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52화
태현의 뒤를 쫓아오던 일행도 황당한 표정이었다.
‘저것들 왜 김태현 찾냐?’
‘사실 굶주린 혼돈을 탈퇴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군.’
‘오.’
그런 거라면 말이 됐다.
굶주린 혼돈에 한 번 가입하면 탈퇴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당장 탈퇴할 때의 페널티부터 시작해서, 탈퇴하는 순간 굶주린 혼돈 세력에게 공격까지 받을 수 있었다.
에랑스 왕국이 아니라면 그나마 낫지만 왕국 안일 경우에는 아무것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김태현. 우리가 직접 설득해 볼게.”
“우리한테 맡겨봐라.”
-안 될 것 같지만… 해보겠다면 해보던가.
태현의 허락에 랭커들은 뜨겁게 외쳤다.
“여기 김태현이 왔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아, 들어라! 여기 김태현이 왔다! 굶주린 혼돈 같은 사악한 놈 밑에서 더 이상 고통 받고 신음할 필요 없다!”
“아키서스 믿고 광명 찾자!”
랭커들의 뜨거운 외침에 해안가에 있던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도 뜨겁게 반응했다.
“으아악 김태현이다!!”
“비상! 비상!! 김태현이다!!!”
“김태현 놈이 진짜 왔잖아! 이 새끼야! 너 때문이야! 왜 하필 재수 없는 소리를 해가지고!”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겁에 질려서 경보를 울리기 시작했다. 해안가는 물론이고 리보란스 시 전체에 경보가 울려퍼졌다.
-설득해 본다면서?
“…….”
체면을 구긴 랭커들은 분노했다.
“김태현! 저놈들은 절대로 교화될 수 없는 사악하고 더러운 놈들이다. 모조리 로그아웃시켜버려야 해!”
“저 말이 맞아! 이렇게 기회를 줬는데!”
(구)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저런 말을 하니 어이가 없긴 했지만,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긴 했다.
지금 굶주린 혼돈 세력이 점령한 해안도시에 도착한 이상 해야 할 건 하나뿐이었다.
파괴!
* * *
“김태현 저놈은 진짜 등장도 살벌하게 하네.”
“기다리고 있었던 거 아니야?”
도시에 있던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비상 경보에 무기를 들고 해안 쪽으로 뛰었다.
-해안으로 가라!
-해안으로 가라, 모험가 놈들아!
[퀘스트가 추가됩니다!]
[지금 이동하지 않을 경우 페널티…]
[……]
등장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이런 폭풍우 속에서 활활 타오르며 등장하다니.
다른 건 몰라도 충격 하나만큼은 대단했다.
‘그런데 하필 왜 여기에?’
‘진짜 누가 제보한 거 아닌가?’
플레이어들은 진지하게 누군가 제보한 게 아닌가 의심했다.
솔직히 그들도 구룩가 때문에 김태현한테 ‘여기 죽기 직전의 스미스가 붙잡혀 있어요’ 같은 가짜 뉴스를 보내볼까 고민했었으니까.
만약 정말 누군가 제보한 거라면….
‘그 자식부터 죽여야지!’
안 그래도 구룩가 때문에 짜증 나 죽겠는데 김태현까지 상대해야 한다니.
[굶주린 혼돈의 파수병들이 달려옵니다!]
[굶주린 혼돈의 명사수들이…]
[……]
이 때까지만 해도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그렇게까지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도시는 넓고, 해안가는 더 넓었다.
게다가 에랑스 왕국 곳곳에 배치된 굶주린 혼돈의 군단들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거기에 새로 추가된 왕국군 병사들까지 생각해 보면 플레이어들이 직접 김태현을 상대할 일은 많지 않았다.
어지간하면 그들이 손해를 볼 일은 없을 것….
[해안요새가 불타오릅니다!]
[설치된 마법포대가 파괴됩니다!]
[설치된 감시탑이 파괴됩니다.]
[소환된 얼음벽이 그대로 불타오릅니다.]
[화염이 매우 뜨겁습니다!]
[……]
[……]
“??????”
“???????????”
그러나 오늘 나타난 태현은 이제까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상대하고 경험해 왔던 태현과 좀 많이 달랐다.
해안가에 도착한 태현이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화염의 파도가 솟구치더니 해안가에 위치한 시설들을 그대로 쓸어버렸다.
[시설들이 파괴됩니다!]
