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744화 (1,743/1,826)

§ 나는 될놈이다 1744화

“김태현은 기다리고 있는 거다!”

“??”

죽이기 좋을 때를 기다리는 걸 말하나?

“너희가 뒤늦게라도 항복하고, 굶주린 혼돈의 편에서 벗어나, 원정대에 참가하기를!”

“…….”

펭귄팬더의 외침에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술 마시고 왔나?’

물론 태현이 원정대에 가입하는 플레이어들을 대부분 환영하긴 했지만, 개나 소나 다 ‘원정대에 와라!’라고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원정대에 가입할 확률이 적었다.

심지어 목에 칼을 들이밀어도!

공적치 포인트를 쌓고 퀘스트를 많이 진행한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한 번 죽는 게 낫지 괜히 이탈했다가는 그 피해가 막심한 것이다.

저기 있는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대다수가 랭커에 원시의 섬까지 온 거 보면 퀘스트 진행도가 상당했다.

그냥 죽여야지 뭘 설득한단 말인가.

[카르바노그가 하지만 아까 사원에서는…]

‘그건 특수한 상황이지. 단체로 최면에 걸린….’

황금고릴라들의 행동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단체로 맛이 가서 그렇지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머리를 모자걸이로 쓰지 않는 놈들이라면 저딴 말에 넘어갈 리가….

“펭귄팬더. 너무 늦었다. 너무 늦었단 말이다!”

“아니야! 너무 늦었을 때는 없다! 나도 너하고 별 차이가 없었다. 나도 언제든지 그쪽에 있을 수 있었어!”

“…….”

차우차우의 눈동자가 케인처럼 정신없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태현은 설마 싶었다.

‘저딴 밑도 끝도 없는 설득에 넘어간다고?’

아니 물론 설득에 넘어가면 좋긴 한데….

좋긴 한데…!

“난 그럴 수 없….”

‘역시.’

태현은 안심했다.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게 되겠는가.

“…아니. 이것도 변명이군. 펭귄팬더.”

“…….”

태현은 다시 경악했다.

상대가 마음을 확실히 정한 것이다.

“나는 네가 굶주린 혼돈을 탈퇴하고 다른 쪽으로 갔을 때 널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선수들도 그랬고… 팬들이 보내주는 응원은 잊어버리고, 오직 내 레벨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지.”

“차우차우…!”

“하지만 지금 팬들이 응원해 주는 네 모습을 보니 내가 잊고 있었던 것들이 떠올랐다. 레벨보다 더 중요한 게 뭐였는지.”

듣고 있던 태현은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레벨이 가장 중요하지 뭐라는 거냐 저놈?’

“레벨보다 더 중요한 건… 날 응원해 주는 팬들이었다.”

-차우차우!

-네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감동의 도가니로 눈물을 흘렸다.

-월드컵 예선 탈락을 용서하마!

-아냐, 그건 용서 못 해.

-기왕 용서하는 김에 같이 좀 합시다.

-차우차우 저 자식이 저런 말도 할 줄이야….

지금 수많은 베이징 파이터즈 팬들이 생방송으로 둘을 보고 있었다.

펭귄팬더와 차우차우는 싸우느라 그 사실을 잊고 있었지만, 둘의 대화는 전 세계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팬들의 심금을 울리는 대화!

-차우차우 욕하던 놈들 다 나와서 반성해라!

-반성을 왜 해 저딴 소리 하면 저새끼 때문에 졌던 경기가 사라짐??

-우리 차우차우가 어? 판온은 좀 못해도 사람이 착하잖아!

-착했으면 애초에 굶주린 혼돈에 가입을 하지 말았어야지!

-굶주린 혼돈에 몰래 가입하고 뻔뻔하게 구는 놈들보다는 차라리 저렇게 공개적으로 사과라도 하는 게 어디냐!

베이징 파이터즈 팬들의 의견은 서로 나뉘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번 퀘스트로 인해 베이징 파이터즈는 어마어마한 조회수를 끌어모을 수 있었다.

