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31화
“혹시 케인을 희생시켜서 부활시키는 스킬은 없나?”
“있을 것 같은데.”
“케인 저 자식이 숨기는 거 아니야?”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진지하게 수군거렸다.
케인을 힐끔힐끔 보며 위험하게 눈빛을 빛내는 걸 보니, 약간 사교도 집단이 산제물 바쳐서 신을 부활시키려는 것 같은 오싹함이 느껴졌다.
“그딴 거 없어, 멍청한 새끼들아!”
내버려 뒀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아서 케인은 적극적으로 부정했다.
“진짜?”
“그래!”
“네가 없다고 믿는 건 아니고?”
“…진짜 죽고 싶냐!”
“다들 진정하세요. 그리고 어차피 태현님은 이런 상황에 익숙해서 알아서 헤쳐 나올 수 있어요.”
“정말로? 케인을 바치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네네. 당연하죠.”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이다비의 말에 진정한 것 같았다.
이다비는 태현을 불렀다.
-괜찮으세요?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괜찮으세요??
다시 불러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이다비는 진지하게 케인을 제물로 바칠 수는 없나 고민했다.
* * *
[부활 스킬이 자동으로 시전됩니다!]
[아키서스의 신성한 힘을 이용해 죽음에서 되살아납니다.]
[신들의 영원한 무저갱을 발견합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신성 스탯이 크게 오릅니다.]
[칭호, 무저갱의…]
[…]
[…]
[…]
“…?”
태현은 산맥을 무너뜨린 메시지 창이 언제 다 끝나나 기다리다가 의아해했다.
뭐지?
[카르바노그가 어딘가 다른 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곳은 평범한 지하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야 평범한 지하가 아니겠지…. 그렇게 무너졌는데.’
지하 암반을 뚫고 용암까지 떨어진 건 아니겠지?
<신들의 무저갱-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
신들은 오래전에 대륙을 떠났지만, 그들은 사악한 적들이 언제든지 대륙의 필멸자들을 위협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당신은 헌신으로 인해 순수한 신앙을 가진 악의 적대자만이 도착할 수 있는 차원의 무저갱에 도착했다.
신들이 남긴 목소리와 대면하라!
보상:?, ???
“…!”
태현은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도착한 것이다.
대륙에 이런 곳이 있었단 말인가?
‘산맥을 무너뜨려서 이런 보상을 받는 건가?’
[카르바노그가 산맥을 무너뜨려서가 아니라….]
카르바노그는 대신 설명을 해주려고 했지만, 태현은 듣지 않고 걸어가 버렸다.
어디선가 많이 본 인상을 가진 거대한 조각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위를 통째로 깎아서 만든 굳건한 조각상은 대륙에서 본 어떤 조각상들보다 거대하고 위엄 있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간 태현은 그 조각상이 바위가 아니라 화염으로 이뤄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말도 안 돼!’
바위처럼 단단한 질감을 가진 화염이라니.
이런 화염은….
[사디크의 권능을 갖고 있습니다!]
[사디크의 교단을…]
[…]
[…]
[…]
[…]
[당신은 사디크에게 선택받았습니다.]
[사디크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번쩍!
조각상이 눈을 떴다.
상대방이 사디크라는 걸 깨닫자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모두 긴장했다.
‘망한 것 아닌가?’
[카르바노그가 그래도 선택받은 거에 희망을 걸어보자고….]
‘결과를 짐작할 수가 없군.’
태현은 긴장했다.
사실 태현도 사디크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었다.
물론 태현이 사디크의 권능을 이어받고, 사디크 교단을 책임지고 있는 계승자긴 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태현은 사디크 성기사단장, 사디크 대주교 등 주요 NPC들을 베어버리고 교단 뿌리를 뽑아버린 적도 있었다.
…권능도 사실 강탈한 셈에 가까웠고.
-왔는가, 나의 후계자여. 나의 후계자답게 강력한 힘을 갖고 있구나.
사디크는 존재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것 같은 타오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태현은 눈치를 봤다.
어?
모르나?
“바로 그렇습니다. 제가 당신의 교단을 이어받아 세력을 키우고, 당신의 화염을 더욱 맹렬하게 타오르도록 지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알고 있다. 네 안의 느껴지는 화염의 힘은 네 힘을 증명하고 있노라.
