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737화 (1,736/1,826)

§ 나는 될놈이다 1737화

“악몽인가??”

“닮… 닮은 거겠지.”

그러나 아무리 보고 봐도 조각상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키서스 교단의 조각상이었다.

“대체 왜 아키서스 교단의 조각상이 여기 있어?”

“황금고릴라 놈들이 그냥 장식용으로 갖다 놓은 거 아닐까??”

아니었다.

황금고릴라들은 아키서스 교단의 조각상 앞에서 가슴을 두드리며 함성을 질렀다.

누가 봐도 기도를 하는 모습이었다.

-■■■!

황금고릴라 하나가 플레이어를 꺼내더니 아키서스 교단의 조각상 앞으로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황금고릴라가 당신을 <황금고릴라의 사원>에 산 제물로 바치려고 합니다.]

[산 제물로 바쳐질 경우 신성 스탯이 오릅니다!]

[아키서스 교단 공적치 포인트가 조금 오릅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필요없어! 필요없다고! 야, 이거 놓지 못해 미친놈들아!? 놓으라고!”

플레이어는 기겁해서 발버둥 쳤지만 황금고릴라는 무시했다. 그것도 모자라 자기들끼리 대화를 했다.

-■■■ ■■■?

-■ ■■■ ■■■■ ■■ ■■.

“야 이 미친 몬스터 놈들아! 아키서스 교단은 산 제물을 안 바쳐! 네놈들이 진짜 아키서스 교단이면 이러면 안 된다고! 내 말 안 들리냐!”

“아키서스 교단 근데 산 제물 가끔 바치잖…?”

“김태현 놈이 그러던데.”

아래쪽에 갇혀 있던 플레이어들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전혀 도움 안 되는 말에 제물로 바쳐지기 직전의 플레이어는 원독 어린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미, 미안.”

“그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산 제물로 바쳐집니다!]

“크아악!”

탈출 실패한 플레이어는 결국 그대로 로그아웃당했다.

밑에 있던 다른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그대로 압도되었다.

세상에 이게 뭔….

-■■■■! ■■■■!

-■■■■! ■■■■!

황금고릴라들은 좋다고 울부짖으면서 서로 박수를 쳐댔다.

-■■ ■ ■■■!

-■■ ■?

-■■! ■■■■■■ ■■■■ ■■!

“뭐, 뭐라는 거야?”

“하나 더 바치자는 거 아니야?”

“아키서스가 기뻐할 거라고… 잠깐, 이런 미친 짐승 놈들!”

궁지에 몰린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 중 한 명이 기책을 떠올렸다.

“잠깐, 고릴라들아! 나는 아키서스를 믿는 사람이다! 제발 내 말을 믿어줬으면 좋겠다!”

“!”

플레이어들은 감탄했다.

그런 방법이!

‘확실히…!’

‘잘하면 통할지도….’

호랑이 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듯이, 고릴라 굴에 물려가도 아키서스만 믿으면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

-■■■■.

황금고릴라들도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가 손짓, 발짓하며 전달한 메시지를 이해한 것 같았다.

자기들끼리 고민하더니 아키서스를 믿고 있다고 말한 플레이어를 끌어냈다.

그리고는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갔다.

“!!!”

“통, 통했다!!”

갇혀 있는 다른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정말로 통한 것이다!

“통했어! 봤냐?! 통했다고!”

“나도 아키서스 교단을 믿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손을 따라 아키서스 교단을 믿었습니다!”

태현이 봤다면 ‘이런 가짜 신앙 새끼들이’ 하며 욕했을 테지만,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필사적이었다.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황금고릴라가 당신을 <아키서스의 시험>에 도전시키려고 합니다.]

[<아키서스의 시험>을 통과할 경우 당신은 아키서스의 신도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는 긴장했다.

이건 위기였지만 곧 기회였다.

‘꼭 아키서스의 힘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성공만 시키면 되는 거 아닌가!’

만약 성공만 한다면 황금고릴라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매번 김태현 놈이 굶주린 혼돈 세력에 잠입해서 온갖 개짓거리는 다 하고 사라지는 것처럼,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도 이제 아키서스 교단을 사칭해서 잠입….

철커덕!

“…….”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는 자신도 모르게 황금고릴라를 쳐다보았다.

눈앞에 거대한 구덩이가 있고, 구덩이 곳곳에 살벌한 창칼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창칼 위에는 총천연색의 독이 발라져 있었다. 누가 봐도 맹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게 뭔가요?”

