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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721화 (1,720/1,826)

§ 나는 될놈이다 1721화

태현이 수인족들과 함께 총독 궁전을 습격하기 전에, 총독을 찾아가서 ‘김태현이 에스파 왕국에 왔으니 좀 도와주십시오’ 하고 말했던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같은 굶주린 혼돈 섬기는 만큼 도움 좀 날로 받아보려는 속셈이었다.

물론 그 속셈은 아주 호되게 대가를 치렀다. 같이 굶주린 혼돈을 섬긴다고 하더라도 총독과 모험가가 같은 신분은 아니었던 것이다.

열 받은 총독은 플레이어들을 모욕하고, 열 받은 플레이어들은 총독을 모욕하고, 더 열 받은 총독은 경비병을 불러왔고, 그 다음은 뭐….

도망치다가 잘못 건드려서 현상금 올라가고, 악명 올라가고, 왕국 전체에 소집 걸리고….

전형적인 성질 못 이겨서 판온 인생 망하는 루트였다. 저런 식으로 약탈자의 길을 걷는 플레이어들이 제법 됐다.

그래도 도망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잡혀 왔다니.

-읍읍읍읍!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분노한 표정으로 몸부림쳤다.

아무리 말을 해줘도 순찰대원들은 알아먹질 못했다.

-우리는 굶주린 혼돈을 믿고, 총독 놈이 미쳐서 그런 거라니까요!

-크하하하! 모험가 놈들이 아주 혓바닥이 길구나!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모험가가 왕국 전체에 현상금이 걸릴 리가 없는데!

뭐라고 말하든 위에서 명령이 내려온 이상 붙잡아서 데리고 갈 뿐.

보스턴 타이거즈 소속 선수인 돌레로는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안 하던 짓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원래 돌레로는 평생 약탈자 플레이어나 악명 스탯과는 상관이 없게 살던 랭커였다.

하지만 굶주린 혼돈 퀘스트가 시작되고 나서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가입하게 된 게 실수였다.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다른 게임단 선수들이 잘나가는 모습에 초조해서 가입했는데….

안 하던 짓인 만큼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총독 사건도 그랬다. 익숙한 사람이었다면 훨씬 더 능숙하게 해결을 했을 것이다.

안 하던 짓을 하다가 이 꼴이 나다니!

억울한 것도 억울한 거였지만 솔직히 창피했다.

지금 나름 장비를 바꾸고 얼굴도 가리고 있어서 다른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돌레로를 못 알아보고 있었지만, 만약 들키게 되면 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었다.

다른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에랑스 왕국의 성을 함락시키고 도시를 정복하고 잘나가는데 돌레로는 에스파 왕국 총독한테 말 잘못 걸었다가 현상금이나 걸리다니.

샥샥샥-

“?”

돌레로는 옆에서 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 한 명이 열심히 손을 비비며 뭔가를 하고 있었다.

[<포박에서의 탈출> 스킬이 진행 중입니다!]

[굶주린 혼돈의 순찰대원들이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

[……]

자세히 보니 포박을 풀기 위해 스킬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너도 도와! 풀려나면 너도 풀어줄 테니까!

-어… 어어.

돌레로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탈출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지금 분위기를 보면 끌려가서 좋은 꼴을 볼 것 같지 않았다.

어떻게든 탈출해야 했다!

다행히 지금 굶주린 혼돈의 순찰대원들은 다른 놈들과 떠드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포박에서의 탈출> 스킬이 성공합니다!]

[포박 상태에서 풀려납니다!!]

촥!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는 재갈을 벗어 던지더니 무기를 뽑아 옆에 있는 플레이어들의 포박 상태도 풀어버렸다.

“튀어!!!”

-뭐야!?!?

굶주린 혼돈 순찰대원들은 기겁해서 고개를 돌렸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안에 있던 모험가 놈들이 마차 벽을 부수고 달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놈들이 도망친다!!!

-이 자식들! 너희들 때문이잖아!

-하하. 뭐라는 건가? 너희들이 관리를 못 해서지.

친위대원들은 고소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순찰대원들은 마음 같아서는 한 대 치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꾹 참았다.