원시의 섬 퀘스트를 진행할 때만 해도, 베이징 파이터즈 내의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상황!

-이거 생각보다 지표가 너무 좋습니다! 선수들한테 말해서 좀 더 해보라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지금 분위기가 감동 위주 아닙니까. 김태현한테 좀 더 가까이 붙으라고 해보죠!

-그거 괜찮겠군!

급히 모여서 방송을 보고 있던 베이징 파이터즈 임원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이 저런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해 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맨날 사고만 치고 경기만 져서 쓰레기 같은 놈들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차우차우는 외쳤다.

“네가 굶주린 혼돈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이길 수 있다면 나도 그럴 수 있을 거다! 나는 굶주린 혼돈을 버리고 나오겠….”

차우차우의 외침에 다른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도 솔깃해했다.

앞에는 선상 요새가 닥쳐오고 주변에는 원시의 섬에 살고 있는 짐승들이 이를 갈고 있는 상황에서, 차우차우의 외침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우리도….

우리도 저럴 수 있을까?

‘어쩌면 나도 갈아탈 수 있….’

탕!

이름 없는 해적 선장이 그대로 차우차우를 쏘아버렸다. 그리고는 싸늘하게 내뱉었다.

-이런 미친 모험가 놈이 감히 건방지게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냐?

“…차, 차우차우!!”

“차우차우! 이 자식!!!”

펭귄팬더는 물론이고 다른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도 발끈했다.

설마 이렇게 보내버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죽여 버리겠어! 죽여 버리겠다고!!”

선상 요새 위에서 ‘역시 해적 선장은 냉정하군’ 하고 있던 태현은 뜨거운 반응에 당황했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 놈들이 뭘 잘못 먹었는지 정말로 선장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황당하다!

그 모습에 펭귄팬더 선수가 태현에게 외쳤다.

“김태현! 보고 있겠지! 네 진심이 통하고 있는 모습을! 자기밖에 모르는 플레이어들만 있는 게 아니다. 네 진심을 오해하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렇게 네 진심을 믿어주고 힘을 합치는 놈들도 있다!”

“…….”

태현은 펭귄팬더를 미친놈 보듯이 한 번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펭귄팬더는 태현이 쑥스러워서 저러는 거라고 확신했다.

* * *

-…후퇴해라!

[해적 선장들이 후퇴 명령을 내립니다!]

어떤 희생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던 해적 선장들이, HP가 절반 밑으로 깎이고 부하들의 숫자가 줄어들자 결국 후퇴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까지 돌아서는 상황에서 태현이 조종하는 선상 요새가 미친놈처럼 포격을 퍼붓자 더 이상 싸울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움바카! 황금고릴라들을 데리고 가서 남은 배를 모조리 파괴해 버려라!”

태현은 다급히 외쳤다.

저번에도 한 번 태현이 한 적 있듯이, 원시의 섬에서 도주해 버리면 쫓는 건 쉽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는 항해의 프로 아닌가.

갖고 있던 함대는 태현이 기계공학 스킬로 갈취했지만, 남아 있는 배들도 있었다.

-■■■!

움바카와 황금고릴라들은 바다를 헤엄치며 남은 배들을 향해 돌진했다.

태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선상 요새에게 명령했다.

“배들을 조준하고 날려 버려라!”

선상 요새는 바로 대포를 끌어내 남아 있는 배들을 향해 갈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적 선장들은 도망갈 생각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멈춰 서더니 기도를 시작했다.

-굶주린 혼돈이시여,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영혼을 바친 저희를 불쌍하게 여겨주십시오!

“그래봤자 늦었다!”

플레이어들은 신이 나서 뒤를 쫓았다.

그러나 태현은 불안해졌다.

물론 상대는 함대도 잃어버리고 전력도 확 꺾인 상태긴 했지만 원래 그렇게 잃을 거 없는 놈들도 이상한 짓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굶주린 혼돈이 이름 없는 해적 선장들의 부름에 응합니다.]

[해적 선장들이 육신을 바칩니다!]

[굶주린 혼돈의 용오름이 일어납니다!]

