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19화
-뭐야?! 빨리 확인해 봐라!
-예!
[퀘스트, <중앙을 확인…>가 추가됩니다!]
[……]
[……]
굶주린 혼돈을 따라온 플레이어들에게도 바로 메시지가 떴다.
아직 골짜기 절벽에서 싸우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어? 왜? 지금도 잘 싸우고 있잖아?”
“성질이 더러워서겠지. 하여간 도적 출신은….”
“야. 야. 조용히 해.”
“아차.”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플레이어들은 그 플레이어들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다.
굶주린 혼돈 NPC들은 대부분 인성이 개판이었던 것이다.
멀쩡한 왕국에서는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친밀도만 깎이지만, 굶주린 혼돈에서는 말 한 마디 잘못하면 목이 날아간다!
-빨리 가지 못해!
[퀘스트를 진행하십시오! 퀘스트를 진행하지 않을 경우 평판이…]
[친밀도가…]
‘아오.’
플레이어들은 투덜거리며 달려 나갔다.
지금 잘 하고 있는데 굳이 이래야 하나?
* * *
“…이, 이래도 되나?”
“된다. 자! 남은 곳에 모두 함정 설치하고 나와라!”
태현은 약탈자 플레이어들을 능숙하게 지휘했다.
대부분이 PVP에만 집중되어 있는 극단적인 놈들이었지만, 그런 건 태현에게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것보다 더 특이하고 희한한 놈들도 몇 번이고 지휘해 본 적 있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오지도 않았는데….’
‘들키면 뒷감당 불가능할 것 같은데….’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하면서도 찜찜했다.
곰 수인족들이 나가서 싸우는 동안 태현은 약탈자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마을 중앙 곳곳에 불을 지르고 함정을 설치했다.
그런 다음 화술 스킬을 써서 ‘마을 중앙이 함락되었다!’ 하고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
…누가 보면 굶주린 혼돈 첩자 같았다. 사실 약탈자 플레이어들도 지금 반쯤 헷갈릴 정도였다.
포악하고 사악한 거 보니까 굶주린 혼돈이랑 별 차이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속임수에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곰 수인족들이 후퇴…]
[……]
[<붉은 태양> 곰 수인족 부족의 장로, 우르가누가 고마워합니다!]
[저 조각 아래를 파보면 부족의 전투 주문서들이 있을 거라고…]
“아니 뭘 이런 걸 다.”
태현은 <만물의 소리를 들어라> 스킬에 감사하며 빠르게 챙겼다.
아니, 정확히는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파라.”
“예!”
빠릿빠릿하게 흙을 파내던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멈칫했다.
근데 우리가 왜 이런 것까지 하고 있지?
‘갑자기 서글퍼지는데…?’
“야. 비켜라. 왜 이렇게 느려?”
케인은 약탈자 플레이어들을 밀어냈다. 그러더니 미친 듯한 속도로 흙을 파냈다.
“…!”
“김태현! 꺼냈다!”
“잘했다. 들고 와!”
호다닥 다시 달려가는 케인의 뒷모습이 유난히 듬직해 보였다.
그 순간 적들이 도착했다.
“…김태현이다!!!”
-아키서스 놈이다!
[굶주린 혼돈의 선봉대가 마을 중앙에 침입합니다!]
‘왔군.’
태현은 나타난 적들의 모습에 놀라지 않았다.
빠르게 밀어붙이는 만큼 언제든지 올 수 있다고 각오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준비는 대충 다 끝난 상황이었다. 함정 설치했고, 필요한 아이템 다 훔ㅊ… 챙겼고….
“빠져나간다!”
“누가 남아요?”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마치 ‘저 빼고 다른 사람을 남겨주세요!’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원래 이렇게 후퇴할 때 무질서하게 우다다 도망가면 안 됐다.
뒤에서 길을 막아줄 사람 몇 명이 시간을 끌어야 했던 것이다.
“나하고 케인이 남는다. 다들 빠져나가!”
“!!”
태현의 말에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랐다.
설마 태현이 남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약탈자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절대 이해가 안 가는 행동!
대체 왜 자기가 남지??
“어 왜….”
“너도 남고 싶냐?”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태현이 뒤에 남은 이유는 간단했다.
‘약탈자 놈들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태현이 먼저 빠져나가고 나면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항복하거나 배신하거나 도망칠 확률이 매우 높았다.