<탈옥수 생포-굶주린 혼돈 퀘스트>

감히 굶주린 혼돈의 질서를 무시하고 도망친 건방진 필멸자들이 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필멸자들을 붙잡아라. 만약 붙잡아서 데리고 간다면, 순찰대원들이 당신에게 감사를 표할 것이다!

보상: ?, ???

‘아니….’

퀘스트 상황이 조금 어이가 없었다.

굶주린 혼돈을 피해서 달아나는 태현한테, 굶주린 혼돈 순찰대원들이 ‘굶주린 혼돈 모험가 잡아줘요’라고 퀘스트를 내다니.

뭐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있지?

-너희 게으른 놈들도 가만히 있지 말고 쫓기나 해라!!

순찰대원들은 그렇게 외치고 후다닥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도망친 플레이어들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 모습에 친위대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입니다. 놈들의 정신이 팔렸으니, 총독 각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탈출로를 안내하겠습니다. 저희만 믿고 따라오십시오.

-저놈들이 오래 버텨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렇군.”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열심히 도망치길 응원해야 할 때였다.

‘힘내라,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

* * *

[<붉은 태양> 곰 수인족들이 이동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순찰대가…]

[은신에 성공합니다!]

[탈출로가 비었습니다!]

[다시 이동…]

[……]

[……]

친위대원들이 먼저 길을 확보하고 안내해 준 덕분에 태현은 비교적 수월하게 산맥을 빠져나와 이동할 수 있었다.

보는 눈 많은 평야 지대를 지나자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았다…!”

“산이 그리웠어!”

평야 지대와 산맥 지대는 그 안심감 자체가 달랐다.

약탈자 플레이어들한테 평야 지대는 언제 들킬지 모르는 지옥 같은 곳이었다.

사방이 탁 트여 있어서 심심하면 추격대가 몰려드는 것이다.

그에 비해 산맥 지대는 얼마든지 깊게 숨어 들어갈 수 있는 약탈자들의 천국.

“방심하지 마라.”

“에이. 김태현 선수. 물론 김태현 선수만큼은 아니지만 저희도 약탈 꽤 해보고 도주 꽤 해본 놈들입니다.”

‘태현 님만큼은 아니라는 게 무슨 소리지?’

이다비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산 안에 들어온 이상 굶주린 혼돈 놈들은 더 이상 저희를 쫓아오지 못합니다. 순찰대도 길을 뒤지지 산까지 들어오진 않아요.”

“기기긱의 말이 맞습니다. 이제 안심해도 될 겁니다.”

기기긱은 판온 1 때부터 약탈자를 해왔던 만큼, 말의 무게감이 달랐다.

다른 약탈자 플레이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기기긱의 말에 동의했다.

[굶주린 혼돈의 순찰대가 나타납니다!]

[모두 주의하십…]

“…?!?!”

“기기긱 이 새끼야!!!”

방금까지 기기긱에게 동의하던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분노해서 책임을 돌렸다.

“너 때문에 들켰잖아!”

“저게 왜 나 때문….”

“닥쳐! 네가 막아! 케인 선수도 없으니까 네가 책임지고 막아!”

“다들 주둥이 다물고 은신이나 준비해라.”

태현은 약탈자 플레이어들의 입을 다물게 한 다음 은신 스킬을 사용했다.

물론 이런 산속까지 추적이 계속되는 건 예상 밖이긴 했지만, 아직 그렇게까지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일단 상대방이 태현 일행을 아직 발견하지는 못한 것이다.

내버려 두면 찾다가 다시 돌아갈 확률이 높….

파사사삭-

누군가 수풀을 헤치고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러다가 나무 사이에서 바로 뛰쳐나왔다.

팟!

“…….”

“…….”

태현 일행도, 그리고 수풀을 헤치고 나무 사이에서 나타난 플레이어도 서로 당황해서 쳐다보았다.

먼 뒤편에서 굶주린 혼돈의 순찰대원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모험가 놈을 잡아라! 감히 굶주린 혼돈을 암살하려고 한 모험가 놈! 놈의 기운이 느껴진다! 여기 근처에 숨어 있을 거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돌레로는 거의 촉촉해진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하도 정신이 없어서 상대방이 누군지도 몰랐다.

