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738화 (1,737/1,826)

§ 나는 될놈이다 1738화

‘아무리 생각해도 뭘 한 기억이 없는데.’

아키서스의 화신인 만큼, 태현은 이곳저곳에서 아키서스 신앙을 펼쳐왔었다.

하지만 원시의 섬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한 기억이 없었다.

있는 기억은….

-죽어라, 1왕자! 고릴라한테 먹히기 전에 죽어라! 목을 내놓고 죽어라!

-1왕자의 목을 뺏었다! 도망치자!

-이데르고 교단 놈들, 죽어라! 하하하!

‘흠. 정말 신앙 활동은 한 기억이 없다.’

[카르바노그가 가끔 진정한 신앙은 억지로 퍼뜨리려고 하지 않아도 퍼진다고 말합니다.]

‘카르바노그….’

태현은 카르바노그의 말에 감동하려다가 멈칫했다.

황금고릴라들이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 한 명을 칼날구덩이 안에 집어던지는 걸 목격한 것이다.

‘아무리 감동하려고 해도 힘들긴 하군.’

감동하려고 해도 황금고릴라들의 포악한 모습은 감동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내가 잘 싸워서 퍼진 건가? 그런 거라면 차라리 다행인데.’

태현은 가능성을 짚어보았다.

태현이 싸우는 모습에 반한 원시의 섬 몬스터들이 아키서스 교단 신앙에 눈을 뜨고, 자기들이 아키서스 교단 조각상을 세워서 숭배를 했다?

따지고 보면 나쁘진 않았다.

신앙은 선하고 나쁜 존재를 가리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황금고릴라들의 강함은 아키서스 교단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굶주린 혼돈이 끌어들이려고 하는 지금 같은 상황에는 더더욱 그랬고.

문제는….

‘…말을 제대로 듣냐인데.’

태현은 오랜 교황 경험으로 신도들이 꼭 말을 듣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황금고릴라들한테 가서 ‘나는 아키서스 교단의 진정한 교황이니 너희들은 내 말을 들어야 한다’라고 말했을 때, 황금고릴라들이 고분고분하게 들을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그보다는 ‘우어 너를 죽이고 우리가 교황하겠다’ 같은 반응을 보일 수도 있었다.

“이상한데? 아키서스 교단 같은데.”

빈체로 파티원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다른 파티원이 핀잔을 주었다.

“아니라니까. 비슷한 조각상이라고. 여기 아키서스 교단이 있을 리가 없잖아.”

“이봐. 내가 아키서스 교단 출신이라고. 진짜 아키서스 교단 같이 생겼….”

태현에게 협박당한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듣다가 코웃음을 쳤다.

어디서 아키서스 교단 출신인 걸로 아는 척을 한단 말인가?

여기에는 아키서스 교단 교황이 있는데!

“아. 모르는 소리 좀 하지 마십쇼.”

“우리 파티장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겁니다. 아키서스 교단일 리가 없어요.”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단호하게 나서자, 빈체로의 파티원들은 ‘그런가?’ 싶었다.

그들도 그렇게까지 확신은 없었던 것이다.

“확실히 그렇게 말한다면….”

“아니. 아키서스 교단 맞다.”

“…….”

“…….”

태현의 말에 플레이어들은 황당해했다.

아니라면서!!

“아까는 아니라면서요??”

“함정인 줄 알았지. 틀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뭐가 이렇게 당당해?!”

“틀렸으면 좀 더 미안해해야 하는 거 아닌가?”

빈체로 파티원들이 어이없어하자,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대신 나섰다.

“사람인 이상 실수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맞아! 너희는 실수한 적도 없냐!? 퀘스트 도중에 실수한 적도 없냔 말이다! 아까 파티장 덕분에 목숨 건졌으면서!”

태현의 정체를 알고 있는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필사적이었다.

만약 여기서 태현이 더 이상 참지 않고 정체를 드러내기라도 한다면?

-못 해먹겠군. 그냥 여기서 다 죽어라.

…그럴 경우 그들도 같이 죽을 가능성이 컸다.