[굶주린 혼돈의…]
[……]
아무리 다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굶주린 혼돈의 이름으로 지어지고 있던 요새였다.
그런 요새가 무슨 저항 하나 하지 못하고 싸그리 불타버리는 모습에 플레이어들은 경악했다.
“…….”
너무 충격 받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상황.
태현은 쉬지 않고 다음 공격을 이어나갔다.
화르르륵!
허공에 거대한 화염의 구체를 만든 태현은 그대로 날려 버렸다. 지원을 위해 달려오던 굶주린 혼돈의 군단병들이 굉음과 함께 날아갔다.
-저 건방진 필멸자 놈이 강력한 화염 마법을 부린다! 냉기의 힘을 갖고 와라!
[굶주린 혼돈의 냉기 마법사들이…]
[스크롤을 사용합니다! 추가 버프를 받습니다!]
[냉기의 탑이 가동합니다!]
[……]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마법사 NPC들이 달려왔다. 각종 스크롤은 물론이고 건축물 버프까지 받은 마법사들의 공격은 매서웠다.
순식간에 공기가 얼어붙고 살벌한 서리폭풍들이 태현을 후려갈겼다. 폭풍우 덕분에 얼음마법의 위력은 한층 더 거세졌다.
-발칼코르의 얼음폭풍!
-냉기 정수의 비명!
-얼음 동상의 저주!
그러나 태현은 동작 하나로 그 수많은 스킬들을 잘라버렸다.
[화염이 솟구칩니다!]
[화염이 너무나도 뜨겁습니다.]
[모든 냉기 마법들이 취소됩니다!]
“…!”
“김… 김태현이 미쳤다!!”
“모두 피해!”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도 이쯤되자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태현 같은 최상위권 랭커들은 숨겨진 스킬들을 기습처럼 꺼낼 때가 있었다.
한 번 꺼내면 판온 게시판이 폭발할 정도로 그 스킬들은 가치가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랭커들이 괜히 아낄 리 없었다.
태현도 그런 스킬들을 종종 보여준 적 있었지만, 지금 저건….
“후퇴해! 후퇴해!”
-후퇴하지 마라! 놈을 도시에 들여놓지 마! 굶주린 혼돈의 도시에 감히 저런 놈을 들여놓지 마라!
굶주린 혼돈의 백인대장들이 사납게 외치며 달려왔다.
같이 굶주린 혼돈을 섬겨도 명령을 듣지 않으면 가차 없이 베어버리는 그들의 악명은 유명했다.
플레이어들은 움찔했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화르르르륵!
태현이 마치 드래곤 브레스처럼 사방에 화염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화염의 추진력으로 공중으로 올라간 태현은 아예 그냥 닥치는 대로 화염을 난사해댔다.
미쳐 날뛰는 드래곤이 브레스를 뿜어대는 것처럼 해안가가 화염으로 불타기 시작했다.
-종말이다! 종말이 찾아왔다!!
-드래곤이 나타났다!!
[지나칠 정도로 강력한 화염으로 인해 리보란스 NPC들이 패닉에 빠집니다!]
[헛소문이…]
[악명이 오릅니다!]
[적들의 전투력에 페널티가…]
[……]
-놈을 죽여!!
[굶주린 혼돈의 파수병들이 사격을 개시합니다!]
[필멸의…]
[지독한 서리저주의…]
[……]
[……]
온갖 원거리 공격이 태현을 막기 위해 날아갔다.
그러나 그 공격들 중에 태현의 몽에 닿기라도 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공격들이 닿기도 전에 열기에 녹아내렸다.
[필멸의 화살이 녹아내립니다!]
[지독한 서리저주의 화살이…]
[……]
그리고 그 대가는 바로 치러야 했다. 태현은 덤벼든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을 그대로 불을 내뿜어 처리했다.
이제 해안가에서 태현을 막을 자들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태현은 천천히 도시로 향하기 시작했다.
“굶주린 혼돈 놈들아! 이래도 아직도 굶주린 혼돈을 믿을 셈이냐!”
“우리는 너희를 불로 정화하기 위해 왔다!”
랭커들은 신이 나서 그 뒤를 따라가려다가 뒷걸음질 쳤다.
태현이 해안가에 지른 불이 너무 세서 다가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폭풍우가 치는데도 꺼지지 않는 불은 계속해서 타오르며 주변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돌, 돌아서 가자 우리는.”
“그래.”
