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47화
“저건 사디크 교단의 미궁이다.”
“사디크!”
“…가 뭐였더라?”
“…….”
태현은 랭커 한 명의 반응에 괜히 화가 났다.
다른 랭커가 대신 설명에 나섰다.
“그 예전에 쫄딱 망한 악신 교단 하나 있어.”
“아… 아! 그 교단!”
“완전히 망했던 그 교단 말하는 거지?”
“사디크 교단이 지금은 망했을지 몰라도 나름 근본이 있는 교단이다.”
“???”
태현이 갑자기 입을 열자 다른 랭커들은 당황했다.
“판온에서 가장 강력한 화염을 다루는 교단이고, 골짜기에서도 두 번째로 인기 좋은 교단이다. 내가 쓰는 화염 스킬도 사디크 교단의 스킬이다. 알겠나? 다시는 사디크 교단을 무시하지 마라.”
“우… 우리가 잘못했어.”
“미안합니다.”
랭커들은 왠지 모르게 사과했다.
그러고는 뒤늦게 깨달았다.
‘…잠깐. 사디크 교단 멸망시킨 건 너였잖아??’
[사디크 교단의 잊혀진 미궁에 입장합니다.]
* * *
[지독한 열기가 당신들을 감쌉니다!]
[체력이 낮습니다. HP가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
[……]
“으으윽!”
“이게 뭐야?!”
사디크 교단을 얕보고 있던 랭커들은 미궁에 입장하자마자 경악했다.
어지간한 용암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열기가 그들을 덮친 것이다.
태현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아니, 사디크 교단이 이 정도 능력이 있는 교단이었나?’
[카르바노그가 아까 무시하지 말라고….]
[기계공학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미궁의 구조를 일부 이해합니다!]
[미궁의 기계공학 장치가 화염의 힘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후후. 보았느냐? 이게 바로 우리 기계공학자의 힘이다.
-단순한 화염의 힘을 몇십, 몇백 배 증폭시키는 것!
마검 안에 갇힌 기계공학자들이 기쁜 듯 떠들어댔다.
이렇게 그들이 남긴 유산이 있는 걸 보니 기쁘기 그지없는 것이다.
탕탕탕탕!
태현은 고대의 망치를 꺼내서 바로 벽에 있는 기계공학 장치를 뜯어내 버렸다.
[기계공학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미궁의 기계공학 장치를 파괴하는 데에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다른 장치를 건드리지 않고 장치를 성공적으로 파괴했습니다. 역효과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
-야!! 그걸 파괴하면 어떻게 하느냐!
마검 안에 갇힌 기계공학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나름 제국의 문화유산 같은 건데!
“지금 내버려 뒀다가는 플레이어들이 익게 생겼는데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건… 그렇지만….
태현은 미궁의 벽에 있는 기계공학 장치를 뜯을 수 있는 대로 뜯어냈다.
화염의 힘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랭커들은 허덕였다.
[갑옷이 너무 무겁습니다!]
[추가 피해를 입습니다.]
[갑옷이 너무 덥습니다!]
[갑옷이 금속….]
[……]
[……]
“크아악!”
“뭐 이런 곳이…!”
랭커들은 입고 있던 갑옷을 벗고 배낭에서 물을 꺼내서 마시려고 했다.
[열기로 인해 빠르게 물이 마릅니다!]
[갈증이 심해집니다!]
[……]
[……]
그러나 이 미궁은 그런 휴식도 쉬운 곳이 아니었다. 무슨 행동을 해도 페널티가 들어왔다.
“잠깐, 김태현. 넌 왜 멀쩡하지?”
“방법을 알고 있다면 공유해줘!”
“…난 사디크 권능 스킬을 갖고 있잖나.”
“…….”
“…….”
랭커들은 경악했다.
미궁에 들어오기 전에는 개소리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사디크 교단의 스킬이 쓸모가 있었던 것이다.
‘김태현 놈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니…!’
“화염 저항 스크롤로도 완전히 대응이 안 된다.”
“나도 지금 화염 전문 장비로 갈아입었는데… 버티기가….”
랭커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미궁 앞으로 나아갔다. 태현은 그런 그들을 격려했다.
“자! 여기 마실 걸 줄 테니 버텨라. 다들 랭커니까 버틸 수 있지?”
“…….”
랭커들은 태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원시의 섬에서 탈출할 때만 해도 ‘크흑 평생 따라가야지’ 하면서 감동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까 ‘내가 왜 그랬더라?’ 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런 사악한 자식을 평생 따라가야 하나??
