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29화
[<아키서스 화신의 아다만티움 갑옷>이 데미지를….]
[신성 권능으로….]
[에슬라의 가호가….]
[…….]
[…….]
어지간한 공격은 행운 스탯과 컨트롤로 씹고 다니던 태현에게 이런 데미지는 오랜만에 받는 충격이었다.
‘젠장.’
각종 방어 스킬들을 꼬박꼬박 적립해놔서 망정이었지 아니었다면 태현도 훅 날아갔을 수 있었다.
태현보다 레벨 훨씬 높은 랭커들도 그대로 아작이 나는데, 안 그래도 유리몸인 태현은 더더욱 그랬다.
‘아스비안 제국의 영혼 목걸이가 얼마나 남았었지? 공격 막아내는 횟수 계산해 보면….’
태현은 혀를 찼다.
니테렐로 공격을 막을 수 있는 횟수를 대충 계산해 보고, 니테렐로에게 얼마나 공격을 넣어야 할지 계산해 보니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대충 지금까지 넣은 공격만 해도 상당했는데….
-모험가, 너는 혼자가 아니다! 저놈을 죽여라!
-짐승 냄새 나는 놈들이 아주 건방지구나!
“…….”
수인족 전사들이 지치지도 않고 도와주러 달려오자 태현은 이제는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 그냥 남은 부족은 새로 설득한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다 쏟아붓자.’
어차피 <아키서스 전쟁의 검> 퀘스트는 완성 직전인 만큼 수인족 전사들이 쓰러져도 깰 수 있긴 했다.
기껏 좀 아껴두려고 했는데 자기들이 꼬라박는 게 어이가 없어서 그렇지!
-내가 놈을 잡았다!
곰 수인족을 이끄는 전사장이 그대로 니테렐로의 팔을 물어뜯었다. 니테렐로는 성가시다는 듯이 놈을 후려갈기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늑대 수인족 전사장이 니테렐로의 다른 팔을 틀어막았다.
-크헝!
-짐승 냄새 나는 놈들이!
[고대 수인족 전사장들이 월광의 포효를 시전합니다!]
[고대 수인족 전사장들이 고대 야성의 힘을….]
[고대 수인족 전사장들이….]
[…….]
[…….]
그러나 태현이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고대 수인족 전사장 개개인들의 전투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니테렐로를 일대일로 이기지는 못하지만, 부족 전사장들이 모두 모여서 덤벼드니 니테렐로도 순간 밀릴 화력이 나오는 것이다.
태현은 지금이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고대 수인족들 특성상 장기전으로 가면 갈수록 불리한 상황.
-아키서스의 제물!
“??!”
다음 번호라서 방심하고 있던 약탈자 플레이어가 울상이 되어서 제물로 바쳐졌다.
-아키서스의 결의!
[한뜻으로 뭉친 플레이어들이 각자 경험치를 내놓습니다!]
[모인 경험치만큼, 일시적으로 아키서스의 군세가 소환됩니다!]
“어??”
“빨리 경험치 바쳐라!”
“어?? 어????”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예상 밖의 스킬에 당황했다.
경험치까지 바쳐야 해??
그들은 서로 눈치를 봤지만, 지금 니테렐로가 앞에서 날뛰는 상황에서는 머리를 맞대고 토론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방금까지 제물로 바쳐졌는데 안 끼려고 하면 쥐잡듯이 잡아댄 상황.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차마 ‘이건 하지 말자’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도저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경험치가 모였습니다!]
[아키서스의 군세가 소환됩니다!]
콰르릉, 콰쾅! 콰르릉!
갑자기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구름이 옆으로 갈라지며 그 사이로 밝은 빛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예전과 똑같은 광경이었다.
지진으로 무너져 내리는 산맥 위로 웅장한 악기 소리가 퍼져 나갔다.
이다비는 이게 뭐라고 눈물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감동적이야…!’
[아키서스의 천사들이 아키서스의 나팔을 불며 나타납니다!]
[카르바노그가 또 한 번 놀랍니다! 도적놈들이 생각보다 경험치를 어마어마하게 바쳤다고…!]
태현도 놀랐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생각보다 경험치를 많이 바쳤던 것이다.
‘뭐지? 이렇게 바칠 줄은 몰랐는데?’
기껏해야 적당한 소환수만 나올 줄 알았는데, 저번처럼 아키서스의 최상급 천사들이 나타날 줄이야.
대체 얼마나 바친…?
