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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743화 (1,742/1,826)

§ 나는 될놈이다 1743화

불길한 소리가, 수십 개의 배가 모여서 만들어진 선상 요새 안쪽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그 소리에 전율했다.

지금 상황이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저 소리는 퀘스트가 망하기 직전에 나는 소리였다.

* * *

‘황금고릴라들, 사람을 감동시키는군.’

태현은 뭉클한 기분으로 갑판 아래를 달려나갔다.

황금고릴라들이 사람을 좀 잡아먹긴 했지만, 누구에게나 사소한 단점이 있지 않은가.

아키서스 신앙을 받아들인 황금고릴라들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것이다.

물론 사람은 좀 잡아먹겠지만….

‘굶주린 혼돈 믿는 놈만 잡아먹으면 되지 않나?’

[선상 요새 갑판 지하의 구조가 변화합니다.]

[침입자를 거부합니다!]

이름을 잃어버린 선장들은 위에 있었지만 그렇다고 갑판 지하가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갑판 위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기묘하고 뒤틀린 변화가 일어나더니 침입자를 쓰러뜨리려고 했다.

하지만 선장과 달리 이번 함정은 태현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기계공학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구조를 파악합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

일반적인 플레이어였다면 이런 함정들이 더 까다로울수도 있었다.

한 번 붙잡히면 다른 수십 개의 함정이 그대로 따라오는 연계식 함정 던전.

갈고리가 날아오고 밧줄이 날아오고 촉수가 휘감고 대포가 발사되는 함정을 상대하다 보면 차라리 갑판 위의 보스 몬스터가 그리워질 정도였다.

하지만 태현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선상 요새 갑판 지하의 함정을 돌파합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선상 요새 갑판 지하의 함정을 완전히 이해합니다.]

[추가 제작이 가능해집니다!]

[……]

‘하늘성에 지으면 좋긴 하겠군.’

쾅!

태현은 그런 생각을 하며 함정을 완전히 돌파했다.

[굶주린 혼돈의 선상 요새 기관부를 발견합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가장 지하에 위치한 선상 요새의 기관부는 기계장치보다는 차라리 심장에 가까웠다.

거대한 골렘의 심장을 연상시키는 겉모습!

한 번 박동할 때마다 요새 전체에 연결된 파이프로 온갖 힘을 퍼올리는 기관부는 장엄하고 엄숙할 정도였다.

같은 기계공학 사용자로서 태현은 지금 눈앞에 있는 기관부가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었다.

-저… 저거!

마검에 갇힌 제국 기계공학자들이 분노해서 외쳤다.

-저런 무례하고 건방지고 더럽고 비열한 쓰레기 새끼들이!

-제국의 기계심장을 훔쳐?!?!

<고대 제국의 기계심장-최고급 기계공학 스킬 퀘스트>

고대 제국 시절에는 수많은 기계공학의 걸작들이 존재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비행도시.

비행선 위에서 낙하하는 최첨단 중무장 마법골렘.

평소에는 도시 지하에 잠들어 있다가 위기가 닥치면 지하에서 일어나서 나오는 거대한 토끼 동상….

‘응?’

태현은 멈칫했다.

예전에 저런 목록들을 본 것 같았는데….

설마 진짜 있었다고??

[카르바노그가 그것 보라며 화를 냅니다!]

제국 곳곳을 누빌 수 있는 마법기차 등등.

기계심장도 그중 하나!

수많은 기계공학자들의 연구로 완성된 이 기계심장은,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건축물을 움직일 수 있는 희대의 걸작이다.

제국의 멸망으로 사라진 기계심장이 굶주린 혼돈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은 진정 슬픈 비극이다.

기계심장을 굶주린 혼돈의 손아귀에서 뺏어내라!

만약 그렇게 한다면 제국의 수많은 기계공학자들도 안심하고 잠들 수 있으리라.

보상: ?, ????

-죽여 버려! 빨리!

-폭탄을 설치하고 불태워버려!

‘…….’

태현은 마검에 갇힌 제국 기계공학자들을 보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대장장이 장인들은 자기가 제작한 걸작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게 되면 ‘크윽…! 하지만… 내 걸작이 부서지는 것보단 낫지… 언젠가 되찾을 수 있으니까….’ 같은 반응을 보였다.