“빨리 가라. 이거나 마시고.”
랭커들이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재촉했다.
랭커쯤 됐으면 자기 체력 관리는 자기가 알아서 해야 했던 것이다.
꿀꺽꿀꺽-
랭커들은 일단 태현이 주는 음료를 받아서 마셨다. 워낙 더워서 뭐라도 마시긴 해야 했다.
“푸흡!”
[<아키서스의 차가운 얼음물>을 마십니다!]
[지구력이 회복됩니다!]
[일시적으로 더위가….]
[……]
[……]
효과 때문에 뿜은 게 아니었다. 효과는 오히려 좋았다.
그러나 맛이….
“진흙하고 오줌을 섞은 맛이잖아!”
“큭… 진짜… 잠깐. 너 근데 그런 맛인 건 어떻게 아냐?”
“이거 괴식 요리 아니야!”
가끔 나쁜 사람들이 ‘판온에서 흉악한 것들은 대체로 골짜기에서 나온다’고 루머를 퍼뜨리긴 했지만(아마 길드 동맹일 것이다), 그게 완전히 일리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일단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골짜기에서 시작한 게 맞았다.
괴식 요리사들도 골짜기에서 많이 나왔고….
기계공학 대장장이들과 달리 괴식 요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퍼졌다.
이제 어느 도시에서든 괴식 요리를 전문으로 공부하는 요리사 플레이어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이번 퀘스트에 목숨을 건다. 괴식 요리 사러 가자.
-이렇게까지 해서 판온을 해야 해? 이렇게까지 해서???
보통 돈 없고 절박하고 성능에 미친 플레이어들이나 혹은 벌칙이 필요한 플레이어들이 자주 찾아오곤 했다.
그걸 이 레벨에, 이런 심해 지하 미궁에서 먹게 될 줄은 몰랐던 랭커들은 캑캑댔다.
“이런 걸 주면 어떡해!”
“괴식 요리가 아니라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인데.”
“그게 그거지…!”
랭커들은 투덜거리면서 배낭에 있던 다른 마실 걸 꺼냈다.
그런데 유리병 안에 들어 있던 음료들이 다 비어 있었다.
“…….”
[열기로 인해….]
[들어온 지 시간이 지났습니다. 사디크의 열기가 더욱더 강해집니다!]
[……]
“아니, 이런 사디크 미친놈이!”
분노한 랭커들은 들고 있던 유리병을 미궁 벽에 집어 던졌다.
“교단도 망한 놈이 이렇게 꼬장을 부려도 되는 거야?!”
“작작 해! 망한 놈 주제에!”
사디크가 들었다면 피눈물을 흘렸을 소리를, 랭커들은 미궁에서 신나게 퍼부었다.
‘저러다가 벌 받는 건 아니겠지?’
물론 사디크가 대륙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긴 했지만 저런 불경한 짓은….
쿠르르릉!
미궁의 앞쪽에서 묵직하게 굴러오는 소리가 났다.
침입자를 막기 위해 나온 적이라고 생각한 랭커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건 불타는 화염의 덩어리였다.
미궁의 통로를 꽉 채우고 달려오는!
“함정이 생각보다 시시한데?”
“그러게.”
랭커들은 함정의 모습에 김이 식은 표정이었다.
랭커쯤 됐으면 공략한 던전이 수백 개는 넘는 법.
저런 바윗덩이 굴러오는 함정은 너무 많이 봐서 질릴 정도였다.
거기에 불 좀 붙인다고 달라질 게 없지 않은가.
“얼리고 부숴 버리자.”
-잠깐! 그만둬라!
마검 안에 갇힌 기계공학자들이 무언가 불길함을 깨닫고 말리려고 했다.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어떻게 되지?”
-그건 알 수 없다. 함정은 개인의 개성에 가까우니까. 하지만 기계공학자들이 저런 평범한 함정을 만들었을 리 없다!
“오오….”
태현은 말리는 대신 뒤로 물러섰다.
어디 한번 무슨 함정이 나오나 볼 생각이었다.
‘기계공학 스킬 올려야지.’
지금 전설 스킬을 하나가 아니라 여럿 찍어야 하는 입장에서, 기계공학은 거의 필수적으로 전설을 찍어야 했다.
태현보다 기계공학을 높게 찍은 사람도 없을뿐더러 태현처럼 기계공학 전설을 찍을 사람도 없는 상황.
