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751화 (1,750/1,826)

§ 나는 될놈이다 1751화

사디크 퀘스트를 모르는 랭커들도,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뭐가 벌어지고 있는 거지?’

‘김태현이 퀘스트를 깬 건가?’

랭커 정도 되면 다들 진행 중인 퀘스트가 네다섯 개 정도는 기본으로 있었다.

받아는 놨는데 깰 가능성이 없어 보여서 미뤄둔 퀘스트까지 합한다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많아졌다.

당연히 이런 미궁을 공략할 때부터 ‘김태현이 미궁 관련된 퀘스트가 하나쯤은 있겠구나’ 하고 다들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김… 김태현! 괜찮은 거 맞냐?”

태현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가끔 화염 마법 전문 랭커나 화염 스킬을 전문으로 익힌 다른 직업들이 저런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긴 했지만, 김태현 정도는 아니었다.

저건 화염 스킬로 인한 버프가 아니라 그냥 불타고 있는 것 같은데…?

-괜찮다.

태현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게 거칠게 으르렁대며 울리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마치 악신 교단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목소리 같이 들렸다.

랭커들은 살짝 긴장했다.

“김태현, 정말 괜찮은 거 맞냐?”

“혹시 뭐… 누군가 네 몸을 강제로 뺏은 상태면….”

-아니라니까.

정말로 아니었다.

단지 <사디크의 진정한 화염> 각성이 시작되었을 뿐.

사실 태현은 <사디크의 진정한 화염>이 완성되면 좀 더 극적인 변화가 있을 줄 알았다.

최고급 화염 마법 스킬이 몇 단계오르거나, 새로운 칭호가 생기거나, 신성 스탯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거나, 레벨 업을 하거나, 하다못해 사디크 교단의 남은 재산 같은 걸 준다거나….

그런데 그런 건 없었다.

그저 심플한 메시지창 몇 개뿐.

[당신은 <사디크의 진정한 화염>이 되었습니다.]

[최대한 많은 것을 불태우십시오.]

<사디크의 진정한 화염-사디크 교단 퀘스트>

당신은 사디크의 진정한 화염이 되었습니다.

최대한 많은 것을 불태우십시오.

보상: ?

‘음… 내가 사악한 악신 교단에게 속은 건가?’

[카르바노그가 하여간 악신 놈들은 이래서 안 된다고 화를 냅니다.]

잊고 있었지만 생각해 보니 사디크 교단은 악신 교단이었다.

그런 놈들 퀘스트가 쓰레기 같은 것도 어쩔 수 없을지 몰랐다.

기껏 화염을 완성시켰는데 보상도 이렇게 안 주고 흐지부지시키는 게 당연한 걸지도….

[당신은 <사디크의 진정한 화염>이 되었습니다.]

[빨리 불태우지 않으면 페널티가 있습니다.]

‘아니 진짜 쓰레기 같은 보상이군.’

태현은 울컥했다.

안 하면 페널티까지 있어?

‘어쩔 수 없지….’

어쩌겠는가. 퀘스트가 하라는데.

-다들 움직이자. 너, 불꽃 수호자 괴수도 따라와라.

“어디로 가려고?”

-당연히 중앙 대륙이지.

기왕 태워야 한다면 자기 물건보다는 남의 물건을 태우는 게 좋았다.

그 남이 좀 재수없는 적이라면 더더욱 좋으리라!

* * *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고대 거인, 구룩가는 에랑스 왕국에서 악명이 높았다.

원래 굶주린 혼돈 세력에 소속된 NPC들 중에 선하고 정의로운 인물이 없긴 했지만 구룩가는 한층 더 심했다.

난폭하고 사나운 고대 거인 종족.

거기에 다른 거인들보다 한층 더 오만한 자부심까지.

그런 구룩가는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플레이어들이 실패하면 그냥 먹어치웠다.

[HP가 0이 되어 로그아웃…]

“으아악 미친놈이다!”

-멍청한 모험가 놈들아! 제대로 일을 하란 말이다. 너희 모험가 놈들은 왜 그렇게 지능이 낮단 말이냐! 아무리 거인보다 멍청할 수밖에 없어도 그렇지! 노력을 하지 않으면 너희들의 지능은 그대로일 거다!

