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50화
랭커들은 당황했다.
미궁을 무너뜨린다니.
그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
“아. 미궁을 공략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담아서 비유한 그런 건가?”
“역시… 김태현.”
“아니. 무너뜨린다고.”
“왜…?”
랭커들은 이유를 물으면서도 그 대답을 듣기 무서워졌다.
대체 왜 무너뜨리려는 거지?
“저걸 지키는 놈이 생각보다 강해 보이지 않나?”
“강해 보인다.”
“그러니까 미궁을 무너뜨려야지.”
“…????”
랭커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사이에 뭔가 너무 생략된 거 아닌가?
‘네가 물어봐.’
‘싫다. 네가 물어봐라.’
랭커들은 더 묻고 싶지만, 태현의 표정이 ‘이 정도 설명해 줬으면 초보자도 아니고 알아들었겠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다들 이해했지? 설마 이해 못 한 사람 있나?”
“물론 이해했다.”
“김태현. 우릴 뭘로 보는 건가? 당연히 이해했지.”
태현의 질문에 랭커들은 자신도 모르게 허세를 부렸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들 이해했다니 다행이군.”
“…….”
“…….”
랭커들은 미궁의 벽을 부수기 시작하는 태현을 보며 고민에 잠겼다.
…보스 몬스터가 강하다고 미궁을 무너뜨리는 게 과연 맞는 건가??
* * *
[미궁의 벽이 해체됩니다!]
[장치가 약해집니다.]
[미궁의 구조가…]
[……]
[현재 기계공학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각종 건물들을 파괴한 적이 있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칭호…]
[……]
태현 정도 되는 대장장이는 기본적으로 철거 능력이 뛰어난 편이었다.
그러나 철거 능력이 조금 뛰어나다고 이런 미궁 같은 대건축물을 쉽게 해체할 수는 없는 법.
하지만 태현은 망설임 없이 주변의 벽들을 해체해 나갔다.
태현은 철거 능력이 그냥 뛰어난 수준이 아니었다.
건물 철거를 위해 태어난, 해체의 신!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제까지 부수고 박살 내고 다녔던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완벽한 솜씨에 감탄합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군. 해체하는 것만 보면 우리보다 위다!
마검에 갇힌 기계공학자들이 감탄할 정도로 태현의 해체는 빠르고 정확했다.
이제까지 부수고 다닌 것들과 그걸로 인해 생긴 칭호. 거기에 전설 직전의 기계공학 스킬까지….
[미궁의 벽이 해체됩니다.]
[미궁의 구조가 점점 더 약화됩니다!]
[무너질 수 있습니다!]
[계속하실 경우…]
[……]
‘거의 다 됐군.’
랭커들은 아직도 헷갈려 하고 있었지만 태현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태현 일행은 여기까지 오는데도 상당한 희생을 치뤄야 했다.
그렇게 두들겨 맞았는데도 다들 의욕적인 건 기대하지 않았던 놀라운 일이지만, 세상일이란 의욕만으로 굴러가진 않는 법.
랭커들의 장비부터 시작해서 스킬들까지 지금 소모된 게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보스 몬스터와 일대일로 정당하게 맞붙을 정도로 태현은 무모하지 않았다.
‘미궁 무너뜨려서 데미지 주고, 공간 열어서 밖에 대기하고 있던 지원군들 끌어들인다.’
선상 요새부터 시작해서 원시의 섬 짐승들까지 동원한다면 훨씬 더 공략이 쉬워지리라.
[미궁이 조금씩 흔들리고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사디크 미궁의 불꽃 수호자가 이변을 눈치챕니다!]
정지한 것처럼 가만히 있었던 화염의 괴수가 번쩍 일어섰다.
미궁이 흔들리고 삐걱거리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놈이 온다!”
태현이 망치를 휘두르는 동안 앞에서 진형을 짜고 대기하고 있던 랭커들은 바로 공격을 개시했다.
언제라도 레이드가 시작될지 몰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스크롤이 찢어지고 아껴뒀던 소모 아이템들이 사용되었다.
순식간에 통로는 얼어붙을 정도로 온도가 내려갔다. 온갖 냉기 스킬들이 터져나온 덕분에 주변의 온도가 내려간 것이다.
-■ ■■■ ■■!
불꽃 수호자 괴수는 양팔로 날아오는 공격을 막으며 신음했다. 얼음이 작렬하고 터져나갈 때마다 울부짖는 모습에 랭커들은 데미지가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통한다! 할 만하겠어!”
