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53화
“너희 굶주린 혼돈 놈들아! 모두 반성하고 회개해라!”
“종말이 여기에 찾아왔다!”
열기 때문에 바로 올라오지 못하고 빙 돌아서 뒤늦게 도착한 태현 쪽 파티원들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을 조롱했다.
물론 자기들도 얼마 전까지는 굶주린 혼돈 소속이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굶주린 혼돈을 아직도 믿다니 저런 멍청한!
…하지만 그렇게 조롱하던 태현 쪽 파티원들도 슬슬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할 말이 떨어져서도, 적이 반격해서도 아니었다.
태현이 너무 예상 밖의 초월적인 강함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화염의 해일이 솟아올라 서쪽 지역을 그대로 덮쳐버렸다. 번성했던 리보란스 시가 불타오르며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공격 한 번에 수천만 골드가 넘는 손실을 실시간으로 발생시키는 강력함!
‘내가 같은 편이긴 한데 저래도 되나?’
‘김태현은 우리랑 달리 이미지도 좋은 편이잖아.’
펭귄팬더와 차우차우는 살짝 당황해서 서로 쳐다보았다.
베이징 파이터즈야 더 이상 내려갈 이미지도 없다지만, 태현은 아니었다.
판온에서 이미지 좋은 걸로 치면 손꼽힐 정도 아닌가.
좋은 싫든 리보란스 시는 거대한 대도시였고 플레이어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건축물들이 수두룩했다.
이런 것들이 그냥 파괴되면?
아무리 넘어가려고 해도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고 김태현 저놈이 살림살이 다 불태우네!!
-여러분들 여기 여러분들의 세금을 김태현이 불태우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이미지에 커다란 손상이 갈 텐데도 태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화염을 퍼붓고 있었다.
보통 각오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태현, 정말 굶주린 혼돈과 싸우기 위해서 작정을 했군!’
펭귄팬더는 솔직히 감탄했다.
만약 펭귄팬더가 김태현 입장이었다면 저렇게 행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보는 눈이 많은데 어떻게 저런 짓을 한단 말인가. 이제까지 쌓은 인기가 한순간에 날아갈 수도 있는데.
그런데 태현은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라면 어떤 이유가 있든 간에 한다!
펭귄팬더는 김태현이 가진 강함의 근원을 본 것 같았다.
“우리라도 김태현 편을 들어주자.”
“방송을 보고 계신 여러분. 여러분들은 진실을 알고 계실 겁니다. 다 같이 김태현 선수의 편을….”
-???
-아무도 김태현 욕 안 하는데요.
-무슨 소리 하는 거임?
* * *
<김태현 등장, 리보란스 시 서쪽 대파…>
<김태현이 리보란스 시 완전히 태워먹고 있는데?>
<야 어떤 새끼가 구룩가 잡겠다고 김태현 불렀냐???>
<김태현 씨 제발 진정하고 우리 말로 해결합시다>
<김태현 미친놈아 선량한 에랑스 국민들이 고통받는다 그만둬라>
리보란스 시의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야 당연히 게시판에서 온갖 욕설을 퍼부었지만, 놀랍게도 그 외 사람들은 욕을 하지 않았다.
원래 이미지 좋은 사람은 실수 한 번 하는 순간 이미지가 망쳐지지만….
가끔은 예외도 있는 법이었다.
-너희가 김태현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봐라. 나 같아도 저렇게 싸우겠다.
-굶주린 혼돈은 하늘섬 떨어뜨리고 산맥 무너뜨리면서 판온 전체에 지랄을 하는데 김태현이 도시 하나 태울 수도 있지.
-김태현 정도면 도시 하나 태워도 되지 않나?
-오히려 리보란스 시가 잘못한 거 아닌가? 저항 안 했으면 싸움 빨리 끝났는데 자꾸 저항하니까 김태현이 태운 거잖아.
-너희 때문에 김태현 악명 스탯 올라가면 책임질 거냐?
전 세계에 있는 태현의 팬들이 든든하게 실드를 쳤다.
그리고 꼭 팬들이 아니어도 이번 상황에서 태현을 욕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이제까지 굶주린 혼돈이 저지른 짓들이 너무 대단했던 것이다.
-예전에 길드 동맹 영역에서 김태현이 싸울 때 저렇게 욕하던 놈들 있었는데, 그것처럼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욕하는 거 아닌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김태현 욕하는 거겠네.
