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740화 (1,739/1,826)

§ 나는 될놈이다 1740화

“왜 그러지?”

“너… 이… 개… 쓰….”

“불만이 있으면 편하게 말해도 된다.”

태현은 그렇게 말하며 한 걸음 성큼 다가섰다.

굶주린 혼돈, 아니, 아키서스 교단 플레이어는 후다닥 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

“불만 있는 사람?”

약탈자 플레이어들을 상대하면서 느낀 거였지만, 정말 불만 말하라고 했을 때 불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 상대가 지금 막 가입한 교단의 교황일 경우에는 더더욱!

“불만 없나 보군. 자. 다 같이 굶주린 혼돈과 싸우자!”

“저… 저 새끼….”

“진짜 저 새끼 어떻게 여기 온 거야?? 누가 첩자질 하냐???”

“무슨 퀘스트만 하려고 하면 나와서 방해를 해!”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난 옛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절규했다.

아무리 해도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뭔가 이상하다 했는데 진짜 김태현 놈이 따라온 거였다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원시의 섬까지 따라와!!

“스미스 이 새끼는 김태현하고 같이 죽기라도 할 것이지 멍청하게 자기만 다른 곳으로 날아가고…!”

“길드 동맹 놈들은 대체 왜 김태현 놈을 내버려 둔 거야?”

“잡으려고 했는데 못 잡은 거지. 너희들도 이제 김태현 맛 좀 봐라.”

길드 동맹 출신 플레이어 한 명이 중얼거렸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원시의 섬 퀘스트 진행하고 있는 걸 어떻게 아냐고!”

“참가한 놈이 몇 명인데 첩자가 없겠냐?”

오싹-

옛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움찔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 중에 김태현의 첩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인기만 놓고 보면 판온의 어느 누구도 따라가기 힘든 선수 아닌가.

“빈체로 저 자식이 첩자 아니야? 같은 선수잖아.”

“뭐… 뭐라고 지껄인 거냐? 내가? 내가 첩자라고? 그리고 같은 선수라면 저기 펭귄팬더도 첩자겠군!”

“펭귄팬더가 첩자라고? 그럴듯한데?”

화살이 돌려진 펭귄팬더는 기가 막혔다.

여기서 가장 김태현한테 많이 당한 선수가 있다면 펭귄팬더였다.

리그에서는 리그대로 처맞았지, 월드컵에서는 예선 탈락했지….

“그걸 말이라고 지껄이냐? 내가 여기서 김태현한테 당한 걸로 치면 어떤 놈도 따라올 수가 없을 거다!”

“그걸 뭘 자랑처럼 당당하게 지껄이는 거야, 미친놈아….”

빈체로는 중얼거렸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은 믿지 않았다.

“원래 스톡홀름 신드롬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실제로 길드 동맹 놈들은 김태현 따라다니고 있다면서?”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해. 쑤닝 그놈도 김태현 쪽 원정대에 참가했잖아.”

“사람이 너무 세게 맞다 보면 좀 정신이 나갈 수가 있나?”

“김태현이 쑤닝 약점을 잡고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아무리 해명을 해줘도 다른 플레이어들은 믿어주지 않았다.

빈체로와 펭귄팬더는 두 배로 억울해졌다.

안 그래도 지금 속은 것 때문에 뒤통수가 얼얼한데….

특히 빈체로는 더더욱 그랬다.

‘어쩐지 잘한다 싶더라!’

처음 보는 놈이 지나치게 잘해서 의아했었는데, 그게 김태현이었다니.

빈체로는 김태현을 따라온 다른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을 노려보았다. 그들은 움찔했다.

“너희들. 왜 말을 안 해준 거냐? 최소한 신호라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김태현이 옆에 있는데 그걸 어떻게 보내요! 걸리면 박살이 나는데!”

그건 그래!

빈체로는 바로 납득해 버렸다. 빈체로 본인이었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 목숨 걸고 김태현 앞에서 그런 묘기를 펼쳐야 한다니.

펭귄팬더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빈체로에게 물었다.

“이번에 퀘스트 손해 얼마나 봤냐??”

“묻지 마라. 넌?”

“망했지. 빌어먹을… 아. 진짜 내가 왜 그랬지? 왜 갈아탔지??”

펭귄팬더는 스스로의 머리칼을 잡아 뜯으며 자책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냥 한 번 죽더라도 굶주린 혼돈 신앙을 유지했어야 했다.

