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13화
<약탈의 프로-곰 수인족 부족 퀘스트>
<붉은 태양> 곰 수인족 전사들은 굶주린 혼돈에게 패배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시 한번 싸울 생각이다.
약탈의 프로로서, 이들에게 어디를 공격하면 좋을지 조언해라!
이러한 조언에 곰 수인족 전사들은 후하게 보답할 것이다.
보상: ?, ???, ?????
‘착하게 살면 이렇게 보답을 받을 때가 있지.’
태현은 오랜만에 받은 달달한 퀘스트에 감동했다.
그냥 지도 펴서 아무데나 손가락으로 짚으면 보상이 나오는 퀘스트라니.
그래, 이런 것도 있어야지!
“그런데 어딜 공격하게 하죠?”
“나도 그게 고민이야.”
너무 자유로우면 오히려 더 고민이 될 때가 있었다.
곰 수인족 전사들에게 어딜 공격하게 해야 좋을까?
‘난이도 높은 곳을 공격하게 해서 시간을 끌어볼까, 아니면 낮은 곳을 공격하게 해서 더 보상을 받아볼까….’
태현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었다.
“…안다탑이죠! 안다탑 지역 해방! 안다탑 지역 마저 해방해 주세요!”
“안다탑은 이미 반쯤 해방됐잖아! 다른 곳부터 먼저 가야 해! 제가 있는 지역이 지금 굶주린 혼돈의 폭정으로 엄청나게 고통 받고 있어요! 다들 도적질을 못해서 쫄쫄 굶고 있는데!”
“그게 무슨 해방이야! 안다탑부터 해야지!!”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우르르 달려들었다.
세상에 이런 기회가!
-왜 저러는데?
-김태현이 곰 수인족 전사들한테 지휘 내린다는데? 공격 장소 정하는 권한 받았대.
-뭐?! 어떻게?! 곰 수인족 전사들 목에 칼이라도 들이댔나?!
소식을 뒤늦게 들은 다른 약탈자 플레이어들도 황당해했다.
대체 어떻게?
-지금 그게 중요하냐??
-그, 그렇지…!
지금 에스파 왕국의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이 아니었다.
물론 같이 뭉쳐 있긴 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 지역에서 자기가 약탈을 할 수 있냐 없냐였던 것이다.
다른 곳 해방도 좋지만 일단 내 동네부터 먼저 해방해야 한다!
“김태현!! 잠깐 생각해 봐라! 과연 안다탑 먼저 공격하는 게 좋은 선택일까? 저기 북쪽에 항구가 하나 있는데….”
“아 거기 항구를 누가 쓴다고! 자기가 도적질하고 싶다고 이빨도 안 먹힐 수작 부리지 마십쇼!”
자기가 쓰던 밀수용 항구를 어떻게든 확보하려던 약탈자 플레이어는 다른 사람들의 거센 반발에 밀려났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포기하지 않았다.
“…김태현.”
“?”
스윽-
약탈자 플레이어는 두둑한 골드 주머니를 태현의 손에 쥐어줬다.
“잘 좀 봐줘.”
“…!!!”
다른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경악했다.
저….
저런 똑똑한 새끼가…?!
* * *
“아이고. 죽겠다.”
“굶주린 혼돈 때문에 리그보다 더 힘든 거 같아.”
팀 KL 선수들은 캡슐에서 나와서 골골댔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야 너희 리그 중지되어서 시간 널널하겠다!’ 같은 반응을 보여줬지만, 아니었다.
리그가 중지됨→리그 뛰어야 할 선수들도 다 판온 열심히 함→그놈들 다 굶주린 혼돈 가입함→막으려면 미친 듯이 뛰어야 함!
“에스파 왕국 약탈자 놈들이 뇌물까지 바칠 줄은 몰랐는데.”
“이번에 한몫 단단히 챙기는 거지. 어. 태현아 어디 가냐?”
태현이 청소를 끝내고 밥과 국, 반찬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다음 옷을 입자 다른 친구들은 의아해했다.
“야. 묻지 마. 괜히 끌고 간다고.”
케인은 최상윤을 쿡 찌르며 말했다.
케인은 아직도 저번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앗. 어디 가? 놀러 가? 나도 같이 가자!
-이다비 집 가는데? 잘 됐네. 거기 마당 좀 정리하고 화분 새로 놓으려고 했는데. 일꾼 있으면 좋겠지.
-…그… 그건 놀러가는 게 아니잖아.
