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20화
사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도 할 말은 많았다.
마검을 켠 태현을 막기 위해서 덤벼들었다가는 그야말로 갈려나갔을 것 아닌가.
니테렐로가 쇠사슬 방비도 못 하고 달려들다가 순간 끌린 게 잘못이었지 그들 잘못은 아닌….
쾅!!!!!
[HP가 0이 되어 로그아웃…]
“이럴 줄 알았지!!”
“저 미친 새끼!”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다.
눈깔 희번덕하게 뒤집는 걸 보니 사고 치겠다 싶었는데 정말 죽이는구나!
굶주린 혼돈 밑에서 사는 것도 정말 고달프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 * *
“김태현!!”
“…케인은??”
“케인은 굶주린 혼돈을 막다가 떨어졌다.”
“…….”
“…….”
피도 눈물도 없는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눈물을 글썽거리는 일은 흔치 않았다.
“케인…!”
“으흑!”
“??”
태현은 약탈자 플레이어들을 보며 황당해했다.
딱히 케인이 죽은 것도 아니고 싸우다 보면 다른 지역으로 날아갈 수도 있는 거지 왜 저래?
“뭔 눈물이냐? 싸우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어…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
“너무하잖아!!”
“????”
태현뿐만 아니라 팀 KL 선수들 모두 갑자기 눈물을 글썽거리는 약탈자 플레이어들의 모습에 당황했다.
단체로 미쳤나?
“혹시 케인 선수 팬 아닌가요?”
“대체 왜 케인을?”
“케인이 저렇게 보여도 은근히 팬 있지 않나?”
“이해가 안 가는 독특한 취향이네.”
“흠… 생각해 보니 같은 약탈자 플레이어라서 그런 걸지도….”
팀 KL 선수들은 일단 납득하기로 했다.
솔직히 완전히 납득은 안 됐지만 뭐 취향은 존중해 주자!
“빨리 빠져나간다. 지형이 복잡해서 길을 찾으려면 오래 걸리겠지만, 방심해서는 안 돼.”
“김태현…! 케인은 데리고 와야지!”
약탈자 플레이어 한 명이 용기를 내서 말했지만 태현은 무시했다.
지금 부족의 골짜기는 복잡한 산악 지대에 여러 절벽들과 가파르고 좁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서 일종의 미로 같은 곳이었다.
따돌리기는 충분했지만 방심해서는 안 됐다.
케인은 알아서 찾아올 테니, 약탈자 플레이어들의 헛소리는 무시해도 됐다.
“김태현! 너무하잖아!”
‘진짜 미쳤나?’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네가 찾아올래?”
“…좋다! 내가 찾아오지!”
“나도 같이 가자!”
“?!”
놀랍게도 꽤 여러 명의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나섰다. 즉석에서 케인 구조 파티가 완성된 것이다.
“케인 구하면 합류하겠어!”
“모두 가자고!”
“…….”
태현은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케인을 찾으러 간 약탈자 파티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뭐하는 놈들이야 진짜?’
“일단 빨리 움직이죠!”
“그, 그래.”
태현은 정신을 차리고 발을 움직였다.
빠르게 달리기만 하면 되는 거라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는 골짜기를 빠져나오고 산맥에서 내려왔을 때 생겼다.
[굶주린 혼돈의 순찰대를 발견했습니다!]
[굶주린 혼돈의 충실한 종복인 순찰대는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발견될 경우…]
[……]
[……]
산맥 밖 평야나 대로 곳곳에 순찰대들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제대로 열받은 니테렐로가 추가 병력을 동원한 게 분명했다.
‘큰일이군.’
태현은 혀를 찼다.
태현 혼자나, 혹은 팀 KL 선수들만 데리고 돌아다니는 거라면 저런 순찰을 따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태현의 뒤에는 덩치가 산만 한 곰 수인족 부족들이 우글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참을성만 보면 케인보다 부족한 놈들!
‘절대 안 기다리겠지.’
태현이 하는 명령도 ‘으어! 곰 수인족 참기 싫다! 돌격한다!’ 하면서 무시할 놈들.
“어떻게 하죠? 곰 수인족은 절대 말을 안 들을 텐데요.”
“케인 시켜서 유인해 보면… 아. 케인 없지.”
“제가 유인해 볼까요?”
