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741화 (1,740/1,826)

§ 나는 될놈이다 1741화

“역시 배신….”

“그래, 배신자다, 이 새꺄!”

빈체로는 더 이상 해명하기를 포기하고 그냥 무기를 휘둘렀다.

누가 봐도 아키서스 교단 소속처럼 보일 것 아닌가.

그리고 실제로 아키서스 교단 소속이 맞기도 했고….

[굶주린 혼돈의 플레이어를 쓰러뜨렸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신성이…]

[공적치 포인트가…]

“아키서스 교단 놈들 진짜 개추잡하게 게임하네! 아키서스 교단이었으면서 몰래 잠입을 해?! 케인 놈부터 시작해서 진짜….”

“…죽어! 죽으란 말이다!”

빈체로는 더욱더 사납게 무기를 휘둘렀다.

굶주린 혼돈 이탈 페널티든, 각종 공격으로 인한 상태 저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지금은 그저 이 분노를 눈앞의 놈들에게 풀고 싶었다.

옆을 보니 펭귄팬더도 미친놈처럼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아마 빈체로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 세상 모든 게 싫겠지.’

붙잡혀가서 솥에 들어갈 뻔한 것도 억울한데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 놈들은 평소에 구박한 것도 모자라서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선수 놈들’, 이딴 소리나 하고 있고….

“죽어, 죽어, 죽어!”

“이, 이 자식들 뭘 잘못 먹었나 봐!!”

적들은 그 기세에 압도되었다.

원래 플레이어들끼리 붙으면 각자 HP 관리도 하고 상태 관리도 하고 장비 관리도 하면서 적절하게 싸워야 하는데, 지금 빈체로와 펭귄팬더 같은 놈들은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무섭다!

-빈체로! 너 아키서스 교단 가입했나? 잘됐다. 나도 이번에 원정대 가입했잖냐. 사실 굶주린 혼돈 쪽에 가입했다가 우연한 기회에 반성하고 갈아타게 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좋은 기회 같다. 너도 정말 잘 생각했다. 굶주린 혼돈 편보다는 원정대 편이 훨씬 낫지.

“????”

싸우던 도중 다른 보스턴 타이거즈 선수, 돌레로에게 날아온 귓속말에 빈체로는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뭔 개소리야?

‘이 자식이 왜 갑자기?’

돌레로는 저번부터 ‘같이 원정대 가입하자’고 제안하던 동료였다.

물론 돌레로보다 훨씬 먼저 굶주린 혼돈으로 시작한 빈체로에게는 코웃음만 나오는 제안이었다.

이제까지 깬 퀘스트가 몇 개인데 그걸 버리고 불안정한 원정대로 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빈체로가 돌레로한테 ‘야 너야말로 굶주린 혼돈에 가입해라’ 하고 강하게 제안했었다.

돌레로는 결국 에스파 왕국 쪽에 가서 굶주린 혼돈에 가입했었지만, 뭘 잘못 먹었는지 ‘반성한다’면서 갑자기 굶주린 혼돈을 이탈해 버렸다.

그사이 원정대에 가입한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왜 이렇게 연락을?

-뭐야? 너 어떻게… 내가 아키서스 교단 가입한 걸 알고 있는 거지?

-지금 방송 중이잖아?

-…?!

빈체로는 고개를 들었다. 치열한 상황이지만 방송 목록 확인하고 상위권 조회 수를 볼 정도는 됐다.

<베이징 파이터즈, ‘펭귄팬더’ 생방송 진행 중…>

“야 이 새끼야!!! 이게 뭐가 자랑이라고 생방송을 진행해!!”

빈체로는 울컥해서 외쳤다.

안 그래도 팬들한테 ‘김태현 만나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는데 프로로서 자격이 있나요?’, ‘왜 프로 선수로 활동하는 건가요? 그냥 취미신가요? 취미여도 그렇게 지면 재미없지 않아요?’ 같은 말들을 들어왔던 빈체로였다.

그런데 여기 원시의 섬까지 왔다가 황금고릴라한테 붙잡혀서 솥에 들어갈 뻔했다가 태현한테 속아서 아키서스 교단에 가입했다는 게 세상에 알려지면?

…그건 진짜 쪽팔리는 일이었다.

“어… 어쩔 수 없었다!”

“뭘 어쩔 수 없어, 이 조회 수에 미친 새끼야!”

변명하는 펭귄팬더에게 빈체로가 욕설을 퍼부었다.