“계속 공격 퍼부어!”
-■ ■■■ ■■■ ■■■■!
망치질을 계속하고 있던 태현은 상대의 말을 듣고 멈칫했다.
[화술 스킬이 높습니다!]
[만물의 소리를 들어라 스킬을…]
[사디크의 후계자…]
[……]
[……]
[불꽃 수호자 괴수의 말을 이해합니다!]
-왜 그러는 거냐고 물었잖나!
“…?”
태현은 벽을 두드리던 손을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지금 사디크 교단과 적대적인 사이도 아니고….’
[카르바노그가 정확히 따지면 적대적인 사이는 맞다고 말합니다.]
‘내가 지금 사디크와 적대적인 사이도 아니고, 허락을 안 받고 들어온 것도 아니고.’
잘 생각해 보니 태현이 지금 이 미궁에서 사디크의 불꽃 수호자 괴수와 싸울 이유가 없었다.
정확히 신분을 따져보면 태현은 후계자였지 침입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즉 지금 불꽃 수호자 괴수는….
‘후계자라고 생각해서 반기려고 했는데 공격 받고 있는 건가?’
[카르바노그가 상대가 아무리 사디크의 괴수라고 하더라도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그러게. 어쩌다 이런 오해가 생긴 걸까?’
태현은 의아해했다.
왜 이런 오해가 생긴 거지?
매번 사디크 교단만 만나면 싸우고 공격하고 박살 내고 하다 보니 습관적으로 사디크 미궁 안에 있는 괴수와 대화가 안 통할 거라고 생각한 탓이 컸다.
미궁 안에서 계속 함정이 나온 것도 그렇고….
‘그렇군. 결국 사디크 때문인가.’
[카르바노그가 제대로 일처리를 못한 사디크 때문이라고 동의합니다.]
“다들 진정해라!”
태현은 일단 파티원들을 말리려고 했다. 사디크의 불꽃 수호자 괴수가 불쌍했던 것이다.
일처리를 허술하게 한 사디크 때문에 이렇게 모험가들한테 공격받고 있다니.
“김태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를 믿어도 된다!”
“제대로 사이클이 잡혔어! 이대로만 진행하면 잡을 수 있다!”
랭커들은 자신만만했다.
상대가 반항하지 않고 웅크린 채 맞기만 하고 있는 걸 다르게 해석한 것이다.
승리의 신호!
“아니. 상대가 그냥 참고 있는 거다. 대화 가능하니까 공격 그만해라.”
“이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김태현. 잡을 수 있어! 잡을 수 있다고!”
랭커 한 명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외쳤다.
그러자 불꽃 수호자 괴수가 드디어 열이 받았는지 번개처럼 달려들어서 랭커를 그대로 양손으로 붙잡아버렸다.
[불꽃 수호자 괴수가 당신을 붙잡습니다!]
[저항에 실패합니다!]
[화염이 당신의 장비를 불태웁니다!]
[내구도가 빠르게…]
[체력이 빠르게…]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나!
불꽃 수호자 괴수는 단단히 화난 목소리로 랭커를 위아래로 흔든 다음에 옆으로 집어 던졌다.
콰콰콰콰쾅!
불타는 유성이 미궁의 벽을 몇 개나 뚫고 날아갔다.
수비고 회피고 뭐고, 그냥 무시하고 뚫어버리는 살벌한 공격력에 랭커들은 얼어붙었다.
이제까지 퍼부은 공격 때문에 발이 둔해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사디크의 후계자인 줄 알았는데! 이 나쁜 모험가 놈들!
불꽃 수호자 괴수는 울부짖으며 다시 랭커를 붙잡았다.
도적 직업을 가져서 회피력 하나만 놓고 보면 여기서 손꼽히는 랭커였지만, 불꽃 수호자 괴수를 따돌리진 못했다.
“잠깐! 그만둬라!”
-이 나쁜 모험가 놈!
“사디크의 불꽃 수호자 괴수! 내가 대신 사과하겠다! 여기 있는 놈들이 멍청해서 실수를 저질렀다. 난 널 공격할 생각이 없었다!”
“…….”
“…….”
랭커들은 살짝 상처받았다.
자기도 같이 잡으려고 해놓고…!
-진짜인가 그게?