-전차를 몰아라! 하찮은 것들아! 아키서스의 후계자가 위기에 처해 있다!
악귀 같은 형상을 가진 삼두육비의 전투천사들.
이들은 흉폭한 악마가 모는 전차를 몰고 하늘 위에서 내려왔다.
-주인이시여! 명령을!
“굶주린 혼돈의 군세를 쓸어버려라!”
태현의 외침과 함께 아키서스의 천사들은 그대로 굶주린 혼돈의 군세를 향해 작렬했다.
* * *
아키서스의 천사들은 폭풍처럼 주변을 찢어발겼다.
니테렐로를 제외한 다른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에게, 아키서스의 천사들은 그야말로 천재지변이었다.
안 그래도 산맥의 지진을 어떻게든 버텨서 올라왔는데 아키서스의 천사들까지 덤비다니.
“니테렐로 님! 좀 도와주십시오!!”
“야! 니테렐로 이 새끼야!!”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악을 쓰며 외쳤지만, 지금은 니테렐로도 정신이 없었다.
수인족 전사장들부터 시작해서 아키서스의 전투천사, 그리고 태현까지 같이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검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최고급 검술 6에서 7로 변합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모든 검술 스킬에 추가 효과가….]
[<고대 신전의 가호> 퀘스트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
[…….]
니테렐로의 갑옷 틈으로 공격을 퍼붓던 와중에 뜬 메시지창.
태현은 기뻐할 여유도 없었다. 니테렐로가 두들겨 맞으면서도 하나씩 전사장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니테렐로!! 니테렐로 이 새끼야! 우리 다 죽는다고!!”
“도와주러 안 가냐?”
-죽어라, 아키서스의 후계자!
[도발이 실패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니테렐로는 애초에 다른 하수인들에게 어떤 책임감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 놈한테 괜히 도발을 해봤자 태현만 손해 보는 것이다.
-아키서스의 후계자 놈. 목을 닦고 기다리고 있어라… 결국에 네놈이 쓰러지게 될 거다!
니테렐로의 갑옷은 절반쯤 박살 나 있고, 검도 몇 군데에는 금이 가 있을 정도였다.
전사장들의 공격이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힌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테렐로의 전투력은 여전했다. 악귀처럼 버티고 덤벼들어서 집요하게 한 명씩 쓰러뜨렸다.
무너지는 산맥 위에서, 다른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은 하나둘씩 쓰러졌지만 니테렐로는 꿋꿋이 버티고 서서 오히려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후퇴해야 하나?’
태현은 순간 고민했다.
후퇴하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었다.
아직 아키서스의 천사들이 있는데다가 다른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이 없는 지금.
하지만 니테렐로에게 이렇게 데미지를 주기도 쉽지 않았다.
앞으로는 더더욱 기회가 없을 텐데….
“김태현!!”
“??”
무너져 내린 절벽 아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돌아왔다!!!”
케인이 여섯 개의 팔로 절벽을 기어 올라왔다.
그 뒤에는 아직 참가하지 않은 다른 수인족 전사들도 함께 있었다.
* * *
절벽 밑으로 떨어져서 낙오됐지만 케인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이제 이런 걸로 당황하기에는 너무 노련해진 것이다.
‘흐음. 지금 내가 떨어진 위치를 봤을 때….’
케인은 능숙하게 방향을 확인하고 지도를 작성 시작한 다음 주변의 몬스터들을 잡아나갔다.
‘이렇게 낙오될 때를 대비해서 먹을 걸 언제나 챙겨놓게 됐지.’
하도 낙오를 많이 하다 보니 케인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준비가 철저히 되어 있었다.
다른 랭커들은 배낭에 음식을 그리 많이 넣지 않지만, 케인은 달랐다.
오래 보존되는 열량 높고 맛있는 음식을 꽉꽉 눌러 담는 것이다.
오죽하면 태현이 ‘넌 왜 갑옷 앞에 간식을 넣고 다니냐?’라고 핀잔을 줄 정도였으니….
우걱우걱!
-넌 뭐하는 놈이냐?
“!!!”
케인은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펄쩍 뛰었다.
처음 보는 고대 수인족 부족이 케인을 황당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웬 미친놈이 절벽 위에서 떨어지더니 뭔 간식을 처먹고 있어!
‘고대 토끼 수인족?!’
케인은 저들이 아군인지 적인지 헷갈렸다.
일단 지금 태현을 따라다니는 토끼 수인족 부족들이 있긴 했다.