-김태현의 잘못은 지금 리보란스 시를 더 빨리 태우지 않는 거지. 왜 남은 곳은 안 태워? 다 태워버려야 함.
-너 이 새끼 어디 사는 누구야?
-응. 리보란스 시는 아니야. 김태현이 곧 리보란스 시 다 태워버릴듯.
이런 상황에도 태현의 인기에 한 줄기 흠집도 나지 않는 게 어이없기도 하고 열받기도 했지만, 지금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게시판에서 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었다.
…그건 지금 김태현이 어디까지 가냐였다.
-리, 리보란스 시에서 끝나겠지? 김태현이 그렇게 무모한 놈이 아니잖아?
-김태현 예전에 길드 동맹이 오스턴 왕국 철권통치할 때 도적 떼 이끌고 오스턴 왕국 횡단질주하지 않았냐?
-그때 길드 동맹 랭커들이 다 잡으려고 달려들었는데 따돌리면서 왕국 박살 내고 다녔었지.
-요즘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뭘 알겠냐? 나 때 길드 동맹이 김태현과 싸운 게 진짜였지. 그때는 정말 지금처럼 간만 보지 않고 서로 화끈하게….
-아니 길드 동맹 출신 놈들 또 들어왔어?
-굶주린 혼돈에 길드 동맹 출신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오스턴 왕국 망해서 기어들어온 놈들이 잘난척은 왜 저렇게 심한 건데?
-다들 닥치라고 좀. 리보란스 시가 중요한데, 리보란스 시에서 어떻게 못 막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지원 좀 가봐. 퀘스트 떴을 거 아니야.
-와 저런 양심없는 새끼. 니가 가라.
-지금 퀘스트 뜨긴 떴는데 그냥 페널티 감수하고 튈까 고민 중이다.
-작정하고 히든스킬 꺼내온 김태현하고 싸우기 vs 굶주린 혼돈한테 페널티 받기 중 뭐가 낫냐?
-이런 패기 없는 겁쟁이 새끼들… 너희들이 이러니까 김태현이 언제나 그걸 이용하는 거야! 너희의 가장 큰 적은 김태현이 아니라 두려움이라고!
-저 뉴비 새끼 뭐라는 거냐?
-니가 김태현하고 싸워본 적 없다는 건 잘 알겠다.
-가장 큰 적은 김태현 맞는데? 내가 아무리 용맹하게 싸워도 김태현한테는 별 소용없더라.
리보란스 시 근처에 있는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김태현이 어디까지 올까?
리보란스 시에서 끝나면 다행이었지만(물론 리보란스 시 플레이어들한테는 아니었다), 김태현이 멈추지 않고 다른 도시로 온다면….
-팀 KL 계정 가서 다른 도시 추천하고 온다.
-나도 팀 KL 계정 가서 다른 도시 추천하고 와야지.
-야 이 미친 자식들아!
몇몇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막을 수 없다면 최소한 다른 도시로라도 보내야 한다!
물론 제정신인 플레이어들이 보기에는 이렇게 추한 모습이 없었다.
-작작해! 싸울 생각이나 하라고!
-꼭 저러는 새끼들은 에랑스 왕국 아니더라. 너 어디냐? 위치부터 까고 말해라.
<속보, 리보란스 시 전소… 김태현 리보란스 시 완벽하게 파괴 완료>
<리보란스 위치한 굶주린 혼돈 군단 전멸!>
<김태현 이동한다!! 이동경로에 있는 놈들 다 죽었다>
<에랑스 왕국 영주 됐다고 까불던 놈들 지금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거 봐라>
<가라 김태현 에랑스 왕국을 멸망시켜라>
-!!!!!
-안, 안 돼!!!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리보란스 시가 박살이 나버렸다.
그렇게 많은 굶주린 혼돈 NPC들이 막지도 못하고 사라졌단 말인가??
고대 거인 구룩가가 이끄는 친위대는 어디 가고 군단은 또 어디 가고….
플레이어들은 믿기 힘들다는 듯이 방송을 켰다. 그러나 방송을 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 거대한 도시가 완전히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잿더미로 변해버린 도시를 등 뒤로 한 채 태현은 여전히 화염을 내뿜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 위압감이 상상을 초월했다.
-김… 김태현이 온다!
-애들아 여기 링크 누르면 김태현 막는 방법 나온다 이 링크 눌러봐라.
