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742화 (1,741/1,826)

§ 나는 될놈이다 1742화

‘아니 이런 건방진 놈을 봤나?’

태현은 오랜만에 발끈했다.

태현이 어디 가서 무시 받는다고 화내거나 자존심 상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굶주린 혼돈은 나름 태현과 지긋지긋할 정도로 오래 싸우지 않았나.

싸운 횟수나 그 치열함을 생각해 보면, 쑤닝한테 미안한 말이지만 굶주린 혼돈이 훨씬 앞섰다.

그런 놈이 태현이 기계공학의 달인인 것도 잊고 이런 안일한 함대를 보내다니.

[카르바노그가 그런 오만함이 굶주린 혼돈의 약점이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다. 카르바노그. 오만한 놈은 절대 이길 자격이 없지.’

물론 기계공학 장치로 요새화 굴러가는 함대를 보낼 때 ‘아, 상대방에 기계공학의 달인이 있었지? 설마 기계장치에 생명을 부여해서 자신의 말을 듣게 만드는 스킬이라도 쓰겠어?’ 같은 걱정을 하는 건 신중한 게 아니라 정신병이었다.

하지만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기회가 생긴 김에 마음껏 굶주린 혼돈을 욕하기로 했다.

이런 오만하고 건방진 놈 같으니!

-죽어라!

그러나 그런 오만함과 건방짐과 상관없이, 이름을 잃어버린 선장들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말도 안 돼! 이름도 없는 놈들이!

마검 안에 갇힌 기계공학자들이 신음했다.

보통 제국의 강자는 이름이 알려지기 마련인데, 이놈들은 이름을 잃어버린 주제에 섬뜩할 정도로 강했다.

기계공학자들의 비명을 들었는지 이름을 잃어버린 선장들이 대꾸했다.

-진정한 강함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바친 우리의 각오를 한낱 대장장이가 이해할 수 있겠느냐?

-너희 숯냄새나는 대장장이들은 절대로 이 영광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해적 선장들의 비장한 대사에 기계공학자들은 분노했다.

-굶주린 혼돈의 발이나 핥으러 들어간 잡놈들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저런 아키서스한테 잡혀갈 놈들 같으니!

-그리고 우린 대장장이가 아니야! 기계공학자야!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저런 말에 매우 민감했다.

생전에 맨날 제국 사람들이 ‘아, 대장장이신가요? 칼이나 갑옷 하나 만들어주실래요?’ 같은 말을 해온 만큼 울분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기계공학이 어? 칼이나 갑옷 같은 만드는 하찮은 작업하고 같아 보이냐?

-대장장이 놈들이 움직이는 골렘을 만들 수 있느냐? 움직이는 성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제국 기계공학자의 마검>이 분노로 강력해집니다!]

[추가 버프가 걸립니다!]

‘아니. 이 자식들. 화나면 강해지는 거였나?’

태현은 앞으로 종종 기계공학자들을 열받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줄 알았다면 진작에 사용했을 텐데!

“둔해져라, 둔해져라, 둔해져라!”

[언령 스킬을 시전합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아키서스 검법이 추가 데미지를 부여합니다.]

[<제국 기계공학자의 마검>이 추가 데미지를 부여합니다.]

[<아키서스의 세 번째 공격>으로 새로운 약점이 추가됩니다.]

[<제국 기계공학자의 마검>이 상처를 변이시키고 그 안에 독소를…]

[……]

[……]

태현은 달려드는 선장의 공격을 맞받아치고 빈틈을 만든 다음에 스킬을 작렬시켰다.

막대한 치명타와 함께 각종 지독한 효과들이 무수히 나타났다.

언령과 권능 스킬이 융합된 태현의 검술은 이제 단순히 치명타 데미지만이 위험한 게 아니었다.

한 대 맞는 순간 각종 스킬로 추가되는 디버프들!

어지간한 플레이어들은 그대로 녹아내릴 정도로 지독한 디버프였다.

해적 선장도 비틀거렸다.

그러나 여기는 선상 요새.

해적 선장들의 필드나 마찬가지였다.

[선상 요새의 힘으로 인해 선장들이 추가 버프를 받습니다!]

[선장들이 입은 데미지가 요새 전체로 분산됩니다!]

[선장들의 위치가 바뀝니다!]

[……]

‘아니 이런 개….’

태현은 속으로 욕했다.

싸움 더럽게 하네 진짜!

상대의 앞마당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사기적인 스킬들을 연타로 쓸 줄이야.

하나 정도는 양보해야 하지 않나?

[굶주린 혼돈의 밧줄이 당신을 휘감습니다!]