-어? 마당 정리하고 화분 놓는 거 재밌지 않나? 어쨌든 따라와.
-…….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렸다.
황금 같은 휴일을 잡일만 하면서 보낸 것이다.
그게 뭐가 재밌어…!
“뉴욕 라이온즈에서 사람 와서 만나러 나가는데.”
“뭐?! 진짜!?”
케인은 깜짝 놀랐다.
“왜 우리한테 말 안 해줬어?! 설, 설마 게임단을 매각….”
태현은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놈을 보는 표정으로 케인을 쳐다보았다.
“…저번에 말했는데 관심 없다면서.”
-음? 제안이 왔네. 케인, 이번에 게임단 관련으로….
-앗. 다 알아서 해줘! 난 네가 하라는 대로 할래!
-…자리에 나가면 이것저것 배울 수 있을….
-아니야! 난 그냥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좋아!
-저도 그냥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나도….
-마음대로 해라. 그럼 이다비만 데리고 나가야겠군.
…같은 대화가 저번에 있었던 것이다.
케인은 민망함에 얼굴을 붉혔다.
“뉴욕 라이온즈에서 온 건진 몰랐지. 뭐 광고나 그런 건 줄 알았지….”
‘광고도 뭐 나가는지는 보통 알아보지 않나?’
“게임단 파는 건 아니지? 나 요즘 열심히 살잖아…!”
케인은 지레 찔려서 다급하게 말했다.
“딱히 불만 없는데.”
“그, 그렇지? 진짜지?”
‘그냥 불만 있다고 한 다음 일 더 시켜도 좋을 텐데.’
“서로 리그 중지 되서 이런저런 고충이 있을 테니 거절하기도 뭐해서 수락했어. 그리고 스미스 놈 뭐하나 궁금하기도 하고.”
“스미스 약점 물어보면 알려주려나?”
“어떤 미친놈이 자기네 선수 약점을 말해줍니까?”
“태현이가 이적할 수도 있다고 슬쩍 거짓말을 하면….”
“…….”
“…….”
“좀, 좀 그런가?”
“당연히 그렇지 인마! 태현이 업계 신뢰도를 개박살 날 생각이냐!?”
‘흠. 솔깃했다는 건 말하지 말아야지.’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 * *
“동양의 속담에는, 장수를 쏘려면 말을 먼저 쏘라는 말이 있네.”
“?”
‘뭐 어쩌라고?’
뉴욕 라이온즈 임원, 펄리는 진지한 표정으로 코치들을 둘러보았다.
코치들은 왜 갑자기 속담을 읊나 싶어서 의아해했다.
“즉 김태현 선수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하. 알겠습니다. 그 아버지와 어머니를 설득해야 한다는 거군요?”
“아니. 그건 아니네. 이미 시도했는데 실패했거든.”
“…….”
보통 이스포츠 판의 선수들은 나이가 어리고 사회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가족들한테 호소하는 게 먹힐 때가 많았다.
그래서 당연히 뉴욕 라이온즈도 태현의 부모님에게 접촉했다.
-안녕하십니까. 약소하지만 저희가 이런 선물을….
-어엇. 정말 약소한데.
-…한정 스포츠카….
-나도 이미 갖고 있네. 구경하겠나?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상황이 좀 다르게 흘러갔다.
보통 심장이 떨릴 만한 큼지막한 선물을 받으면 사람인 이상 좀 고마워하고, 그걸 계기로 이야기하고, 계속 정성을 보여주면서 친해져야 하는데….
김태현의 부모님들은 ‘어 그래 선물 고맙네’ ‘나도 비슷한 걸 선물해주겠네’ ‘근데 내가 해준 선물이 더 비싼 것 같은데?’ 하며 딱딱 선을 긋는 것이다.
“멍청하기는. 저는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코치 중 한 명이 코웃음을 치며 손을 들었다.
펄리는 기대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말해보게.”
“김태현 선수의 부모님이 아닌, 친한 다른 선수를 말하는 거겠죠.”
“그거일세!”
“바로 케인 선수 말입니다.”
“…아니. 틀렸네.”
“?!”
기껏 방향은 맞게 잡아놓고 다른 선수를 지목하는 코치의 모습에 펄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케인도 몇 번 시도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약소하지만 저희가 이런 선물을….
-으아아아아악!
-…….