무조건 태현이 가장 먼저 찍어야 한다!
…그러려면 올릴 수 있을 때 올려야 했다.
아까 장치를 해제하고 기계공학 스킬을 올렸듯이, 지금 함정이 나오는 걸 보고 파악해서 기계공학 스킬을 올리는 것이다.
-뭐 하냐?! 말리라니까!! 말려야 해!
-말려 저거!
“그래그래.”
태현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랭커들은 태현이 벌써 거리를 벌리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프로즈란드의 서리폭풍!
[프로즈란드의 서리폭풍이 시전됩니다!]
[열기로 인해 효과가 반감됩니다!]
[불타는 화염의 덩어리가 느려집니다!]
“이봐! 고작 그것밖에 못 하나?”
“큭… 기다려!”
랭커들은 마법을 퍼붓고 스크롤을 꺼냈다. 효과가 있었는지 불타는 화염의 덩어리가 점점 느려졌다.
[불타는 화염의 덩어리가 멈춥니다.]
[함정이 발동합니다!]
“성가시게 구는데.”
“빨리 다음 함정도 처리해 버리자고.”
함정이 추가로 나와도 랭커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타는 화염의 덩어리는 랭커들의 예상을 벗어났다.
쩍 갈라지더니 그 안의 어둠으로 랭커들을 끌어당기기 시작한 것이다.
[중력 조종 함정이 가동됩니다!]
[불타는 화염의 덩어리가 당신을 끌어당깁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낮습니다!]
[힘이 낮습니다!]
[……]
[저항에 실패합니다!]
콱!
랭커 한 명이 갑자기 끌려가기 시작하자 기겁해서 검을 벽에 박고 버티려 했다.
그러나 그런 걸로 버틸 수 있을 만큼 중력 조종 함정은 만만치 않았다.
랭커는 그대로 끌려 들어갔다. 반으로 갈려진 불타는 화염의 덩어리가 다시 닫히더니 뒤로 후진하기 시작했다.
[불타는 화염의 덩어리가 미궁 속으로 사라집니다!]
“…….”
“…….”
“저거 잡아!!!”
랭커들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불타는 화염의 덩어리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뭐 저런 새끼가 있어!?
[중력 조종 함정을 목격했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낮아서 완전히 파악하지 못합니다.]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대단하다!’
태현은 다른 의미로 감탄했다.
태현도 아직 만들지 못하는 기계공학 함정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이게 바로 제국 기계공학의 유산이다! 그런 걸 파괴한다는 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쫓는다!”
태현과 랭커들은 미궁을 달리기 시작했다. 불타는 화염의 덩어리가 사라지기 전에.
* * *
[중력 조종 함정이 가동됩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낮아서 완전히 파악하지 못합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달리는 랭커들에게 사디크의 미궁은 슬슬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력 조종 함정 같은 매우 놀라운 기계공학 함정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화염 분출 함정이 가동됩니다!]
“이건 피할 필요도 없겠다!”
“방패로 막아버려!”
[미궁의 힘이 화염 분출 함정을 강화시킵니다.]
[방패가 녹아내립니다!]
[방패가 파손됩니다!]
[……]
[……]
태현은 녹아버리기 직전 랭커의 뒷목을 붙잡고 잡아 던졌다. 아끼던 방패를 그냥 날려 버린 랭커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가리켰다.
“저… 저거…?”
“함정을 만만하게 보지 말라니까.”
“기계공학자들, 전부 정신 나간 거 아니야?! 무슨 이딴 함정을…!”
분통을 터뜨리던 랭커들은 태현을 보고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태현도 기계공학자였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모든 기계공학자들이 정신 나간 것 같지는 않은데.”
“무슨 개소리야? 전부 정신 나간 놈들이지. 정신 나간 놈들이 아니면 기계공학을 왜 배워… 아. 그, 그러네. 모든 기계공학자들이 정신 나간 건 아니지.”
“맞, 맞아.”
랭커들은 급격히 분노를 진정시켰다. 태현은 별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더 욕해도 되는데.”
“아니야! 기계공학은 정말 놀라운 학문이야!”
“나도 기계공학 스킬을 배우고 싶었어!”
“미친놈아 적당히 해…!”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함정을 확인하고 장치를 뜯어냈다.
오르는 속도를 보니 확신이 들었다.
‘이번 미궁에서… 최고급 기계공학 9를 찍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