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33화
머쓱해진 파이토스 교단 플레이어들이 돌아가고 나자, 이세연은 황급히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특히 선수들 중에서 교단에 가입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선수들을.
“보통 교단에서 교황 사라졌을 때 다른 교단 사람이 임시로라도 대리 맡는 경우가 흔한가?”
“?”
“??”
“???”
하늘 같은 주장의 말에 선수들은 당황했다.
‘무슨 뜻이시지?’
‘혹시 교단에 가입하고 싶으신 거 아니야?’
‘좀 무리 같은데….’
유성 게임단 선수들은 이세연을 존중했다. 이세연이 원한다면 어떤 무리한 퀘스트라도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굶주린 혼돈의 목을 따오거나, 스미스의 목을 따오거나, 김태현의 목을….
‘아 이건 아니지.’
하지만 한 가지 무리인 게 있었다.
그건 네크로맨서 중의 네크로맨서인 이세연이 교단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그건 무리지!
그냥 교단 사람들을 다 죽이고 언데드로 만드는 게 빠를 텐데….
“주장. 교단에 꼭 가입하지 않으셔도 주장은 주장입니다.”
“맞아요! 주장은 교단에 가입하지 않아서 멋진….”
“…헛소리 하지 말고. 내가 교단에 가입하려고 물을 리가 없잖아.”
이세연은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신인 선수들이 실력은 나쁘지 않은데 이상한 헛소리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파이토스 교단 상황 때문에 그래.”
“파이토스 교단 상황이 어떤데요? 새 교황이 뽑혔나요?”
“김태현이 대리 뛴다던데.”
“…….”
“…….”
선수들은 ‘주장이 농담하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서로 쳐다보았다. 물론 농담이 아니었다.
“당연히 말이 안 되죠!”
“아니 어떻게 한 거야!?”
“지금 귓속말로 물어보면 안 됩니까?”
“답장 안 와. 퀘스트 지역이 귓속말 불가능 지역인 것 같은데.”
“와… 그런 방법이 있다면 진짜 좋겠는데요.”
선수들은 감탄했다.
다른 교단의 운영권을 임시로라도 받을 수 있다니.
만약 그들에게 그런 기회가 온다면….
“난 교단 창고에 있는 보물들부터 옮길 것 같은데.”
“난 대주교부터 성기사단장까지 전부 다 데리고 파티 돌 거야. 내 퀘스트에 무조건 다 참가시켜야지.”
“난 내 영지 건설할 때 교단 가입한 플레이어들 동원하고 싶은데.”
“한심한 소리 그만해. 너희들이 그러니까 김태현 선수가 아닌 거지.”
듣다 못한 동료가 옆에서 구박을 했다. 신나서 떠들던 선수들은 부끄러운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듣고 있던 이세연은 표정을 관리해야 했다.
‘김태현은 다 했었던 것 같은데….’
“주장. 악마 공작이 주장을 뵙고 싶어합니다.”
“아니 왜… 자꾸 나한테 오는 건데!”
이세연은 참다못해 폭발했다.
원정대에 참가한 파티들이나 랭커들이 이세연에게 상담하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태현이 데리고 온 온갖 이상한 놈들이 이세연한테 상담 오는 건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나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한 게 분명해…!’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 답이 되지 않았다.
여기는 심지어 김태현 아버지도 있는데 왜 자꾸 이세연한테 와서 묻는단 말인가.
이세연은 당장 언데드 대군세를 오스턴 왕국에 배치시키고 막을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파 죽겠는데….
“죄, 죄송합니다. 나가라고 할까요?”
“…아니야. 내가 괜히 화풀이를 했네. 기다려.”
이세연은 일어섰다.
지금 원정대에는 강력한 NPC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각 교단의 대주교와 성기사단장들.
망명해 온 기사단의 기사단장들.
영주와 귀족 NPC들.
…악마 공작들을 여기에 넣고 싶지는 않았지만 일단 악마 공작들도 소중한 존재긴 했다.
좀 짜증 나는 놈들이라 그렇지.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아, 흑마법사여….
악마 공작, 에슬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세연을 반겼다.
태현이 이세연한테 가라고 한 건 사실이긴 했지만, 사실 악마 공작들도 이세연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기본적으로 흑마법사 아닌가!