“실력으로! 실력으로 승부를 해야지 이딴 걸로 인기나 얻으려고 하고!”

“위… 위에서 방송 켜라고 했단 말이다!”

“….”

“위에서 방송 켜라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미안하다.”

빈체로는 사과했다.

위에서 까라면 어쩔 수 없는 게 맞았으니까.

특히 요즘처럼 추운 계절에는 게임단 위에서 뭘 하라면 해야 했다.

김태현 같은 놈이야 ‘제가 이걸 하라고요? 제가 나가겠다고 선언하면 게임단이 망할까요, 여러분들이 망할까요, 제가 망할까요?’ 같은 말을 해도 됐지만 일개 선수는….

‘아니, 김태현은 게임단 주인이지?’

떠올리니 더 재수가 없었다.

-빈체로. 너도 방송 켜라는데.

-빈체로. 방송 켜. 빨리.

“….”

아니나 다를까 빈체로한테도 연락이 달려왔다. 빈체로는 슬픔을 삼키고 방송을 켰다.

이 굴욕적인 상황을 전 세계에 생중계해야 한다니….

이게 자본주의인가??

-빈체로! 빈체로!

-믿고 있었다고!

-굶주린 혼돈에 가입했다는 헛소문 퍼질 때 내가 아니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음해하던 놈들 다 어디 갔냐?

-그게 다 큰 그림이었던 거지.

-넌 케인 같은 놈이야!! 빈체로!

“?????”

생각보다 뜨거운 반응에 빈체로는 당황했다.

으… 으응?

“어… 어… 어?”

“이게… 왜…?”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은 펭귄팬더도 마찬가지였다.

-네가 자랑스럽다, 펭귄팬더! 굶주린 혼돈에 가입하지 않고 꿋꿋하게 맞서 싸우다니!

-그렇게 원한이 있을 텐데도 아키서스 교단에 가입해서 싸울 줄이야. 정말 대단해!

-사람들을 위해서 굴욕을 감수할 줄 아는 게 진정 대단한 거지!

-예선 탈락을 용서하마!

“??????”

빈체로와 펭귄팬더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자리에 있던 몇몇 랭커들도 비슷한 반응을 받았는지 당황스러워했다.

‘…지금 내가 원래 아키서스 교단 출신인 걸로 알고 있는 건가??’

상황의 전말을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빈체로나 펭귄팬더가 갑자기 아키서스 교단으로 갈아탔다고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빈체로나 펭귄팬더가 원래 아키서스 교단 소속으로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첩자로 보였다.

계속 욕을 먹어도 꾹 참고 있다가 드디어!

‘미친놈들이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어떤 선수가 자기 레벨 깎아가면서 굶주린 혼돈에 가입해??’

선수들은 반응에 황당해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그러나 그때 바로 위에서 연락이 날아왔다.

-빨리 원래 아키서스 교단 소속이었다고 발표하지 못해?

-굶주린 혼돈을 원래 좋아하지 않았다, 이게 다 플레이어들을 위한 희생이었다, 이렇게 빨리 말해.

“….”

“….”

윗선에서 날아온 연락에 빈체로와 펭귄팬더는 뭘 할 수가 없었다.

둘은 포기하고 입을 열었다.

“…그렇다. 나는 원래 아키서스 교단 소속이었지. 너희 굶주린 혼돈 세력에 가입한 쓰레기들을 청소하기 위해, 너희 편인 척을 했던 거다.”

“나… 나도 마찬가지다. 일부러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깨고 공적치 포인트를 쌓았지.”

둘의 말에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분노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저 새끼들 수상하다고 했잖아!”

“배신자처럼 생겼다 했어!”

“야. 잠깐. 우리 쪽에도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 하나 있지 않냐?”

“그놈 빨리 잡으라고 연락 보내! 그놈도 배신자일 가능성이 높아!!”

졸지에 애꿎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첩자로 몰리기 시작했다.

보고 있던 사람들은 감동했다.

-내가 뭐라고 했냐? 빈체로가 그럴 리 없다고 했잖아!

-굶주린 혼돈으로 갈아탔다고 욕한 사람 빨리 나와서 사과해!

-지금 상황이 불리해서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넌 눈이 없냐? 어떤 놈이 거짓말하려고 공적치 포인트 쌓은 걸 다 날려? 페널티까지 다 받았는데?

-꼭 자기는 조금도 희생 안 하는 놈들이 저러더라.