[……]

저 먼 수평선에서 희미한 회오리가 일어나더니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가까워지면서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 용오름의 규모를 볼 수 있었다.

“…!”

“저… 저거!”

평범한 토네이도와는 차원이 달랐다.

원시의 섬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파괴해 버릴 수 있는 위력!

이름 없는 해적 선장들은 미래를 예감했는지 크게 웃었다.

-감히 굶주린 혼돈을 배신한 쓰레기들! 굶주린 혼돈의 자비를 거절한 쓰레기들! 너희들의 종말이 찾아오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태현은 몇 대 더 패서 입을 다물게 만들려고 검을 뽑았지만 그러기도 전에 해적 선장들이 먼저 쓰러졌다.

[해적 선장들이 쓰러집니다!]

[용오름이 강화됩니다!]

[……]

[……]

‘튀어야겠군.’

[카르바노그가 방해할 거 다 했으니 이제 빨리 튀자고 말합니다!]

태현은 선상 요새에게 명령해 최대한 빨리 이 섬에서 도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퀘스트는 끝났고 이제 남은 건 이 섬의 종말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 ■ ■■!

움바카와 황금고릴라들이 태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들어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도망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원시의 섬은 황금고릴라들의 고향.

굶주린 혼돈에게 파괴되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키서스의 기적-아키서스 교단 퀘스트>

원시의 섬에서 가장 지혜롭고 현명한 황금고릴라들은 아키서스의 신앙을 받아들였지만, 아직 원시의 섬에 있는 많은 짐승들은 아키서스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 진정한 기적을 보여주고 믿음을 전도하라!

찾아오는 굶주린 혼돈의 파멸을 막을 수 있다면 그건 원시의 섬에 강렬한 기적으로 남으리라.

보상: ?, ????

‘막을 방법이 있나?’

태현은 빠르게 고민했다.

태현이라고 퀘스트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은 조금 특별했다.

제한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살벌한 난이도의 퀘스트.

고민하다가 시간을 놓치기라도 하면 제대로 도망치기 힘들 수도 있었다.

툭툭-

움바카가 태현을 치더니 플레이어들을 가리켰다. 태현은 의아해했다.

“뭘 하자고?”

움바카는 플레이어들을 들어 올려서 하늘에 바치는 시늉을 냈다.

“아. 아키서스에게 제물로 바치자고? 안 돼. 그걸로도 막기는 힘들 것 같아.”

“…….”

“…….”

플레이어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움바카를 노려보았다.

저 고릴라 새끼가…!

그때 숲에서 몬스터들이 새로 나타났다. 태현은 용오름 때문에 몬스터들이 추가로 몰려온 줄 알았다.

그러나 몬스터의 얼굴이 낯익었다.

“너는…!”

예전 원시의 섬에 도착했을 때, 모든 몬스터들이 태현을 공격한 건 아니었다.

태현의 편을 들어준 몬스터도 있었다.

“카르바노그…!”

[카르바노그가 자기는 여기 있다고 어이없어합니다.]

태현이 카르바노그라고 이름을 붙였던 거대 토끼들!

카르바노그 신앙을 받아들인 거대 토끼들이 태현을 도와주기 위해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거대 토끼들은 들고 온 것들을 해안가에 쌓아 올리더니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화르륵!

그러자 이제까지 본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정도로 강력한 화염이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만물의 소리를 들어라>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토끼들의 뜻을 완전히 이해합니다!]

[원시의 섬에서 살고 있는 거대 토끼들이 섬 지하의 비밀 화염을 끌고 왔습니다!]

[거대 토끼들이 아키서스의 천재지변, 아키서스의 화염 용오름을 일으켜달라고 부탁합니다!]

움바카는 토끼들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박수를 쳤다.

그러고는 플레이어들을 붙잡아서 허겁지겁 불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으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뭐하는 거야 미친놈아!!”

“아니. 움바카. 불에 넣을 필요 없다. 제물 바친다고 화염 용오름이 시전되는 건 아니니까.”

움바카는 매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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