걸작을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마검 안에 갇힌 제국 기계공학자들은 좀 더 쿨했다.

-야! 부숴버려라!

-굶주린 혼돈 이놈 우리가 만드는데 한 푼도 안 바친 쓰레기 놈이 어디서 멋대로!

“다들 조용히 하도록.”

태현은 부술 생각이 없었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계장치로부터 온 신!

[스킬, <기계장치로부터 온 신>을 사용합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사용된 아이템에 막대한 신성력을 불어넣어, 일시적으로 생명을 부여합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사용된 아이템에게 일시적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어서 조종할 수 있는 강력한 스킬.

물론 페널티가 없는 건 아니었다. 만약 이 소환수가 파괴될 경우, 신성력 스탯은 그냥 같이 날아가는 것이다.

지금처럼 사방에 수많은 적들이 있을 때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태현은 감수하기로 했다.

적들을 가장 확실하게 압도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신성력 스탯이 너무 넉넉해.’

태현이 지금 남아도는 3대 스탯이 행운, 명성, 신성력이었다.

물론 아예 쓸모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 행운 스탯을 보면 ‘이거 다른 스탯으로 바꿔줄 순 없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파괴될 경우 신성력도 같이 소모됩니다!]

[……]

메시지창들과 함께, 무채색의 기계심장에 색이 입혀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

태현은 처음에 기계심장을 소환시켰을 때만 해도, 이 주변 기관부 정도만 소환될 줄 알았다.

아무래도 소환을 하더라도 한계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태현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생명을 얻은 기계심장은 선상 요새 전체를 움직이며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 * *

“빨리! 빨리 뭐라도 하십시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불길한 소리에 덜컥 겁을 먹고 선장들에게 외쳤다.

그러나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선장들은 황금고릴라들만 가리킬 뿐이었다.

-이 짐승 놈들을 먼저 처리하고 잡으러 가면 된다. 이 요새는 쥐새끼 한 마리 들어갔다고 해서 어떻게 될 정도로 약한 요새가 아니야! 굶주린 혼돈께서 직접 축복을 하셨단 말이다!

“그딴 소리 하니까 맨날 뒤지는 거 아닙니까!”

“잠, 잠깐. 이거 그거야! 김태현 놈이 소환할 때 쓰는 거!”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 중 한 명이 기억을 떠올렸다.

<기계장치로부터 온 신>은 분명 태현이 뭔가 이상하고 거대한 괴물들을 소환할 때 쓰는 스킬이었다.

설마…!?

쿠르르릉!

언제나 불길한 ‘설마’는 맞아떨어지기 마련. 선상요새의 갑판이 흔들리고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쪽 끝이 불쑥 일어났다. 마치 엎드려 있던 거인이 한쪽 팔로 몸을 지탱하고 일어나는 것처럼.

-뭐하는 거냐?! 명령을 들어라, 요새여!

-나는 너희의 명령 따위는 듣지 않는다.

선상요새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 반항에 선장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감… 감히 내 배가 날 배신해?!

-굶주린 혼돈의 은혜를 잊어버린 것이냐?

-나는 오로지 아키서스의 후계자의 명령만을 따른다!

말과 함께 이제까지 선장들만을 도왔던 선상요새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황금고릴라들을 쓰러뜨렸던 갑판 위의 모든 장치들이 역으로 작동하더니 선장들을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밧줄과 갈고리가 날아들고 대포가 역으로 조준을 시작하자 선장들은 깜짝 놀랐다.

-이런 미친놈이!

-모험가들이여, 갑판 아래로 내려가서 이 조종을 막아라! 놈이 아무래도 이 요새를 조종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조종이 아니라 소환이라니까요!”

“환장하겠네!”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 차우차우는 상황이 그냥 꼬이는 수준이 아니라 망해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걸 확인이라도 시켜주듯이 선상 요새가 드디어 바닷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플레이어들은 허공 높이 솟구치는 감각에 아찔해했다.

-저리 꺼져라. 침입자들.

촤아아아악!

골렘 형태로 변한 선상 요새는 자신의 위에 누군가 있다는 게 불쾌했는지, 타고 있던 침입자들을 모조리 아래로 떨어뜨려버렸다.

