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27화
“김태현, 빨리 앞장서.”
“김태현 지킬 놈들 뽑아! 서둘러!”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한술 더 떠서 태현을 가장 먼저 대피시킬 준비를 했다.
팀 KL 선수들보다 더 태현을 챙기는 모습에 선수들이 당황할 정도였다.
“아, 아니. 그렇게 오바할 건 없는데.”
“너 이 자식! 새로 와서 김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모양… 아. 미안. 팀 KL 선수였구나.”
“…….”
“여하튼! 빨리! 탱커나 힐러 우선으로 김태현 호위해! 딜러여도 어그로 대신 끌어줄 스킬 있으면 우대해 준다!”
“탱킹 가능한 놈 있으면 빨리 나와라! 숨기다가 걸리면 절벽 밑으로 굴려 버린다!”
그렇게 재촉하지 않아도 태현을 따라 대피하고 싶어 하는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제법 많았다.
원래 이런 도주 퀘스트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가장 강한 플레이어 옆 아닌가.
게다가 태현이 선두에 서서 도망치는 만큼 더 안전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사실 붕대를 기막히게 잘 감습니다.”
“미친놈 아니야 이거?”
“내 손에 들린 방패 보이지? 탱커 역할 할 수 있다.”
“미친놈아 주먹만 한 칼날 방패로 뭔 탱킹을 한다는 거야! 지 혼자만 막을 수 있는 수준이구만!”
어중이떠중이들을 걸러내고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자기들끼리 정예를 골라냈다.
그러는 사이 태현은 팀 KL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저놈들이 좀 이상하긴 한데 지금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무사히 여길 빠져나가서 남은 수인족 퀘스트들을 마저 깨야 한단 말이지.”
“이거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최상윤은 매우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산맥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사방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에도 곧 닥칠 게 분명해 보였다.
태현이 일으켰다는 걸 아는데도 이 정도로 무서운데, 이걸 모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무섭겠는가!
“나도 몰라. 어쨌든….”
“야. 그걸 그냥 넘어가면 어떡해.”
중요한 부분을 너무 대충 넘어가는 태현의 모습에 최상윤은 울컥했다.
그걸 그냥 그렇게 넘어가도 돼?
“아까 보니까 수인족 전사 놈들이 진짜 미친 것처럼 싸우더라. 나도 말리긴 할 텐데, 너희들도 분노조절 좀 시켜줘야 해.”
“…….”
“…….”
태현의 말에 다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이다비를 제외하면 딱히 NPC 설득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수인족 전사들은 대화하기 좋은 상대도 아니었다.
“내가 혼자서 다 설득할 수가 없어. 부족들 숫자를 보라고.”
산맥 골짜기나 절벽 위에 자리 잡은 부족들과 약탈자 플레이어들.
에스파 왕국 외곽을 빙빙 돌면서 모아 온 만큼 숫자가 상당했다.
“…해보겠습니다!”
“야… 의욕 있는 건 좋은데 생각은 더 하고 말하자…!”
정수혁의 말에 최상윤은 기겁했지만, 지금은 사실 오래 대화할 상황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산맥을 무너뜨리는 지진은 이제 막 시작이었던 것이다.
* * *
-침입자들을 영원히 묻어버려라!
[지진이 산맥을 파괴시키고 대지의 정령을 분노하게 만듭니다.]
[대지의 정령 거인이 침입자들을 공격합니다!]
그냥 흔들리고 무너지는 게 아니라 온갖 다양한 효과가 침입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절벽이 그대로 갈라져서 플레이어들을 삼켜버린 다음에 바로 대지의 정령 거인이 거대한 암석 덩어리의 모습으로 나타나자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벌써부터 지긋지긋해졌다.
“이건 진짜 말도 안….”
대지의 정령 거인은 플레이어들의 변명을 들어주지 않았다. 집채만 한 바위 검을 휘두르며 플레이어들을 공격했다.
[지진으로 인해 균형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페널티를….]
[이동 속도에….]
[…….]
[…….]
“타임! 타임!!”
“정령 거인 선생님!! 조금 이따가 싸웁시….”
강함의 문제가 아니라 좁은 길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공격을 해오면 슬라임이 공격을 해와도 위험했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여기 왔다가 이 꼴을…!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간절한 눈빛으로 아래에 모인 수많은 군단 전사들을 쳐다보았다.