일단 숨어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상대 파티가 ‘여기 모험가 놈이 있어요!’ 하는 순간 잡혀가는 것이다.

‘안 돼…! 어떻게 도망쳤는데!’

마차를 뚫고 도망친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에게는 처절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도주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잘 하지, 아무 준비 없이 불리한 상황에서 쫓기면 90%는 잡혔다.

게다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한 가지 큰 약점이 있었다.

-굶주린 혼돈께서 주신 기운이 느껴진다!

-굶주린 혼돈의 기운을 쫓아라!

계약한 이상, 굶주린 혼돈의 기운이 이정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다시 붙잡혔고 이제 남은 건 얼마 안 됐다. 돌레로도 그중 하나였다.

“제발!! 살려주시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

-어, 어쩝니까?

약탈자 플레이어들도 지금 같은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스러워했다.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플레이어가 굶주린 혼돈의 순찰대를 피해서 그들한테 도망치다니.

그리고 심지어 그들이 누군지도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케인이 없어서 그런가?’

다른 때는 변장을 해도 ‘아! 팀 KL인가?’ 하고 눈치를 챘는데, 팔 여섯 개 달린 플레이어가 없으니 그냥 평범한 파티 같긴 했다.

태현은 다들 가만히 있으라고 손짓했다.

“진정해라. 같이 굶주린 혼돈을 믿는 플레이어를 바치진 않으니까.”

“고, 고맙습니다.”

“자자. 여기 앉으라고.”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기묘한 눈빛으로 돌레로를 쳐다보았다.

‘잡히기 전에 죽여야 하지 않나?’

‘괜히 엮일까 봐 무서운데.’

그 눈빛을 돌레로라고 모를 리 없었다. 돌레로는 허겁지겁 변명했다.

“저는 정말 나쁜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가 아닙니다. 저건 누명입니다.”

‘착한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도 있나?’

“당연히 NPC보다는 플레이어를 믿지. 같이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데. 그래서 혹시 지금 다른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어디에 있지? 연락이 되나?”

“예… 지금 네 명은 붙잡혔고 다른 하나는 폭포 쪽으로… 아니. 붙잡혔다고 연락이 왔네요….”

돌레로는 홀린 듯이 태현의 질문에 대답했다.

같은 굶주린 혼돈 소속이라고 착각한 탓에 긴장이 풀린 것이다.

게다가 쫓아오는 추격자한테 넘기지 않은 것도 컸다.

“그렇군. 그렇군. 혹시 굶주린 혼돈의 다른 쪽 상황도 알고 있나? 궁금해서.”

“그게… 지금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스미스를 찾기 위해 굶주린 혼돈의 차원으로 넘어가서 수색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불만이야 많다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리고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도 몇몇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모양인데, 다들 누군지는 숨겨서 알기가….”

‘이 자식 선수 같은데?’

태현은 이다비와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고는 은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판온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저런 게임단 관련 선수들 정보는 서로 같은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이다비가 못 알아보는 걸 보니 변장한 게 분명했다.

“그렇군. 참. 그쪽 이름이 뭐지?”

“…쑤, 쑤닝? 쑤닝입니다.”

“…….”

“…….”

어색한 침묵이 돌았다. 약탈자 플레이어들도 돌레로를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았다. 돌레로는 급격히 창피해졌다.

‘바보, 바보…! 하필 쑤닝이 뭐냐!’

떠오르는 사악한 플레이어 이름이 없었던 탓에 실수로 이상한 가명을 대어버렸다. 누구든 의심을 할 것이다.

태현과 이다비는 귓속말로 대화했다.

-보아하니까 되게 서투른데, 최근에 굶주린 혼돈 가입한 선수인가봐.

-네. 요즘 가입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잘 구슬려서 좀 더 정보 얻어내자고.

태현은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쑤닝이군. 더 묻지는 않겠다.”

“…!”

돌레로는 감동했다.

판온은 정말 신비한 게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외진 곳에서 이런 인연을 만날 수 있다니.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그릇이 넓고 관대한 사람이었다.

“혹,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나중에 제가 뭐라도 보답해드리고 싶은….”

“나는 스미스다.”

“…….”

“…….”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표정 관리를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돌레로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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