‘제발 김태현 성질 건드리지 마!’

‘죽을 거면 네놈들만 얌전히 죽으란 말이다!’

“그… 그렇게 화를 낼 건 없잖아.”

“우리도 그쪽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건 알고 있다고.”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의 기세가 통했는지 빈체로의 파티원들은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면 어떻게 할….”

[황금고릴라가 당신들을 발견합니다!]

“!!”

“!!!!!!”

‘이런.’

다른 파티원들과 마찬가지로 태현도 당황했지만, 태현은 그 상황에서 생각했다.

‘잡히는 게 더 이득일지도 모른다.’

만약 황금고릴라들이 아키서스의 신도들이라면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을 붙잡게 한 다음 이용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괜히 섬 이곳저곳으로 흩어져서 게릴라전을 펼치기 시작하면 귀찮아지는 것이다.

‘빠르게 퀘스트를 망치려면….’

탁-

태현은 도망치려는 파티원의 발목을 슬쩍 걸었다.

그러고는 폭탄을 던졌다.

…파티원들이 도망치려는 길 앞쪽에다!

콰콰쾅!

[<요란한 폭죽 폭탄>이 폭발…]

[……]

[……]

던지자마자 태현은 옆에 있는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한테 호통을 쳤다.

“멍청하게 폭탄을 던지면 어떡하냐!”

“???!”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는 눈만 끔뻑거리며 당황스러워했다.

“제… 제가 뭘 잘못했….”

“뭐하는 거야! 뭐하는 거냐고!”

“황금고릴라들을 더 끌어들이면 어떡해!”

빈체로의 파티원들은 당연히 태현 말만 믿고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를 구박했다.

졸지에 죽일 놈이 된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는 울상이 되었다.

‘내가 한 거 아닌데!’

탁-

태현은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는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잘했다는 한 마디에 서러웠던 게 싹 사라진 것이다.

다른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김태현한테 길들여지고 있잖아?!’

* * *

빈체로는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했지만 결국 다른 플레이어들처럼 붙잡혔다.

“큭…!”

빈체로는 분한 듯이 고개를 숙였다. 파티원들은 사과했다.

“미안, 빈체로. 우리가….”

“아니다! 다들 최선을 다했잖나. 사과하지 마라.”

“하지만 우리가 조금 더 잘했다면….”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모두 실수를 조금씩 했으니까!”

빈체로는 퀘스트가 실패했을 때 뒤늦게 책임을 묻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이번 탈출에 실수가 좀 많긴 했지만, 그건 모두의 책임이었다.

“다들 미안하다!”

“…….”

“…….”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그 모습에 살짝 미안해졌다.

‘야. 저 자식 나중에 알게 되면 우리 죽이려고 하는 거 아니야?’

‘우린 김태현이 시켜서 한 거잖아.’

‘근데 그걸 정상참작 해줄 것 같지는 않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태현의 명령을 받고 정말 열심히 방해를 했다.

다리 걸고 스킬 실패하고 폭탄 터뜨리고 고릴라들 불러오고….

아무리 빈체로와 파티원들이 애를 쓴다고 하더라도 이걸 다 수습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빈체로!!”

“구하러 왔…? 아니, 이 쓰레기 자식! 잡혀서 오면 어떡해!”

“죽어! 넌 쓰레기 같은 놈이야!”

“네가 그러니까 뉴욕 라이온즈에 밀리지!”

“닥치지 못해?!”

빈체로는 울컥해서 대꾸했다.

먼저 붙잡힌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의 야유가 빈체로를 분노하게 만든 것이다.

태현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서로 싸우면 싸울수록 태현에게는 좋았다.

“남은 놈들은 언제 와 대체?”

“그 자식들이 구하러 오겠냐? 나 같아도 안 오겠다.”

“퀘스트잖아! 퀘스트를 깨야지!”

“퀘스트도 퀘스트 나름이지 이 상황에서 퀘스트 깨겠다고 구출하러 오는 미친놈들이 어딨….”

감옥에 갇힌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투덜대는 동안, 태현은 당당하게 외쳤다.