[굶주린 혼돈의 갈고리가 작렬합니다! 갑옷의 내구도가 하락합니다!]

[아키서스의 행운으로 내구도가 하락하지 않습니다!]

[HP가 크게 감소합니다!]

[……]

[……]

수십 개의 공격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대부분은 피하고, 몇 개는 반격했지만, 완벽하게 동시에 들어오는 공격을 전부 막을 수는 없었다.

[카르바노그가 걱정의 비명을 지릅니다!]

‘걱정하지 마라. 카르바노그!’

“살라비안의 회복, 살라비안의 회복, 살라비안의 회복….”

원래라면 쓸 일 없는, 사디크보다 더 잊혀진 악신 교단 살라비안의 권능 스킬.

무식한 체력과 회복력으로 승부하는 교단인 만큼 태현은 쓸 일이 없었었다.

하지만 언령 스킬의 제한이 풀리고 HP가 깎인 지금은 달랐다.

[체력이 빠르게 차오릅니다!]

[악명이 높습니다.]

[추가로 체력이 회복됩니다!]

‘이야. 마법 진짜 좋군.’

태현은 쓰면서도 괜히 흐뭇해졌다.

MP 넉넉한 놈들은 이런 걸 혼자 즐기고 있었단 말인가!

물론 이름 없는 선장들은 태현의 행동에 극도로 분노했다.

-너 이런 아키서스의 후계자 놈아! 무슨 권능을 쓰는 거냐!

-피 빨아먹는 놈의 권능을 쓰다니 네가 그러고도 아키서스의 후계자냐? 너는 명예를 모른단 말이냐?

‘굶주린 혼돈 믿는 놈들한테 저딴 말을 들으니 어이가 없군.’

태현은 당연히 무시했다.

맞는 말을 들어도 적이 하는 말이라면 무시할 수 있는 게 태현인데, 저건 완전히 개소리 아닌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이 명예도 모르는 놈!

-명예로운 해적으로서 네놈을 바다 아래로 가둬주마!

[굶주린 혼돈의 닻이 소환됩니다!]

[굶주린 혼돈의 대포가 조준됩니다.]

[……]

사방에서 해적들이 황금고릴라들을 묶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그 사이 스킬을 사용해 태현을 조준했다.

위협적으로 변하는 선상요새의 모습에 태현은 혀를 찼다.

‘젠장. 틈이 없군.’

상대의 빈틈을 노려야 요새 기관부로 빠지든 할 텐데 이름 없는 선장들은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집중하고 있었다.

너무 원한을 많이 샀나?

‘다른 놈들이 올라와야 하는데….’

이럴 때일수록 든든한 파티원들이 아쉬웠다.

태현은 팀 KL 선수나 원정대 플레이어들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큰 것을 느꼈다.

쾅!!!

“!”

그때 선상요새를 흔드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태현은 반색했다.

설마 아래에서 싸우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뚫고 올라온 것일까?

“설마 너희….”

-■■■■■ ■■■■, ■■■ ■■!!

그러나 선상요새를 타고 올라온 건 플레이어들이 아니었다.

그건 황금고릴라들의 우두머리, 움바카였다.

[황금고릴라들의 우두머리, 움바카가 당신의 얼굴을 알아봅니다!]

‘…….’

태현은 오랜만에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황금고릴라들의 우두머리 움바카와는 악연이 있었던 것이다.

움바카는 1왕자를 먹고 싶어 했고, 태현은 1왕자의 목이 필요했다.

그래서 태현은 1왕자를 빼돌렸다. 따돌리기 위해 권능 스킬로 1왕자의 목을 더 만들어서 던져주긴 했지만….

과연 움바카가 그때 일을 용서할까?

[황금고릴라들의 우두머리, 움바카가 당신을 아키서스의 교황으로 인정합니다.]

[아키서스 신앙을 알려준 것에 대해 감사의 포효를 지릅니다!]

[원시의 섬이 울립니다.]

[체력이 전부 회복됩니다!]

움바카는 가슴을 두드리며 사납게 포효했다. 따라온 정예 황금고릴라들도 포효했다.

그 기세에 굶주린 혼돈의 해적들도 귀를 막을 정도였다.

-■■!

움바카는 태현에게 손짓했다. 여기는 자신에게 맡기란 뜻이었다.

태현은 살짝 감동했다.

살면서 황금고릴라들의 등장에 이렇게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게 될 줄이야….

‘플레이어들보다 낫구나!’

“고맙다, 움바카!”