괜히 그런 짓을 했다가 뒤에서 공격을 받느니 태현이 시간을 끄는 게 나았다.
‘나는 왜….’
케인은 서러운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따지고 보면 케인도 근본은 저기 약탈자 플레이어들과 비슷한데 왜 여기 같이 있어야 한단 말인가.
같이 도망치면 안 돼?
-김태현이다. 시간만 끌어!
-무조건이지.
도착한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신중하게 접근했다.
태현이 혼자 있다고 신나서 달려드는 건 아마추어나 할 일이었다.
김태현 상대의 프로라면 일단 섣불리 행동해서 상대를 경계하게 만들지 말고 일단 안심시켜야 했다.
그런 다음 차분하게 지원을 기다려야….
-뭐하냐! 돌격하지 않고!
‘저런 도움 안 되는 새끼들.’
굶주린 혼돈의 전사들이 사납게 명령을 내리자 플레이어들은 짜증을 냈다.
-시늉만 내자고.
-그래. 시늉만. 어차피 싸움은 쟤네들이 알아서 해줄 테니….
툭-
콰콰콰쾅!!
[<보이지 않는 철사 폭탄 함정>이 작동됩니다!]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
[……]
[……]
“크악!!”
“…….”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동료 한 명이 설치된 함정에 나뒹구는 모습에 오싹한 예감을 느꼈다.
…이번 싸움도 진짜 지긋지긋하겠구나!
* * *
<고대 신전의 가호-검술 스킬 퀘스트>
고대 신전이 내린 가호가 당신에게 검술 스킬의 길을 알려주려고 한다.
상대방을 함정으로 쓰러뜨리는 것도 좋겠지만 그런 안전한 방식으로는 검술이 성장하지 않는다.
…….
‘최고급 스킬들 후반 가니까 단체로 난리군.’
태현은 한숨이 나왔다.
화술 스킬은 <만물의 소리를 들어라>가 생기고 나더니 가는 곳마다 잔소리를 하고, 검술 스킬은 싸울 때마다 ‘혹시 난이도를 올려서 싸워볼래?’ 하고 자꾸 잔소리를 해댔다.
물론 이게 평소 상황이라면 태현도 기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굶주린 혼돈의 검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굶주린 혼돈의 기운이 살갗에 달라붙습니다.]
[회피율이 내려갑니다!]
[……]
한끝 차이로 목숨이 날아가는 치열한 싸움 중!
굶주린 혼돈의 전사들은 이제 태현을 그냥 이기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기는 걸 포기한 것 같았다.
자기가 죽더라도 태현한테 최대한 데미지를 입히려는 식으로 방향을 바꿨다.
태현이 찌르면 피하지 않고 맞으면서 같이 치기!
이렇게 나오면 아무리 태현이라고 하더라도 데미지를 안 입을 수 없었다.
“슬슬 빠져나가자!”
“그래!!!”
케인은 고개를 동시에 연신 끄덕였다. 정말 도망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안 돼! 김태현! 도망치는 거냐!”
뒤에서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나름 도발이라고 던지고 있었지만 태현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럼 도망치는 거지 뭘로 보이냐?
저런 하찮은 도발을….
-아키서스 놈…!
[대전사 니테렐로가 돌진합니다!]
거대한 소리와 함께 높은 곳에 위치해있던 절벽이 갈려나가고 거대한 회오리가 일어났다.
자연현상이 아닌, 대전사 니테렐로가 힘으로 아래에서 뚫고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살벌한 등장에 자리에 있던 플레이어들 모두가 경악했다.
[카르바노그가 무시무시한 힘이라고 말합니다!]
‘그래 보인다.’
문제는 저 힘이 태현을 원수 삼고 있다는 것!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었다. 태현은 즉시 반응했다.
힘은 힘으로!
-아키서스의 다섯 번째 공격!
[<아키서스의 다섯 번째 공격>을 사용합니다!]
[아키서스의 마검이 강림합니다. 검이 당신을 이끕니다.]
-내가 다시 왔다! 내가 다시 왔다!
-으아아악! 아키서스의 힘이 우리를 제압한다!!
이미 깃들어 있던 기계공학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내가 다시 왔다! 화신. 걱정하지 마라! 나는 아키서스의 검이자 아키서스의 철퇴, 아키서스의 살육을 담당하는 부관이다!
