가로 방패는 완전히 녹아내렸지만 스미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굶주린 혼돈이 곧 새 방패를 내려준 것이다.
‘와 뭐 저런.’
태현은 솔직히 부러웠다.
아키서스는 저렇게 챙겨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제 오늘 김태현 선수는 제가 있는 곳까지 이미지가 내려올 겁니다!”
-너 지금 하는 짓 이세연 같다.
“…….”
너무 어처구니없는 황당한 도발에 스미스는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태현은 바로 공격을 날렸다.
‘지금!’
“크악!!!”
[사디크의 화염이 당신을 직격합니다!]
마치 격류치듯이 몰아치는 화염이 스미스의 집중을 뚫고 방패 뒤로 파고들었다.
뱀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며 들어오는 화염에 스미스는 스킬들을 가동시켰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당신을 회복시킵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당신을 보호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당신을 더욱더 크고 강하게 만듭니다!]
우드득!
안 그래도 거인과 맞붙어도 지지 않을 정도로 덩치가 커진 스미스의 몸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불어났다.
태현은 황당해했다.
-어디까지 하려고 그러는 거냐?
“당신도… 저하고 똑같은 사람이라는 게 오늘 증명될 겁니다!”
-야. 말은 똑바로 해라. 난 길드원들 풀어서 강제로 세금 뜯고 한 적 없거든.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꾸하며 주변의 화염을 전부 한쪽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하도 태울 게 많아서 사방으로 화염을 퍼뜨렸지만 지금 스미스의 상태를 보니 화력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사디크의 화염이 한 곳에 모여듭니다.]
[사디크의 태양이 만들어집니다.]
이미 도시를 파괴할 때 거대한 화염덩어리를 만들어서 날려 보내는 식으로 싸운 적이 있었지만, 그것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란 화염의 덩어리였다.
그야말로 사디크의 태양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거기에 맞서서 스미스의 몸은 더욱더 커지고 흉측하게 변했다. 굶주린 혼돈의 가호가 연속적으로 들어가자 그 위에 알 수 없는 문양과 기호들이 연신 새겨졌다.
뒤늦게 도착한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두 최상위권 랭커들의 대결에 당혹스러워했다.
‘스미스가 이미지는 이제 포기한 건가?’
‘아무리 봐도 괴물인데…?’
누가 보면 김태현이 도시를 지키는 편이고 스미스가 도시를 파괴하러 온 놈 같았다.
* * *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보고 있던 사람들도 수군거렸지만 스미스는 알지 못했다.
다른 곳에 정신을 팔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스미스 내가 네 팬이긴 한데 꼭 그렇게 겉모습을 바꿔야 하니?
-스미스 저 자식 자꾸 잘생겼다고 칭찬받으니까 일부러 저러는 건가? 외모가 아니라 실력으로 평가받으려고??
-저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스미스, 난 널 응원한다! 내가 네 진심을 몰라봤구나! 우리 에랑스 왕국 못생긴 종족 모임에 널 초대한다!
스미스는 함성과 함께 돌진했다.
아까와 같은 돌진이었지만 그 차원이 다른 돌진이었다.
[고대 제국 백기사의 돌진을 시전합니다!]
한 번 발을 구르자 바닥에 크레이터가 생기고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거의 순간이동과 맞먹는 수준의 돌진이었다.
[고대 제국 백기사의 돌진이 당신의 움직임을 제한합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
평범한 돌진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스킬을 아껴놨던 스미스가 태현을 묶기 위해 꺼낸 것이다.
굶주린 혼돈 때문에 착각하기 쉬웠지만 스미스도 원래 판온에서 손꼽히는 희귀한 전설 직업 랭커.
사기적인 스킬 숫자만 보면 태현보다 많을지 몰랐다.
그러나….
화르르륵!
태현은 애초에 피할 생각이 없었다. 달려드는 스미스를 향해 사디크의 태양을 쏘아 보냈다.
꽝!!!!!!!!!!!!
스미스는 달려들면서 방패로 몸을 가렸다. 사디크의 태양이 작열하면서 주변을 녹여버렸다.