-■■ ■■■■■ ■■■■ ■■ ■■ ■■■!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명성이 매우 높습니다!]

[신성 스탯이 높습니다!]

[움바카의 말을 이해합니다.]

-같은 신도들끼리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정말 좋은 녀석이군….’

[카르바노그가 사람을 잡아먹긴 하지만 좋은 녀석이라고 감동합니다.]

* * *

베이징 파이터즈의 선수, 차우차우는 기분이 복잡했다.

‘펭귄팬더, 이 멍청한 자식. 같이 들어와 놓고 뭐하는 거야?’

친한 선수인 펭귄팬더가 갑자기 뭘 잘못 먹었는지 아키서스 교단으로 갈아탄 것이다.

귓속말을 보내도 ‘고릴라들이! 죽을 뻔했다고! 직접 당해봐야 알아!’ 같은 영문 모를 소리만 해댔다.

아무리 믿어주려고 해도 말이 안 됐다.

죽을 위험에 처했어도 그렇지, 그냥 한 번 죽으면 되는 것 아닌가.

기껏 쌓은 공적치 포인트와 퀘스트 진행도를 버리고, 페널티까지 받아가면서 아키서스 교단으로 갈아타다니.

그럴 이유가 있나?

‘인기 때문인가?’

김태현의 인기 때문에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펭귄팬더가 아키서스 교단으로 가입한다고 해봤자 인기는 반짝일 뿐이었다.

수많은 원정대 플레이어들 중에 랭커가 없고 선수가 없겠는가. 팬들은 금세 잊어버릴 것이다.

결국 남는 건 레벨과 스킬밖에 없는데!

[선장들이 지원 요청을 합니다!]

[퀘스트가 추가됩니다!]

“위로 올라가자!”

“뭐? 저기 아키서스 교단 잡놈들이 설치는데 내버려 둘 거야?!”

“…정신 차려! 저 자식들 원래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였어!”

“그러니까 더 괘씸하지!”

“…개소리하지 말고 위로 올라가! 퀘스트 깨야지!”

차우차우의 말에 지나치게 과몰입했던 플레이어들은 정신을 차렸다.

생각해보니 지금 눈앞의 배신자들을 죽이는 것보다, 선장들의 말을 듣고 퀘스트를 깨는 게 맞았다.

게다가 김태현 놈과 눈앞의 배신자들을 비교해 봤을 때 어느 쪽이 더 큰 목표인지 뻔하지 않은가.

“그래. 도우러 가자!”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서둘러 선상 요새 위로 향했다.

김태현 놈이 무섭긴 했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굶주린 혼돈의 힘으로 강화된 데다가 무엇보다 선상 요새의 버프까지 그들을 돕고 있지 않은가.

그 위에서 싸운다면 아무리 김태현 놈의 칼끝이 날카로워도 한계가 있으리라!

“?”

“???”

“김태현이 혹시 변신했나?”

그러나 올라온 플레이어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김태현 놈은 안 보이고 황금고릴라들만 선장들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황금고릴라들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고 사납게 싸웠다. 선장들은 또 하나의 황금고릴라에게 포격을 퍼부어서 쓰러뜨리고 외쳤다.

-뭐하고 있나! 빨리 놈들을 쓰러뜨려라!

“예… 예!”

당황스럽긴 했지만 플레이어들은 황금고릴라를 공격했다. 선장들이 각종 디버프를 걸어놓은 상황이라 싸움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굶주린 혼돈의 힘으로 갑판이 변화합니다!]

[황금고릴라들의 공격이 막힙니다!]

[돛대가 황금고릴라들을 가로막…]

[……]

황금고릴라들이 원시의 섬에서 버프를 받았듯이 여긴 선상 요새 위.

아무리 괴력으로 버텨도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바카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덤벼드는 선장들이 질릴 정도였다.

-끈질긴 놈 같으니. 저놈의 목을 잘라서 바치면 굶주린 혼돈께서 기뻐하실 거다!

-놈에게 포격을 퍼부어라!

-■■■■! ■■■■!

움바카는 서투르게 외쳤다. 플레이어들은 이상하게 그 단어가 ‘아키서스’ 같이 들렸다.

“잠깐, 그런데 김태현 놈은 어디 갔습니까?”

-그 비겁한 모험가 놈은 싸움을 피해 갑판 아래로 숨어버렸다! 이 짐승 놈들을 끝내버린 다음에 천천히 찾아도 돼!

“…아니 잠깐만요! 잠깐만요!!”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기겁했다.

그걸 그냥 두고 보고 있었단 말인가?!

[스킬, <기계장치로부터 온 신>이 발동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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