불꽃 수호자 괴수는 랭커 하나를 꽉 붙잡은 채로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처음에 두들겨 맞은 탓에 불신이 커진 것이다.
“그래. 여기 있는 놈들은 사디크의 신앙을 몰라서 좀 실수가 많고 무식한 편이지.”
-그런가….
“김태현, 대화하는 건 좋은데제발나좀살려주고대화하면안되냐!?”
붙잡혀 있던 도적 랭커의 목소리가 다급해지고 빨라졌다. HP가 위험해질 정도로 줄어들었던 것이다.
불꽃 수호자 괴수는 도적 랭커를 내려놓고 태현을 쳐다보았다.
-사디크의 후계자를 기다리고 있긴 했지만, 나는 너를 완전히 믿기 힘들다. 또 나를 방심시키고 때릴 수도 있지 않나!
“정말 오해다. 내가 왜 그러겠냐? 사디크의 후계자인데?”
-그러면 날 멋대로 때린 저놈들한테 벌을 내려다오!
불꽃 수호자 괴수는 생각보다 속이 좁았다. 차우차우를 가리키며 태현에게 이르듯이 외쳤다.
차우차우는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나, 나만 공격한 게 아니잖아!”
“음… 보스 몬스터를 설득할 수 있다면 차우차우가 벌을 받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그러게 말이야.”
“…….”
방금까지 온갖 시련을 같이 통과해서 쌓인 우정은 순식간에 깨졌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차우차우 한 명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 솔직히 남는 장사였다.
울컥한 차우차우였지만 그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차우차우는 생각 끝에 태현에게 외쳤다. 태현은 고민 중이었는지 말이 없었다.
“김태현! 나를 처벌해라!”
“차우차우! 조금 더 생각해 봐라! 너무 성급하게….”
같은 팀 선수인 펭귄팬더가 차우차우를 말리려고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랭커들이 펭귄팬더를 말리려고 했다.
“펭귄팬더! 너야말로 조금 더 생각해 봐라!”
“너무 성급하게 말리지 마!”
“…….”
차우차우는 다시 울컥해서 하던 말을 취소할 뻔했다.
하지만 지금 할 말은 해야 했다.
“김태현. 우리는 지금 굶주린 혼돈과 싸우기 위한 퀘스트를 하고 있다. 이런 보스 몬스터와 싸우느라 힘을 낭비할 수는 없어! 네가 날 벌하고 싶지 않아서 고민하고 있는 건 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너한테 받은 게 있으니 날 벌해도 좋다!”
‘뭔 소리지?’
태현은 차우차우의 말에 살짝 당황했다.
태현은 지금 차우차우한테 무슨 벌을 줘야 불꽃 수호자 괴수가 만족할까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키서스 형에 처할까, 아니면 다른 형에 처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우차우가 ‘난 괜찮아! 김태현! 네 마음대로 해라!’이러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원래 마음대로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래. 고맙다.”
태현은 검을 뽑으려다가 집어넣고 다시 폭탄을 꺼냈다가 집어넣고 맨손으로 차우차우에게 다가갔다.
그 동작들에 차우차우는 갑자기 현실감 있는 공포가 몰려왔다.
…대체 뭘 하려고 검, 폭탄을 집어넣고 맨손을…?
-그만둬라! 그만둬라!
“??”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불꽃 수호자 괴수가 끼어들어서 말렸다.
-처벌해 주려는 그 진심만으로 충분하다! 사디크를 섬기는 자들을 죽이고 싶진 않다!
“우리는 그런데 사디크가 아니라 아ㅋ….”
“닥쳐. 이 자식아.”
눈치 없는 랭커 한 명이 입을 열었다가 주변에서 구박을 받았다.
분위기 파악해라!
“고맙다. 사디크의 불꽃 수호자. 우리의 진심을 이해해 주다니.”
-사디크의 불꽃은 크고 너그럽다. 나 또한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
“?”
“???”
[?????]
태현과 랭커들, 그리고 카르바노그까지 ‘그런가?’싶었지만, 아무도 뭐라고 하지 못했다.
사디크의 불꽃 수호자 괴수가 다시 삐져서 난동을 피울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화르륵!
사디크의 불꽃 수호자 괴수가 옆으로 비켜서자, 안에서 타오르고 있던 검은 불꽃이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태현에게 날아들었다.
[심해의 불꽃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진정한 화염>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사디크의 진정한 화염> 각성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