-너는 위아래도 모르느냐!!
-따지고 보면 저 검이 우리보다 오래 살긴 했….
[통제권을 잃습니다!]
[검술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고대 신전의 가호>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
[통제권의 일부를 회복합니다!]
태현의 손에 쥐어진 검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울부짖었다.
아키서스의 검술 중 가장 파괴적이고 난폭한 스킬!
마검에 홀린 광전사로 변신하는 스킬이었다.
-와라! 이 굶주린 혼돈에게 목숨 구걸 받은 도둑놈 새끼야!
-아키서스 놈의 검답게 혓바닥을 아주…!
꽝!!!!!
절벽을 뚫고 올라온 니테렐로를 향해 마검이 불을 뿜었다. 보고 있던 사람들은 평범한 공격도 스탯과 스킬이 받쳐주면 어마어마한 필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히 휘두르는 공격이었는데도 그 속도와 파괴력이 어마어마했다. 한 번 작렬할 때마다 주변에 충격파가 터져 나오고 마을과 절벽이 깎여나갔다.
그러나 놀랍게도 니테렐로는 그런 맹공을 버티면서 꿋꿋이 태현을 향해 전진했다.
검 하나로 공격을 버티면서 전진하는 모습이 스미스보다 더한 압박감을 내뿜었다.
네가 몇백 대를 때리든 간에 내가 한 방만 때리면 너는 끝장이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
태현도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거리를 벌리면서 공격을 퍼붓는 건 태현이었지만, 니테렐로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 마검 놈아! 뭐하는 거냐! 제대로 찔러야지!
-닥쳐! 닥쳐! 난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는 아키서스의 검이자 아키서스의 철퇴, 아키서스의 살육을 담당하는 부관이다! 저딴 도둑놈을 죽이지 못할 리 없단 말이다!
‘돌겠군.’
마검들끼리 싸우는 모습에 태현은 골치가 아파왔다.
지금 그럴 때냐?
-아키서스 놈… 죽인다…!
니테렐로는 한 걸음 한 걸음 더욱 더 접근했다.
이제 곧 죽인다!
-노예의 쇠사슬!
촤르르륵!
“!!”
“??!”
그 순간 쇠사슬이 날아와서 니테렐로를 묶었다.
그러고는 절벽 아래로 획 잡아당겼다.
케인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면서 니테렐로에게 노예의 쇠사슬을 걸어버린 것이다.
-이런개!!
획!
니테렐로는 말도 끝내지 못하고 그대로 아래로 끌려갔다.
[카르바노그가 노예의 헌신에 감동합니다!]
“우아아아아아악!”
절벽 밑에서 케인의 고함이 들려왔다.
태현은 정말로 당황해서 외쳤다.
“괜찮냐?!”
“살려줘!!!”
-죽여 버린다!!
아래로 끌려간 니테렐로는 바로 힘으로 절벽에 손을 박아버렸다. 그러자 떨어지던 케인도 그대로 멈춰버렸다.
니테렐로는 굶주린 혼돈의 권능을 사용해 쇠사슬을 붙잡더니 그대로 잡아당겼다.
역으로 케인을 끌어당기기 시작한 것이다.
“!!!”
케인은 기겁했다.
안 돼!
“해제!!”
-이 자식이 어딜!
니테렐로는 살벌하게 케인을 노려보았다. 태현을 죽일 기회를 가져간 만큼, 아키서스의 노예 놈은 확실하게 죽일 생각이었다.
“으아악! 살려줘! 살려줘!”
케인은 절벽 아래로 다이빙했다.
절벽을 힘으로 부수고 올라온 놈보다는 까마득한 절벽 아래가 훨씬 더 나을 것 같았다.
니테렐로는 이를 갈았다. 저 아래 깊숙한 곳으로 도망친 놈을 쫓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쾅!
니테렐로는 힘을 주고 반동으로 다시 절벽을 부수고 올라왔다.
-아키서스 놈!
…그러나 그 자리에는 이미 태현은 사라지고 없었다. 케인이 시간을 끈 사이 이미 튀고 사라진 것이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차마 니테렐로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잘못 없어…!’
‘그 상태의 김태현을 어떻게 막냐?? 너도 못 막았잖아!’
-이런 쓰레기 놈들이…!!!
니테렐로는 그야말로 절벽이 진동할 정도로 부들부들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