랭커들은 지금 활활 불타고 있는 태현에게 ‘화력 좀 줄여줄래?’ 같은 말을 하기보다는, 조금 멋없더라도 돌아가는 걸 선택했다.
김태현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
* * *
[리보란스 시 서쪽 성벽이 완전히 녹아내립니다!]
[리보란스 시 서쪽 성문이 완전히…]
[리보란스 시 서쪽 성 마법감시탑이 완전히…]
[……]
[……]
[리보란스 시에…]
[……]
한꺼번에 날아오는 재난문자처럼, 동시에 수십 개가 뜨는 파괴 메시지창은 플레이어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
단순히 태현이 들어와서 몇몇 네임드와 싸우거나 도망칠 줄 알았는데 이건 차원이 다른 공격이었다.
도시 자체를 삼켜버릴 것 같은 공격!
“김태현 이 자식이 작작하지 못해?!”
나름 랭커 중 한 명이 건물의 높은 첨탑으로 올라가서 장착되어 있는 공성용 무기를 가동시켰다.
[최고급 냉기 인챈트를 시전합니다!]
[악마 사냥용 대형 마법 화살이 장전됩니다!]
화르륵!
태현은 쳐다보지도 않고 화염을 날리고 날리고 날렸다. 순식간에 첨탑이 박살 나고 불타올랐다.
[HP가 0이 되어 로그아웃…]
랭커들이 성문이나 성벽을 끼고 대기하고 있다가 덤벼들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암살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파티를 짜고 도시 골목이나 구역에 숨어 있다가 기습을 해도 의미가 없었다.
태현은 그 모든 공격을 단 한 번도 맞아주지 않고 모조리 태우고 태워버렸다.
매복, 기습, 함정, 유도 등 그런 것들은 압도적인 화력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리보란스 시 서쪽 지역을 완전히 태워버리는 대화염!
플레이어들은 분노하거나 이를 갈기보다는 그냥 압도되었다.
화를 낼 기분도 들지 않는 압도적인 힘!
지금 접근하고 있는 태현의 힘이었다.
[고대 거인, 구룩가가 나타납니다!]
[구룩가의 친위대가 공격을 개시합니다!]
“구룩가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뒤늦게 달려나온 구룩가를 보고 놀랐다.
원래라면 구룩가를 찬양하면서 이겨달라고 빌어야 했지만, 플레이어들은 그러진 않았다.
그만큼 구룩가에게 쌓인 원한이 컸던 것이다.
그보다는….
‘누가 이길까?’
‘김태현!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구룩가까지만 불태워주면….’
-이 미치광이 필멸자 놈이 감히 굶주린 혼돈께 바쳐진 도시를 파괴해?
구룩가가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뽑았다.
한 손에는 검.
한 손에는 마법.
일반 거인과는 차원이 다른, 고대 거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지능. 바로 마검사였다.
[굶주린 혼돈의 마법이 시전됩니다!]
[구룩가가…]
그러나 태현은 구룩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공격을 개시했다.
애초에 상대를 기다려 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리보란스 시가 밝아집니다!]
[어둠이 사라집니다!]
폭풍우 치는 밤인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도시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태현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화염이 갑자기 미친 듯이 덩치를 키우며 주변을 비췄던 것이다.
태양이 리보란스 시 위에 강림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구룩가도 당황해서 무기를 바로 휘두르지 않고 멈칫했다. 태현은 그대로 구룩가에게 태양을 날려 버렸다.
-!!!!!!!!!
구룩가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사디크의 가장 지독한 화염을 정통으로 맞은 이상, 아무리 강력한 고대 거인의 혈통이라 하더라도 버티기 쉽지 않았다.
[사디크의 화염이 구룩가를 불태우기 시작합니다!]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뭐하는 거냐! 구룩가 님을 도와라!
“아. 예!”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별로 돕고 싶지 않았지만 돕는 시늉을 했다. 온갖 물 마법들과 회복 마법들이 날아갔다.
보고 있던 사람들은 불이 곧 꺼질 거라고 생각했다.
사디크의 화염이라고 해봤자, 이제까지 봤던 경험에 따르면 그렇게 강하지도 않….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구룩가를 감싼 화염이 더욱더 강해집니다!]
태현은 구룩가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미 사냥이 끝났다는 오만한 태도였다.
“어… 어어.”
“저… 저거…!”
리보란스 시 서쪽에서 거대한 파도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사라졌던 바닷물이 다시 차올라서 파도를 만들어낸 게 아니었다.
그건 거대한 화염의 해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