[사디크의 태양이 작열합니다!]
[방패가 빠르게 파괴됩니다!]
[갑옷의 내구도가…]
[HP가…]
[……]
[……]
‘말도 안 되는 공격이다!’
스미스는 전율했다.
솔직히 굶주린 혼돈의 각종 퀘스트를 깨고 힘을 얻었을 때만 해도 스미스는 이제 더 이상 적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태현이 숨겨 놓은 스킬이 많다 하더라도 이 힘을 이길 수는 없을 거라고!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니 오히려 스미스가 막는 입장이었고 태현이 공격하는 입장이었다.
아직 오스턴 왕국에서 전면전이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이 스킬을 썼다는 건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뜻.
대체 이런 스킬들을 몇 개나 더 숨겨놓은 걸까?
‘무섭다!’
스미스의 생각보다 태현에게 남은 스킬은 별로 없었다.
그때 그때 얻은 거 짜내서 던지는 것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러나 스미스가 그걸 알 리 없었다. 스미스는 신음하며 사디크의 태양을 밀어붙였다.
‘미친놈인가?’
[카르바노그가 아키서스의 노예, 아니, 굶주린 혼돈의 돌연변이에 경악합니다!]
카르바노그도 놀랐는지 순간 스미스를 케인이라고 부를 뻔했다.
그만큼 스미스의 생명력은 대단했다.
도시를 불태우고 고대 거인 구룩가도 숨통을 끊어 놓은 화염을 꾸역꾸역 버티면서 회복하고 또 회복하며 전진하고 있었다.
맨몸으로 태양을 가르는 괴물!
-김태현! 지지 마라!
-김태현 선수 힘내세요! 괴물한테 죽지 마요!
-괴물이 아니라 스미스인데요.
-네?! 저게 스미스 선수라고요?!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스미스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굶주린 혼돈의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태양을 가르고 들어오는 스미스의 모습에 태현은 더욱더 화력을 올렸다.
화르륵!
[장비가 완전히 파괴됩니다!]
[굶주린 혼돈의 새 장비가…]
[방패가 파괴됩니다!]
[고대 제국의 방패가 더 이상 열기를 흡수하지 못합니다.]
[산산조각 납니다!]
[……]
[……]
‘어?’
<고대 제국의 방패-고대 제국 퀘스트>
고대 제국을 상징하는 여러 보물 중에서도 방패는 뜻깊은 보물이다.
타락한 자의 손에 들어간 방패가 함부로 굴려지다가 파괴되었으나, 운 좋게도 그 파편이 당신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파편을 모아서 방패를 다시 만들어라!
그렇게 한다면 고대 제국의 뜻이 당신에게 깃들리라!
보상: ?
‘…….’
태현은 불을 줄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도 스미스가 버티고 있는데 여기서 어떻게 불을 줄인단 말인가.
‘스미스 미친놈이 방패를 이런 곳에다가 쓰면 어떡하냐!’
급해서 어쩔 수 없었던 거겠지만, 방패도 많은 놈이 하필이면 고대 제국 유물을 쓰다니.
태현은 혀를 찼다.
“큭… 크윽…. 크아악!”
-포기해라. 스미스. 그냥 로그아웃 한 번 하라고.
“절대…! 그럴 수는…! 복수를…! 이세연 같은 사람은 당신입니다…!”
태현은 뭐라고 대꾸하려다가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세연도.
-이세연 같다는 걸 욕으로 쓰는 건 좀 너무한 것 같은데.
“…….”
스미스는 욕을 할 힘도 없었다. 사디크의 태양을 버티느라 잠시도 집중을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욕했다.
‘진짜 저런 개…!’
[굶주린 혼돈의 어깨 문양이 파괴됩니다!]
[굶주린 혼돈의 가호가 줄어듭니다.]
[굶주린 혼돈의 제물로 인한 가호가…]
[……]
[……]
밖에서 보면 스미스가 그냥 근성으로 버티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 안은 달랐다.
수십 개가 넘는 스킬들을 연속으로 사용하고 쿨타임 돌아오면 다시 사용하는 식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라도 실수하면 죽는다!