툭툭-

황금고릴라는 가리켰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뜻은 명확했다.

구덩이로 뛰어들어라!

“하하. 농담이시죠? 그쵸?”

툭툭툭-

“아니… 잠깐만요… 장비라도 좀 주시고….”

포로 상태여서 장비도 다 해제된 상황.

게다가 묶여 있어서 가방에서 포션도 꺼낼 수 없었다.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그렇지 저기서 맨몸으로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 아키서스 교단 신도여도 저건 못하지!!

“뭔가 오해하고 계신 거 같습니다! 아키서스 교단이라고 다 저런 거 가능한 게 아닙니다!! 아키서스 교단은! 평화와 사랑을 존중하는 크아아악!”

퍽!

귀찮아진 황금고릴라가 그대로 플레이어의 등을 밀어버렸다.

[<아키서스의 시험>이 시작됩니다!]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중독됐습니다!]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중독…]

[……]

[……]

[……]

함정에 설치되어 있던 창칼들은 보통 창칼들이 아니었다. 황금고릴라들이 작정하고 만든, 원시의 섬에서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만들어진 무기였다.

순식간에 메시지창들이 수십 개 뜨더니 플레이어는 그대로 로그아웃당했다.

-■■■■■ ■■■ ■■■!

-■■ ■■■!

“뭐, 뭐라는 거야?”

“아키서스의 신도가 아니라서 우리한테 화난 거 같은데…?”

황금고릴라들은 씩씩대며 남은 사람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기겁해서 진실을 털어놓았다.

“저희 아키서스 교단 아닙니다!”

“나는 굶주린 혼돈의 충실한 신하입니다!”

* * *

‘생각보다 괜찮은 놈인데.’

빈체로는 태현을 꽤 높게 평가하게 되었다.

원래 랭커는 결과로 말하는 법.

아까처럼 다들 겁먹은 상황에서 침착하게 배짱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의 반대까지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태현의 파티원들이 태현을 보고 벌벌 떠는 게 오히려 좋게 느껴졌다.

저건 난폭한 리더십이 아니라 카리스마였다.

‘하긴 파티원들이 말을 안 들으면 강하게 나가야지.’

감탄하던 빈체로는 상대의 이름도 아직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어이. 네 이름이….”

-빈체로! 살려줘!! 크아아악!

“???”

-빈체로! 너밖에 없… 잠깐. 너 아직 안 잡힌 거 맞지??

-빈체로!! 도와줘….

‘뭐야?’

갑자기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에게서 날아오는 귓속말들.

빈체로는 무시하려고 했다. 만약 해안가의 일이라면 이미 끝난 뒤였다. 그걸 어떻게 도와준단 말인가.

…그러나 상황은 생각했던 거랑 좀 달랐다.

-황금고릴라 놈들이 우릴 붙잡아서 끌고 갔는데 아키서스 교단 조각상 앞에서 제물로 바치고 있어! 실수하면 거기서 시련을 통과해야 하는데 맨몸으로 함정구덩이에 뛰어들어서 아키서스에 대한 믿음을 보여줘야 해!

“…너 약이라도 했냐??”

빈체로는 상대의 말에 황당해했다.

뭔 개소리를 이렇게 정성껏 한단 말인가?

그러나 놀랍게도, 귓속말은 진짜였다.

곧 비슷한 증언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상황을 파악한 빈체로는 이 황당한 이야기를 파티원들에게 공유해 줬다.

물론 태현에게도.

“지금 여기 원시의 섬에 있는 강력한 몬스터들이 플레이어들을 잡아서 산 제물로 바치는데, 이 몬스터들이 아키서스 교단의 사주를 받은 것 같다.”

‘개소리를 하는군.’

태현은 코웃음을 쳤다.

[카르바노그도 어이없어합니다!]

‘이 자식들은 다 내 탓이래? 좀 있으면 스미스가 사라지고 왕국이 불타는 것도 내 탓으로 돌리겠다.’

[그런데 그건 화신 탓이 맞지 않냐고 카르바노그가…]

카르바노그의 말은 무시하고, 태현은 어이없어했다.

물론 태현이 지금 해안가에 있는 함선들 밑에 폭탄 함정들을 닥치는 대로 붙이고 오긴 했지만, 그것과 저 몬스터들은 별 상관이 없지 않은가.

“헛소리일 거다.”

“!”

빈체로는 태현의 말에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빈체로의 다른 파티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헛소리라고?”