-내가 저번에 했던 제안은….
“그건 거절했을 텐데.”
이세연은 차갑게 말했다.
저번에 에슬라가 했던 제안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 이 주변에 있는 악마들을 전부 다 붙잡아서… 저 기계 에다오르처럼 개조하는 건 어떤가? 악마들은 절대 충성하지 않고 반항심만 가득한 놈들이지. 차라리 기계 에다오르처럼 개조하는 게 옳은 방식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좀 끌리는 제안이긴 했지만 이세연은 정신차리고 거절했다.
악마 숫자들이 숫자들인데 그걸 다 붙잡아서 개조하겠다고 하는 순간 엄청난 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굶주린 혼돈의 공격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데 그런 곳에 낭비할 시간 없었다.
-하하. 내가 저번에 했던 제안은 잊어도 된다. 이번에는 좀 더 좋은 제안을 들고 왔다.
“…….”
이세연은 저런 제안을 일단 들어보려고 하는 스스로한테 자괴감을 느꼈다.
‘김태현보고 이상한 놈이라고 욕할 자격이 없어…!’
“…말해봐.”
-지금 마계에서 많은 악마들이 대륙으로 도망쳐오고 있다. 마계에 엄청난 위기가 닥쳐서….
“굶주린 혼돈이 벌써 마계까지 점령했어??”
-아니. 그건 아니다. 누군가 마계의 불꽃을 건드렸는지 엄청난 추위가 밀려오고 있지. 그래서 이 악마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세연은 벌써부터 두통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상황이 좋지 않은데 마계의 악마들까지 대거 대륙으로 나온다니.
개판 중의 개판이 될 것 같았다.
원래라면 저것만으로도 대륙 이벤트인 것이다.
-이 악마들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
-바로 여기에 소환진을 만들어서 소환하는 거지. 마침 아키서스 교단에는 악마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비전도 있고 말이야. 후후.
“…!!”
이세연은 경악했다.
‘악마 공작 맞아??’
물론 태현한테 들어서 에슬라가 다른 악마들을 향한 원한으로 가득 차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른 악마들한테 배신당해서(물론 자기가 먼저 다른 악마들을 다 죽이려고 하긴 했지만) 던전에 까마득한 시간 동안 갇혀 있었으니.
하지만 그래도 저건 정말….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긴 한데.”
이세연은 결국 이번 제안은 거절하지 못했다.
너무….
탐나잖아!
[악마 공작, 에슬라와 구시렉이 아레네 시 평야에 공작의 소환진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마계의 악마들이 소환될 확률이 폭증합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전투악마 훈련소가 아레네 시에 새로 추가됩니다!]
[골짜기에 있던 전투악마 훈련소 담당 성기사들이 참가합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골짜기에 있던 전투악마 훈련소 담당 사제들이 참가합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현재 아키서스 교단에 전투악마들의 훈련 결과가 좋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
악마 훈련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교단, 아키서스 교단.
현란한 메시지창을 보며 이세연은 시선을 피했다.
음….
날씨가 좋네!
‘가서 언데드나 더 소환해놔야겠다….’
* * *
그 후로도 여러 교단의 신들이 태현에게 말을 걸어왔다.
사디크나 파이토스처럼 친하지는 않았지만, 신들은 태현을 응원하고 선물을 주었다.
[이데르고가 당신에게 힘을 부여합니다.]
[스킬, <???????>을 얻습니다.]
[조건을 달성할 경우 사용 가능합니다!]
[데메르가 당신에게 힘을 부여합니다.]
[스킬, <????>을 얻습니다.]
[조건을 달성할 경우 사용 가능합니다!]
[살라비안이…]
[시이바가…]
[베레타르바가…]
[카르바노그가 엮인 신 너무 많지 않냐고 황당해합니다.]
‘화신으로 살다 보면 다른 신들과 엮일 수밖에 없는 거겠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태현은 고개를 들었다.
이제 남은 신은 하나밖에 없었다.
아키서스!
‘내놔라. 아키서스. 힘을!’
태현은 사악한 사람이나 할 소리를 하며 기다렸다.