[HP가 크게 감소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조각상으로 변합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방어력이 크게…]
[HP가 일시적으로 회복…]
[……]
스미스는 스스로의 몸을 땅에 박아가면서 버텼다. 한동안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이걸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 태양이 사라지는 순간 반드시 김태현의 목을….
팟!
“?”
“???”
[사디크의 화염이 사그라듭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사디크의 진정한 화염을 완성시킨 당신은, 그 힘을 증명하기 위해 대륙을 불태웠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마법 스킬이 매우 크게 오릅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사디크의 권능 스킬들이 추가됩니다!]
[……]
[……]
[……]
어마어마한 메시지창들.
온갖 보상들이 있었지만 태현은 그걸 읽을 시간이 없었다.
지금 눈앞에서 스미스가 충격과 공포 섞인 눈으로 태현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태현의 화염이 풀렸는데, 정작 스미스 본인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니!
스미스는 눈으로 말했다. 진심을 담아서.
-기다려주십시오! 조금만 지나면 움직일 수 있으니 다시 붙어봅시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뒤돌아서 미친 듯이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다들 튀자! 화염 끝났다!”
“…….”
“달, 달려!!!”
태현의 뒤를 따르던 일행들도 허겁지겁 빠져나갔다.
* * *
<에랑스 왕국 대혈전, 판온의 판도가 뒤바뀌나?>
<왕국 서부 지역이 화재로 인해 완전히…>
<스미스 선수의 달라진 모습에 팬들 ‘이럴 수가’>
<대체 왜 이런 충격적인 변신을?>
<굶주린 혼돈 랭커들, 복수 선언… 곧 오스턴 왕국 침공이 있을 예정>
<현재 김태현의 레벨은?>
<랭커 A의 증언에 따르면 현재 김태현은 전설 화염 마법 스킬을 찍은 게 분명하다고 밝혀… ‘사디크 교단의 스킬로는 그 정도 위력이 나오지 않는다’>
원래 남들 패고 다닐 때는 즐거워도 그 다음 뒷감당을 할 때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왕국 서부를 돌면서 네임드 NPC들을 썰어버리고 굶주린 혼돈 영주들을 날려버린 건 좋았지만, 덕분에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아주 독기가 올랐다.
-오스턴 왕국에서 뺏어오면 돼!
-잃은 식량 오스턴 왕국에서 찾아오자!
-잃은 건물 오스턴 왕국에서 찾아오자!
-잃은 세금 오스턴 왕국에서 찾아오자!
기껏 고생고생해서 영지 하나 얻은 다음 ‘이제 나도 길드 동맹처럼 폭정으로 한 재산 차려야지 헤헤’ 하고 있는데 영지가 싹 날아간 굶주린 혼돈 랭커들.
그들은 아주 작정하고 전력을 다 끌고 나왔다.
“김태현 놈은 더 이상 그런 화염을 쓰지 못한다! 잘 생각해 봐라. 김태현이 숨겨놨던 스킬을 몇 개나 썼지? 솔직히 셀 수도 없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제 더 이상 있을 수가 없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뜨거운 분위기와 달리 몇몇 랭커들은 회의적이었다.
‘그 자식은 더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말이다.’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 자체가 놈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거다! 알겠나? 두려워하지 마라!”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이 태현을 상대하기 전에 ‘두려워하지 말고 덤비자!’라고 외쳤지만 그게 먹힌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굶주린 혼돈 랭커들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외쳤다.
그래야 싸움이 되니까!
“굶주린 혼돈의 스킬만 있다면 김태현을 충분히 잡을 수 있다. 두려워하지 말고 공격을 넣어라! 놈도 맞다 보면 약해질 수밖에 없다!”
화르륵-
“으아아악! 김태현 놈의 습격이다! 김태현 놈의 습격이다!”
불꽃 타오르는 소리에 방금까지 외치던 랭커가 아래로 뛰어들더니 바로 강물을 찾아 첨벙첨벙 들어갔다.
“…….”
“…….”
자리에 모인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 분위기가 순간 싸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