“헛소리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증언이 많은데….”

“잘 생각해 봐라. 여기 원시의 섬에 어떻게 아키서스 교단이 있겠나?”

“그러면 저놈들은 왜?”

“아마 자기들의 패배를 변명하려고 단체로 짜고 치는 거겠지. 아키서스 교단이면 적당한 핑계가 되니까. 또 하나. 자기들이 갇혔는데, 그냥 갇힌 거면 버리고 갈 수도 있으니까 아키서스 교단의 이름을 파는 거다.”

“과연…!”

빈체로는 태현의 논리에 그대로 설득되었다.

아까 황금고릴라들의 추격을 피한 태현의 말에는 강한 설득력이 있었다.

‘확실히 그 새끼들이라면 충분히 할 짓이긴 하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 사이에 믿음이나 신뢰 같은 건 없었다.

있는 건 오로지 경쟁뿐.

“확실히 내가 그놈들을 왜 구해줘야 하나 싶군.”

“그렇지.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괜히 같이 붙잡히는 수가 있어.”

“넌 정말 냉정한 놈이야.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 중에서 너처럼 능력 있는 놈은 본 적 없는데.”

태현한테 협박당해서 따라온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움찔했다.

그야….

김태현이니까 그렇겠지…!

빈체로의 파티원 중 한 명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거 같냐?”

“일단 놈들을 안심시키고 위치를 파악하자고. 지도는 필요하니까. 놈들을 구출해 주겠다고 말해.”

그러는 사이에도 붙잡힌 플레이어들한테서 귓속말이 계속 날아왔다.

-아키서스 조각상 크악!!

-이 미친놈들아 그만하지 못해! 아키서스 신앙은 그런 게 아니라고! 솥에 뭘 하는 거야!

빈체로는 인상을 찌푸렸다.

“연기 참 실감 나게 하는군. 그 노력을 다른 곳에 쓸 것이지.”

“한심한 놈들이야.”

태현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을 해도 좀 그럴듯한 거짓말을 해야지, 황금고릴라들이 아키서스 교단을 믿는다는 거짓말을 치다니.

조금만 생각해 봐도 바로 들통날 수밖에 없는 한심한 거짓말이었다.

빈체로는 계속 귓속말을 하며 상대를 잘 설득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찾았다! 위치 찾았어.”

“좋아. 잘 했다! 그쪽으로 가자고. 가고 있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고, 놈들이 우릴 발견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은신해. 황금고릴라보다 놈들을 더 조심해야 해. 만약에 수틀리면 같이 죽겠다고 발목을 잡고 늘어질 수 있으니까.”

태현의 말에 빈체로의 파티원들은 감탄했다.

그들도 굶주린 혼돈에 가입하긴 했지만, 태현처럼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에 대해 꿰고 있지는 못했던 것이다.

정말 전문가 같다!

‘진짜 보통 놈이 아닌가 보다.’

‘근데 쟤 이름 뭐냐?’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 빈체로와 태현이 앞장서서 출발했기 때문이었다.

* * *

“…….”

태현은 멀리서 황금고릴라의 사원을 보고 오랜만에 경악했다.

저게 뭐냐???

[카르바노그가 저건 분명히 아키서스…]

‘…비슷한 신일 수도 있지 않나?’

[카르바노그가 절대 아니라고…]

‘굶주린 혼돈의 계략일 수도….’

[카르바노그가 절대 절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태현은 결국 현실을 받아들였다.

‘뭐지? 아키서스의 안배인가? 이런 게 있으면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아니. 잠깐만. 저번에 원시의 섬 갔을 때는 이런 거 없었는데.’

태현은 생각을 되짚어보았다.

분명 저번에 1왕자 때문에 원시의 섬 추격탈출전을 펼쳤을 때는 아키서스 교단이고 뭐고 없었었다.

아키서스 교단 퀘스트가 떴을 정도였으니….

<신비로운 원시의 섬-아키서스 교단 퀘스트>

중앙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이 섬은, 이제까지 대륙 주변에서 본 것과 전혀 다른 몬스터들이 살아 숨쉬는 야생의 땅이다.

아직 아무런 신앙도 없는 이곳에 신전을 세우고 신앙을 퍼뜨리는 것이 어떨까?

지금은 힘들고 고되지만 분명 먼 훗날에는 보람찬 결과가 되어 돌아오리라!

보상: ?, ???

“…….”

예전에 받았던 퀘스트 내용을 다시 확인해 본 태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내가 뭘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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