그 기다림이 무색하지 않게 곧 새로운 조각상이 나타났다.
[당신은 아키서스의 화신입니다.]
[당신이 곧 아키서스입니다.]
“…?”
아까와는 다른 조각상이 태현 앞에 나타났다.
그건 태현의 모습이었다.
[이제 당신이 아키서스인 만큼, 당신이 직접 나아가야 합니다.]
[새로운 신화를 남기십시오!]
<아키서스의 화신-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
다른 후계자들을 믿지 못하고 신들의 무저갱에 자신의 목소리를 남긴 다른 신들과 달리, 아키서스는 자신을 대신할 화신을 완전히 신뢰하고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당신은 이제 아키서스입니다.
보상: 아키서스의 화신
‘…아니 설마 이대로 끝나는 건 아니겠….’
태현의 두려움을 덜어주듯이, 메시지창이 날아왔다.
[직업, <아키서스의 화신>이 더욱 더 강력해집니다.]
[아키서스가 남긴 모든 것들이 해금됩니다.]
[신성 스탯이 크게 올라갑니다!]
[…]
[…]
[…]
“…?”
태현은 메시지창을 보다가 당황했다.
끝이야?
물론 나쁘진 않았다. 전체적으로 버프에, 신성 스탯도 크게 올려주고….
하지만 태현이 원하는 건 하나만 있어도 굶주린 혼돈의 목을 따버릴 수 있는 사기적인 스킬이었다.
게다가 사디크나 파이토스가 준 것에 비교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심심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신들의 무저갱이 닫힙니다.]
[대륙으로 돌아갑니다!]
“야!!! 아키서스!! 아키서스!!!”
[당신이 곧 아키서스입니다.]
[카르바노그가 이제 아키서스 욕해봤자 화신이 아키서스라 별 의미가 없어졌다고…]
* * *
첨벙!
무저갱 밖으로 빠져나온 태현은 주변이 온통 물 투성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하인가?’
아니었다.
드높은 하늘과, 탁 트여 있는 시야.
망망대해였다.
“…….”
뭐 어디로 나온 거야??
-태현 님? 태현 님? 태현 님? 태현 님? 태현 님?
-이다비. 진정해.
-아. 죄송해요.
‘설마 지금 받을 때까지 계속 귓속말 보내고 있었나…?’
태현은 당황스러워하며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이다비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러면 아키서스의 권능 스킬도 받으셨겠네요!
-…으…으응.
태현은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해버렸다.
이다비를 차마 실망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보다 지금 내가 바다거든? 곧 위치 확인할 테니까 기다려줘.
-네. 바로 부르세요. 케인이라도 먼저 보낼까요?
-아니야. 괜찮아.
[현재 바다가 굶주린 혼돈의 힘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있을 경우 체력이 빠르게 감소합니다.]
[…]
[…]
‘아니 이 자식은 환경오염도 하네.’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진짜 가지가지하는구나!
굶주린 혼돈 때문에 대륙은 물론이고 바다도 지금 플레이어들이 나가지 못하는 꼴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굶주린 혼돈의 순찰선이 나타납니다!]
[당신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도망칠 생각도 없었다.’
태현은 도망치는 대신 굶주린 혼돈의 순찰선 옆면에 검을 박았다.
-내구도! 내구도 신경 써라!
“안 부서졌으니까 엄살 떨지 마라.”
다행히 기계공학자의 마검은 그 격전에도 불구하고 내구도가 남아 있었다.
내구도만 남아 있으면 태현의 실력으로 얼마든지 수리가 가능했던 것이다.
팟!
태현은 한손으로는 빙결공의 왕관으로 만들어 낸 얼음검을, 한손으로는 마검을 들고 번갈아 찍으며 위로 뛰었다.
순식간에 타고 올라오는 태현의 모습에 순찰선 위에 있던 적들은 깜짝 놀랐다.
“뭐….”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제국 기계공학자의 마검이 추가…]
[빙결공의 왕관이…]
[…]
[…]
“잠깐, 우리는 랭커도 아닌…!”
“굶주린 혼돈 가입했잖아?”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적들은 상황도 잊고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죽어라.”
태현은 다시 플레이어들을 개 패듯이 패기 시작했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