└김태현 막는 방법:
그런 건 없다! 애초에 굶주린 혼돈에 가입하지 말았어야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 아닌 새끼들이 여기 게시판에는 왜 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패닉에 빠졌다.
일단 페널티를 얼마나 받든 도망치기 시작한 놈들부터 시작해서 자기가 있는 쪽에는 안 올거라고 애써 믿는 플레이어들까지.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 * *
[고대 거인, 구룩가가 쓰러집니다!]
[리보란스 시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악명이…]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마법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
[……]
‘이거 장난 아니구나!’
태현은 놀라워하고 있었다.
사디크의 진정한 화염.
그 화염의 위력은 태현도 놀라게 만들었다.
하도 볼품없는 퀘스트가 나와서 ‘사디크 이 새끼는 화염을 완성해도 뭐가 없냐’ 하며 한숨을 쉬었는데, 이건….
그야말로 화염의 신이었다.
언령 마법으로 화염을 몇십 번 영창해도 이 정도 위력은 나오지 않았다. 그냥 손 한 번 휘두르면 거대한 화염이 쏘아져 나와서 도시의 구역 하나를 날려 버렸다.
드래곤 브레스를 쿨타임 없이 쏘는 기분.
[도시를 불태웠습니다.]
[사디크가 기뻐합니다.]
[화염이 사그라들기 전에 더욱더 불태우십시오!]
[……]
[……]
악신답게 도시 하나를 태워 먹었는데도 사디크는 만족하지 않았다.
더!
더 태워라!
사디크의 진정한 화염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땔감이 필요한 법!
‘잠깐. 이거 이래도 되나?’
태현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생각해 보니 사디크 같은 악신이 원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이겠는가.
대륙 전체가 활활 타오르는 세상일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일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즉 사디크가 이렇게 부추기는 건 태현이 대륙 전체를 활활 태워버리는 그런 그림을 원해서라는 건데….
‘꽤 사악한 생각이긴 한데 괜찮겠지 아직.’
태현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쿨하게 넘겼다.
악신인데 목표가 대륙 전체를 불태우는 걸 수도 있지!
태현이 적당히 컨트롤하면 됐다.
‘그리고 굶주린 혼돈 놈들이 막아서는데 설마 다 태울 수 있겠나. 많이 태워봤자 에랑스 왕국이겠지.’
달을 향해 쏴야 빗나가도 별이 되듯이 대륙 전체를 태우려고 해야 실패해도 에랑스 왕국을 태우는 법.
태현은 리보란스 시를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고 근처에 있는 굶주린 혼돈 군단을 확인 사살하고 경로를 바꿨다.
불꽃이 꺼지기 전까지 하나라도 더!
‘마법 스킬과 기계공학 스킬, 거기에 경험치까지. 이건 사디크나 신성 스탯보다 더 중요하다.’
사디크 권능 스킬이나 신성 스탯 올라가는 것보다 다른 게 더 탐이 났다.
태현은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
저 앞에 새로운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안 돼!!!!!”
“김태현이 여기로 왔다!!!”
꽝!!!!
태현은 그대로 몸을 부딪혔다. 거대한 화염으로 휩싸인 몸이 성문에 부딪히자 폭발하듯이 성벽 전체로 화염이 타고 흘렀다.
[파르단 시 서쪽 성문이 완전히 녹아내립니다!]
[성벽이 불타오릅니다!]
[화염이 주변으로 퍼져나갑니다!]
[도시의 마법 방어막이 파괴됩니다!]
[도시의 결계가…]
[……]
[……]
“김태현!!! 아무리 굶주린 혼돈이 싫어도 그렇지 너무하지 않냐! 넌 이런 놈이 아니었잖아! 이건 너답지 않아!”
“미친놈아 그걸 설득이라고 하냐? 김태현이 퍽이나 듣겠다.”
“김태현! 제발 옛날처럼 정정당당하게 보스 몬스터만 암살하고 사라져다오! 우리는 가만히 있을 테니까!”
태현은 대답 대신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에게 브레스를 퍼부었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그대로 로그아웃당했다.
그때 파르단 시 허공에서 차원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굶주린 혼돈의 힘으로 차원이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영광스러운 전사가 나타납니다!]
차원의 문을 열고, 스미스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스미스의 친위대와 선수들을 데리고.
“김태현 선….”
태현은 대답 대신 화염을 다짜고짜 퍼부어서 차원의 문 쪽에 있던 놈들을 녹여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