“아냐. 이다비. 상윤이 시킬게.”
“…….”
최상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친구 새끼 있어봤자….
-으브브브븝.
“?”
태현은 옆을 쳐다보았다.
얼떨결에 계속 데리고 있던 안다탑 총독이 다시 재갈을 풀어달라고 신호하고 있었다.
“뭡니까?”
-순찰대 중에 굶주린 혼돈의 부하만 있지는 않을 거다. 내 부하들도 있을 거야. 내 부하들을 찾아서 말을 전해라. 그러면 도와줄 거다.
“…총독 전하!”
태현은 살짝 감동했다.
그냥 쓰레기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능력이 조금 있었던 것이다.
안다탑 총독은 고개를 홱 돌렸다.
-흥. 네놈을 위해 해주는 게 아니다.
“둘이 그만 놀아 좀. 근데 태현아. 안다탑 총독을 믿을 수가 있냐?”
-감, 감히…!
태현은 최상윤을 데리고 이동했다. 안다탑 총독이 상처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넌 그렇게 말을 하면 어떡하냐. 총독이 상처 입잖아.”
“…아니…!”
물론 퀘스트를 깨려면 총독을 이용하는 게 유리하단 건 알고 있었지만, 저 투실투실한 총독이 상처 받을까 봐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건 좀 많이 억울했다.
“알겠어. 근데 저 총독을 믿을 수 있냐? 총독 부하들이 총독을 버리면 어떡하지?”
“나도 그게 고민이긴 해.”
최상윤의 지적은 아픈 곳을 찔렀다.
보통 저런 권력자들은 힘을 잃었을 때 부하들에게 잘 배신당하는 것이다.
게다가 안다탑 총독의 평소 행동을 보면….
‘그래도 해보긴 해봐야지.’
* * *
태현은 안다탑 총독이 쓴 편지를 들고 혼자 길로 내려왔다.
곰 수인족들의 참을성이 바닥나기 전에 총독 부하들과 접촉해서 길을 확보해야 했다.
‘순찰대원 중에 총독 부하를 찾아야 하는데….’
다그닥, 다그닥-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굶주린 혼돈의 순찰대.
그중에서 안다탑 총독 친위대 같아 보이는 복장을 찾아내야 했다.
태현은 은신 스킬을 사용한 채 숨을 죽였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
다른 놈들과 복장이 좀 다른, 안다탑 총독 친위대 출신의 순찰대원이 눈에 들어왔다.
태현은 바로 앞으로 뛰쳐나갔다.
“잠깐!”
-으악!! 아키서스다!!
“…….”
태현은 살짝 억울했다.
지금 태현이 변장한 상태니 아키서스인 걸 알아봤을 리는 없을 테고, 그냥 본능적으로 말한 게 분명했다.
그럼 보통 ‘곰 수인족’이나 ‘도적단’ 같은 다른 선택지들이 있지 않나?
왜 아키서스를….
“진정해라. 난 총독의 전갈을 전하러 온 전령이다!”
-…총독 각하 말씀이십니까?
[설득에 성공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순찰대가 당신을 믿고 신호를 멈춥니다!]
[……]
[……]
‘아니. 통하네?’
태현은 당황했다.
솔직히 ‘총독이고 뭐고 알 게 뭐냐 굶주린 혼돈 님! 여기 아키서스 있습니다!’ 같은 반응이 나와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총독 각하의 전갈을 갖고 왔다고 멈추는 게 더 당황스러웠다.
-어서 알려주십시오! 총독 각하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총독 각하의 전갈을 주십시오!
친위대원들은 충성심 가득한 눈빛으로 손을 내밀었다.
안다탑 총독이 사라진 지금 친위대원들은 모두 총독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니테렐로가 현장에 있던 총독을 공격했다는 소문에 친위대원들이 덤벼들었다가 살벌하게 제압당했지만, 남은 친위대원들은 지지 않고 총독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그 총독이 뭐가 좋아서 저렇게 충성심을?’
[카르바노그가 돈을 많이 줘서 그런 거 아니냐고 묻습니다.]
두 화신과 신은 자리에 없는 총독의 악담을 늘어놓았다. 안다탑 총독으로서는 매우 억울한 일이었다.
“어… 지금 총독 전하께서는… 그, 안전한 곳에 계시지.”