“나는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다!”

“…….”

“…….”

“…참신하게 미친놈이네 저거.”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황당하게 태현을 쳐다보았다.

거짓말을 하더라도 좀 그럴듯하게 쳐야지, 지가 김태현이라니.

황금고릴라들을 얕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이, 신참! 개소리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 괜히 아키서스 믿는다고 까불다가는 산제물로 먼저 간다고!”

“맞는 말이야.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탈출 확률이 높아!”

아키서스 교단을 사칭하는 순간 바로 아키서스 신앙을 테스트하러 끌려가게 됐다.

그에 비해 가만히 있으면 요리될 때까지 상당히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후자를 고르고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지금 내가 구멍 뚫고 있으니까 기다리는 게….”

-야. 저거 신고해라.

-알겠습니다.

태현의 명령을 받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는 바로 밀고했다.

“고릴라 님! 저기 구멍 팝니다!”

“??!”

“이, 이 미친 새끼야 뭐하는거야!”

“아니야! 잘 했어! 저 새끼 어차피 도망쳐봤자 지 혼자 도망칠 놈이었어!”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 태현은 침착하게 황금고릴라들 사이에 섰다.

황금고릴라들은 태현의 말에 당연히 의심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아키서스를 믿겠다고 한 모험가 놈들 중에 아키서스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심지어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라니.

[황금고릴라가 당신을 <아키서스의 시험>에 도전시키려고 합니다.]

[<아키서스의 시험>을 통과할 경우 당신은 아키서스의 신도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교황을 자처했습니다!]

[난이도가 올라갑니다!]

“힉!”

감옥 안에서 구경하고 있던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까보다 훨씬 더 흉측한 구덩이가 드러난 것이다.

단순히 칼날뿐만이 아니라 온갖 곤충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구덩이!

그걸 본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망했군. 망했어.”

“저건 절대 무리지….”

원시의 섬은 곤충 몬스터도 절대 약하지 않았다. 잘못 걸리면 뼈와 살이 분리되는 수가 있었다.

거기에 무방비하게 들어가야 한다니.

-■■■■!

탁-

태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

[……]

[……]

무수히 많이 들어오는 공격들.

그러나 태현의 HP는 조금도 깎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황금고릴라들의 눈동자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 ■■■■!

-■■■■! ■■■■!

황금고릴라들은 흥분한 표정으로 태현을 가리키며 펄쩍펄쩍 뛰었다.

그 흥분은 뒤에 갇혀 있던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한테도 전달되었다.

“왜 저러지?”

“고릴라들이 보기에 맛있게 죽은 거 아니야?”

“비위 상하는 이야기 하지 마!”

“…성공한 거 아니야?”

“뭔 개소리를… 저걸 어떻게 성공해? 그게 가능하다고 보냐?”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수군대던 사이, 구덩이 안에서 누군가가 올라왔다.

시험을 통과한 태현이었다.

[<아키서스의 시험>에 통과합니다!]

[당신은 아키서스의 신도로 인정받았습니다.]

[황금고릴라들이 당신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스스로를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으로 선언했습니다.]

[황금고릴라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증명하십시오!]

[……]

[……]

[……]

황금고릴라들은 태현을 둘러싸고 신나게 박수를 쳤다. 그리고 솥에 가서 요리를 떠오려고 했다. 태현은 최대한 빨리 말렸다.

“통… 통과했다! 통과했어!!!”

“저게 먹혔어! 먹혔다고!!!”

“너 이 자식!! 난 믿고 있었다고!!!”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흥분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빨리 우릴 풀어줘!”

“그래! 아키서스의 이름으로 풀어주라고 해!”

태현은 천천히 걸어서 감옥 앞에 섰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뭘 해줄거냐?”

“…….”

“…???”

“응? 무슨 소리야?”

“풀어주면 뭘 해줄 거냐고.”

“…….”

“…….”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눈앞에 있는 놈이 생각보다 만만찮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이 새끼…!

누가 김태현 사칭범 아니랄까 봐 하는 짓거리도 비슷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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