이제까지 한 퀘스트가 얼마고 쌓은 공적치 포인트가 몇인데.

그런데 사원에서 다 같이 갇혀서 ‘솥에 들어갈래? 아키서스 믿을래?’의 분위기로 흘러가자 사람이 뭔가 홀린 것처럼 ‘아키서스 믿겠습니다!’로 반응하게 됐다.

‘나 자신이 이해가 가질 않아!’

“아키서스 교단으로 플레이할 거냐?”

“…너는?”

“….”

랭커들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아키서스 교단에 들어온 이상 적응하고 플레이하는 게 맞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렇게 쉽게 확 바뀌는 게 아니지 않은가.

하기 싫어진다 갑자기!

“야, 움직여라! 굶주린 혼돈 놈들 토벌 간다!”

-■■! ■■!

“….”

“….”

그러나 태현과 황금고릴라들은 플레이어들이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고민할 시간 있으면 움직이면 그만이지!

* * *

[해적 함대가 요새로 전환하기 시작합니다!]

콰르릉!

해안가에 몰려온 굶주린 혼돈의 해적 함대가 서로 이어지더니 거대한 요새로 변하기 시작했다.

따라온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장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 섬에 있는 짐승 놈들이 보통 사나운 게 아니다. 제대로 준비해라!

각 함선의 굶주린 혼돈 해적 선장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부하들을 재촉했다.

순식간에 완성되어 가는 요새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불침함을 연상시켰다.

“이건 아무리 상대가 강하다 하더라도 절대….”

[원시의 섬 황금고릴라들이 습격을 개시해 옵니다!!]

[칼로타사우루스가 돌진해 옵니다!]

[오베도사우루스가 돌진해 옵니다!]

[…]

[…]

“왔다!!! 습격이다!!”

“이 자식들 뭐가 이렇게 빨라!?”

열심히 요새를 보강하던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경악했다.

생각보다 너무 빨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떠나서, 이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게 충격이었다.

적 쪽에 굶주린 혼돈 출신 플레이어들이 여럿 있었으니 그중에 한두 명 정도는 말해줄 줄 알았던 것이다.

“얘네 진짜 배신한 거 아니야?”

“들어보니까 정말 상황이 어쩔 수 없었댔는데…. 고릴라 놈들이 아키서스 교단으로 개종 안 하면 솥에 삶아버린다고 협박했다고….”

“그러니까 잘 생각해 봐. 그게 좀 이상하게 들리잖아.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

그러게?

“설마 속임수였나??”

“애초에 아키서스 교단으로 갈아탈 생각이었던 놈들일지도 몰라. 잘 생각해 봐. 지금 이번 퀘스트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 섬 도착도 못 하고 바다 위에서 실종된 사람들도 많잖아.”

“그, 그렇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점점 얼굴이 굳어졌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조금 믿어줬는데, 설마 그들을 속였던 걸까?

잘 생각해 보니 아까 사원에서도 ‘너희들이 우리 배를 부쉈어! 이 빌어먹을 자식들!’ 하며 사납게 덤볐었다.

정말 함정일지도 몰랐다.

“이 자식들…! 그래도 조금 생각해 주려고 했는데….”

“절대 내버려 두지 마! 죽여 버려!”

“저기부터 발사하라고 해!”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선상 요새 위의 해적 포병들에게 외쳤다.

“저쪽! 저쪽부터 공격해 주세요!”

“저기 배신자 놈들이 있습니다!”

지금 해안가 바다 위에 떠있는 선상 요새를 향해, 원시의 섬에 있는 온갖 야수들이 달려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원래라면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옛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공격받을 가능성이 적었다.

가장 약한 축에 들었으니까.

하지만….

[굶주린 혼돈의 선상 요새에서 포격이 개시됩니다!]

[혼돈의 마법 포탄이 작렬합니다!]

꽝!!

포격이 옛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 위로 쏟아지기 시작하자,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랐다.

“공격이다!! 막아!”

“방어 올려!! 뭐야?! 왜 여기부터 쳐?!”

다른 쪽에서 돌진하는 황금고릴라들과 원시의 섬 야수들을 보니, 그쪽으로는 포격이 쏟아지지 않고 있었다.

이쪽만…?!

“너희들이 많이 싫은가 보군.”