태현은 차마 친위대원들 앞에서 ‘곰 수인족들이 죽이려고 하던데?’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납치되신 게 아닙니까?? 곰 수인족 습격자들이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오해가 있다. 니테렐로가 먼저 총독 전하를 죽이려고 한 거다.”
[????]
카르바노그도 당황할 정도의 뻔뻔함이었지만 태현은 표정 변화가 없었다.
총독 부하들 앞에서 ‘내가 납치했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니테렐로 그자가 말입니까?!?
“그래. 그래서 총독 전하께서는 급히 탈출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아니. 잠시만요. 곰 수인족 놈들한테요? 그 야만족 놈들한테??
“잘 모르고 있었겠지만, 원래 그 야만족 놈들도 총독 전하를 비밀리에 섬기고 있었다. 친위대원들 중에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배신자들이 있는 만큼, 총독 전하께서도 곰 수인족들을 믿을 수밖에 없었겠지.”
-…그런…!
진상을 아는 현장의 친위대원들은 모두 니테렐로에게 박살 난 상황.
태현의 화술은 다시 한번 성공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설득시키는 데에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
[……]
[최고급 화술 스킬 7에서 최고급 화술 스킬 8로 변합니다!]
[<화술의 근원> 스킬이 진화합니다!]
[<언령> 스킬이 진화합니다!]
[……]
[……]
친위대한테 개소리를 한 덕분에 태현의 화술 스킬은 드디어 최고급 화술 8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태현은 스킬을 한가로이 확인할 수 없었다.
뒤에서 다른 순찰대가 나타난 것이다.
“…!”
-!
태현은 물론이고 친위대원들도 안색이 변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다른 순찰대가 나타나다니.
-이쪽으로 숨으십시오!
-우리 중 한 명인 척하면 들키지 않을 겁니다.
친위대원들은 허겁지겁 태현을 사이에 숨겼다. 태현은 긴장한 표정으로 섰다.
새로 나타난 순찰대는 마차 여럿을 끌고 다가왔다. 그러고는 친위대원들을 보고는 의아해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게으른 놈들 같으니. 총독의 부하라고 거들먹거렸다가는 굶주린 혼돈께서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
친위대원들은 분노했다.
감히 총독을 습격한 놈들이 뻔뻔하게 저런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다들 참아라!”
태현은 속삭였다.
친위대원들이 분노해서 덤벼들면 길이고 뭐고 대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총독 전하께서는 너희들이 참길 원하신다!”
-크으윽…! 절대 용서하지 않곘다. 니테렐로! 굶주린 혼돈!
친위대원들이 이를 갈고 있는 것도 모르는 채, 굶주린 혼돈의 순찰대원들은 자랑했다.
-너희가 게으름을 피우는 동안, 우리는 업적을 세웠지. 굶주린 혼돈께서도 매우 기뻐하실 거다.
“…?”
태현은 멈칫했다.
굶주린 혼돈 쪽에서 업적을 세웠다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뭘 한 거지?
“물어봐 주겠나?”
태현의 부탁에 친위대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어떤 업적을 세웠길래 그렇게 의기양양한 거냐?
-흥. 그걸 왜 너희한테 말해줘야 하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자신이 없나 보군.
-하! 같잖은… 그렇게까지 말하니 보여주도록 하지. 게으른 놈들아. 우리는 아주 중요한 모험가들을 붙잡았다.
“…….”
태현은 경악했다.
…설마 케인이 잡혔나??
‘아니. 잡혔으면 말했을 텐데. 뭐지? 귓속말 할 수 없는 상황이었나? 뭐지?’
마차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안에는 붙잡힌 플레이어들이 매우 열받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읍읍읍읍읍읍!”
“으으응으으읍!”
“…???”
태현은 당황했다.
…처음 보는 놈들이었던 것이다.
‘뭐야?’
굶주린 혼돈과 맞서 싸우는 랭커나 파티장인가 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고….
뭐지?
친위대원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모험가 놈들은 어떤 놈들이지?
-그것도 모르나? 감히 안다탑 총독을 암살하려다가 도망친 놈들이잖나. 이 주변은 물론이고 왕국 전체에 현상금이 걸린 사악한 놈들이지. 굶주린 혼돈께서 아주 기뻐하실 거다.
“…….”
태현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너희 같은 편이야 머저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