‘제발 후퇴 명령 좀!’
‘누가 반란이라도 일으켜줘!’
-기뻐해라.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종복들아! 니테렐로 님께서 직접 길을 뚫으신다!
“!!”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랐다.
말로만 들었던 굶주린 혼돈의 군단장이 직접 나설 줄이야!
‘뭔가 있을지도…!’
물론 지금도 산맥 전체를 점령하기 위해 몰려드는 굶주린 혼돈의 전사들이 떼죽음 당하고 있었지만, 모인 전력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피해였다.
-비켜라, 모자란 놈들아. 이것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다니.
[대전사 니테렐로가 제물을 바치기 시작합니다!]
니테렐로는 요동치는 산의 바닥을 강하게 검으로 후려쳐서 진동을 멈추게 만들더니 달려드는 정령 거인을 다른 손으로 으깨 버렸다.
그 압도적인 폭력에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눈을 반짝였다.
어떤 불리한 상황이더라도 최상위권 랭커 한 명으로 분위기가 바뀔 때가 있었다.
니테렐로는 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그런 최상위권 랭커 수십 명 역할은 혼자서 해낼 수 있는 판온에서 손꼽히는 네임드 NPC였다.
진짜 뚫나 보다!
-크아아악!
니테렐로는 괴성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검광이 번뜩이더니 박살 난 산맥이 조각조각 모여들더니 새로운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길로 전진해라!
“…우오오오오오! 니테렐로 님 만세!!! 니테렐로 님 만세!!!”
-니테렐로 님. 길이 부족합니다!
-알고 있다!
[대전사 니테렐로가 제물을 바치기 시작합니다!]
[대전사 니테렐로가 제물을 바치기 시작합니다!]
‘응?’
일단 전진하던 플레이어는 갑자기 의아함을 느꼈다.
아까부터 계속 제물을 바치고 있다고 했는데 뭘 바치고 있는 걸까?
굶주린 혼돈의 파편?
황금?
-굶주린 혼돈을 위한 희생이다. 영광으로 여겨라!
니테렐로는 주변에 있는 굶주린 혼돈의 군단 전사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버렸다.
그러고는 그 전사들을 제물로 바쳐버렸다.
“…….”
-너도!
“아니 잠…!”
그리고 그건 플레이어도 예외가 아니었다.
재수 없게 니테렐로와 눈이 마주친 플레이어는 그대로 니테렐로한테 붙잡혀갔다.
하도 스탯 차이가 심해서 어떤 저항도 먹히지 않았다.
[HP가 0이 되어….]
[…….]
[…….]
-전진하라!
“으아아아아아아악!”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미친놈처럼 새 길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앞에도 미친놈이 있고 뒤에도 미친놈이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 * *
“저 자식들 어떻게 벌써 왔지?!”
급히 산맥 아래로 후퇴하던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뒤의 모습에서 깜짝 놀랐다.
벌써 골짜기 너머에서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 서, 이 새끼들아!!”
“이 약탈밖에 할 줄 모르는 쓰레기들아! 이 모든 게 너희 때문이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독기로 가득 차 있었다. 기분 탓인지 숫자도 절반 정도로 줄은 것 같았다.
물론 약탈자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황당할 뿐이었다.
지들이 먼저 공격해 놓고…
“굶주린 혼돈 가입하면 양심도 같이 잃어버리는 거 아니야? 지금 누구 탓을….”
“누가 들어오래? 미친놈들이!”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추격을 막기 위해 공격을 퍼부었다.
[번개 화살이 작렬해….]
[클레레크 검술로 인해 방어력이….]
[…….]
[…….]
그러나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아까와는 상태가 달랐다.
“우어어어어어어!”
멈추면 뒤에서 제물로 잡힌다는 걸 아는 만큼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무조건 달렸다.
뒤에서 군단 전사들이 같이 힘을 합치며 달려오자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기세에서 짓눌렸다.
“뭐, 뭐야 이 자식들…!?”
“후퇴해! 후퇴! 흩어져!”
-도망치지 마라.
“???”
뒤에서 들리는 흉포한 목소리에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누구….
[<붉은 태양> 부족 전사들이….]