뒤에서 황금고릴라들과 움직이고 있던 태현은 상황을 보고 짧게 말했다.

“그, 그럴 리가 없어! 우린 저놈들한테 아무것도 안 했는데….”

“원래 아무것도 안 해도 얻어맞을 수 있는 법이지. 너희들을 경쟁자라고 생각했던 거 아니냐?”

“!”

태현의 말에 빈체로와 펭귄팬더는 움찔했다.

생각해 보니, 같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라 하더라도 선수 출신인 빈체로와 펭귄팬더는 이런저런 견제를 많이 받았었다.

-뭐야? 선수 출신이 왜 굶주린 혼돈에 가입해? 팬들에 대한 배신 아니야?

-남의 퀘스트에 인기빨로 들어오려고 하지 말고 저리 좀 가.

-월드컵 예선 탈락한 중국의 수치 자식아, 저리 꺼지지 못해?

예전부터 그들을 눈엣가시로 여겼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게다가 저들은 해안가에 정박해 놓은 함선들을 모조리 파괴하지 않았던가.

“…이 자식들이…!”

“죽여 버리겠다!!”

옛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혼란과 고민을 잊어버리고 눈앞의 증오로 불타기 시작했다.

훌륭한 아키서스 교단 플레이어가 된 것이다.

“그래! 가서 원한을 풀자!”

“죽여 버려!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 * *

[칼로타사우루스가 울부짖습니다!]

[원시의 섬이 칼로타사우루스에게 힘을 부여합니다!]

[칼로타사우루스의 속박이 풀립니다!]

[칼로타사우루스가 장애물을 부숩니다!]

-짐승 놈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막아!

굶주린 혼돈의 정예 해적들은 칼과 화승총을 휘두르며 공격을 퍼부었다.

굶주린 혼돈이 보낸 함대의 해적들은 드넓은 바다의 해적들 중에서도 정예 중 정예였다.

예전에 태현이 상대했던 카테란드 해적단이나, 갈르두 해적단 같은 해적들보다 몇 배는 강한 해적들!

여기의 정예 해적들은 원래라면 평범한 해역의 보스 몬스터로 뛰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시의 섬 야수들을 막기 쉽지 않았다.

묶으면 풀려나고, 쓰러뜨리면 일어나고, 잡았다 생각하면 원시의 섬 버프로 다시 일어나고….

광기 어린 생명력이 플레이어들에게 공포를 줄 정도였다.

타타타타탕!

-뭐 하나, 모험가 놈들!

“지금 갑니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해안가에서 첨벙거리며 싸웠다.

선상 요새라지만 그 위에서 대기만 할 수는 없었다. 바다를 건너오기 전에 적들을 먼저 쓰러뜨려야 했다.

작은 배들을 엮어서 만든 임시 요새 위에서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치열하게….

“죽어라, 개자식들아!!”

“!?”

“감히 우리의 배를 박살 내?? 페널티고 뭐고 너희들은 무조건 죽인다!”

옛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물 밑에서 뛰쳐나왔다.

포격으로 두들겨 맞고 후퇴한 다음 옆으로 돌아서 바다 밑을 헤엄쳐 다가온 것이다.

갑작스럽게 기어 올라오는 적들의 모습에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이것들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이럴 줄 알았다!”

“그건 우리가 할 소리다!”

빈체로는 무기를 휘둘렀다. 그걸 본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외쳤다.

“이럴 거라고 생각했지! 이래서 선수 놈들을 믿지 않은 거다! 선수 놈들은 심심하면 배신을 한다니까!”

“닥쳐! 너희들이 우릴 이렇게 만든 거야!”

빈체로는 무기를 휘둘렀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눈앞의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에게 최대한 데미지를 줄 생각이었다.

너희들도 우리처럼 산 채로 붙잡혀 가봐야 알아!

“김태현이다! 저기 김태현이다!”

김태현이 야수들과 함께 바다 위를 얼려 선상 요새로 바로 향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공격해서 바다 밑으로 빠뜨려야 했지만,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적들이 너무 집요했던 것이다.

“네 장비를 봐라! 순순히 물러서는 게 좋을 텐데?”

“닥쳐라! 같이 죽는 거다!!”

“이것들이 미쳤나 진짜!!”

태현은 바다 위를 뛰어가며 그 모습을 보았다.

“아키서스 교단 플레이어들 힘내라! 교단이 너희를 지켜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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