길에서 명함 내밀고 제안하기만 해도 뒤돌아서서 도망치는 케인의 모습은 뉴욕 라이온즈 스태프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다른 한국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수상한 외국인인가 봐’ ‘경찰 부를까?’ 같은 소리를 하는 건 덤이었다.
-케인 선수! 저희는 정말 수상한 사람이 아닌….
-모든 수상한 놈들이 다 그렇게 말하잖아!
-정말 이야기만 들어주십시오!
-그 이야기 김태현 쪽에 하세요! 왜 나한테 하냐고! 수상하잖아!
케인은 허술해 보이면서도 빈틈이 없었다.
모든 개인적 접촉을 완벽하게 차단!
뉴욕 라이온즈 쪽에서도 ‘저 선수 멍청한 척하면서 되게 영악하다’란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알아봤는데 케인 선수는 딱히 게임단 내에서 발언권이 없네.”
“그렇습니까? 나름 원년멤버인데….”
“본인이 별로 관심이 없다더군.”
“위장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케인 선수는 노릴 수 없다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이다비 선수일세.”
임원의 말에 코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럴듯했다.
태현이 이런저런 퀘스트나 전략을 상의할 때 이다비 선수와 같이 머리를 맞댄다는 건 꽤 유명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다비 선수가 좋아할 만한 명품을….”
“아니.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네.”
펄리는 단호하게 손을 내밀었다.
“팀 KL 선수들은 우리 쪽 선수들과 감성이 달라. 돈을 보고 모인 선수들이 아니라 서로 끈끈한 우정으로 모인 선수들이지.”
“그것보다 더 비싼 돈을 내면 되지 않을까요?”
“야. 네가 팀 KL보다 더 비싼 돈을 내줄 수 있을 거 같냐?”
게임단에서 안 떼어가고 그냥 선수들끼리 수입 나눠 갖는 단순한 구조의 팀 KL은 절대 다른 대형 게임단이 따라갈 수가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남는 게 없는 구조!
“하, 하긴….”
“맞는 말이야. 돈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면 안 되네. 중요한 건 정성이야. 정성. 안 그래도 나는 꾸준히 준비해 왔네.”
펄리는 이런저런 한국의 명절들을 조사하고 날짜를 기록해뒀다. 심지어 이다비나 가족의 생일까지.
그런 다음에 날이 될 때마다 꾸준하게 선물을 보냈다.
소소하지만 절대 가격은 싸지 않고 고급스러운 그런 것들로.
손수 편지도 썼다.
-올해도 리그를 빛내주시는 팀 KL의 이다비 선수에게… (중략) … 당신 같은 선수가 있어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이러한 정성이 언젠가 팀 KL의 이다비 선수를 감동시키고, 더불어서 김태현 선수까지 감동시키리라.
펄리는 정성의 힘을 믿었다.
“과연 그게 효과가 있을까요?”
“두고 보게나. 오늘 김태현 선수와 만나는 자리에서, 내가 준비한 정성의 힘을 보게 될 걸세.”
* * *
“요즘 점점 과해져서 부담스러운데요….”
태현은 이다비의 말을 듣고 뉴욕 라이온즈에게 괘씸해했다.
선물은 적당히 줘야 선물이지, 이건 대놓고 압박 아닌가.
이다비는 물론이고 동생인 다솔이나 다샘이 생일, 방학, 개학 등 각종 사소한 일들까지 맞춰서 선물을 보내다니.
이 정도면 질척거리는 수준이었다.
“앞으로 거절할까요 그냥?”
“주는 선물 거절할 건 없는데, 너무 과하게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해야겠어.”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결심했다.
아마 오늘 뉴욕 라이온즈가 만나자고 한 건 판온 관련으로 상의할 게 있어서일 것이다.
서로 리그 중단으로 손해를 많이 보고 있었으니까.
물론 태현이야 반 굶주린 혼돈 원정으로 어마어마한 조회수를 벌어들이며 손해를 충당했지만, 뉴욕 라이온즈는….
‘조회수는 나와도 그만큼 욕도 좀 먹고 있지.’
게임단 입장에서는 고민 좀 되리라.
“김태현 선수!”
별실에 태현과 이다비가 들어오자 뉴욕 라이온즈 사람들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보낸 선물은 잘 받으셨습니까? 저번에 동생 분이 시험에서 1등을 하셨다고 들어서, 축하의 뜻으로 선물을 보냈습니다만….”
“…….”
“…….”
태현과 이다비는 동시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앞으로는 안 보내셔도 될 것 같습니다만….”
“?!?!”