고대 수인족 부족들이 설욕을 위해 싸움을 찾아온 것이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안 그래도 좁은 길에 튀지도 못하게 뒤에서 몰려드는 수인족 전사들을 보고 기겁했다.
“아니. 튑시다!”
-도망치지 마라! 앞으로 가라. 가지 않으면 밀어버리겠다!
[수인족 전사들이 야성을 폭발시킵니다!!]
[…….]
[…….]
수인족 전사들은 설득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무조건 광전사로 돌변한 다음 돌진을 개시했다.
플레이어들은 살기 위해서 떠밀릴 수밖에 없었다.
“으… 으아아악! 돌격! 돌격!!”
* * *
무너지는 산맥 위에서 사람들은 정말 끈질기게 싸웠다.
원래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지형에서는 서로 싸움을 피했겠지만, 이번 싸움의 특수성이 싸움을 만들었다.
곳곳에서 수인족 전사들이 약탈자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굶주린 혼돈의 군단 전사들을 사냥했다.
물론 수인족 전사들이나 약탈자 플레이어들의 피해도 막심했지만 굶주린 혼돈 쪽도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다.
“동쪽 24번 골짜기에서 굶주린 혼돈 군단 하나 전멸! 약탈자 플레이어들 두 명 살아남았대요!”
“아, 아니 대체 왜 그렇게까지…?”
최상윤은 황당해했다.
직접 상황을 보지 못하고 길을 뚫고 있는 최상윤 입장에서는,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싸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정수혁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님의 플레이를 보고 마음을 바꿔먹은 게 분명합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사람은 안 바뀐다고.”
“하지만 케인은….”
“…….”
반박 불가능한 증거가 나오자 최상윤은 할 말을 잃었다.
어라??
사람은 바뀌나??
진짜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생각을 바꿨나??
‘굶주린 혼돈이 좀 지독하긴 하지.’
무너지는 산맥에서 길을 뚫고 있는 태현의 마음은 심란했다.
[<붉은 태양> 부족 수인족 전사들이 쓰러집니다!]
[공적치 포인트가 줄어듭니다!]
[<붉은 태양> 부족 내의 친밀도가 줄어듭니다!]
[…….]
[…….]
‘작작 죽어…!’
수인족 전사들이 지금 계속 굶주린 혼돈의 군단 전사들과 맞받아치느라 쓰러지고 있다는 사실이 태현을 심란하게 만든 것이다.
물론 불리한 상황에 빠진 적을 공격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걸 지금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굶주린 혼돈의 군단 정예 전사들이 길을 가로막습니다!]
-아키서스의 후계자가 여기에 있다. 절대 빠져나가게 두지 마라!
[지진이….]
[…….]
-크아악! 절대 길을 열지 마라!
태현 일행이 산맥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뚫고 빠져나가려고 하자 굶주린 혼돈의 전력도 거의 발악하듯이 막으려고 들었다.
주변이 무너지고 동료가 날아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버티는 지독한 뚝심!
마음 같아서는 돌아가고 싶었지만 태현에게도 시간이 부족했다.
‘뚫고 간다!’
“모두 공….”
-우우우우우우!
수인족 전사들은 태현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달려들었다. 안 그래도 숫자 적은데 싸우려는 모습에 태현은 한숨을 쉬며 따라붙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아키서스 검술….]
[…….]
<고대 신전의 가호-검술 스킬 퀘스트>
고대 신전이 내린 가호가 당신에게 검술 스킬의 길을 알려주려고 한다!
난전에서 혼란에 빠진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도 좋겠…
검술 스킬 퀘스트도 떴지만 태현은 못 본 척했다. 지금 그것까지 노려가면서 싸울 수 없었던 것이다.
검을 휘두르며 태현을 보조하던 최상윤은 깜짝 놀랐다.
‘얘 언제 이렇게 세졌냐??’
미친놈처럼 잘 싸우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 태현의 전투력은 최상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평소에는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싸우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완성된 느낌을 주고 있지 않은가.
‘얘 전설 노리는 스킬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 완성한다면… 굶주린 혼돈이고 뭐고 박살 낼 수 있을지도…’
“아키서스의냉기아키서스의냉기아키서스의냉기아키서스의냉기!”
‘근데 폼은 좀 안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