빈체로와 펭귄팬더는 반응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잠깐 곁눈질로 봐도 방송 계정의 시청자 숫자가 순식간에 폭증하고 있다는 게 보였다.

이제까지 공식 계정으로 뭘 해도 모이지 않던 사람들이…!

-빨리 김태현하고 친분 자랑을 하던가 뭘 하든가 해!

-아닙니다. 섣부르게 그러면 속이 보일 수 있으니 그냥 철저하게 과묵한 척 잡죠. 굶주린 혼돈에 대한 분노만 보여주면….

마케팅 담당자들이 접속해서 미친 듯이 훈수를 두어댔다.

“아… 아키서스 교단 만세…!”

“아키서스 교단… 만세…!”

빈체로와 펭귄팬더는 그렇게 외치며 달려들었다.

-잘했어! 더 뜨겁게!

-더 정의로운 목소리로!

“만세… 만세… 만세…!”

빈체로는 외치면서 자신 안의 무언가가 꺾이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어른이 되어가는 건가??

* * *

선상 요새 밑의 바다에서는 치열한 자본주의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면, 선상 요새 위에서는 태현과 황금고릴라들이 공성전을 벌이고 있었다.

다른 쪽에서 야수들과 플레이어들이 시선을 끌어주고 있는 사이 태현은 함선으로 만들어진 요새를 공략하고 있었던 것이다.

‘와. 진짜 잘 만들었군.’

[카르바노그도 부러워합니다!]

이 해적 함대의 함선들은 태현도 솔직히 부러울 정도였다.

돌아다니다가 필요하면 함선 합쳐서 선상 요새로 전환시킨다니.

저런 거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

[함선 외벽에서 촉수가 기어오르기 시작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해적 선장이 당신의 발목에 저주를 묶습니다!]

[회피에 실패합니다!]

[…]

[…]

-■■! ■■■!

황금고릴라들이 벼락같이 달려와서 태현 앞을 막아줬다.

태현이 공격을 당했다고 생각해서 몸으로 막아준 것이다.

태현은 솔직히 감동했다.

‘이 녀석들…!’

저번에 왔을 때는 공포영화에 나오는 괴물이 따로 없었는데, 아키서스 신앙을 받아들이자 순수하고 듬직한 동물 친구였다.

[카르바노그가 사람을 잡아먹는 점이 있긴 하다고 지적합니다.]

‘사람도 뭐 동물을 먹으니까….’

-아키서스의 후계자 놈인가. 건방지게도 잘 올라왔군. 내 이름을 기억하느냐?

“네가 누군데?”

-그렇겠지! 나는 내 이름을 굶주린 혼돈에게 바쳤다.

-나 또한!

-우리 모두 이름을 굶주린 혼돈에게 바쳤지.

선상 요새 위에 있던 선장들이 태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 말에 태현의 안색이 변했다.

이름이 뜨지 않아서 네임드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 말이 사실이라면 절대 방심할 수 없는 상대들이었다.

-우리는 하나이자 둘이며, 둘이자 넷, 넷이자 여덟인 존재다.

-짐승들을 데리고 와봤자 네놈의 끝은 정해져 있다. 바다 밑으로 처박아주마!

[굶주린 혼돈의 해적 선장들이 공격을 개시합니다!]

[선상 요새의 힘으로 인해 선장들이 추가 버프를 받습니다!]

[…]

[…]

[…]

불길한 소리와 함께 요새 곳곳에서 촉수와 대포, 갈고리와 밧줄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해적 선장들은 마치 함선과 한 몸인 것처럼 배 곳곳으로 녹아들었다가 사라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난이도 높은 상황에 태현은 긴장했다.

언령 마법을 완성하고, 검술 스킬도 전설에 가까워진 상황이라 굶주린 혼돈의 군단장 정도가 아니라면 힘으로 붙어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보통이 아니다!’

철컥-

“황금고릴라들, 아키서스의 이름으로 난동을 피워라!”

-■■, ■■■!

황금고릴라들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명령을 받자 신나게 달려 나갔다.

황금고릴라들이 어그로를 끄는 사이 태현은 빠르게 선상 요새를 확인했다.

갑판이 새로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돛대가 들어갔다가 나타나는 등 변화무쌍한 구조였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지형은 확인해 놔야 했다.

그래야 적들이 덤빌 때 최대한 상대할 수 있….

[기계공학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굶주린 혼돈의 선상 요새 구조를 이해합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요새 기관부에 접근할 경우 요새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

설마 이 요새, 기계장치로 움직이는 거였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