고대 거인 구룩가 때문에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고대 거인 구룩가 이 미친놈한테 당하신 분?>

<고대 거인 구룩가 혹시 암살하면 안 되나요?>

<굶주린 혼돈 네임드 NPC 팀킬하면 페널티 클까요?>

<구룩가 같이 죽이러 가실 분…>

<구룩가 지금 이동 중. 구룩가 경로에 있는 놈들 알아서 피해라.>

원정대 게시판이 아니라 굶주린 혼돈 게시판이었는데도, 진지하게 구룩가를 죽일 방법이 없나로 플레이어들이 토론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원한을 쌓은 것이다.

멋대로 퀘스트를 내고 퀘스트를 못 깨면 잡아먹어버리는데 원한이 안 쌓일 수가 있나.

심지어 구룩가는 다른 굶주린 혼돈 네임드 NPC처럼 왕국 밖을 돌거나, 자기 구역에 처박혀 있지도 않았다.

에랑스 왕국 안을 돌아다니면서 플레이어들한테 이런저런 참견을 하는 것이다.

<현명한 거인의 명령-굶주린 혼돈 퀘스트>

위대하고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현명한 고대 거인 구룩가가 당신에게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내일까지 해안가에 설치된 감시요새를 완성하십시오.

반란군을 감시하는 이 요새는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좋은 방법이 될 겁니다!

실패할 경우 당신은 잡아먹힐 수 있습니다.

보상: ?

갑자기 나타나서 절대 깰 수 없는 난이도의 퀘스트를 던져주고 가는 구룩가는 사실상 저승사자나 마찬가지였다.

한 지역에서 만족스럽게 모험가들을 훈련시킨 구룩가는 또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 이동했다.

“으아아악!!”

“왜, 왜! 무슨 일이야!! 설마 김태현 놈 왔냐?!”

“구룩가다! 구룩가가 우리 쪽으로 왔어!!”

“크아아아악! 안 돼!!”

왕국의 서쪽 해안도시, 리보란스에 있던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절망했다.

“차라리 김태현이 낫지 왜 하필 구룩가가….”

“누가 리보란스가 좋댔어?? 좋다고 한 새끼 나와!”

“네놈 때문에 망하게 생겼잖아!”

물 좋고 공기 좋고 경치 좋아서 많은 추천을 받았던 리보란스였지만, 구룩가의 등장으로 모든 게 바뀌었다.

플레이어들은 서로 멱살을 잡고 분노를 토해냈다.

“친구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나는 리보란스를 떠나서 도망칠 거야!”

“그… 그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아깝지도 않아?”

플레이어 한 명이 급히 짐을 싸서 광장을 빠져나가려고 하자 다른 사람들이 말리려고 했다.

그러나 몇몇 고렙 플레이어들은 말리는 대신 같이 짐을 쌌다.

“전혀 심하지 않다!”

“너희들도 지금 빨리 준비하는 게 나을 거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여기서 쌓은 게 아깝다고 머뭇거리는 순간 이제 구룩가의 퀘스트를 받게 되고 잡아먹히게 되는 것이다.

그 때부터는 제대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구룩가가 떠나기 전까지 그냥 계속 페널티만 받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상 길드 동맹보다 악독한 새끼!

“빨리 튀….”

[고대 거인, 구룩가가 도시에 도착합니다.]

[구룩가가 부하들을 풀어서 도시로 통하는 길목에 감시병을 배치합니다.]

[도시를 멋대로 이탈할 수 없습니다!]

[이탈하다 발각될 경우 강력한 페널티가 부가됩니다!]

[……]

[……]

“…….”

“…….”

구룩가는 괜히 스스로를 현명한 거인이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이 도망치는 걸 보고 빠르게 개선점을 찾아낸 것이다.

도망치려던 플레이어들은 메시지창을 보고 울먹였다.

“구룩가 이 미친 새끼야…!”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구룩가를 잡자고!”

“저번에 시도했다가 박살 난 걸 보고서도 그런 소리를 해?”

궁지에 몰린 플레이어들 몇몇이 파티를 짜서 구룩가 레이드를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 결과는 처참했다.

구룩가는 파티를 박살 낸 것도 모자라서 남은 플레이어들한테 연대책임을 물렸다.

-우린 왜?!

-구룩가 님 저희는 잘못이 없….

-너희들이 막았다면 이런 놈들이 안 나왔을 것 아닌가!

“모든 말에 다 부정인가? 그러면 어떻게 하자고!”

“…참아야지 뭘 어떡해.”

“…….”