[태초의 불을 갖고 있습니다!]
[칭호…]
[사디크의 화염을 갖고 있습니다!]
[…]
[…]
[…]
[사디크가 당신에게 만족스러워합니다.]
[사디크의 권능 스킬들이 더욱 강해집니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가장 강력한 불들을 더 네 것으로 만들어라. 지옥에 가장 차가운 곳에 존재하는, 심연의 불꽃 같은….
‘장난하냐.’
태현도 심연의 불꽃이 뭔지는 알았다.
예전에 퀘스트 관련으로 나왔었으니까!
<심연의 불꽃-대장장이 기술 퀘스트>
당신은 태초의 불을 찾아 대장간으로 옮겨 온 뛰어난 대장장이다!
대장장이로서 대륙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위대한 불들은 절대 놓칠 수 없는 보물들.
그런 당신 앞에 심연의 불꽃이 나타난 건 어떻게 보면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옥의 가장 차가운 곳에 존재한다는 심연의 불꽃을 찾아서 갖고 올 수만 있다면 대장장이로서 그 이름이 영원히 남으리라!
보상:?, ???, ????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는 태현인 만큼, 당연히 저런 퀘스트를 깨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저건 깨고 싶다고 깨지는 게 아니었다.
지금 마계의 악마 공작들도 굶주린 혼돈을 상대하느라 절반 이상이 다치고 쓰러졌는데….
[카르바노그가 정확히 따지면 화신이….]
…마계를 뒤져가면서 언제 저걸 찾는단 말인가.
굶주린 혼돈이 날뛰는 지금은 무리였다.
-…화염을 찾아라. 하지만 지금 네 적들이 널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후계자. 그러니 내가 네게 심연의 불꽃을 전해주겠다.
“…???”
태현은 귀를 의심했다.
뭐요?
[심연의 불꽃이 피어납니다.]
[사디크가 지옥의 가장 차가운 곳에 있는 심연의 불꽃을 훔쳐옵니다.]
[마계가 얼어붙기 시작합니다.]
[마계의 악마들이 종말에 신음합니다!]
[마계의 악마들이 심연의 불꽃을 훔쳐간 자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칠 것입니다!]
안 그래도 여러 악마 공작들이 쓰러지고, 굶주린 혼돈에게 공격받은 상황에서, 마계의 추위를 막아내고 있던 심연의 불꽃마저 사라졌다.
즉시 마계에는 견딜 수 없는 추위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카르바노그가 마계 괜찮은 거 맞냐고 당황스러워합니다.]
어지간해서는 악마 걱정은 안 해주는 카르바노그였지만, 이번에는 좀 이야기가 달랐다.
악마 공작들 마계로 못 돌아가는 거 아니야??
“감사합니다!”
그러나 카르바노그의 복잡한 마음과는 달리, 태현은 사디크가 준 심연의 불꽃에만 집중했다.
까놓고 마계가 부서지든 말든 지금 알 게 뭐란 말인가.
대륙이 망하게 생겼는데!
‘나부터 살고 보자.’
악마들이 욕해도 어쩔 수 없었다. 태현부터 살고 봐야 했다.
‘사디크가 생각보다 능력이 있구나!’
[심연의 불꽃을 얻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
[…]
[…]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최고급 대장장이 기술 6에서 7로 변합니다!]
[칭호…]
[…]
사디크의 조각상 앞에서 피어난 청색의 화염이 태현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마계의 추위를 막아내고 있던 영원한 불꽃을 당신이 훔쳐냈습니다.]
[영지의 모든 작업이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영지의 모든 불꽃이…]
[…]
[…]
[…]
-태초의 불, 심연의 불꽃…. 그 모든 것들은 내 화염의 일부일 뿐이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솔직히 사디크의 말은 허세가 너무 많았지만 태현은 양심적으로 가만히 들었다.
심연의 불꽃을 저렇게 공짜로 받았을 때에는 고마워해야 했던 것이다.
-밖으로 나가게 되면 대륙 어두운 곳에 있는 심해의 불꽃을 찾아라. 후계자. 그리고 내 화염을 완성시켜라!