다른 고대 수인족들과 달리, 카르바노그를 섬기는 이들이었기에 태현과 이야기가 통했던 것이다.
근데….
‘그건 걔네들이고 여기 있는 놈들도 카르바노그를 믿는지는 알 수가 없잖아….’
케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태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모르겠다!’
물론 이런 가정은 별 의미가 없었다. 태현이라면 어떻게 했을지를 케인이 맞힐 수 있다면 그건 케인이 아니었다.
케인은 그냥 시원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카르바노그를 섬기십니까?”
-죽여라. 건방진 키메라 놈이다.
“으아악! 저 카르바노그 교단하고 친합니다! 아키서스 교단 소속! 아키서스 교단 소속입니다!”
-!
토끼 수인족 검사들은 수상쩍다는 눈으로 케인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그냥 키메라 잡종 놈인데….
-증명해 봐라.
-노예의 쇠사슬! 인내의 축복!
[아키서스의 노예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고대 토끼 부족 검사들이 당신의 말을 믿습니다!]
-너는 아키서스 교단 소속이… 맞군!
-아키서스 교단 소속치고는 이상하게 허술해 보이는데.
-아키서스 교단도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이런저런 질적 저하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겠지.
토끼 수인족 검사들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케인은 눈치를 보며 쭈뼛거렸다.
“혹시 저는 가봐도 됩니까?”
-아니. 네가 아키서스 교단 소속이라면 너는 길 안내를 해야 한다.
“예?”
-지금 각 부족들이 굶주린 혼돈과 맞서 싸우기 위해 모이고 있지 않나. 우리도 합류할 생각이다.
“오… 좋으신 생각이십니다!”
케인은 양손을 모아 아부하듯이 비볐다. 여섯 개의 팔이 있어서 3배의 아부가 가능했다.
[화술 스킬이 낮습니다!]
[고대 토끼 부족 검사들이 당신의 아부에 질색합니다!]
-쓸데없는 아부하지 마라.
“…아. 예.”
케인은 머쓱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가는 동안 상황을 듣겠다. 상황을 말해봐라.
“그러니까 그게… 굶주린 혼돈이….”
케인은 거짓말은 못 하고 있었던 일들을 말해놓았다.
굶주린 혼돈 놈들이 본색을 드러내서 착한 아키서스 교단을 핍박하고 케인 같은 플레이어들도 괴롭히고 왕국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토끼 수인족 검사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이야기를 교환했다.
-우리들만의 힘으로는 힘들 것 같은….
-확실히 합류를 해야….
-카르바노그 님은 그래서 어디 계신 건지 모르겠는데….
-저놈 너무 약하게 생긴 거 아닌가?
-덩치는 큰데….
“이쪽입니다.”
-잠깐.
“?”
-가기 전에 데리고 갈 신수가 있다.
“…???”
토끼 수인족 검사들의 말에 케인은 당황했다.
“어떤 놈인데요? 왜 안 데리고 계신 겁니까?”
-워낙 위험한 놈이라 평소에는 꺼내둘 수 없다. 따라와라.
“…저, 저도 가야 하나요?”
케인은 불길함을 느꼈다.
김태현은 보통 이런 외부인을 희생양으로 잘 써먹던데….
이번에는 내가 당하는 거 아니야?
-빨리 따라와라! 난폭하고 거친 놈이라 기다리게 할수록 화를 낼 거다.
“…….”
* * *
“김태현!! 받아라!!”
케인은 남은 수인족 부족들에게서 받은 검술서를 집어 던졌다.
[아이템, <오래된….]
[…….]
[…….]
[사용합니다!]
태현이 어떤 퀘스트를 깨고 있는지 아는 만큼, 다른 부족들과 같이 오면서 미리 챙겨뒀던 것이다.
[야만족들의 검술이 가진 하나의 원형을 찾았습니다.]
[아키서스 전쟁의 검 스킬이 완성됩니다.]
[검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최고급 검술 스킬이 7에서 8로 변합니다!]
‘…?!??!?!?’
아무리 퀘스트가 힘들었어도 태현은 7에서 8로 한 번에 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대체?
[아키서스 대전사가 남긴 전쟁의 검 스킬을 얻었습니다!]
[모든 야성의 힘이 당신에게로 깃듭니다.]
[울부짖으십시오!]
[카르바노그가 지금 광전사 되는 것 같다고 다급하게….]
드드득!
태현은 자신의 팔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