첨벙거리는 소리와 함께 선장들과 해적들. 그리고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바닷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달라진 건 없다. 놈을 잡아!

-감히 굶주린 혼돈에게 반항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충격에도 불구하고 이름 없는 선장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굶주린 혼돈을 향한 충성심으로 노련한 해적 전사들을 끌어모아 선상 요새를 파괴하려고 했다.

물론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조금 달랐다.

‘지금 이 상황에서 싸우는 게 맞나? 진짜 맞나?’

‘방금도 꽤 힘들게 잡은 것 같았는데….’

방금까지 전투도 그렇게까지 쉽지는 않았었다.

선상 요새 아래에서 덤벼드는 (구)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을 막는 것도 상당히 벅찼었고, 선상 요새 위에서 날뛰는 황금고릴라들도 쓰러뜨리는 데 꽤 오래 걸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선상 요새가 적 쪽으로 돌아섰다.

계속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그냥 후퇴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 중 한 명이 참지 못하고 선장에게 말을 꺼냈다.

그러자 선장은 플레이어를 강하게 격려해 줬다.

탕!

[굶주린 혼돈의 해적 선장이 <즉결 처형>을 시전합니다!]

[반항하는 부하를 상대로 추가 데미지가…]

[……]

-닥치고 싸워라!

“…….”

“…….”

해적 NPC는 역시 괜히 해적 NPC가 아니었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튈까?

튈 수 있을까?

근데 튀면 어디로 튀지?

“김태현이다!”

선상 요새 안쪽에서 작업을 끝낸 태현은 갑판 위로 올라와 골렘형으로 변한 선상 요새 어깨 위에 섰다.

그러고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오만하게 아래를 굽어보는 모습이,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에게는 마치 이 전장의 지배자처럼 느껴졌다.

“쓸어버려.”

-알겠습니다.

선상 요새는 주먹을 들어서 아래로 내리쳤다. 바다 위로 거대한 물기둥과 함께 해적들이 튕겨 날아갔다.

선장들은 이를 갈며 굶주린 혼돈의 대포를 소환했다.

꽝!!

[기계심장의 내구도가…]

태현은 곧바로 수리에 들어갔다. 기계공학 스킬도 올릴 겸 매우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선장들은 공격을 퍼부으며 태현에게 욕설을 날렸다.

-당당하게 내려와서 싸우지 못해!?

-비겁하게 뒤에서 땜장이질이나 하고 있을 셈이냐!

태현은 듣지 않았다. 기계심장에게 대신 말했다.

“더 쓸어버려라.”

[기계심장이 당신의 명령에 힘을 냅니다!]

[당신이 수리해 준 덕분에 추가 버프를 받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높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

선상 요새의 온몸 구석구석에서 대포가 튀어나오더니 선장과 해적들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선장들이 소환한 대포보다 몇십 배 많은 양이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정말 잘 소환했군.’

태현은 말 잘 듣는 기계심장 선상 요새를 보며 흐뭇해했다.

소환하기 전에는 태현과 황금고릴라들이 기계심장을 지키면서 같이 싸우는 그림을 그렸었는데, 정작 소환하고 보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냥 기계심장이 혼자 싸우게 내버려 두고 태현이 뒤에서 버프만 하는 게 훨씬 더 효율이 좋았다.

강력한 언데드를 소환한 네크로맨서가 날로 먹는 것처럼 강력한 기계공학 소환수를 소환한 기계공학자도 날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선장이 입은 데미지가 서로에게 분산됩니다!]

[……]

[……]

요새 버프가 사라진 상황에서도 해적 선장들은 끈질기게 버텼지만, 태현은 이미 승기가 넘어왔다는 걸 확신했다.

상대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일 뿐인 것이다.

‘남아 있는 플레이어들 쓰러뜨리고 고립시켜야겠군.’

약한 놈들부터 처리하고 나면 더 빨리 무너질 터.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고 시선을 돌렸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을 싹 쓸어버려야….

“항복해라, 차우차우!”

“?”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구)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이자 이제는 아키서스 교단 강제 가입한 펭귄팬더가, 같은 팀 선수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아직도 모르겠냐! 김태현이 왜 너희들을 공격하고 있지 않은지!”

“??”

이제 공격하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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