<진정한 화염-사디크 교단 권능 퀘스트>
사디크의 말에 따르면 대륙의 가장 강력한 불꽃도 사디크의 화염이 가진 속성 중 일부일 뿐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이제까지 여러 강력한 불들을 모아왔습니다. 당신이 수집한 칭호와 업적, 권능들을 합친다면 이제 곧 사디크의 진정한 화염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퍼즐인 심해의 불꽃을 찾으십시오!
보상:?, ???
‘그냥 심해의 불꽃도 주면 안 되나?’
태현은 양심 없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그만큼 굶주린 혼돈이 이곳저곳에서 날뛰고 있었으니까.
또 언제 저걸 찾는단 말인가.
-후계자여. 저 불꽃을 찾는 여행은 기쁜 여행이 될 것이다. 네가 가진 힘에 감사하며 경외하게 되는!
“예. 예. 감사합니다.”
* * *
태현이 무저갱에서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동안, 빠져나온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멍하니 박살 난 산맥을 구경하고 있었다.
“…김태현도 안 나오는데 그냥 우리 약탈이나 하러 갈까?”
“이 새끼!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산, 산 사람은 살아야지!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잖아!”
약탈자 플레이이들은 자기들끼리 다퉜다.
아직도 태현에게 강제로 세뇌… 아니, 설득당한 약탈자 랭커들은 분노하며 질서를 잡으려고 했지만, 분위기는 상당히 어수선했다.
게다가 왕국의 상황도 한몫했다.
-에스파 왕국 해방됨???
-에스파 왕국 진짜 해방됐어요?? 굶주린 혼돈 남은 군단들 지금 싹 철수했다는데??
-산맥에서 군단들 전멸했다는 루머 있던데 사실인가요?
└사실임. 생중계했잖아.
└김태현이 같이 끌고 쓸어버리던데?
└김태현도 죽었음?
└김태현도 죽었음. 타격 좀 클 거 같더라.
└그 니테렐로를 죽였다고?? 어떻게??
└김태현이 못 잡는 보스 몬스터 잡는 게 이번이 처음이냐. 또 어떻게 잡았겠지. 그보다 김태현이 죽은 게 크겠는데. 원정대 흩어지는 거 아니야?
-굶주린 혼돈 놈들이 퍼뜨리는 루머에 속지 마십시오!
-아, 아니… 죽은 거 맞잖아!
└너 굶주린 혼돈 첩자지!
모여 있던 굶주린 혼돈의 군단들이 그야말로 단체로 박살이 난 에스파 왕국은 갑자기 권력의 공백이 생겼다.
왕가도 사라진 상태에서 남은 굶주린 혼돈의 세력도 급히 후퇴한 것이다.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세력이 없는 것도 또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약탈자 플레이어들도!
지금처럼 통제 세력 없는 상황은 약탈자 플레이어들에게 바겐세일 구간 같은 것.
지금 남들이 털기 전에 먼저 가서 털어줘야 했다.
탁-
“?”
떠나려던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고대 수인족 전사들이 그들의 앞을 막아서자 당황했다.
“왜… 이러시나요?”
주변을 둘러보니 그냥 길을 막아선 게 아니라, 남은 수인족 부족들이 전부 원을 치고 있었다.
포위됐다!
원래 수인족 부족들이 얼마나 까칠했는지 잘 아는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
“그, 저희가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나중에 뵙고 감사 인사 드리겠습니다! 이제까지 감사했습니다!”
-어딜 가는 거냐?
“예? 저희 고향이….”
-적은 아직 남아 있다. 아키서스의 후계자가 돌아올 때까지 버텨라!
-읍읍읍?
붙잡혀 있던 총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여기 있지 않은가.
-저 가짜 놈 말고! 진짜 아키서스의 후계자 말이다.
-놈은 스스로의 힘과 용기를 증명했다. 놈은 우리들을 이끌 자격이 있다!
자존심 강한 고대 수인족 부족들이 플레이어 한 명을 인정하는 충격적인 상황.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었지만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가도 되죠?’
“그, 그렇군요. 축하드립니다. 그럼 저희는….”
퍽!
빠져나가려던 약탈자 플레이어 한 명이 수인족 전사에게 강하게 공격받았다.
잘못 맞았으면 즉사!
-이탈은 허락하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싸워라!
-적이 쓰러지거나, 네가 쓰러지거나. 둘 중 하나뿐이다!
“….”
“….”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슬슬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