방금까지만 해도 활기찼던 광장의 분위기가 무슨 장례식장처럼 변했다.

굶주린 혼돈의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구룩가가 오기를 기다렸다.

-다 모여 있었군. 잘 했다. 모험가들아. 너희들의 머리가 조금씩 좋아지는 걸 보면 나 또한 기쁘다.

“…….”

“…….”

-무례한 놈들! 왜 대답을 안 하는 거냐!

“아, 아닙니다! 듣고 있었습니다!”

-네놈들이 그렇게 무례하고 멍청하니까 내가 이렇게 지시를 많이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너희들이 알아서 좀 하지는 못하고!

‘진짜 죽이고 싶다.’

‘김태현한테 구룩가 위치 알려주면 안 되냐?’

‘그랬다가 우리까지 같이 죽으면 어쩌려고… 그리고 김태현이 구룩가 하나 잡아주려고 여기 오겠냐?’

구룩가는 모험가들을 보며 외쳤다.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너희들에게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곳곳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대체 또 무슨 개같은 퀘스트를 주려고!

-저 해안가를 봐라. 무슨 생각이 드나?

“넓… 넓다? 아름답다?”

-멍청한 놈들 같으니. 저 해안가로 적들이 침입하기 좋아 보이지 않나!

“…그… 그럴까요? 지금 바닷물도 말랐는데 저기로 오는 놈들이 있을까요?”

구룩가는 말을 꺼낸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를 붙잡아서 삼켜버렸다.

남은 플레이어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아, 그렇구나! 구룩가 님이 온다면 오는 거구나!

“오… 오겠군요.”

“올 것 같습니다.”

-그래. 저 해안가에 요새를 지어라. 적들이 오지 못하도록. 요즘 해안가의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바닷물이 급격하게 증발되어서 마른 이후 에랑스 왕국에는 살벌한 폭풍이 종종 찾아오곤 했다.

리보란스는 운 좋게 피해갔지만 태풍을 만난 다른 도시들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다.

구룩가의 말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직접 요새를 만들어야 해서 그렇지!

[퀘스트가 추가됩니다!]

[제한 시간 내에 실패할 경우…]

[……]

[……]

‘그냥 폭풍이나 오면 좋겠군.’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처량한 표정으로 연장을 들고 해안가로 향했다.

그때였다.

쿠르르르릉!

해안가 너머에서 폭풍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판온의 기후 변화로 폭풍이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

[……]

“진, 진짜 왔잖아?”

“폭풍이다! 다 쓸어버려라!”

“지금 좋아할 때냐?!”

속이야 시원했지만 몇몇 고렙 플레이어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폭풍이 이렇게 찾아오면 건축 퀘스트는 진행이 불가능한 것이다.

“구룩가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늦춰주지 않을까?”

“그럴 것 같냐? 그럴 놈이었으면 이런 상황이 나오지도 않았겠지.”

플레이어들의 예상대로 구룩가는 단호하게 외쳤다.

-폭풍이 몰려와도 달라지는 건 없다. 세상이 무너지더라도 내 명령은 변하지 않는다. 해안가에 요새를 세워라!

“…….”

“세상이 무너지면 좋겠군.”

“야. 김태현한테 누가 진지하게 제보 좀 해봐. 구룩가 저놈 잡아달라고.”

쿠르릉, 쿠릉! 쿠르릉!

멀리서 폭풍이 더욱더 거세게 밀려왔다.

[토대가 파괴됩니다!]

[고급 목재의 내구도가 크게…]

[……]

아니나 다를까 이제 좀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요새가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요새만 산산조각 나면 괜찮은데 모은 재료들까지 박살이 나자 플레이어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제발 구룩가도 같이 좀 죽어라!’

쿠르릉! 쿠릉! 쿠르릉!

바닷물이 줄어든 탓에 원래 물이 차있어야 하는 곳이 텅 비어 있었다.

그곳에 정체불명의 일행이 등장했다.

플레이어들은 폭풍이 쏟아지는 탓에 보지 못했지만, 그 일행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폭풍 때문에 비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지금 다가오는 일행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닿기도 전에 증발해서 수증기가 되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태현. 저기 적들이다.”

-그래. 보인다.

태현은 활활 타오르며 해안가의 적들을 쳐다보았다.

‘이 날씨에 요새를? 왜지?’

희한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으아악! 김태현! 김태현은 왜 안 오냐!”

“????”

너희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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